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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산 백학장원 원문보기 글쓴이: hwd
진짜 채소는 그렇게 푸르지 않다
가와나 히데오
-채소는 원래 썩지 않는다
뜰에서 자라는 감나무는 아무런 손질을 하지 않아도 해마다 열매를 맺는다. 뒷산의 감나무도 마찬가지다. 농약이나 비료를 뿌리지 않아도 하나같이 건강하게 자란다. 한편 식용으로 팔리는 감의 경우 농약은 뿌리지 않았을지 몰라도 비료는 주어서 키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같은 감인데 이상하다.
비료가 없어도 잘 자라는 감나무에 왜 비료를 줄까?
이유는 간단하다. 비료를 주면 수확량이 많아지고 당도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비료는 효과가 매우 크다.
그렇다면 뜰이나 뒷산의 감나무에서 열리는 감은 비료도 주지 않았는데 어째서 잘 자랄까?
그 이유는 자연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생태계의 균형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과실이나 채소 같은 농작물은 농약을 쓰지 않으면 으레 벌레로 인한 피해가 심해진다고 한다. 앞서 얘기한 감나무를 다시 떠올려 보자. 뜰도 마찬가지지만 산에는 더욱 많은 벌레가 있을 게 분명한데, 농약을 뿌리지 않아도 해마다 새빨간 감이 가지가 휠 정도로 주렁주렁 열린다.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벌레 먹은 채소는 맛있다.’ 라는 말은 과연 사실일까? 뜰이나 산에는 떫은 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입 베어 물면 맛있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달고 싱싱한 감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벌레로 인한 피해가 심한 편도 아니다.
‘벌레 먹은 채소가 맛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벌레가 전부 먹어 치웠을 것이다. 벌레가 꼬이는 감과 꼬이지 않는 감은 무엇일 다를까?
자연재배 농법에서는 그 차이가 비료에 있다고 본다. 비료를 준 감, 요컨대 인간이 먹기 위해 가꾼 감만이 벌레 때문에 피해를 본다. 그래서 벌레를 없애기 위해 농약을 사용한다.
더 달고 맛있는 감을 더 빠르게 많이 수확하기 위해 비료를 주었더니 벌레가 꼬이고 말았다. 그래서 벌레를 죽이려고 농약을 뿌린다. 그런데 요즘은 농약을 되도록 쓰지 않은 먹거리를 찾는 사람이 많다. 어쩐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벌레는 어째서 비료에 모여 들까?
자연재배 농법의 관점에서 보자면 비료의 성분이 채소나 과실에 자연스럽지 않은 물질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비료란 화학비료와 유기비료를 가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채소를 기르려면 ‘질소’, ‘인산’, ‘칼륨’이라는 3대 비료 성분이 필요하다고 배운다. 그런 만큼 비료가 부자연스러운 물질이라는 말이 뜻밖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비료를 쓰지 않고 채소나 과실을 재배하는, 즉 자연재배 농법으로 작물을 경작하는 논밭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비료를 쓰지 않은 기간이 길면 길수록 논밭의 벌레는 차츰 줄어들다가 결국 없어진다. 벌레는 채소에게 부자연스러운 물질인 비료를 먹으로 오거나 병의 원인을 없애러 오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자연재배 농법으로 기른 양배추나 배추도 겉잎만큼은 벌레가 먹을 수 있다. 겉잎은 땅 위로 처음 나오는 발아 부분이다. 자연재배 농법에서는, 자연재배로 경작하는 작물일지라도 애초에 씨앗이 일반 비료나 농약에 푹 절어 있다면 씨앗의 불순물이 채소의 초기 생육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그러나 벌레가 겉잎을 정화함으로써 남은 잎은 비료의 영향을 받지 않고 벌레 먹을 일도 없이 잘 자란다.
‘해충’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까지 농업에서는 벌레를 적으로 여겼다. 그러나 자연재배 농법에서는 채소의 관점에서 벌레를 생각한다. 따라서 벌레는 채소의 몸에 불필요한 것을 없애주는 고마운 존재다.
벌레와 마찬가지로 밭에서 자라는 잡초도 농부들의 골칫거리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벌레를 바라보는 관점을 풀에도 고스란히 대입할 수 있다.
자연농법 생산조합의 다카하시 히로시는 30년 넘게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고 채소를 길러 온 자연재배 농법의 일인자이다.
