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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박한 한국 조선업 변화와 위기 2015/07/21
조선강국 위험한 도전 속 최대시련 “멈추면 안된다” 고부가 해양플랜트 전환기…불황 덮쳐 세계1~3위 조선3사 8조 손실 ‘충격’
우리나라는 명실상부한 조선강국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소를 짓기 위해 차관을 얻으러 영국에 간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500원짜리 지폐를 보이며 “16세기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어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다”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그리스를 방문한 정 회장은 울산 미포만의 허허벌판 항공사진을 보여주며 “당신이 배를 사준다고 계약하면 그 돈으로 이곳에 조선소를 지어 배를 만들겠다”고 자신감을 보여 첫 수주에 성공했다. 국내 조선업 신화의 시작이었다. 이후 국내 조선 산업은 빠르게 성장했고, 현재는 세계 정상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조선소들이 수주잔량 기준 전 세계 최 상위권을 기록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가 1위를 차지한 가운데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현대미포조선 울산조선소, 현대삼호중공업 등이 차례로 2~5위를 차지했다.
10위권 내 우리나라 조선소가 6개(9위 성동조선해양 통영조선소)를 차지한 것이다. 나머지 4개는 모두 중국 조선소가 차지했다. 하지만 세계 최고 조선강국 우리나라는 지금 위기에 당면했다. 국내 조선업계의 ‘새로운 먹거리 시장’으로 평가받던 해양플랜트로 인해 주요 조선사들이 천문학적인 손실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양플랜트란 바다에 매장된 석유·가스 등과 같은 해양 자원들을 발굴, 시추, 생산해 내는 활동을 위한 장비와 설비 등을 포함한 제반 사업을 말한다. 2010년 유럽에서 발생한 재정위기 영향으로 상선 수주가 급감하면서 우리나라 조선사들은 경쟁적으로 해양플랜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일반 상선을 수주하는 것에 비해 수십배의 수주액을 자랑하지만 공기가 길고 설계가 까다롭다는 단점을 지닌 분야다. 조선업계의 벤처성향이 강한 이 같은 분야에 불황파고 때문에 경쟁적으로 값 싸고 과잉 수주를 벌이다가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지금과 같은 불황국면에서는 위험성이 적은 상선수주에 집중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라는 이유다. 하지만 또 다른 측에서는 이럴 때 일수록 무섭게 추격하는 중국과의 기술격차를 벌리기 위해 해양플랜트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무리한 경영에 대해서는 질타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한국 조선업이 반드시 가야 할 고부가가치 산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스카이데일리가 해양플랜트로 ‘수조원대 손실’의 직격탄을 맞은 업계와 이를 둘러싼 목소리를 진단해봤다.
▲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국내 조선업계가 ‘해양플랜트’ 발 위기로 큰 위기에 봉착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은 3조원대의 손실을 기록했으며 2분기 실적발표를 앞둔 삼성중공업은 1조원대 영업손실을 예고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수조원대 손실을 숨겨온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클 전망이다. 사진은 왼쪽부터 삼성중공업 본사, 현대중공업 서울사무소가 있는 계동빌딩(중상), 현대중공업 울산본사 전경(중하), 대우조선해양 본사 ⓒ스카이데일리
‘해양플랜트’에 도전장을 냈던 조선사들의 실적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이른바 국내 ‘조선 빅 3’ 업체이면서 세계 조선업 1~3위를 랭크하고 있는 대한민국 글로벌 조선사들이 기록한 손실만 최근 1년새 8조원에 이른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최근 5년간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2조원대 손실을 숨겨왔다는 것이 드러났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지난해 3조원대 손실을 기록했으며 삼성중공업은 2분기 실적 발표에 앞서 1조원대 손실을 예고한 상태다.일부 전문가들은 업계 전반의 해양플랜트 부진을 두고 무리한 수주와 원가분석 실패 등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불황파고가 심각하게 닥친 지금 시점에서는 과거와 같이 상선 수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일각에서는 해양플랜트가 갖고 있는 첨단 고부가가치에 주목하며 지금이 해당 산업을 오히려 육성시켜야 할 기회라고 주장했다. 중국·인도 등 후발 국가들의 추격이 거센 상황에서 조선업 최강국이 단순한 실적 하락을 이유로 미래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해양플랜트가 각광받았던 것은 지난 2010년부터다. 상선수주가 주 수입원인 국내 조선사들은 유럽 내 상선수주가 급감하면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 추세였다.
하지만 이 시기는 유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던 시기였다. 고유가 흐름이 이어지면서 국제 주요 석유업체들은 잇따라 해양 플랜트를 발주하기 시작했다. 국내 주요 조선사들도 이를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과감히 도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5년여가 흐른 현재 해양플랜트는 ‘밑 빠진 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해양플랜트가 절정에 이르던 2012년부터 2013년 새 국내 주요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 관련 수주액이 전체 매출액의 90%를 웃돌 정도로 판을 키웠다. 하지만 이후 유가는 하락세를 면치 못하면서 수주가 끊겨갔다.
기존에 벌여놓은 사업도 문제가 생겼다. 각종 돌발 상황 등으로 공기가 길어져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이었다. 게다가 수주를 따내기 위해 무리하게 저가 수주를 지속해 손실이 커지는 것을 부채질했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해양플랜트 수주액은 일반상선의 수주액보다 수십 배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큰 사업이다”며 “다만 그만큼 공기가 길고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내 업체들의 경우 상선의 수주가 저조해지자 해양플랜트를 돌파구로 여기고 무리하게 도전한 것이 사실이다”며 “기술력이 완전하게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따내려고 무리하게 저가로 수주해 공사를 진행하면서 큰 손실을 입었고 그것이 누적돼 오늘날의 결과를 맞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이 기록한 손실만 3조원대다. 현재 2분기 실적발표를 앞둔 삼성중공업도 1조원대 손실을 예고한 상태다. 업계는 삼성의 2분기 손실이 1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는 상태다. 가장 큰 문제가 된 곳은 대우조선해양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5년간 2조원대의 손실을 숨겨 온 것으로 드러나 현재 금융권까지 바짝 긴장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의도적인 분식회계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다.
‘일반상선 회귀론’ 무게 실리자 “기술력 위한 시간과 자금지원 필요하다” 목소리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업계에서는 다시 일반상선 수주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짙어지는 상황이다. 지금껏 거둬 온 실적이 ‘실패’인 만큼 더 큰 손실을 입기 전에 국내 조선업계가 강점이 있는 일반상선 수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박무현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다수 매체 등과 인터뷰를 통해 “국내 조선업계가 해양플랜트 수주를 하며 원가산정 조차 제대로 못한 측면이 있었다”며 “무리한 해양플랜트 수주보다 상선 수주로 내실을 꾀할 때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자 재계 일각에서는 사업을 포기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적극 장려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냈다. 무리한 사업 확장 등 방만 경영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하지만 해양플랜트와 같은 고부가가치 사업을 결코 놓쳐선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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