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모리 여행16 - 산속에 도와다 신사를 구경하면서 일본무존을 생각하다!
2022년 10월 27일 아오모리현 도와다시의 도와다코 호수 十和田湖 남쪽에 있는 야스미야 休屋
에서 버스를 타고 왼쪽으로 도와다코 호수를 끼고 달려서 조시오타키 (金兆子大潼 )에 내립니다.
조시오타키 폭포 를 구경하고는 오이라세계류 奧入瀕溪流 계곡 강변 하이킹 을 시작해 서너시간
동안 걸어서 이시게도 Ishiqedo Rest Area 石ケ戶 까지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되돌아 옵니다.
버스는 오이라세계류 奧入瀕溪流 계곡을 지나 네노구치를 거쳐 도와다 호수 를 끼고 달려서
종점인 야스미야 休屋 에 내려서는 버스 터미널 2층에 자리한 식당에서 점심 을 먹습니다.
타카무라 고타로 씨의 조각상인 오토메노조 (女人の象를 보기 위해 마을로 들어서니
여긴 구시가지로 오래된 옛 사진 들이 많이 붙어 있어 옛날 풍경을 짐작하게 합니다.
또 야부사메(유적마) 라고 해서 도요다시 에서 개최하는 달리는 말 위에서 활을 쏘는 사쿠라 야부사메
는 1년에 1번 신사에서 주최 하는데..... 말 위에서 3개의 과녁을 맞추는 전통의식으로 헤이안
(교토) 시대에 시작되어 가마쿠라 시대에 정립 되었으나 시대가 바뀌면서 쇠퇴하여 맥이 끊어집니다.
그후 액막이용 제례행사 로 명맥을 유지하다 말 위에서 자세를 바꾸며 쏘거나 연속해 쏘는등 퍼포먼스성 기술
에 무녀들이 말을 타고 활을 쏘게 하는 퍼포먼스를 강조해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신사에서 모시는 신의 종류나 신사가 내세우는 예의작법에 따라 다르지만 2정(町)의 코스 를 만들고 왼편에
세개의 목표 를 세워 두며, 파마시를 가지고 있는 기수가 야부사메의 신토 정복 을 입고 말에 오른 후
신주(神主)가 신호하면 말을 타고 달리며 표적을 맞추어 길흉화복을 점치고 기원의 성공 을 바란다고 합니다.
도와다코 호수에 산다는 환상의 물고기 히메마스 姬魚尊 요리를 판매하는 식당을 지나 도리이 (鳥居) 가
보이니 도와다 신사 (十和田神社) 로 참도(參道) 라 불리는 도로에는 수백년 묵은 아름다위 큰 스기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어 엄숙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10분 가량 걸어 신사에 도착합니다.
돌사자상 을 지나서도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또 줄지어 선 도리이(鳥居) 가 나타나고
계속 가노라니...... 물로 입안을 헹구고 손을 씯는 우물 이 보이고 그러고는
오른쪽에 도리이(鳥居) 를 지나서 가파른 돌게단을 올라가니 거기에 신사가 나타납니다.
교회나 이슬람 모스크에 절이며 신사를 찾는 신도 들은 세계 어느나라에서나 경건하고 지극
정성으로 소원을 비는 모습 을 보는데.... 사회주의 국가로 종교를 아편 에 비유한
공산당이 통치하는 나라 중국에서도 절을 찾은 신도들은 신앙심 이 매우 깊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여기 신사(神社)를 찾은 사람들도 하나 같이 경건한 모습 으로 고개를 숙여 절하고는
오미쿠지 를 뽐아 운을 점치는 모습을 보는데.... 도와다 호반에 위치한
“도와다 신사 (十和田神社)” 는 오래된 삼목나무 숲에 둘러싸인 전통있는 신사라고 합니다.