다카하시의 밭을 찾은 사람들은 잡초 한 포기 자라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에 입을 떡 벌렸다. 사람들은 “어째서 잡초가 전혀 없습니까?” 라고 한 목소리로 물었다. 다카하시는 “풀은 땅을 진화시키기 위해 나는 것입니다. 작물에 적합한 땅이 만들어졌다면 잡초는 자연히 없어지는 법이지요.” 라고 대답했다.
이를테면 공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참억새 같은 키 큰 잡초는 땅을 진화시키기 위해 자연스레 자라났다가 시들고 또다시 자라나는 일을 몇 번이나 반복한다. 이윽고 땅이 진화하면 그 풀은 사라지고 다른 풀이 자란다. 이번에는 쑥이나 살갈퀴 같은 키 작은 풀이다. 그리고 별꽃 같은 풀이 나기 시작하면 이제 그 땅은 작물을 키울 수 있는 땅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연재배 밭에서는 씨를 뿌릴 때나 모를 낼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 풀을 뽑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재배에 방해가 되는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재배하려는 채소에 걸맞은 땅이 되면 역할을 다한 풀은 자연스레 모습을 감춘다. 어쩌면 풀은 저마다 사명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카하시는 “다카하시 씨 밭처럼 만들려면 몇 년이나 걸립니까?” 라는 질문에 “땅을 본래 모습으로 되돌리려면 먼저 비료 성분부터 없애야 합니다. 지금까지 땅에 들어 간 비료의 양과 질에 따라 걸리는 기간도 달라지지요.” 라고 대답했다. 이어 “비료를 없애기만 하면 농사짓는 일도 무척 즐거워집니다.” 라는 다카하시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랐다.
그런데 애초에 병이란 무엇일까? 자연재배 농법의 관점에서는 무너진 자연의 균형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으로 파악한다. 안에 쌓인 부자연스러운 물질을 바깥으로 열심히 내보내는 정화 작용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래서 난처하기는커녕 오히려 매우 고마운 현상이라고 여긴다. 당장 피해가 생긴 자리만 보면 병이 골치 아픈 현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에 걸려 자연을 거스르는 원인을 밖으로 내보낸 덕분에 자연이 다시 균형을 되찾는다면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시적으로 채소를 덮친 병은 무너진 자연의 균형을 되찾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의 균형이 지켜지면 비료나 농약 없이도 작물은 자란다. 이건이 자연재배의 간단한 원리다. 비료나 농약은 분명 효과가 좋다. 하지만 자연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비료를 주었기 때문에 벌레가 꼬이고, 그러고 나면 벌레를 없애기 위해 살충제가 필요해진다. 또한 풀이 지닌 역할을 이해하지 못한 채 불필요한 잡초 취급을 하며 제초제를 마구 뿌리기도 한다. 병에 걸리면 농약이라는 약으로 해결하려 하고, 그것이 다시 땅을 더럽혀서 이듬해 작물에 영향을 끼친다.
왜 슈퍼마켓에서 파는 채소는 썩는 걸까?
어느 산, 어느 들판을 보더라도 식물은 그저 시들기만 하는데, 우리가 먹는 채소는 어김없이 썩는다. 애초에 사람이 재배한 채소도 식물이 분명하므로 시들어야 정상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면 썩는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인지도 모른다.
자연재배한 농작물은 왜 썩지 않을까? 아마도 해당 작물에 모여든 균도 자연의 균형을 지키기 때문일 것이다. 병원균이 모여 들어도 작물 자체가 지닌 균형이 좋기 때문에 감염되지 않는다. 예방을 하지 않았으니 애초에 병원균이 들어올 틈이 없는 것이다.
썩은 농산물은 병원균에게 당하고 말았다. 무슨 수를 써도 절임이 되지 않을뿐더러 술이나 식초가 되지도 않는다. 먹을 수 있는 모습이 되기는커녕 그저 부패만 진행될 따름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놀랍게도 어느 쪽이나 물이 된다. 다시 말해 모두 수분으로 변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같아도 과정이 다르다. 한쪽은 발효해서 술이 되고 식초가 되고 결국 물이 된다. 나머지 한쪽은 부패해서 물이 된다. 이때 세상에 존재하는 시간이 긴 쪽은 발효하는 작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발효하는 채소는 말하자면 장수하는 채소다.
발효하는 채소와 부패하는 채소.
이 차이를 만드는 원인은 대체 무엇일까?
