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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정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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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寶庫 스크랩 고구려의 후손 라후족을 아시나요?
골드 추천 0 조회 95 14.10.16 11:0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고구려의 후손 라후족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태국 북부도시 치앙라이 시내에서 3시간정도 떨어진 산속에 거주하는 민족. 태국 북부와 중국 운남성 등지에

넒게 퍼져 분포하고 있다.

- 라후족은 원래 티벳과 가까운 중국의 운남성일대에서 살았다. 후에 중국 정부당국과의 분쟁에 휘말리게 되어

남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한족의 압제에 견디다 못한 대부분의 라후족은 미얀마로 넘어갔고, 그 일부는 태국과

라오스로 넘어와 정착하게 되었다. 라후족은 19세기에 들어와서야 태국으로 넘어왔다. 오늘 날 대부분의

라후족은 북부지방인 치앙라이, 치앙마이, 매홍손 등지에 살고 있다.


- 라후족의 태국식 명칭은 '무서 (또는 무수르)' 인데 이는 "사냥꾼"이라는 뜻의 미얀마어에서 따온 말이다. 

 

 

라후족 언어

우리말

나(1인칭)

너(2인칭)

나흐(1인칭복수,We)

우리

너흐(2인칭복수, You)

너희(당신들)

 

이현복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명예교수의 말

"라후족의 언어는 우리의 언어구조와 매우 비슷하다. 미국의 마티소프교수가 라후족의 말의 문장구조가 한국이나

일본의 문장구조와 아주 유사하다고 이미 밝힌 적이 있다. "  

라후족의 생활의 유사점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절미 만들기


절구통에 찐 찹쌀을 넣고 깨를 묻힌 덕방아를 넣고 찧는 것이 우리의 인절미 만들기과 똑같다.

둘째, 어린이의 놀이(공기놀이)

공기놀이라는 것을 하는데, 작은돌들을 던지며 노는 것이 우리의 공기놀이와 아주 똑같으며, 1단에서 5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동일하다.

셋째, 비석치기(사방치기)
우선 손 바닥 뒤집기로 편을 정하고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한다. 편이 정해지면 손으로 정교하게 굴려서

맞추면 이기는 놀이로 우리의 비석치기(사방치기)와 동일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편평한 돌을

이용하여 놀이를 하는데 비하여 이들은 열대의 납작한 열매를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아이들은 우리의

전통 팽이치기와 같은 놀이를 하면서 논다.

넷째, 라후는 고생을 해서라도 부슬부슬한 안남미보다는 찰기가 있는 찹쌀로 지은 밥을 먹으려 든다.

때문에 라후족의 마을에서는 항상 찰기진 밥을 먹을 수 있기도 하다. 라후족에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된장이나

김치 등도 있다. (물론, 고춧가루가 없는 하얀 배추절임같은 것이다. 한국의 김치가 붉은 것은 고춧가루가

한국에 들어온 이후부터이다.)

 

   

다른 참고할 만한 글

 

라후의 여인네들 역시 어릴때부터 자수를 비롯한 뜨개질을 배운다. 처녀들은 부지런하여, 자신이 입을 옷

이외에 미래의 신랑이 될 사람의 옷까지도 미리 만들어 두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남자들 역시 부지런하여

이른 아침부터 밭에 나가 일을 시작한다.

- 라후족에게 있어 음악과 춤은 생활속에 배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상 즐거운 노래소리가 울려퍼지는

마을에는 축제도 자주 벌어진다. 축제날이 되면, 여자들은 그동안 준비해 두었던 예쁜 옷을 입고나와 춤을 추고,

남자들은 풀잎으로 피리를 만들어 음악을 연주한다. 대나무를 이용해 '여러개의 관이 달린 스코틀랜드식의

피리'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 불기도 한다.


- 마을 사람중에 한명이 병이 나면, 사람들은 그 주위에 모여 춤과 노래를 부르는 의식을 하여, 악귀를 쫓아 낸다.

