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암 김동출 수필. 비설거지와 수수 범벅
김동출 수필
“아, 아, 아. 동민 여러분! 내일 새벽부터 우리나라 전역에 태풍이 닥친다고 하니, 각 가정에서는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여 가옥과 농작물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주변을 단디 단디 살펴 주이소. 흠~~~.” 건넛마을에서 찌렁찌렁 들려오던 구장님의 단내 나는 확성기 목소리는 삽시간에 온 동리 사람들을 바쁘게 만들었다. 이어서 태풍이나 큰비가 올 징조로 샛바람이 살살 불기 시작하고, 비를 머금은 시꺼먼 구름이 동쪽 하늘을 뒤덮으면, 할아버지는 허리춤 자세로 마당 가로 나와 가족에게 재빨리 비설거지를 마치라 고함을 치셨다.
누나와 나는 멍석에 널어놓았던 나락을 가래로 퍼 담아 가마니에 채워 축담 위에 올렸다. 비에 젖지 않도록 비료 포대를 씌워 갈무리하고, 멍석은 말아 뒤란의 시렁에 차례로 얹었다. 맏이라 어른들의 기대만큼 스스로 찾아 할 일이 많았다. 어머니는 장마 속에서도 밥을 지을 수 있도록 땔감을 준비하라며 내게 특명을 내리셨다. 할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운 손도 끼질 솜씨가 어른 못지않게 실팍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람쥐처럼 몸을 날려 낫을 찾아 들고, 뒤란 감나무 아래 높다랗게 쌓아둔 나무 낟가리에서 청솔가지를 넉넉히 빼내 왔다. 곰삭은 가지를 참나무 받침목에 번갈아 얹어가며 손도끼로 한 자 길이로 잘라 가지런히 모았다. 자른 청솔가지를 단으로 묶어 부엌 뒤 시렁 밑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그러고는 뒷마당 두엄 밭에 매어둔 살림 밑천 누렁이 암소를 아래채 마구간으로 옮겨 매고, 할아버지께서 베어다 놓은 꼴 단을 풀어 부드러운 억새를 한 아름 안아다 여물통에 넣어 주었다. 다시 뒤란으로 나가 돼지우리 안에도 새 짚단을 깔아주고, 여물통을 깨끗이 씻어내어 정성껏 채워주었다. 아버지와 막내 삼촌은 마루 밑에 넣어둔 마니라 밧줄과 굵은 새끼줄을 꺼내와 지붕 전후좌우로 촘촘히 당겨 매었다. 이 일을 ‘재 넘기’라 불렀는데, 줄 끝은 마루 기둥과 댓돌로 쓰는 큰 돌덩이에 단단히 이어 묶었다. 할머니는 장독으로 납시어 빗방울이 떨어지기 전에 덮개를 닫으셨고, 어머니는 저녁 밥쌀을 도랑사구에 받아 씻어 가마솥에 밥을 얹혀 놓은 뒤 얼른 남새밭으로 나가셨다. 가마솥 밥 위에 얹어 쪄 먹을 호박잎을 따와 작은 소쿠리에 담아 부엌에 갖다 두고, 다시 넓은 대광주리를 들고 손놀림이 빠른 누나와 함께 큰 밭으로 가서 고구마 줄기를 따왔다. 껍질을 벗겨 삶은 줄기를 곰삭은 멸치액젓에 버무려 저녁 밥상에 올릴 반찬을 마련했다.
어느새 빗방울이 마당 가 감나무 잎사귀에 후드득후드득 떨어졌다. 이장님이 마이크로 알리던 바로 그 ‘장마’가 시작된 것이었다. 아랫방에서 곰방대에 풍연초를 재어 담배를 피우시던 할아버지는 그제야 대나무 삿갓을 쓰고, 삭괭이를 들고 개암나무 무성한 산등성이를 돌아 열댓 마지기 논배미가 있는 보름 뫼 들녘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셨다.