한 가지 미리 말해둘 것은, 자연재배한 작물이 썩을 때도 있다는 사실이다. 자연재배한 기간이 짧은 작물이라면 특히 그렇다. 이전에 사용한 농약이나 비료가 마치 다 빠져나가지 못한 흙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도 발효와 부패의 차이를 생각할 때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다.
자연의 섭리, 식물의 생리를 생각하면 썩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다. 식물은 원래 시들거나 발효한다. 그러므로 썩는 채소란 식물 본래의 모습에서 벗어난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사람이 손을 댄 채소는 반드시 썩고 만다. 그리고 지금 시장에 나와 있는 채소는 대부분 썩는다. 겉으로는 채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채소의 생리를 갖추지 못한 먹거리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이대로라면 그런 위기가 다가올 날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비단 채소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 빠르고 더 크게 키우기 위해 항생물질이나 호르몬제 같은 주사를 맞힌 소나 돼지의 고기, 선도유지제에 푹 담그거나 항생제를 투여해 양식한 물고기, 화학조미료와 첨가물을 듬뿍 넣은 가공식품 등 겉보기만 멀쩡한 먹거리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진짜 채소를 가려내자 – 농약과 비료
딸기 농가에서 손수 재배한 딸기를 먹지 않는 건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생산자야말로 농약의 무서움과 폐해를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딸기를 먹을 때는 껍질을 벗기지 않는다. 하지만 과실에다 직접, 그것도 몇 번씩이나 농약을 뿌렸다는 사실을 알면 아무래도 그냥 먹기 거북할 것이므로 한 꺼풀 벗겨 내고 먹는다는 얘기까지 도는 모양이다.
채소를 유통하는 현장에 있다 보면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다. ‘오이에 총 50~60번, 수확하기 전 며칠을 제외하고 매일같이 소독제를 쓰는 생산자가 있다.’ ‘양파에도 여러 종류의 농약이 쓰이기 때문에 양파를 상자에 담는 일을 하는 사람은 손의 피부가 너덜너덜 벗겨졌다.’ 등등..
일반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작물에만 농약을 쓰는 게 아니다. 이를테면 씨앗도 농약으로 덧씌워 놓는다. 기껏 뿌린 씨앗을 벌레가 먹어 치우면 채소가 잘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일반재배를 할 때, 특히 뿌리채소를 가꿀 때는 씨앗을 심기 전에 땅에도 토양소독제라는 농약을 붓는다. 땅속에 들끓을지 모를 벌레나 병원균을 밀 차단하기 위해서다.
전에는 토양소독제로 취화메틸이라는 독성 높은 물질을 썼다. 이 물질은 오존층을 파괴하고 온난화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몬트리올 의정서에서 2005년까지 전량 폐기하도록 정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토양소독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위화메틸을 대체할 다른 농약이 개발되었을 따름이다.
토양소독제는 수분과 양분을 지키는 땅의 힘을 떨어뜨린다. 약의 영향으로 땅속의 미생물이 죄다 죽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비가 조금만 내려도 겉흙이 씻겨 내려가고 땅이 거북이 등처럼 말라서 식물이 자라지 못하게 된다. 심지어 사막화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병충해를 막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했는데, 효력이 센 농약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독자들 중에도 ‘유기농 채소는 곧 무농약 채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판되는 유기농 채소 역시 대부분 농약을 써서 키운다.
유기농산물과 그 가공품에 관한 일본 농림수산성의 규격, 즉 유기 JAS는 처음부터 농약의 사용을 허용했을 뿐 아니라 해마다 인증 농약의 수가 늘어서 현재 농약 29종의 사용을 허가하고 있다. 어째서일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먹을 채소가 자라지 않는 현실 때문이다.
일본은 단위면적당 농약 투입량이 2007년을 기준으로 OECD 주요국 중에서 두 번째로 많다. 사용량만 보면 당연히 미국이 월등히 많지만 어디까지나 땅이 넓은 탓이고 면적당 사용량을 보면 일본이 미국보다 20배 많은 농약을 쓰고 있다. 수입 채소와 달리 국산 채소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안타깝게도 농약에 관한 한 국산 채소도 안심할 수 없다.
