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방송’, 이젠 전파를 타야한다
방송사 파업은 언론 신뢰를 위한 출발점일 뿐이다
파업 중인 KBS와 MBC, YTN 등 방송3사의 기자 및 PD가 만드는 인터넷 ‘파업 방송’이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30일 KBS새노조가 만든 ‘청와대 민간인사찰 개입 문건’ 보도는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MBC의 ‘제대로 뉴스데스크’와 ‘파워업 PD수첩’, YTN의 ‘부러진 돌발영상’ 등도 각 방송사의 원래 방송프로인인 ‘9시 뉴스데스크’와 ‘PD수첩’에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내용을 보도함으로써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 ‘파업 방송’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MBC와 YTN 해직 기자 및 PD가 만드는 인터넷 방송 ‘뉴스 타파’ 역시 이미 인기방송으로 자리 잡았다. 이전 언론사 파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경향이다.
이들 인터넷 방송은 ‘나는 꼼수다’(나꼼수)가 불러온 ‘대안 뉴스’와도 다르다. 나꼼수를 비롯한 ‘나는 꼽사리다’(나꼽살), ‘이슈를 털어주는 남자’(이털남), ‘망치부인’ 등은 음성을 기반으로 한 팟캐스트다. 패널들이 웃고 떠드는 가운데 새로운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이들 팟캐스트는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반면 인터넷 파업 방송은 기존 프로그램 포맷을 그대로 유지하고 방송진행도 엄숙주의를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기존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내용들을 보여준다.
조중동 종편보다 ‘파업방송’에 열광하는 시청자들
이런 파업방송들은 ‘진짜 뉴스’ 또는 ‘착한 뉴스’로 불리면서 누리꾼의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다. 언론노조 MBC본부의 ‘저화질 공정방송 파업채널 M’에서는 ‘제대로 뉴스데스크’(6회)와 ‘파워업 PD수첩’을 내려 받을 수 있다. 벌써 수십만 건의 조회를 기록 중이다. 파업뉴스의 원조격인 뉴스타파는 매주 수십만 명이 보고 있다. 뉴스타파 2회 시청자는 57만여 명이나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새로 탄생시킨 조중동 종편의 뉴스 시청률을 웃도는 기록이다.
파업방송들은 기존 방송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날카롭고 속 시원한 보도들을 쏟아냈다. 리셋 KBS뉴스9는 그동안‘MB 생가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 ‘총리실 민간인 사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박정근씨 사연’ ‘김인규 사장의 충성맹세 서약사건 등 기존 뉴스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보도로 채워졌다. 제대로 뉴스데스크는 ‘MB 비리 가계도’, ‘정치 검찰’, ‘김재호 판사의 기소청탁 의혹’ ‘삼성의 두 얼굴’ 등 성역 없는 뉴스를 내보냈다.
특종보도도 많다. ‘리셋 KBS 뉴스9’은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사찰 내용이 담긴 내부문건 2619건을 폭로함으로써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 전에도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을 위한 금품제공 의혹과 이명박 대통령 생가에 국민의 혈세가 펑펑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물론 파업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보도도 있다. 파워업 PD수첩은 PD수첩 잔혹사를 담았다. 2탄 ‘피떡 수첩’ 편을 통해 제작자율성 침해 사례를 공개했다. 경영진이 이명박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아이템을 선정과정부터 철저히 막았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폭로됐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한진중공업 김진숙 농성과 비정규직 문제, 한미 FTA 협상과 비준 문제, 한상대 검찰총장 검증 등이 그것이다. 간부들은 “재미없다, 관심 없다, 민감하다” 또는 “시청률이 안 나온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제대로 뉴스데스크는 김재철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폭로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제까지 언론사의 파업과정에서 언론인들은 가두에서 유인물이나 포스터 등을 나눠주는 데 머물렀으나 새로운 형식의 홍보방식이 등장한 것이다. 인터넷이나 트위터 등 SNS를 활용한 홍보방식도 새로운 유형 중의 하나이다. 물론 방송사 노조들이 이처럼 새로운 뉴스를 통해 파업의 정당성을 알리는 것은 시청자인 국민에 대한 자성의지도 포함돼 있다. 강요된 침묵으로 ‘꼭 해야 할, 꼭 하고 싶은 보도’를 하지 못했다는 언론통제의 실상을 낱낱이 보여주겠다는 의도도 포함돼 있다.
MBC 기자들은 ‘제대로 뉴스데스크’를 시작하면서 “MBC 뉴스데스크는 공영방송 책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못했다. 속상하고 부끄러웠다. 뉴스데스크가 제 모습을 찾을 때까지 제대로 뉴스데스크를 떳떳하고 당당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KBS 기자들도 ‘리셋 KBS 뉴스9’을 만들면서 “그동안 KBS뉴스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왔는데 공정보도가 무엇인지 한번 보여주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놀기 위해 파업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평소에 하고 싶었거나 생각만 했던 아이템을 시도해보자는 의미이다. 장비와 인력이 부족하지만 현재의 KBS 뉴스보다 잘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고 밝혔다.