마을의 부족장은 제사장의 역할을 함께 하여 결혼이나 장례를 주관하고, 길흉을 점치기도 한다. 부족장의 권한은

막강하여, 마을은 부족장의 이름을 따서 짓는다. 따라서 부족장이 죽거나 새로운 부족장이 들어서면, 마을의

이름도 바뀌게 된다.

- 라후족은 콩을 쑤어서 만든 된장을 먹는다. 우리나라의 된장과 거의 흡사한 것이며, 야채를 소금에 절인 '와찌'

라는 것도 먹는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김치와 비슷한 것이다. 명절이 되면, 찹쌀을 대나무통에 넣고, 숯불속에

넣어 밥을 쪄 먹는다.

- 라후족의 음식은 김치·된장 등 우리 음식과 비슷한 것이 많아 잘만 찾아 먹으면 식사때 고민스럽지 않다.

불편한 점은 무엇보다 고도가 높아 도착해 며칠동안은 고산병 증세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머리가 띵하고 무기력해진다.

 
★ 잊혀진 우리 핏줄 아카 라후 리수

- 소수 민족을 연구해온 학자들은 태국의 고산족이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나라 군사에게 포로가 되어 잡혀가

오지에 버려졌던 고구려의 후손들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구려 본기에 의하면 당나라 고종이 고구려인

3만 8천 3백호를 잡아가 중국 남쪽 광막한 땅에 옮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 학자들뿐 아니라 소수민족

출신의 호례극이라는 중국 학자도 같은 의견을 내놓는다. 이들 고산족들은 고구려 사람들이 그랬듯이 남자가

처가살이를 하고, 결혼 때 닭을 옆에 두고 식을 올린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은 것도 우연으로

돌릴 수만 없는 고구려 옛 풍습 그대로다. 아카족 같은 경우는 구슬을 머리에 달고 장식하기를 좋아하는데

이 또한 예사로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중국 후한서에 '동이족은 구슬 장식을 즐긴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 북한 사투리 '나 메홍손 가메'

학자들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한국 여행자들이라면 이들이 우리 핏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명절 때 색동옷을 입는 것이 그렇고 태국 사람들은 별로 좋아 하지 않는 끈기있는 찰벼를 산간에서 재배하는

것도 그렇다. 된장이나 김치를 담가먹는 것까지 우리를 닮았다. 무엇보다 신비한 것은 이들의 말이 중국이나

태국말처럼 주어 동사 목적어 순이 아니고 우리말처럼 주어 목적어 동사 순이라는 것이다. 라후족이이나

아카 리수족이 한결같이 나를 '나'라고 하고 너를 '너'라고 하는 것을 들으면 숨이 막힐 지경이 된다.

지구상에 한국인 말고 어느 민족이 "나"를 "나"라고 하고 "너"를 "너"라고 할 것인가 말이다."나 매홍손 가이메이"

라후족의 말로 "나 매홍손에 간다"는 뜻이다. 이 말을 어찌 들어보면 "나 매홍손 가메" 라는 이북 사투리만 같지

않은가? 어쨋든 이들을 만나면 우리와 같은 핏줄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들을 우리 민족이 아니고는 세계의

어떤 민족과도 동일시할 수 없을 것이다.

 

★ 우리와의 유사점

 

- 외모도 태국보다는 우리네와 더 비슷했다.
- 집안의 아궁이를 쓰는 것도 우리네와 닮았다.
- 명절 때 색동옷을 입는 것
- 태국 사람들은 별로 좋아 하지 않는 끈기있는 찰벼를 산간에서 재배하는 것.
- 된장이나 김치를 담가먹는 것까지 우리를 닮았다.
- 이들의 말이 중국이나 태국말처럼 주어 동사 목적어 순이 아니고 우리말처럼 주어 목적어 동사 순이라는 것이다.


