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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십자가 처형의 유래
십자가 처헝은 고대 바벨론 시대부터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고대 바벨론 왕 담무스 숭배 사상에서 기인한 것으로 담무스(tammuz)란 이름의 첫글자인 ‘ T '자를 인용하여 당시 제사장들의 관복에 표시하고, 가슴에 부착하는 호신패(부적)으로도 사용 되었으며, 그 후 바벨론의 문화가 애굽으로 전파되면서 애굽의 종교에도 영향이 갔었다고 한다.
성경에서 앗수르 라고 불리우는 아시리아 제국에서 십자가와 같은 나무에 고정시켜서 사람을 죽이는 방식이 풍습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따라서 앗수르가 있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상류 쪽의 메소포타이아 문명권에서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후에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형틀로 받아 들였고카르타고를 통해 로마로 전해 졌으며, 로마가 이를 로마인이 아닌 사람들 중에서 중죄를 진 이미 예수님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했다. 구체적인 예로 주후 66년경 약 3600명의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한 유대의 반란을 선동하다가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남아 있다. 루마니아의 드라큐라 백작은 여러 성을 공격하여 적군을 하루에 3,000명씩이나 십자가에 처형 시키고 그 가운데에서 전쟁의 승리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도 있다.
십자가 처형 방법을 주로 실시한 자들은 로마인이었다. 로마인에게는 사형수를 십자가에 비끌어 매는 일률적인 방법이 없었는데 이것은 로마법이 십자가 처형을 오직 노예와 노예 신분으로 전락한 사람들에게 실시하도록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투스 시이저(Augustus Caesar)는 그가 30,000명에 달하는 도망 노예를 체포하여 소유자가 나타나지 않은 자들을 모두 십자가형에 집단적으로 처형하기도 하였다.
2. 채찍과 못
로마의 채찍 형벌인 ‘플라젤라티오’는 수형자에게 지극한 공포를 안겨주는 형벌이었다. 일반적으로 로마 병정들이 호라티오가 “그 끔찍한 플라젤룸”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던 ‘플라그룸’이라는 무시무시한 도구를 사용하여 시행했던 가혹하고 비인도적인 형벌이었다. 로마인들에게 채찍질은 십자가형에 앞서 가하던 통상적인 형벌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채찍질에서 단순히 끈 같은 도구로 내리치는 행위를 연상한다. 일견 맞는 이야기이지만, 그것은 가정용 전기 충격을 번개에 의한 전기 충격과 비교하는 것과 같다. 플라그룸은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는데, 가장 흔한 유형은 작은 금속구나 양의 복사뼈 , 주사위 등을 끝에 달은 세 갈래, 때로는 그 보다 많은 수의 가죽 끈으로 만든 채찍이었다. 이러한 유형의 플라그룸은 투린의 수의에서 나타나는 소견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대부분 발견되는 플라그룸은 끝에 ‘플룸바타’라는 둥근 납덩이나 뼈를 매단 여러 갈래의 가죽 끈으로 이루어진 채찍이다. 1709년에 서기 79년 화산 폭발로 파묻힌 고대 로마 도시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굴된 로마의 플라그룸은 아령 모양의 납덩이가 달린 여러 갈래의 채찍이었다.
드물게는 일부 플라그룸 끝에 중량 있는 금속을 뾰족하게 만들어 ‘스콜피오네스’라는 이름을 붙여 매단 것도 있었다. 이 밖에도 다른 형태의 플라그룸도 있었다. 세 가닥의 사슬의 채찍 구조로 된 것, 작은 중량이나 단추 같은 물체를 달은 것, 그리고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에 전시된 ‘키벨레’ 바스릴리프 부조상에서 나타나는) 세 가닥의 가죽 끈에 일련의 작은 쇠 조각이나 아연 조각을 붙인 정교한 흔치 않은 형태의 것도 있었다. ‘스쿠티카’라는 단순한 채찍 모양의 도구도 사용되었다.