이렇게 위험성이 밝혀졌는데도 농약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요즘에는 효율성을 따지는 생산자만 문제가 아니라 모양이나 규격에 까다로운 소비자도 한몫을 거드는 듯하다. 아무래도 모양이 예쁜 채소, 크기가 가지런한 채소가 인기 있고, 잘 팔린다. 그러다 보니 생산자는 겉보기에 좋은 채소를 만들기 위해 약이나 비료에 더욱 더 의존한다.
전후 식량난 시대에는 농약이나 화학비료가 분명히 필요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농약이나 화학비료가 없었더라면 굶어 죽는 사람이 훨씬 많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사람을 구해 준 화학물질의 힘이 더욱 빠르게, 더욱 아름답게, 더욱 많이‘라는 효율성과 합리성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말았다. 소비자의 바람을 생산자가 구현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원래 JAS 규격 자체는 1950년에 생산 합리와, 소비 합리화를 위해 제정한 것이다.
그러나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그것이 필요했던 시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지나치게 많이 썼고 지나치게 많은 것을 바랐기 때문에 나쁜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제 이런 문제를 인식할 때가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농약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원재료 성분에 따라서 효과가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기본적으로 비료는 양분을 공급하고 성장을 촉진하며 수량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간단히 말해서 더욱 빠르게, 더욱 맛있게, 더욱 많이 키울 수 있다.
비료의 주성분은 질소, 인산, 칼륨이다. 특히 질소는 식물의 생장을 두드러지게 앞당기는 성분이다. 화학비료로 작물을 재배하면 처음에는 수확량이 늘고 채소의 상태도 눈에 띄게 좋아진다.
채소는 생장에 필요한 질소를 토양에서 ‘초산성질소’라는 상태로 빨아들인다. 초산성질소를 초산태질소, 초산염, 초산이온이라고도 하는데, 최근 이 성분이 우리 건강을 위협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를테면 초산성질소를 고기나 생선 등 동물성 단백질과 함께 섭취하면 발암성 물질로 변한다는 이야기가 그러하다.
질소 성분은 주로 식물의 잎이나 줄기의 생육에 관여한다고 한다. 질소 성분이 많을수록 채소, 특히 잎채소는 짙푸른 색을 띤다.
질소 성분이 많이 들어 있지 않은 잎채소는 연한 녹색을 띤다. 언뜻 보기에 그다지 싱싱하지 않고 볼품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 가게를 찾는 손님들도 자연재배한 잎채소를 보고 색이 연하다면 놀란다. 먹음직스럽게 보이려고 일부러 비료를 넣어서 색을 진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짙푸른 채소를 고를 마음이 들지 않는다.
식물의 생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잎채소는 꽃이 피거나 열매가 맺기 전, 어린 시기에 수확하는 채소다. 채소가 토양에서 빨아들인 질소는 초산성질소로 줄기나 잎에 머물러 있다가 채소가 성장하면서 광합성에 의해 단백질로 바뀌어 간다. 그런데 잎채소는 어릴 때 수확하기 때문에 초산성질소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유기재배 농가 중에는 소의 분뇨를 많이 쓰는 생산자가 적지 않은데, 화학비료와 유기비료 가릴 것 없이 비료 자체가 자연에 불필요한 물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이타마 현의 스가 가즈오도 소가 풀을 가려 먹는 모습을 직접 보고서야 비료의 폐해를 깨달았다고 한다.
물론 비료는 다양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비료를 쓰면 과일이나 채소의 감칠맛이 진해지고 단맛이 강해진다. 열매도 잘 열린다. 비료에는 채소가 본래 지닌 요소를 더욱 강화하는 힘이 잇다.
그런데 비료를 주면 밭에 벌레가 모여들기 때문에 위험한 농약을 뿌려야만 한다. 자연재배 농법의 관점에서 보면 벌레는 쓸모없는 것을 없애주는 청소부이므로 고마운 존재이지만 일반재배나 유기재배를 하는 농가에서는 벌레 때문에 전전긍긍한다. 안타깝지만 달갑지 않은 벌레가 생긴 것은 이런저런 효과를 바라고 비료를 투입한 본인의 책임이다. 밭을 인간의 몸에 비유하자면 벌레는 약의 부작용 같은 것이다. 영양제라고 생각한 비료도 결국 약일 따름이다.
화학비료든 가축 분뇨로 만든 유기비료든 지나치게 많이 뿌린 비료가 지하수에 섞이면 지하수의 초산성질소 농도가 높아져서 생활폐수가 섞였을 때와 마찬가지 상태가 된다.