- 고구려 사람들이 그랬듯이 남자가 처가살이를 하고, 결혼 때 닭을 옆에 두고 식을 올린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은 것도 우연으로 돌릴 수만 없는 고구려 옛 풍습 그대로다. (형사취수제)
- 라후족·아카족 등이 개고기를 먹는다.
- 라후족도 아기를 낳으면 문밖에 인줄을 쳐 일정기간 외부 사람이 집안으로 못 들어오게 한다고 했다.

라후족의 인줄은 지푸라기를 사용해 왼새끼를 꼰 후 새끼줄 사이사이에 창호지·숯·빨간고추(사내아이의 경우)

·푸성귀를 꽂아 놓는다.그런데 탐사팀을 놀라게 한 것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인줄에 푸성귀를

꽂았다고 하는데 라후족은 지금도 푸성귀를 꽂는다는 사실이었다


- 라후족의 명절이나 제사에서 찾을수 있는 유사성

라후족의 설은 우리나라 처럼 1년중 가장 큰 명절로 떨어져있던 가족과 만나고 이웃 부락과의 교류를 통해

 

 

 

 

★ 관련글과 말

 

- 실크로드, 길 위의 노래/전인평 지음/398쪽 소나무
"‘고구려 유민의 후손’설이 제기되고 있는 태국 라후족의 노래가 강원도 민요와 유사하다는 분석도 눈길을 끈다."

- 소설 치망마이 / 김병호

 

라후족

우리말

나래 너 서울로 까이요?

나와 너 서울로 갈래?

나래너 타 도죠베요

나는 너 좋아해

나터 너터

나도 너도

서울에 방콕까가 까이요

서울에서 방콕까지 가요

나래 서울로 까이요

나는 서울로 가요

까이라 라베라

가려나 오려나

오빠

아빠

나흐 어이언니

우리 언니

나게 라오

나에게 와요

 

분명히 우리와 많이 닮았다. 또다른 우리와 닮은 사실. 그들이 마련한 고사상을 보면 알 수가 있는데,

고사 음식으로 찹쌀과 깨를 섞어서 만든 인절미와 웃는 돼지머리를 사용한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고사상에 돼지 머리가 놓이면 마을의 최고령 노인이 축복의 메시지를 전한다.그러면 마을사람들이 모두

어울려 춤과 노래로 즐겁게 마무리를 한다.

 

서울대 이현복 교수의 말

"일설에는 고구려가 망할 때, 당나라에서 고구려 유민 10만명을 포로로 끌고 갔는데 이들이 중국을 거쳐서

태국까지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으나, 자세한 것은 연구가 이루워져야 한다. " 

 

라후족이 우리말과 유사한 문장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모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지금은 태국말과 라후족언어를 모두 사용하고 있다. 서울대 이현복교수가 이들의 우리민족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과 동일한 생각이나, 그들의 기원에는 다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우리민족의 일부인지는 생물학적, 유전학적연구와 사료에 대한 검증이 있어야 하겠지만.

 이들이 우리말을 지니며 살아 왔던 것은 이들이 오지에 고립되어 살다보니 기존의 언어와의 충돌이 상대적으로

적어 고유의 언어를 간직하며 살아 왔을 것이다. 또한, 고구려의 유민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역사스페셜에서

방송된 바와 같이 백제의 유민이 아니었을까?

 

백제 22담로의 비밀에서 방송한 바와 같이 백제는 동남아지방에 많은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또한, 중국 남부에는

아직도, 백제마을, 백제현등의 이름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연구의 대상이라고 본다. 백제가 동남아등지에

건설했다는 담로등에 거주하던 모두 백제인이 하루아침에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원주민에 동화되어 더 이상 순수성은 찾아보기 어렵겠지만, 라후족과 같이 오지에 고립되어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의 문화와 언어를 일부 남아 간직하고 있지 않은 것인지 진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스라엘은 얼마전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유태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이스라엘로 이주시키는 작업을 하였다.