“도와다 신사(十和田神社)” 는 일찍이 807년 무장인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 가 창건했으며 제신
(祭神) 은 야마토타케루(日本武尊 일본무존) 이지만...... 1868년 무진전쟁 이후 메이지(明治)
시대에 발령된 신불 분리 까지는 동북 지방의 물의 신 신앙의 신사 로서 믿음을 얻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 도와다 신사에는 난소노보(南祖坊) 라는 승려가 법력으로 아홉 마리 용으로 변신해 도와다 호수를 지배
하고 있던 이무기 하치로 타로를 퇴치했다는 전설 이 있으니 그 난소노보를 청룡권현으로
생각해 모신 것이 현재 도와다 신사 라 하며 때문에 신사에서는 개운(開運)의 효험 을 받을수 있다고 합니다.
야마토타케루 (日本武尊 일본무존)는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전설의 영웅르로 제12대 케이코 덴노의 아들
이자 고사기에 따르면 제14대 주아이 덴노의 아버지 이니..... 동방 원정을 비롯한 무수한 무훈 을
세웠다는데 기록마다 행적이 다르고 성격도 일관되지 않으니 야마토 에서 가장 강한 전사들에게
부여되는 호칭 일뿐 후대에 이들의 무용담들이 한 인물의 행적으로 묶어서 기록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720년에 편찬된 “일본서기” 에서는 '일본무존(日本武尊)', 712년에 지어진 “고사기” 에서는
'왜건명(倭建命)' 으로 이름의 한자 표기는 다르지만.... 발음은 동일하게 '야마토타케루노
미코토 (やまとたけるのみこと)' 이니 말로만 전해지다가 8세기 초에 한자로 기록된 듯 합니다.
천황(일왕)의 명령으로 오랫동안 야마토 정권에 반항하고 있던 구마소를 평정 하러 파견된 야마토타케루
는 구마소의 영역인 미나미큐슈가 산으로 둘러싸였고, 수장의 집 역시 쉽게 공략할수 없게 요새화
되어 있어서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는데.... 이때 신축 낙성연 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계략을 짭니다.
야마토타케루는 미녀로 변장 하고 잔치에 참석하니 구마소의 수장은 야마토타케루의 미모에 반해
접근했고,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칼을 뽑아 구마소 형제를 암살 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여러지방의 반항 세력을 평정한 야마토타케루 는 끈질기게 야마토 정권에 반기를 드는 이즈모(出雲)
지방에 도착해서는 이즈모의 수장을 암살하기 위해, 장보고를 암살한 염장 처럼 먼저 그에게
접근해서 친구 가 되어 친하게 지내며 우애를 다진 야마토타케루는 어느 날 이즈모의
수장에게 수영 을 하자고 한후, 먼저 물에서 나와서 이즈모 수장의 칼을 목검으로 바꿔치기 합니다.
이즈모의 수장도 물에서 나오자, 야마토타케루는 검술 대결 을 하자고 제안했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야마토타케루를 믿고 있었던 이즈모의 수장은 흔쾌히 승락하며 칼을 뽑았으나 칼은
이미 목검으로 바꿔치기 된 상태였으니 이 때문에 쉽게 이즈모의 수장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일화 중에 가장 유명한건 사가미(相模) 정벌 인데 일왕은 서국 정벌에서 돌아온 야마토타케루 를 마치
전장에서 돌아온 김유신이 집의 우물물 한사발 마시고 다시 출정했듯.... 쉴틈도 없이 동국정벌
을 명했으니 정벌에 앞서 야마토타케루는 이세 신궁에 있는 숙모 야마토히메노미코토 를 찾아갑니다.
야마토히메노미코토는 그에게 스사노오가 야마타노오로치를 토벌 하고 얻은 삼종신기 중 아메노무라
쿠모노츠루기 검 과 부싯돌이 든 작은 주머니 를 주며 위급한 일이 생기면 주머니를 열라고 조언합니다.
숙모의 선물을 받고 이세 신궁 을 떠난 야마토타케루는 동쪽으로 향하다 오와리국(나고야) 에서
미야즈히메 라는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져 정벌을 마치고 야마토로 돌아갈 때,
다시 찾아오겠다며 결혼을 약속하고 더욱 더 동쪽으로 향하여 사가미(오다와라) 에 도착합니다.