유기재배 농법에서는 화학물질은 위험하며 자연의 것, 이를테면 가축 분뇨 같은 비료는 안전하다고 본다. 하지만 자연에서 비롯되었더라도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덧붙여 가축의 분뇨에는 항생제나 호르몬제의 영향도 남아 있다.
원래 채소는 대지에 뿌리를 뻗고 자기 힘으로 양분을 빨아들이면서 자란다. 그러나 비료로 양분을 주면 채소는 뿌리를 뻗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기 때문에 채소 자체의 생육이 나빠진다.
게다가 식물이 뿌리를 더 이상 뻗지 않으면 땅이 딱딱하게 굳는다. 미생물 수가 줄고 땅이 점점 굳어져서 식물은 땅속 깊숙이 뿌리를 뻗지 못하게 된다. 그야말로 완벽한 악순환이다. 채소가 뿌리를 뻗지 않아 생육이 더디면 농가에서는 ‘비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다시 비료를 뿌린다.
유기농 채소란 유기비료를 써서 키운 채소를 말한다. 생산자에 따라 농약을 쓰는 사람도 있고 쓰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유기비료란 어떤 것일까?
유기비료는 쌀겨, 깻묵, 동물 분뇨, 숯 등 자연에 있는 물질을 원료로 만든 비료이다. 효과가 금세 나타나지는 않지만 땅에 머무르면서 오래도록 천천히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비료를 써서 채소를 가꾸는 것을 유기재배라고 한다. 한편 화학비료는 공장에서 화학적으로 생산한 비료를 말한다. 화학비료는 즉효성이 뛰어나다는 특징이 있다.
유기비료의 원료 중에서도 동물 분뇨는 질소 성분이 많아서 자주 쓰인다. 옛날에는 분뇨로 거름을 만들 때 거름 구덩이에 분뇨를 묵혀 놓고 오랫동안 발효, 완숙시키면서 질소 성분이나 불순물을 공기 중에 흩어지게 해 벌레나 병원균이 생기지 않게끔 애를 썼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시간을 들이지 못하므로 대부분 화학적으로 배양한 발효균을 이용해서 빠르게는 일주일, 보통 석 달에서 여섯 달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비료를 만들어 밭에 뿌린다.
밭에 뿌린 유기비료는 제대로 숙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땅으로 벌레를 불러 모은다. 길가에 떨어진 분뇨에 벌레가 꾀는 원인과 같다. 따라서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요즘 유기비료는 안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유기비료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소나 돼지 같은 동물의 분뇨를 발효시켜 만든 동물성 비료이고, 다른 하나는 풀을 베어 발효시킨 퇴비, 쌀겨나 쌀겨 발효 물질 등의 식물성 비료이다. 생산자는 대부분 이 두 가지를 조합해 쓴다.
이번 실험에서 준비한 채소는 비료를 쓰지 않고 키운 당근, 동물성 비료로 키운 당근, 식물성 비료로 키운 당근 세 가지였다. 세 가지 당근을 얇게 잘라 병에 넣었다.
가장 먼저 썩은 것은 동물성 비료로 키운 당근이었다. 셋 중 가장 끔찍한 모습으로 썩었다. 식물성 비료로 키운 당근은 그것보다는 덜해 형태는 남았다. 비료를 쓰지 않고 키운 당근은 발효해서 절임이 되었다.
병충해에 시달리는 밭을 보면 어김없이 동물 분뇨를 거름으로 쓰는 곳이다. 거꾸로 분뇨 거름을 저게 쓸수록 농약을 칠 필요가 줄고, 식물성 비료를 주로 쓰는 곳일수록 병충해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유기비료도 성분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유기농 채소를 먹더라도 식물성 비료로 키웠거나 식물성 비료의 비율이 높은 것을 골라서 먹기 바란다.
자연재배한 작물도 썩는 경우가 있다. 자연재배한 기간이 짧으면 이전에 사용한 비료나 농약이 채소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땅속에 남아 있던 비료가 부패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칼로 썰었더니 구멍이 숭숭 난 토마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비료가 생장을 앞당겼기 때문이다. 빠르고 크게 자랐다는 말은 원래 거쳐야 할 세포분열 과정을 빠뜨렸다는 이야기이다. 거쳐야 할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작물에 틈이 생기고 말았다. 또 껍질과 과육이 딱 붙어있지 않고 엉성하게 틈이 벌어진 밀감을 본 적도 있을 것이다. 비료의 효과 때문에 과실의 균형이 무너져서 껍질의 생장 속도를 과육이 따라잡지 못한 증거다. 원래 속도로 자란 밀감은 껍질과 과육이 딱 달라붙어 있다.