그들이 이전에 성서에 기록된 바를 토대로 추적하여 고대에 이주한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근거를 바탕으로 말이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적인 면도 고려하여야 하고 등등 반드시 우리가 따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간단하게 잊어 버리고 있다. 위의 사실을 모두 단지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이후에 연구가

이루워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데 대해서 연구하지도, 한 바도 없다. 오히려 다른 나라 사람이

우리에게 그러한 사실을 거꾸로 제공하는데도 우리의 관심에는 변화조차 없다. 물론, 연구를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계승자인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정확히 기억은 못하지만  20여년 전에  일간지 신문에 실렸던 내용.

 

탐험가였는지 관광객이였는지 태국 치앙마이에 갔다가 산중에서 정신을 잃었는데

원주민에 의해 구조되어 며칠을 그곳에 기거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삼일 있으니 말이 통하고 생활 방식이나 애들의 놀이가

우리네 어렸을 때와 똑 같다는 것이였다.

나는 깜짝 놀랐는데,  수 년전에 한글날을 맞이하여 우리글을 세계속에 심는다는

프로그램에서 한글을 배우는 태국 치앙마이 라후족이 나왔다.

라후족은 중국 남부에도 많은데 우리 언론이나 여러 봉사 단체들은 치앙마이로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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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후손임이 분명한 라후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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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후 족 - LAHU (무서, 무수르 Musur)

전체촌락수 421

전체가구수 13,307

전체인구수 73,252



* 이동경로


- 라후족들이 자신들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농우는 어디며 또 북방 흰 눈이 내리는 나라는 어디일까?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가 망한 다음해 당나라는 20만 명이 넘는 고구려 사람들을 붙잡아

갔다가 돌려보냈는데 또 다시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자 당나라는 수만 명의 고구려 사람들을

붙잡아다가 중국 서북쪽의 불모지 농우에 내팽개쳐 버렸던 것이다.


그러니까 농우는 지금의 청해성 동남부와 감숙성 남부, 한때 라후족들이 살았다는 전설 속의 장소

농우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흰눈이 오는 나라는 한반도와 만주 벌판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지금도 한국 사람이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이 흔적처럼 남아 있다.


- 라후족은 원래 티벳과 가까운 중국의 운남성일대에서 살았다. 후에 중국 정부당국과의 분쟁에

휘말리게 되어 남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한족의 압제에 견디다 못한 대부분의 라후족은 미얀마로

넘어갔고, 그 일부는 태국과 라오스로 넘어와 정착하게 되었다.

라후족은 19세기에 들어와서야 태국으로 넘어왔다. 오늘 날 대부분의 라후족은 북부지방인 치앙라이,

치앙마이, 매홍손 등지에 살고 있다.


- 라후족의 태국식 명칭은 '무서 (또는 무수르)' 인데 이는 사냥꾼이라는 뜻의 미얀마어에서 따온

말이다. 하지만 모든 라후족은 무수르라는 명칭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라후라고 부르고 있다.

라후족에는 라후 니(붉은 라후), 라후 나(검은 라후) 라후 시(노란 라후) 라후 푸(흰 라후) 및

라후 셸레 등의 하위부족이 있다.



* 언어


-  중국이 차용해서 쓰는것임


- 라후족 사람들은 대부분 라오타이어와 라오어를 할 줄 안다. 연안어를 할 줄 아는 라후족도 있고,

미얀마에서 이주해온 이들은 미얀마어를 할 수도 있다. 1920년대 이후 라후 나(검은 라후)족의

문자는 기독교 공동체 사이에서 발전하여 확산되고 있다.

 

                                  

 

                             
 


* 촌락 및 가옥


- 라후족은 전통적으로 산의 중턱에 촌락을 이루고 산다. 촌락은 대체로 규모가 작으며, 가옥은

마을의 도로변에 짓는 경우가 많다. 촌락의 어떤 지점에서는 세로로 반을 쪼갠 대나무 줄기로

수로를 만들어 물을 멀리까지 보내기도 한다. 이 대나무 수로는 기둥을 세워 지탱한다.


