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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dodream@naver.com
본명 권택현
1974년 한양대학교 신문학과 졸업
현)(주)디지털콘텐츠그룹 경기도 안산시 지국장
현)SNS소통연구소 경기도 안산시 지국장
현)(주)팔도기계 회장
현)경희재활용양병원 감사 및 홍보이사
<수상소감>
권지명
에세이스트로서의 등단 소식을 접하고, 벅차고도 감동적인 순간이 제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 순간, 어린 시절 초등학교의 글짓기 대회에서 특선을 받았던 기쁨이 떠올랐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품어왔던 글쓰기의 열망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대학생 시절, 동아리를 만들어 글을 쓰고 회지를 발행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때의 글쓰기는 제 삶의 중요한 일부였고, 글을 통해 새로운 저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면서 글쓰기는 제 일상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잊고 지내던 글쓰기에 대한 아쉬움은 목마른 갈증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복진세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은 잊고 지냈던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다시 일깨워 주셨고, 그 가르침과 격려는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수필을 통해 제 마음속에서 바라던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글을 쓸 때마다 내면과의 대화는 또 다른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 순간들은 저에게 특별한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이제 75세의 나이에 에세이스트로서의 등단은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꿈을 다시 찾은 벅찬 순간입니다. 남은 인생을 글쓰기와 함께하며, 제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젊은 시절의 꿈을 더욱 크게 펼칠 수 있다는 사실에 저의 마음은 흥분과 전율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글쓰기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제 삶의 일부가 되었고, 이 글을 통해 많은 이들과 마음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저를 가득 채웁니다.
이 귀한 등단의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진솔한 글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전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작은 변화의 바람
권지명
작년 경로당에서의 사건은 아직도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처음 내가 그곳에 찾아갔을 때는 종일토록 화투판이 벌어지고 웃음과 한숨이 어우러지면서 동전 한 잎에 목숨을 거는 듯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 어르신들과 함께 작은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수가 있었고 덕분에 내 삶은 조금 더 진지해졌다.
안산시는 시니어 문해력(文解力) 향상을 위해 평생학습관에서 30여 명의 스마트폰 강사를 양성했다. 그 강사들은 경로당을 비롯한 여러 곳에 파견되어 스마트폰 교육을 시행했다. 그러나 많은 강사가 경로당의 무관심과 무배려로 강의를 전혀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그렇지만 그런 소문에 개의치 않았다. 나에게는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첫 강의 장소로, 안산 상록구 본오동에 자리를 잡은 어느 경로당에 배치되었을 때, 나는 강한 의욕에 불타 있었다. 마음껏 실력을 발휘하며 즐겁게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 밖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것은 어르신들의 무관심이었다. 찾아온 손님에 대한 배려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화투 놀이에 깊이 빠져 있었고,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강사 방문조차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경로당 회장을 찾아 방문 목적을 설명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뜻밖이었다. “스마트폰 배울 사람도 없고 배워도 잊어버리니 그냥 쉬었다가 가세요” 하는 것이었다. 소문은 익히 들었으나 막상 부딪치니 당혹스러웠다. 그렇다고 쉽게 물러설 일은 아니었다.
나는 당시 ‘웃기는 스마트폰 강사’라는 이름으로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었다. 사람들을 웃기는 재주가 뛰어났고, 누구에게나 선뜻 다가가는 능력이 있었다. 그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지금부터 오락 시간을 가질 테니 모두 모이세요!”
그랬더니 놀랍게도 화투판을 접고 웃으면서 한자리에 모였다. 그동안 갈고닦았던 웃음 치료 재주를 마음껏 발휘했다. 그리고 노래자랑을 열었다. 어르신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적극 동참했다. 어르신들은 나의 유머와 노래자랑에 마음이 완전히 풀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점차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어르신들에게 분명하게 큰 소리로 외쳤다.
“저는 오락하러 온 게 아니고, 스마트폰 활용법을 알려 드리려고 왔어요!”
그런데도 첫날 스마트폰 교육에 참여한 사람은 단 세 명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 교육에 참여할 수 있을까. 어르신들이 마음을 열고 관심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즐겁게 놀 수 있는 노래방 기기를 이용하면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급기야 거금 70만 원을 들여서 노래방 기기를 장만했다. 스마트폰 교육하기 전에 어르신들의 마음 문을 열기 위해 노래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매주 경로당을 찾을 때마다 노래방 기기를 들고 갔다. 노래를 부르며 어르신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르신들은 점차 마음을 열고 나의 진심을 받아주었다. 스마트폰 교육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나 아홉 명까지 되었다.