-비료가 없어도 채소는 자란다—흙
자연재배 농법에서는 화학비료, 유기비료, 소,닭,돼지,말,사람의 분뇨, 생선가루, 육골분, 깻묵, 해초, 쌀겨 등의 원료, 한방약재를 함유한 농약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채소나 과실을 기른다.
자연재배를 하려면 그 밭에 지금까지 들이 부은 비료와 농약 같은 불순물을 먼저 없애야 한다. 즉 불순물을 제거함으로써 흙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다. 산이나 들에 자라는 식물처럼 채소나 과실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자연의 섭리대로 작물이 자랄 수 있게끔 흙을 깨끗하게 하는 데서 자연재배는 시작된다.
자연재배는 먼저 흙을 일구는 데서 시작된다. 그래야 밭 어디쯤에 지금까지 뿌린 비료 성분이 쌓여 있는지 알 수 있다. 대개 일정한 깊이까지 파면 딱딱한 층이 나온다. 지면에서 그곳까지 깊이 10센티미터마다 온도와 굳기를 재어 보면 희한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비독층’이라고 부른다.
비료와 농약에 의존하지 않는 흙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비독층을 없애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흙에서 ‘비독’, 즉 비료의 독성이 전부 빠지기 전까지는 비료나 농약을 쓰던 때와 똑같이 벌레가 꼬이기도 하고 잡초가 자라기도 한다. 미처 빼지 못한 비료의 독성이 아직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사용한 비료가 화학비료일 때는 땅속에 뚜렷한 층이 형성된다. 한편 유기비료를 썼을 때는 층이 따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즉, 비독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왜냐하면 유기비료의 원료가 동물의 배설물을 비롯해서 대부분 자연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기비료는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지만 효과를 보이기 시작하면 오래도록 지속되기 때문에 좀처럼 벌레 피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유기 비료의 함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비독이 많은 것으로는 동물 분뇨로 만든 퇴비, 적은 것으로는 식물에서 나온 원료로 만든 비료를 꼽을 수 있다. 실제로 병충해에 시달리는 밭은 대부분 동물성 분뇨 퇴비를 쓴 곳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분뇨 퇴비를 적게 쓸수록 농약을 쓸 필요가 줄어든다. 아울러 식물성 비료를 쓸수록 병충해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면 비독층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다음 문제다. 자연재배는 어디까지나 영농을 위한 재배법이다. 자급자족을 위한 농사라면 비독이 빠지기를 줄곧 기다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은 경우 하루라도 빨리 비독층을 없애야 한다. 자연재배 농법에서는 열심히 밭을 간다. 사람으로 치면 뭉친 부분을 주물러서 막힌 혈관을 풀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원리이다. 플라우(트랙터 등으로 끌면서 흙을 절삭,반전,파쇄하는 농기계)나 서브소일러(심토쟁기 또는 심토파쇄기) 같은 농기계를 이용해 비독층을 부순다.
기계로 부순 비독층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몇 년 후에 다시 딱딱하게 굳고 만다. 그러므로 이때 콩, 밀, 보리 등을 심어서 식물의 뿌리가 비독을 빨아들이게 만든다. 콩은 부서진 비독덩어리를 다시 잘게 부수고, 뿌리가 곧게 자라는 밀이나 보리는 잘게 부서진 비독을 뿌리 힘으로 빨아들여 바깥으로 내보낸다. 예로부터 보리가 흙을 청소해 주는 작물이라고 불린 이유를 이제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연재배를 시작한 생산자는 비독층이 없어지면서 작물의 수확량이 많아지고 질도 좋아졌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자연재배는 자연과 인간의 협업이다. 자연과 인간이 힘을 모으면 야생의 채소보다 더 맛있는 채소가 자란다.
비독층이 없어지고 흙이 원래 상태를 되찾으면 다음과 같은 상태가 된다. 부드럽다, 따뜻하다, 수분이 적당하고 배수가 잘된다. 이것이 흙의 이상적인 상태이다. 흙은 자연에 가까울수록 따뜻하고 부드럽다. 더불어 자연재배로 바꾼 생산자는 한 가지 사실을 더 실감할 수 있다 바로 벌레가 줄었다는 점이다.