- 촌락마다 눈에 띄는 장소에 제례를 치르는 곳을 두고 있다. 라후 셸레의 마을에서 이런 장소는

축제나 행사때 신성한 춤을 추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라후 니(붉은 라후) 촌락에는 이 장소에

자신들이 믿는 신의 제단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기독교를 믿는 라후 나(검은 라후) 와

라후 시(노란 라후) 의 촌락에는 교회가 서 있다.


- 라후족 가옥은 작고 가볍게 지어진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은 대나무와 야자수 잎을 이용하고,

통나무로 기둥을 세워 단 하룻만에 후딱 집을 만들어 버린다. 주택내부에는 한 두 개의 침실과

거실이 있으며 난로가 적어도 하나씩은 마련되어 있다. 방 한가운데 난로를 두어 취사에 이용한다.


- 라후는 고생을 해서라도 부슬부슬한 안남미보다는 찰기가 있는 찹쌀로 지은 밥을 먹으려 든다.

때문에 라후족의 마을에서는 항상 찰기진 밥을 먹을 수 있기도 하다. 라후족에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된장이나 김치 등도 있다. (물론, 고춧가루가 없는 하얀 배추절임같은 것이다. 한국의 김치가 붉은

것은 고춧가루가 한국에 들어온 이후부터이다.)



* 경제와 풍습


- 라후니(붉은 라후) 와 라후나(검은 라후) 는 주로 아편을 재배하며 이는 고추 및 야생조류고기

말린 것과 더불어 중요한 현금수입원이 된다. 또한 벼와 옥수수와 그밖의 다양한 채소류를 재배한다. 게다가 돼지와 닭도 키우는데 이것은 팔기 보다는 먹기 위한 것이다.


- 농사는 주로 화전을 이용해 짓는다. 대부분의 경지는 기껏해야 삼년정도만 곡식을 심고 그 후엔

내버려두어 갈대숲이 된다. 수렵 또한 라후족 경제의 중요한 일부를 차지한다. 사냥한 짐승은

식용으로 쓰기도 하고 평지에 사는 이들에게 팔기도 한다. 라후 셸레족도 화전민이며

2차 현금수입원으로 돼지를 기른다. 고추도 환금작물로서 점점 중요해 지고 있다.


- 라후의 여인네들 역시 어릴때부터 자수를 비롯한 뜨개질을 배운다. 처녀들은 부지런하여, 자신이

입을 옷 이외에 미래의 신랑이 될 사람의 옷까지도 미리 만들어 두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남자들 역시 부지런하여 이른 아침부터 밭에 나가 일을 시작한다.


- 라후족에게 있어 음악과 춤은 생활속에 배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상 즐거운 노래소리가

울려퍼지는 마을에는 축제도 자주 벌어진다. 축제날이 되면, 여자들은 그동안 준비해 두었던 예쁜

옷을 입고나와 춤을 추고, 남자들은 풀잎으로 피리를 만들어 음악을 연주한다. 대나무를 이용해

'여러개의 관이 달린 스코틀랜드식의 피리'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 불기도 한다.


- 마을 사람중에 한명이 병이 나면, 사람들은 그 주위에 모여 춤과 노래를 부르는 의식을 하여,

악귀를 쫓아 낸다. 마을의 부족장은 제사장의 역할을 함께 하여 결혼이나 장례를 주관하고,

길흉을 점치기도 한다. 부족장의 권한은 막강하여, 마을은 부족장의 이름을 따서 짓는다.

따라서 부족장이 죽거나 새로운 부족장이 들어서면, 마을의 이름도 바뀌게 된다.


- 라후족은 콩을 쑤어서 만든 된장을 먹는다. 우리나라의 된장과 거의 흡사한 것이며, 야채를 소금에

절인 '와찌' 라는 것도 먹는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김치와 비슷한 것이다. 명절이 되면, 찹쌀을

대나무통에 넣고, 숯불속에 넣어 밥을 쪄 먹는다.


