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호랭이 담배 먹던 바로 그 시절에
대학을 졸업하려면 학사논문이라는 것을
써야 했다. 쓰는 사람도 별 부담없고,
써봐야 읽는 사람도 거의 없고 하여
그저 통과의례에 그쳤던 그것.
물론 학생은 착실하게 쓰고
교수는 성의있게 읽은 논문도 있기는
했을 것이다.
학사논문이 그저 제출만 하면 그만인
유명무실한 것이 되어버리자
우리 과에서는 아예 그것을 없애버렸다.
그 대신 전공필수로 '논문작성법'을
빡세게 배웠고 학기말에는
그 작성법에 맞춰 학사논문 비슷한
과제를 하나씩 제출하게 했다.
실질적인 학사논문인 셈이었다.
이른바 '유명무실'을 혐오하는 걸로는 아마
우리 과 선생님들을 따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대학원에 들어가니 석사논문은 또 얼마나
빡세게 쓰게 하는지, 불어불문학과에서
문학 전공자들은 2년 만에 쓰는 것을
아예 포기했다.
2년 만에 쓰면 6개월 석사장교라는
아주 대단한 특혜가 있는데도
그것을 찾아먹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빠르면 3년, 늦으면 논문 제출 기한인
6년을 꽉 채우고 내는 경우도 있었다.
중간에 그냥 사라지거나
쓰다가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대충 했다가는 지도교수한테 깨지는
것은 물론이고, 어찌저찌하여 지도교수를
통과해도 두 분의 심사위원 교수에게
지적 당하는 일도 흔했다.
나보다 2년 선배는 3년 만에 논문을 썼는데
지도교수는 통과했었다. 그런데 심사위원 교수
한 분이 어느 대목을 어느 책에서 가져왔다는
인용 표시를 하지 않았다고
문제를 삼았다. 지도교수는 "고쳐서 다음 학기에 내자"고
했으나 그 선배는 "더이상은 못하겠다"며 그 길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 지도교수의 연구실 조교를
하고 있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정말 살 떨렸던 것이, 문제를 지적한 심사위원 교수는
심사 논문이 주제로 삼은 작가와는 관련이 없는 연구자였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나온 해당 작가 연구서를
언제 어떻게 읽었길래 그것을 잡아냈는지
나로서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해당 논문의 대상 작가와 비슷한 시기를
연구하는 지도교수도 모르던 사실이었다.
이런 식이니 쓰려면 제대로 써야 했다.
아니면 쓰지 말고 그냥 사라지든가.
물론 부족한 재주와 타고난 게으름도
논문이 늦어지는 데 한 몫했다.
나는 앙드레 지드를 전공 작가로 삼았었다.
일단 국내에 나와 있는 지드 관련 논문은
다 구해 읽어야 했다. 번역서가 언제부터
어떤 경로로 나왔는지도 가능한 한 다 찾아봐야
했다. 국내 대학에서 나온 석사논문이
몇 개 있어서 샅샅이 보았다.
이런 기초 작업을 하고 난 연후에야
작품들을 원서로 읽고, 연구서들을 찾아 읽었다.
석사논문을 잘 쓰는 게 어떤 것인지를 몰라서
잘 썼다고 소문난 황현산 김철 선배 석사논문은
10번쯤 읽은 것 같다.
내 논문을 쓸 때는, 학교는 너무 멀고 하여
갈 곳이 없었다. 그냥 집에서 낮밤을 바꿔 생활하다
보니 진짜 피똥이 나왔다. 그렇게 해서
3년 반만에 논문을 쓰고 석사과정을 마쳤다.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전
어영부영하던 시기에 언론사와 어찌 연을
맺었다. 월급이 많아서 "2~3년 유학 자금이나
마련하자"는 명목으로 처음에는 일을 했는데,
마음 한 켠으로는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다.
석사논문을 쓰면서도
'이놈의 것, 내가 다시는 하나 봐라' 하고
이를 벅벅 갈 정도였으니, 다시는 그 힘든 일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게다가 우연히 잡은 직장이
꽤나 번듯하여 폼도 났다.
석사논문을 쓰면서 거의 죽다 살아난 그 경험이
뜻밖에도 기자 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어떨 때는 내가 기자를 준비하려고 대학원에
간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끝까지 '따져보기'는 대학원 공부나 기사 작성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시사주간지의 문화부에서 주로
일했으니 그랬을 것이다. 일하는 것이
많이 어렵지는 않았고 재미도 있었다.
대학원 공부, 논문 쓰기와
비교하면 일 같지도 않았다.
물론 매주 기획을 하고
써야 하는 고단함은 있었지만.
함께 공부한 사람들을 돌아보면
석사논문 제출자들은 대부분 나하고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학부 때 난다 긴다 하던 어느 선배는
5년 만에 논문을 쓰고 나처럼 그냥
나가버렸다.
국내에서든 유학을 가서든
박사과정까지 마친 사람들은
거의 모두 교수로 임용되었다.
자리가 없어서 박사들이 박터지게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석사논문 또한
학사논문 못지 않게 설렁설렁 쓰는 걸로
여긴다. 석사과정은 당연히 2년 만에
졸업하는 것으로 알고들 있다.
오늘 어느 존경하는
어른이 쓴 글에서도 석사논문을 나이 들어
설렁설렁 썼다고, 원래 석사논문이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닌가 하는 분위기로 말씀하셔서
좀 서운했다. 그 서운함은 그렇게 쓰지 않은
논문 또한 '설렁설렁'에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데서
연유했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석사논문이
그런 대접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말이다.
설렁설렁을 넘어 석사논문 표절과 그 표절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를 보면 화가 좀 난다.
학력은 챙기고 싶고, 공부는 하기 싫고, 공부할
시간은 없고 하여 표절을 했다 해도
그게 나중에 발각되면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사람이다.
남의 논문을 복사한 것이 발각된
어느 젊은 의원은 아무일 없다는 듯
야당 돌격대가 되어 국회에서 맹활약중이시다.
이번 선거에서 말도 많게 당선된 어느 도지사는
과거에 표절이 밝혀지자 인정을 하고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기 입으로 "논문을
반납한다"고 했다. 자기가 한다고 그렇게 될 일도
아니고, 반납한다고 표절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내 눈에는, 서로 주장이 다르고 어쨌든
다툼의 여지가 있는 사생활 같은 문제보다
표절에 대한 불감증이 가장 큰 문제로 보였다.
그 도적질에 대한 비판이 한 번 지나가자
마치 면죄부라도 쥐어준 양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도 의아해 보였고.
본인이 부인하는 사생활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이 많고 털어대면서도
본인이 인정하고 반납했다는 표절이라는
도적질에 대해서는 어찌 그리 관대한가.
수십년 동안 최고의 지위를 유지해온
어느 작가는 바로 그 표절 때문에
하루아침에 불명예 퇴장을 했는데.
도적질은 도적질이지 무슨 차이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