며칠째 장마가 이어지면 일부러 군불을 지펴 눅눅한 방안의 습기를 말렸다. 하릴없는 우리는 대청마루 끝에 제비처럼 앉아 물동이로 퍼붓듯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멍때리기 일쑤였다. 그때 마당 끝에서는 두꺼비가 살금살금 기어들었고, 삽짝 밖 무논에서는 소나기를 타고 황금빛 미꾸라지가 하늘로 튀어 오르다 마당 위로 툭툭 떨어지곤 했다. 강풍과 폭우가 요란한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뒤에는 부엌 아궁이 고래로 물길이 터져 맑은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고, 문전옥답 논두렁을 받치는 언덕은 해마다 터져내려 어머니의 가슴을 애태우곤 했다.
태풍이 몰아치면 사람과 동물이 어울려 사는 우리 집은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고요한 섬이 되기 일쑤였다. 비좁은 마루 밑에서는 개와 고양이가 으르렁대며 싸우고, 돼지는 배고파 꿀꿀댔다. 빗속의 닭들은 마당을 서성이며 대청마루에 올라 발자국을 남기다 곰방대에 쫓겨났다. 짐승들이 이러하니 우리 여섯 남매도 답답했다. 밤이 오면 적막이 내려앉고, 석유가 떨어진 날이면 우리는 제삿날 남은 초를 찾아 반딧불 같은 불빛을 켜고 어둠 속을 견뎌야 했다.
궂은 날씨가 며칠이고 이어져 마음이 지쳐갈 즈음, 할머니는 늘 우리의 짜증을 달래줄 특별한 음식을 마련해 주셨다. 그것은 호랑이도 두려워한다던 ‘수수 범벅’이었다. 아래채 아궁이에 걸린 무쇠 솥뚜껑을 뒤집어 수수를 볶아내고, 맷돌에 갈아낸 가루로 반죽을 빚어 가마솥에 올려 구수하게 쪄내면, 그 맛깔스러운 범벅이 우리 앞에 놓였다. 먹거리가 귀하던 시절, 여름날의 할머니는 우리 간식 만들기의 달인이셨다.
장마가 이어지는 날이면, 대청마루 끝에 새끼 제비처럼 나란히 앉아 초가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멍하니 귀 기울이던 우리 곁에서 할머니는 더욱 분주해지셨다. 겨울에 말려둔 고구마 빼떼기와 굵은 수숫가루를 조물조물 반죽하고, 신화당으로 단맛을 더해 가마솥에 푹 쪄내셨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것을 나무 반 재기에 옮겨 노란 콩가루를 입혀 절편을 만든 뒤, 부엌칼로 석둑석둑 잘라 한 입씩 물려주시던 간식. 비록 모양은 투박했지만, 그 어떤 진미도 부럽지 않던 우리들의 둘도 없는 별미였다.
동네에서 감나무 집으로 통하던 고향 집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허물어지지 않은 돌담으로 남아있다. 키 큰 오동나무가 그늘을 만드는 뒤란의 옹달샘은 사철 마를 날 없이 맑은 물을 퐁퐁 쏟아 내며 심신을 단련시켰다. 늦여름 공부하다 더위에 지쳐 마당 가로 나서면 초가지붕에 어스름 달빛 먹고 넌출 넌출 줄기를 달고 피어난 새하얀 박꽃은 친구처럼 반겨주었다.
봄이면 종달새, 뻐꾸기, 허허 새 울음이 전설처럼 들려올 때, 할머니는 우리의 허기를 당신의 허리에 매단 줌치 같이 달고 다니며 살뜰히 보살펴 주셨다.
세월이 반백 년을 훌쩍 넘어, 코흘리개 철부지였던 우리 여섯 남매도 예순을 넘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우리 성장에 큰 울타리 되어 주셨던 조부모님과 부모님은 오래전에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흑백사진 같은 추억은, 철부지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 허리 한번 제대로 펼 새도 없이 정성을 베풀어 주셨던 어른들의 따스한 그 손길이, 빗소리 요란한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립다.
2026년 5월. 소나기가 유년의 추억을 소환하는 날 밤.
첫댓글 도랑사구 참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틈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
몸담아 살아본 적 없지만, 늘 그향수처럼 그리운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