흙이 진화할 때 지렁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렁이가 굳이 일하지 않아도 되는 흙이야말로 농작물을 기르기에 적합한 흙이다. 지렁이가 잔뜩 있는 동안은 아직 흙이 온전하지 않은, 그만큼 분해할 것이 많은 흙이라는 뜻이다.
자연재배의 원칙은 야산의 초목을 본보기 삼아 ‘시들어 가는’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채소에게 자연스러운 환경, 즉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 논의 흙은 채소에게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다. 채소를 기르기 위한 흙을 만들 대 논의 흙이나 산의 흙을 쓰면 잘 되지 않는다. 농약과 비료만 쓰지 않으면 괜찮겠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산의 흙과 들판의 흙과 물가의 흙은 구조가 다르다.
흙을 진화시키기 위해 풀이 자연스레 자라고, 오랜 세월에 걸쳐 자라나는 풀의 종류가 바뀌고 나서야 이윽고 농지가 된다. 원래 채소는 들판에서, 벼는 물가에서, 과수는 산에서 자라야 맞다. 따라서 저마다 흙의 구조가 다를 수밖에 없다. 흙은 그 자리에서 자라난 식물이 시들어 오랜 세월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들판이 진화해서 만들어진 흙이라 하더라도 아무 채소나 기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흙의 상태에 따라 기를 수 있는 채소도 물론 달라진다. 그렇기 자연재배에서는 토양 진단을 해서 토양에 점토 성분이 많은지 석회 성분이 많은지 모래 성분이 많은지 확인한 뒤 그 성질에 걸맞은 채소 종류를 선택한다. 채소가 자라는 데는 흙뿐 아니라 그 땅의 기후, 풍토, 자연 환경 모두가 관여한다.
토지나 환경에 맞는 채소를 길러야 사람도 채소도 힘들지 않다. 안정적인 수확량을 확보할 수 있을뿐더러 오래도록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요즘에는 비닐하우스 같은 것을 이용해 그 땅에 맞지 않는 작물을 키우는 사례가 많은데 자연재배에서는 당연히 적합한 채소가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환경에서 재배하는 것을 으뜸으로 친다.
같은 식물인데 어째서 채소에만 연작 장애가 일어날까? 밭에 농약과 비료를 많이 뿌렸기 때문에 토양의 생태계, 자연의 균형이 무너진 데다 연작으로 인해 밭 한곳의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에 병에 걸리는 것이다.
자연재배에서는 적극적으로 땅을 일구어 흙을 만든다. 적당한 시기에 제초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재배는 사람 품이 들지 않는 재배법이 결코 아니다. 이 점이 아예 논밭을 갈지 않고 채소를 기르는 불경기재배(不耕起裁培)와 큰 차이이다.
자연의 성질을 알고 그 성질을 살릴 수 있게끔 손을 보탬으로써 인간도 자연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 인간이 자연의 순환 고리에 들어가는 의미가 비로소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재배이다.
자급자족을 위해 채소를 가꾼다면 굳이 논밭을 갈지 않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르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작물을 내다 팔아 생계를 꾸려야 할 때는 사정이 다르다. 남에게 팔 수 있을 만큼 수확량을 올려야 비로소 많은 사람들에게 먹일 수 있다. 나는 대지의 기운이 넘쳐나는 채소를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먹길 바란다.
따라서 흙을 갈아서 흙 속의 비독을 없애고 잡초를 뽑아서 채소가 싹을 틔우는 데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도와주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자연재배한 채소가 생명력 넘치는 맛있는 채소가 되는 것은 인위적으로 뿌린 비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뿌리를 있는 힘껏 뻗어서 원래 흙이 지닌 양분을 한껏 빨아들이며 자랐기 때문이다. 다소 굶주려 있기 때문에 스스로 영양분을 찾아서 땅속 깊숙이 뿌리를 뻗는다. 그럼으로써 강하고 단단하게 자란다.
아무것도 주지 않은 ‘흙 자체’가 바로 비료나 다름없다. 뿌리가 씩씩하게 뻗어 나가면 토양미생물도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흙을 데우고 부드럽게 만들기 때문에 식물은 뿌리를 더욱 쉽게 뻗을 수 있다. 그렇게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땅 위로 나온 부분도 건강하게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