그렇게 마지막 강의를 끝내고 경로당을 나오던 날, 어르신들은 헤어짐이 너무나 아쉬웠는지, 내 손을 부여잡고 놓을 줄 몰랐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위로의 말을 하고 경로당을 빠져나오는데 내 가슴이 뻐근했다. 노래방 기깃값이 강의료보다 곱절 비쌌지만 왜 그리도 흐뭇하고 뿌듯하든지…. 어르신들의 마음을 여는 데 성공했다는 성취감과 그간 깊어진 우정을 곰곰 생각했다. 이제 어르신들의 삶에도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변화의 바람은 이렇듯 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소통을 통해 일어난다. 그것이 기뻤다. 함께 웃고 노래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소통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소통은 단순한 기술 교육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연결을 의미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작은 변화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된다. 그 변화는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나는 단순히 기술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강사가 되기보다 어르신들의 생각과 문화를 존중하면서 그들이 즐거워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노래와 웃음을 도구로 삼아 어르신들의 경계를 허물고 나서야 스마트폰이라는 현대 기술의 문턱으로 이끌어 보았다. 세대 간의 소통과 이해의 장을 연 것이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으나 그 변화들은 결코, 친숙하지 않고 적응도 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하지만 두려워만 해선 도태되고 말 것이다. 세대 간에 서로 마음을 열고 소통할 때 극복될 수 있다. 어르신들이 나에게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셨지만, 나 또한 못지않게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변화는 종종 두렵고 어렵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때 더욱 의미 있고 보람찬 것이 된다. 서로 손 잡고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다면, 작은 변화로도 큰 기적을 만들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과 진심이 모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일상 속 작은 실천으로부터 시작된다.
<심사평>
심사위원 / 박석구
작가는 72세의 나이에 스마트폰 활용 지도사, 챗GPT 지도사, 디지털 문해교육사, 모바일 범죄 예방 지도사, AI 활용 마스터, 웃음 코칭 지도사, 레크레이션 지도사, 실버 레크레이션 지도사 등 많은 자격증을 획득한다. 그리고 『시니어 스마트폰 길잡이』란 교재도 출간한다. 나이의 언덕을 넘어 대단한 열정을 지금도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글은 ‘스마트폰 활용 강사’로 찾아갔던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 위치한 어느 경로당 어르신들과 겪은 이야기다.
첫 강의 장소로, 안산 상록구 본오동에 자리를 잡은 어느 경로당에 배치되었을 때, 나는 강한 의욕에 불타있었다. 마음껏 실력을 발휘하여 즐겁게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 밖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것은 어르신들의 무관심이었다. 찾아온 손님에 대한 배려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화투 놀이에 깊이 빠져 있었고,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강사 방문조차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경로당 회장을 찾아 방문 목적을 설명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뜻밖이었다. “스마트폰 배울 사람도 없고 배워도 잊어버리니 그냥 쉬었다가 가세요”하는 것이었다.
소재는 그리 특별하지는 않고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작가가 어떻게 이들을 변화시키려나 하는 궁금증에 읽힐 수밖에 없는 구조로 몰고 간다. 인간이 나이가 들고 집안 생활에 소외되면서 끼리끼리 모이는 경로당의 하루는 작가가 보았던 그대로였을 것이다. 그래서 스마트폰의 활용 방법을 가르치러 갔을 때 그들의 모습을 보고 실망했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작가는 오락 시간을 갖는다. 작가의 유머와 노래자랑에 차츰 마음을 열었지만 정작 그날 스마트폰 교육에 참여한 사람은 고작 세 명뿐이었다. 그래서 작가는 다음날 급기야 강의료보다 갑절 비싼 70만 원짜리 노래방 기기를 장만하여 스마트폰 교육 전에 노래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한 노력으로 나중 교육에 참여하는 사람이 아홉 명까지 된다.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변화의 바람은 이렇듯 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소통을 통해 일어난다. 그것이 기뻤다. 함께 웃고 노래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소통이었다. 그리고 그 소통은 단순한 기술 교육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연결을 의미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작은 변화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된다. 그 변화는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나는 단순히 기술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강사가 되기보다 어르신들의 생각과 문화를 존중하면서 그들이 즐거워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 글의 구조나 문체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글쓰기가 너무 좋다. 어차피 글은 다른 글을 읽거나 자신의 글을 쓰면서 점점 세련되고 좋아지기 마련이다.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왔고 지금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그저 좋은 것이다.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읽히는 글쓰기보다 감동을 선사하는 글쓰기에 노력을 기울이면 더더욱 좋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이제 또 다른 길, 작가로 들어선 마당에 열심히 하는 다른 일처럼 글도 열심히 쓰라고 권유하고 싶다. 그리고 어떤 것보다 계속 나태하지 않고 열심히 세상을 살아온 사람을 만났다는 것에 감동한다. 에세이스트에 온 이상 문운이 가득 깃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