아버님께서 보관하시던 송재할아버지 문집 상,중,하 총 3권을 올립니다.
아버님(1919年生)께서 많이 읽으셨는지 제 1권지 ( 松齋先生文集 卷 之 上 ) 만 표지가 제데로 보이고
나머지 표지는 심하게 회손 되었어요
송재 할아버지 문집은
소화 7년 4월 5일 ( 1932년 4월 5일) 일본놈에게 허가가 났고
10년 6월 10일( 1935년 6월 10일) 인쇄
10년 6월 15일 ( 1935년 6월 15일)발행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소화(昭和=쇼와)는 일본 천황의 연호이며, 소화7년은 1932년을 말하며, 10년은 1935년을 말합니다.
제122대;-메이지(明治=명치),= 1867,2,13 ~ 1912,7,30.
제123대;-타이쇼우(大正=대정),= 1912,7,30 ~ 1926,12,25.
제124대;-쇼 와(昭和=소화),= 1926,12,25 ~ 1989,11,7.
제125대;-헤이세이(平成=평성),= 1989,11,7 ~ 현 재.
아래 사진은 젤 밑에있는 문집으로부터 상권, 중권, 하권으로 총 3권입니다.
총 3권중 첫번째 문집인 松齋先生文集 卷 之 上 권 입니다.
첫장을 넘깁니다.
海平 尹?求 라는 분이 쓴 서두입니다.
처음 서두가 끝나고 또다시 내용이 다른 서두가 보입니다.
永曆 二百 五十 三年 己亥小春日月 최익현(1833~1906) 선생께서 쓰신 글입니다.
( 영력 이백오십삼년 기해소춘일월 )
= 1899년 = 1899년 음력10월
참고로
永曆(영력)은 중국의 연호이고 1899년을 말하며.
己亥(기해)는 60갑자로 1899년이고 小春日月(소춘일월)은 음력 10월의 어느 날씨 따뜻한 한 날을 의미 합니다.
영력을 기록하고 기해년도 같이 병행하여 기록 하셨다는 것은 아마도 후손들에게 정확히 글쓰신 년도를
각인시켜 주기 위함이 아닐 련지요!
그다음 목록이 나옵니다.
居平洞 八景 ( 거평동 팔경) 이 눈이 보입니다.
아마도 거평 8경을 노래한 글인듯 싶어요
다음번 거평에 가면 할아버지께서 기록한 거평동 8경을 둘러봐야 겠습니다.
사벽정이라는 한시도 보입니다.
사벽정(四碧亭) - 나세찬(羅世纘)
槐松茅水列山根(괴송모수렬산근) : 회나무, 솔나무, 띠풀, 그리고 물이 산 밑에 벌려있고
太吠鷄鳴自一村(태폐계명자일촌) : 한 마을에서 개 짖고 닭우는 소리 들려온다
邀弟邀兄兼邀客(요제요형겸요객) : 동생 맞고, 형 맞고 그리고 손님도 맞아
攜琴携牘又携蹲(휴금휴독우휴준) : 거문고 가지고, 책 가지고 그리고 술동이도 준비한다.
笑吟幾戒農桑務(소음기계농상무) : 웃으며 시 읊으며 몇 번이나 농사와 양잠일 경계했으며
學問寧忘孝悌敦(학문녕망효제돈) : 학문함에도 어찌 충성과 효도의 돈독함을 잊겠는가
獨撫繁纓回白首(독무번영회백수) : 혼자 며슬길 버리고 늙어서 돌아왔으니
只綠時未報君恩(지록시미보군은) : 다만 시대가 성은에 보답하지 못할 때이기 때문이라네.
권지 2권과 3권에 실려있는 내용을 표현한 목차입니다.
할아버지 9세때 쓰신 시문이 있습니다.
" 詠射帿 九歲作 (영사후 9세작) / 활을 쏘는 것을 읊다 " 도 있네요.
종인님들께서는 9세때 무었을 하시면서 지내셨나요!
저는 코닦는 손수건 왼쪽 가슴에 매달고 책 들어있는 가죽가방 등에 매고
국민학교 1학년 엄마 손잡고 학교 다녔습니다.
정말 우리 할아버지는 대단한 분이셨네요... ㅎㅎ
시간이 될때 해석좀 해봐야 겠습니다.
송재 할아버지의 문집을 마칩니다.
끝~~!
첫댓글 좋은자료를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