계략으로 유명했던 야마토타케루였으나 이번에는 사가미 호족의 계략에 빠져 초목이 우거진 마른
들판으로 유인됐고 야마토타케루를 태워 죽이기 위해 사방에 불을 질렀으니 다급해진
그는 야마토히메가 준 주머니를 열었고 야마토타케루는 천총운검 을 휘두르며 주위의
풀을 베고 부싯돌로 맞불 을 놓아서 위기를 모면한 후에 사가미 호족을 멸하고 평정에 성공 합니다.
야마토타케루 는 바다를 건느려고 했으나 바다의 신이 분노해 파도 가 거칠어지고 배는 가라앉
을 뻔했으니 이때 그를 따라온 아내, 오토타치바나히메 는 말하니 '사가미국에서 들판이
불탔을 때 불길 속에서 당신은 절 지켜주었으니 죽어도 후회는 없습니다.' 라 말하고
그녀는 파도에 몸을 던지자 파도는 진정 되고..... 야마토타케루는 무사히 건너편에 도착합니다.
이후 바닷가에는 그녀가 쓰던 빗 이 떠내려와 있었고 야마토타케루는 울면서 그 빗으로 그녀의
무덤 을 만들었으며 그리고 그는 돌아가기 위해 아시가라산 정상에 도착했을 때,
비탄에 잠기며 '나의 아내여' 라고 호소했으니 이 근방을 아즈마(あずま) 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서국과 동국을 평정 하고 오와리국(나고야)에 돌아온 야마토타케루는 결혼을 약속했던 미야즈히메
와 맺어지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중에 이부키산에 나쁜 신 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토벌
하기로 하고 미야즈히메에게 아마노무라쿠모노츠루기를 맡기고, 맨손으로 이부키 산에 올랐습니다.
산을 오르던 야마토타케루는 하얀 멧돼지 를 보고 신의 사자 라고 여겨서 지금은 죽이지 않고 나중에 산에서
내려갈 때 죽이겠다고 말하고 무시했지만, 멧돼지는 신의 사자가 아니라 화신 이었으니 결국 신을
무시한 댓가로 우박 이 떨어져 길을 가로막고, 체력을 심하게 소모한 야마토타케루는 들판을 지날 때
'지금은 걷지도 못하고, 다리가 삐걱거린다.' 라고 한탄했으니 이 들판은 타기노(たぎの) 라 불린다고 합니다.
그가 지팡이를 짚고 걸었던 곳을 '지팡이 고개' 라고 하고... 어느 마을에 도착하자 다리가
'삼중으로 구부러져 단단한 떡 같다.' 라고 한탄한 것으로 부터 '삼중미에' 라고 불린
다고 하는데 결국 그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노래를 부르다가 힘이 다해 쓰러졌다 고 합니다.
아버지 케이코 덴노와 아내 미야즈히메, 그리고 그의 아이들은 야마토타케루의 죽음을 비통해 하며
장례를 치렀고 야마토타케루의 영혼은 백조 가 되어 마침내 그리운 고향으로 날아갔다고
하며 백조가 날아 머물렀던 카와치국(오사카) 에 능을 만들어 그곳을 '백조의 능' 이라고 불렀습니다.
야마토타케루는 사후 신격화 되어서 백조로 변한 그가 마지막으로 섰다는 땅 위에는 오토리타이샤
가 지어져 지금도 주요 제신 으로 모셔지고 있으며...... 저 신사 외에도 야마토타케루
신앙의 신사 들이 일본 전역에 있으며 대부분 야마토타케루의 설화와 관련 되어 있는 곳들 입니다.
도와다 호수는 하치로 타로 라는 사냥꾼 무리가 살았는데 규칙을 깨고 호수의 곤들매기
를 먹다가 여덟개의 머리가 달린 큰 뱀 이 되어 호수를 지배하는 중에 도와다
신사에 난소노보(南祖坊) 라는 승려가 법력 으로 이무기 하치로 타로를 퇴치했다고 합니다.
도와다 신사 (十和田神社) 를 구경하고는 다시 계단을 내려와서는 호숫가 쪽으로 걸어가니
보이는게 타카무라 고타로 의 오토메노조 (女人の象) 인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기념촬영 을 하느라 난리도 아닌데... 동상이 일본인들에게는 무척 유명한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