曬書[쇄서].
몇 년전 陰曆 七月七夕 날 知友와 梅花山 登山길에 偶然히 들린 陜川
海印寺의 八萬大藏經을 保管하고 있는 藏經閣 앞에서 目擊한 稀罕
[희한]한 場面을 뜰에서 만난 노스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菩薩님
들이 지금 머리에 이고 塔돌이를 하는 것은 빨래판이 아니라 "八萬
大藏經 板을 말리는 중[曬經:쇄경]"이라고 親切히 說明해 주고는
藏經閣 기둥에 붙어있는 對聯을 가르키며 무슨 뜻인지 잘 吟味 해보
라면서 禪房으로 들어가셨다. "圓覺道場何處 現今生死卽是[원각도량
하처 현금생사즉시]: 요샛말로 풀이하자면 "세상에 천국이 어디에 있을까?
현재 살고 죽고하는 것이 바로 그곳이다"란 말로 佛敎에서 根本이라고
생각하는 열두자의 글이란다. 海印寺 말고도 무덥고 濕한 여름 氣運이
물러가는 무렵에 行해지는 習俗이 있었다. 햇볕은 여름처럼 따갑지만
축축한 물의 기운이 빠져나간 날씨를 利用한 行事다. 農父는 穀食을
말리고, 女人들은 옷가지를 말리며, 선비들은 높은 濕氣에 좀이 슬었던
冊을 꺼내 말렸다. 大槪 陰曆 7월 7일의 七夕 以後에 行해졌다. 이
行事의 主要 對象은 冊이다. 東洋의 傳統的인 종이가 濕氣에 弱한
特徵을 지녔기 때문이다. "曝曬[포쇄]"라는 이름의 行事는 中國에서
漢代 以後 年中 行事로 자리 잡았으며, 朝鮮의 王朝도 이때에 맞춰
實錄을 비롯한 主要 文書들을 햇볕 아래에서 말렸다. 漢 王朝 뒤에
나타난 魏晋[위진] 때도 이 習俗은 流行했다. 그러나 뜰에다 書籍
등을 내놓고 햇볕을 쪼이던 行事는 어느덧 自身의 富를 자랑하는
內容으로 變한다. 사람들은 家具와 珍貴한 骨董品, 華麗한 옷을
競爭的으로 꺼내 뜰에다 말렸다. 이러한 俗氣 가득한 行事를 꼬집는
사람들도 나타난다. 阮咸이라는 이는 일부러 집에서 陋醜[누추]한
옷들을 꺼내다 볕을 쪼였다. 사람들이 물으면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라는 퉁명스러운 對答으로 一貫했다. 鶴隆이라는
사람의 態度는 더 特異했다. 사람들이 앞 다퉈 豪華 什器와 衣服
들을 내걸 즈음에 그는 윗옷을 훌렁 벗어젖힌 다음 마당에 누웠다.
"저 사람이 도대체 뭘 하자는 거냐"는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好奇心을 이기지 못하고 “왜 옷을 벗고 누워 있느냐”고 묻는 사람
이 있으면 그는 “내 배 속에 들어 있는 冊을 말리는 중”이라고
答했다고 한다.. 冊을 말린다는 뜻의 "曬書[쇄서]"라는 故事에
얽힌 逸話다. 俗世의 慾望이 그 本質을 흐린 적도 있지만 이는
어쨌든 知識과 敎養을 높은 價値로 받들었던 東洋社會의 一面을
보여준다. 冊을 조심스레 들어 햇볕 아래로 옮기는 어버이의 姿勢
[자세]에서 그 子息들은 知識과 敎養의 所重함을 體得했을 것이다.
몇일 전이 마침 陰曆 七夕이다. 따사로운 햇볕에 우리는 지금 무엇을
말리고 있을까. 建設工事現場에서 막勞動을 하면서 詩를 쓴 유용주
詩人의 親舊이자 홀아비 詩人인 박남준은 홀아비라 별로 쓸곳도 없는
그시기를 이때쯤이면 영락없이 햇볕에 내어 놓고 擧風이라는 美辭麗句
쓰가면서 열심히 乾燥作業을 한다고 하는데, 지금의 社會通念으로 볼
때 現實的ㅡ로 冊보다는 값나가는 豪華 名品이 그 자리를 借地
했을 法하다. 知識과 敎養 대신 돈 들여 成形한 얼굴이 햇볕을
즐겼을 것이다. 무게감 있는 知識과 敎養보다는 卽興的인 感性이
윗자리를 借地하는 韓國社會이고 보면 當然한 現狀이다. 冊과
敎養이 줄곧 무게감을 잃고 있다. 내가 공연히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果然 韓國社會는 至今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첫댓글 쇄서라...머리 속에 든 책을 말리는 일도 흔히 있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