3. 십자가 처형의 고통
현대 과학자들에 의하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실 때에 피땀을 흘리셨다. 이는 정서적 상태가 극에 달했거나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고있는 사람들에게서 발생하는 혈한증(血汗症, hematidrosis) 으로, 사람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아주 심하게 받을 때 땀샘에 있는 모세관을 파괴하는 화학성분이 몸에서 나옵니다. 그 결과로 땀샘으로 소량의 피가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땀을 흘리게 되면 그 피가 땀과 함께 섞여서 나오게 됩니다. 그런 혈한증이 일어나면 피부가 매우 약해지며 바늘이 살을 찌르는 듯한 심한 고통을 수반한다고 한다. 예수님의 고통의 시작은 예수님이 재판을 십자가의 고통은 이미 이때부터 시작이 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유다의 배반으로 결국 태형과 함께 십자가형을 선고받게 되는데 당시 로마는 모든 형을 집행하기 전에 죄수들을 기둥에 묶어두고 태형을 가하는데 태형 즉, 채찍질이 가해진 등 근육의 피하 조직은 갈가리 찢어지고 근육 속의 혈관들이 터져서 몸의 구석구석에 피가 고이게 되며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그때쯤 이미 예수님은 심한 출혈과 탈수로 인해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지쳐 있었을 것이고. 그 후 로마 군인들은 옷을 벗기고 붉은 겉옷을 걸치고 손가락만 한 가시가 돋아난 면류관을 머리에 씐 후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게 된다.
그 당시 쓰인 채찍은 끝에 쇠구슬과 뼛조각이 달려 있어 당하신 예수님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실감케 한다. 십자가의 실제 무게는 무려 59kg에 육박했고.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예수님이 십자가를 매고 골고다 언덕까지 걸어간 거리가 약 800m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체포되어 대제사장과 군병들에게 수차례 고문을 받으셨다. 밤새도록 예수님을 구타했는데 눈을 가리고 때렸다. 눈을 가리고 사람을 때리면 반사신경이 작용할 수 없어서 날아오는 주먹이나 손바닥을 피할 수도 없고 스치듯 비껴가며 맞을 수도 없기 때문에 충격이 거의 2~3배 정도 더 크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의 얼굴은 얼굴 곳곳이 붓고 멍들고 찢어져서 피가 흐르고 입술도 터져서 심하게 부어있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조롱하며 침을 뱉어서 그 상처 난 얼굴에 뒤범벅이 되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선 대부분의 죄수들이 기절하거나 미치지 않으면 목숨을 잃게 되는 태형(채찍질)을 당하셨다. 예비형벌인 채찍질은 죄수의 옷을 벗겨 등을 들어내고 허리를 굽게 하여 기둥에 묶든지 틀에 달아 맨 다음 금속조각이나 날카로운 뼈 조각들 유리조각들이 달려있는 가죽채찍으로 사정없이 어깨를 시작으로 등, 엉덩이, 정강이까지 계속해서 내려치는 형벌이다. 3세기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태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
"태형을 당하는 사람의 정맥이 밖으로 드러났고, 근육, 근골, 창자의 일부가 노출되었다."
태형이 계속되면, 피부 밑에 있는 골격 근육까지 찢어지게 되고, 찢겨진 살은 피범벅이 된 채로 리본처럼 덜렁 덜렁 매달려 있게 되며 심지어 척추 뼈가 드러나기도 하고 창자의 일부가 노출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기도 전에 태형만 당하고서도 그 자리에서 죽었다. 죽지 않더라도 희생자는 극도의 고통을 느끼게 되며 저혈량성 쇼크(hypovolemic shock) 상태에 빠진다. 저혈량성 쇼크란 말은 많은 양의 피를 흘리고 나서 고통을 겪는 상태를 의미한다. 피를 많이 흘리면 네 가지 증상이 나타난다. 첫째로, 심장이 더 이상 피를 퍼 올리지 못한다. 두 번째로, 혈압이 떨어지게 되고 그 사람은 정신이 몽롱해지거나 기절하게 된다. 세 번째로, 신장은 남아 있는 피의 양을 유지하기 위해서 소변을 만드는 일을 중단 한다. 네 번째로, 몸은 흘린 피를 보충하기 위해서 액체를 요구하기 때문에 매우 목이 마르게 된다. 이 때에 온몸의 물이 횡경막에 고이게 되며, 온 몸에 물이 부족한 상태가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중에 "내가 목이 마르다"라고 말씀하시게 된 것이다. 또 병사들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을 때 불과 피가 흐른 이유도 이렇게 물이 고여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어깨와 등허리와 옆구리에는 많은 피를 흘렸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보통 39회의 채찍질만을 하는데 당시 로마 형벌에는 그런 제한이 없었다. 무자비한 군인들은 돌아가면서 예수님을 때렸다. 예수님께서는 살이 찢기는 극심한 고통과 출혈로 인한 쇼크를 받으셨을 것이다.(마 27:26, 막 15:15)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 홍포(자주색 옷 → 왕을 상징)를 입히셨다. 출혈이 멎지 않은 상태에서 홍포에 예수님의 살이 닿아 피가 스며들어 지혈작용을 하면서 홍포가 살에 붙어 피와 함께 굳었다. 한 군인이 가시면류관을 예수님의 머리에 씌웠는데 그 가시가 머리와 얼굴부위를 찔러 피부가 찢기고 찔려서 피가 철철 흘렀을 것이다. 그런데도 군인이 조롱하며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쳤다고 한다. 그 가시면류관을 갈대로 쳐서 그 가시가 피부 속 깊이 찔리게 하고 더 상처가 깊게 되며 얼굴은 완전히 피로 범벅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 입힌 홍포를 다시 벗겨내었다. 