시민들이 방송사 파업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는 이유
그러나 양대 공영방송사의 파업에 대해 시민이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이 무르익어가던 시절 여의도를 에워 쌓았던 촛불의 물결 대신 ‘기득권을 지키려는 기득권 집단’이란 비아냥도 들려왔다. 마봉춘(MBC), 고봉순(KBS)이란 애칭 대신 MB씨 방송, 김비서 방송이란 오명이 뒤집어 씌워졌다. 이제 국민은 ‘왜 이명박 정부의 힘이 빠지기 시작하는 정권 말기에 들어서서야 파업에 나섰느냐’고 묻는다. 방송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양대 공영방송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리인들에게 장악된 이후 방송뉴스는 외면을 받았다. 내곡동 사저 편파, 10.26 재보선 불공정, 한미 FTA 반대 집회 누락과 편파, 김문수 경기지사의 119 논란 외면까지 역사의 시계를 1987년 민주화 이전으로 되돌렸다고 해야 할 정도의 침묵과 왜곡의 연속이었다. 대신 TV에는 새로운 스타일의 ‘뉴스 아닌 뉴스’가 자리잡았다.
걸핏하면 헬기를 타고 휴일나들이 스케치나 교통사정, 날씨 등을 전달하는 보도가 메인뉴스로 등장했다. 그래서 ‘오감도 저널리즘’이라는 용어가 탄생했다. 시청자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뷔페식당에서 음식 잘 골라먹는 법’이나 ‘야구장에서 가장 좋은 자리 잡는 법’ 같은 기상천외의 정보가 시청자들에게 전달됐다. 철따라 등장하는 건강정보는 ‘뉴스 순환론’을 뒷받침해주는 필수 아이템이었다. 세상을 뒤흔든 권력층의 비리에 관한 뉴스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방송사 기자들에 대한 취재거부로 나타났다. 한 기자는 “현장에서 취재원과 부딪치면서 몸으로 시민의 불신을 느꼈다”며 “10.26 재보궐선거 때는 박원순 후보를 취재 갔다가 시민들로부터 돌도 맞아봤다”고 털어놓았다. 파업 중인 기자들이 집회에 들고 나온 팻말에 적힌 ‘조롱받는 우리 뉴스 더 이상 못 참겠다’는 구호는 이를 웅변으로 대변한다. 취재현장에서 취재거부를 당하는 기자들의 참담함을 겪어보지 않은 기자는 모른다.
언론사 노조의 잇따른 파업은 이명박 정부의 언론탄압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민주화 이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언론인들의 집단행동이다. 이명박 정부는 군사정권 이후 확대돼 오던 미디어 공공영역을 붕괴시켰다. 이른바 ‘87년 체제’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립된 이후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했듯이 언론영역도 비슷한 절차를 밟았다.
김대중 정부는 ‘통합방송법’ 제정으로 공영방송 체제를 굳혀왔으나 이명박 정부는 이를 철저히 부숴버렸다. 노무현 정부는 ‘언론과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내세우며 ‘국민과의 직접 커뮤니케이션’ 체제를 구축하려 노력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일부 보수언론과 동맹관계를 구축하고 국민의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하는 ‘불통정부’를 자처했다. 주류 미디어는 자본과 권력의 이익을 옹호하고 국민의 삶은 안중에 없었다. ‘1%의 탐욕’을 위해 ‘99%의 분노’를 억누르는 약탈적 권력의 대변자가 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통제는 출범초기 YTN과 KBS, MBC 등 공영방송의 낙하산 사장 임명을 시작으로 양심적이고 비판적인 기자와 PD들에 대한 해고와 징계, 방송사의 관료제 강화, 탐사저널리즘의 억제와 비판 프로그램의 축출, 뉴스 프로그램의 연성화 등으로 공영방송은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감염우려를 담은 MBC TV의 ‘PD 수첩’은 검찰의 고발로 대법원까지 가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PD수첩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일부 사안의 부정확한 보도 때문에 방송사가 사과방송과 사과광고를 내고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을 징계하는 적반하장의 엉뚱한 파란을 불러왔다.
보수언론과의 단순유착 넘어 ‘권언연맹’으로까지 발전한 MB정부
이명박 정부는 자신에 비판적인 진보언론은 탄압하고 우호적 보수언론과는 동맹관계를 구축했다. ‘언론권력’과 ‘정치권력’의 야합으로 공동의 이익을 위해 각자의 힘을 행사하고 이를 통해 권력을 분점한다는 뜻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여론다양성은 아예 관심 밖이었다. 보수신문들에게는 종합편성채널을 허용하여 온갖 특혜를 부여했고, 비판신문들에게는 광고주에 압력을 넣어 광고를 게재하지 못하게 하는 수법으로 경영압박을 가했다. 이를 통해 미디어 양극화를 꾀했다.
보수언론과는 유착관계를 넘어선 ‘권언연맹’으로 발전했다. 자신에 비판적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하고 동맹관계인 보수언론과의 합작으로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면 ‘좌파’로 몰아 여론을 조작하고 공안적 탄압을 가했다. 이러한 태도는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언론의 ‘소금역할’을 철저히 무시함으로써 이명박 정부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대 공영방송사 노조의 파업방송이 방송사 뉴스 보다 더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방송사 노조의 파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언론인들은 잃어버린 국민의 믿음을 되찾기 위해 ‘진짜 뉴스’와 ‘착한 뉴스’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뉴스가 이제 인터넷이 아닌 전파를 타고 안방에 전달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파업 중인 언론인들의 꿈일 뿐더러 모든 국민의 소망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방송 언론인들의 진정한 반성이 국민의 가슴 속에 전달되어야 한다. 언론학자 93명의 방송 독립성과 공정성 쟁취에 나선 방송인들을 지지하는 성명서는 믿음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조짐이다. 이제 국민도 언론인들의 진정성을 점차 이해해가고 있다. 언론인들이 열성을 다해 만들어가고 있는 ‘파업 방송’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주언/노무현재단 상임위원·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