예수님의 상처 난 살에 붙어 같이 굳은 홍포를 벗겨내자 굳었던 피들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마 27:28~31)" 이어서 예수님은 당시 로마의 관습에 따라 양쪽 어깨에 십자가를 지고 양팔이 묶인 채 처형 장소로 걸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는데 이 때 예수님께서 진 십자가는 34kg - 57㎏정도의 횡목(십자가의 가로축 나무)이다. 심자가 전체를 지고 가신 것이 아니라 가로로 걸치는 나무만 메고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수차례 고문을 당하신 예수님께는 그 나무를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는 일은 무겁고 힘든 일이었다. '비아 돌로로싸'(via Dolorosa)의 좁은 길을 따라 골고다로 향하던 예수님은 몇 차례나 쓰러지지 않을 수 없었다. 수면부족, 채찍질, 심적 고통으로 그의 육체가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게 되자, 로마인들은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대신 십자가를 지웠다.(눅 23:26). '골고다'(해골)에 다다른 후에 병사들은 예수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누어 가지고 나서, 예수를 십자가 위에 눕혀 못을 박았다. 이때가 대략 주후 30년경 니산월(3-4월) 14-15일 아침 9시경이었다. 약용 포도주를 예수께 드렸으나 입에 대기만 하고 마시지 않았다. 그 포도주는 몰약이나 쓸개를 탄 포도주로 고통을 잊게 하는 일종의 마취제 역할을 한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죄수들에게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 느끼라고 그런 포도주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고통을 다 받으시려고 드시지 않았다.
4. 십자가의 의미
가. 십자가는 공의를 이루었다.
십자가는 죄인이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 죽어가는 사망의 장소이다. 그러므로 죄의 값을 받는 공의로운 곳이다. 공의란 무엇인가? 죄를 용납하지 않은 의로움이다. 성경에 죄의 삯은 사망인데 삯이 없는 곳이 공의이다. 더 이상 요구하지 못하는 장소 즉 우리가 원죄와 스스로 범한 죄 때문에 죽어야 되는데 대신 죽어주신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음이다. 성경에 의인은 하나도 없다(롬 3:10)는 것은 죄의 값으로 죽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가 없어서 자기 죄로 죽지 않고 택한 자들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죽으신 것이다. 이것을 대속적인 죽음이라고 한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신 것이다. 죄란 어떤 사람이든지 반드시 그 죄의 값으로 죽어야 한다는 교훈을 분명히 하실 때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보실 때 우리 죄를 짊어지신 것으로 인정하시고 공의롭게 심판하셔서 죽임을 받게 하신 것이다.
나. 십자가는 사랑의 현장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려고 예수님을 대신 죽게 하시고,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를 살리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사랑 때문에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셨고,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독생자를 죽음의 자리에 넣으신 것이다. 죄도 많고 허물도 많은 우리들인데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랑이 엄청난 분이시고 그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예수님을 죽이기까지 하신 사랑이다. 사랑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이만큼 사랑한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 주심이 십자가 사랑이다. 예수님도 몸을 버리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을 원하는 곳과 예수님의 사랑을 바라는 상대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자.
다. 십자가는 화해의 능력이 있다.
성경은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고 한다. 범죄는 우리를 진노의 자식으로 만들고, 외인이며, 소망도 없는 사람으로 전락시킨다. 이렇게 무서운 성격인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으며, 하나님께 향한 모든 통로가 차단되고 하나님의 진노를 쌓게 한다. 죄란 이렇게 하나님과 소통치 못하게 하고 진노를 유발시켰지만 십자가는 하나님께 나아갈 통로를 열어준다. 죄의 삯으로 십자가 지셨기 때문에 십자가 있는 곳은 죄 용서로 소통하게 한다. 성경은 십자가로 화목제물이신 예수님의 은혜로 화해되고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섬기는 화해를 교훈한다.
라. 십자가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죄인 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밖에 없다. 천하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다. 오직 예수님의 피 권세로만 구원에 이른다. 이 구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신 구원이다. 이 구원이 영벌에서 영생을 주며, 영원을 보장한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고통과 비교될 수 없다.
고난주간을
맞아 십자가로 공의, 사랑, 화해, 구원을 성취하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