- 라후족의 음식은 김치·된장 등 우리 음식과 비슷한 것이 많아 잘만 찾아 먹으면 식사때 고민

스럽지 않다.불편한 점은 무엇보다 고도가 높아 도착해 며칠동안은 고산병 증세가 나타난다는

것이다.머리가 띵하고 무기력해진다.



* 잊혀진 우리 핏줄 아카 라후 리수


- 소수 민족을 연구해온 학자들은 태국의 고산족이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나라 군사에게 포로가

되어 잡혀가 오지에 버려졌던 고구려의 후손들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구려 본기에 의하면 당나라 고종이 고구려인 3만 8천 3백호를 잡아가 중국 남쪽 광막한 땅에

옮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 학자들뿐 아니라 소수민족 출신의 호례극이라는 중국 학자도 같은

의견을 내놓는다.

 

 


이들 고산족들은 고구려 사람들이 그랬듯이 남자가 처가살이를 하고, 결혼 때 닭을 옆에 두고 식을

올린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은 것도 우연으로 돌릴 수만 없는 고구려 옛 풍습

그대로다.


아카족 같은 경우는 구슬을 머리에 달고 장식하기를 좋아하는데 이 또한 예사로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중국 후한서에 '동이족은 구슬 장식을 즐긴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 북한 사투리 '나 메홍손 가메'

학자들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한국 여행자들이라면 이들이 우리 핏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명절 때 색동옷을 입는 것이 그렇고 태국 사람들은 별로 좋아 하지 않는 끈기있는 찰벼를 산간에서

재배하는 것도 그렇다. 된장이나 김치를 담가먹는 것까지 우리를 닮았다.


무엇보다 신비한 것은 이들의 말이 중국이나 태국말처럼 주어 동사 목적어 순이 아니고 우리말처럼

주어 목적어 동사 순이라는 것이다. 라후족이이나 아카 리수족이 한결같이 나를 '나'라고 하고 너를

'너'라고 하는 것을 들으면 숨이 막힐 지경이 된다. 지구상에 한국인 말고 어느 민족이 나를 나라고

하고 너늘 너라고 할 것인가 말이다."나 매홍손 가이메이" 라후족의 말로 나 매홍손에 간다는 뜻이다.

이 말을 어찌 들어보면 "나 매홍손 가메" 라는 북한 사투리만 같지 않은가? 어쨋든 이들을 만나면

우리와 같은 핏줄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들을 우리 민족이 아니고는 세계의 어떤 민족과도 동일시할 수 없을 것이다. <최승언(자유기고가)



* 우리와의 유사점


- 외모도 태국보다는 우리네와 더 비슷했다.

- 집안의 아궁이를 쓰는 것도 우리네와 닮았다.

- 명절 때 색동옷을 입는 것

- 태국 사람들은 별로 좋아 하지 않는 끈기있는 찰벼를 산간에서 재배하는 것.

- 된장이나 김치를 담가먹는 것까지 우리를 닮았다.

- 이들의 말이 중국이나 태국말처럼 주어 동사 목적어 순이 아니고 우리말처럼 주어 목적어 동사

순이라는 것이다.


- 고구려 사람들이 그랬듯이 남자가 처가살이를 하고, 결혼 때 닭을 옆에 두고 식을 올린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은 것도 우연으로 돌릴 수만 없는 고구려 옛 풍습 그대로다.

- 라후족·아카족 등이 개고기를 먹는다.


- 라후족도 아기를 낳으면 문밖에 인줄을 쳐 일정기간 외부 사람들이 집안으로 못 들어오게 한다고

했다.라후족의 인줄은 지푸라기를 사용해 왼새끼를 꼰 후 새끼줄 사이사이에 창호지·숯·

빨간고추(사내아이의 경우)·푸성귀를 꽂아 놓는다.


그런데 탐사팀을 놀라게 한 것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인줄에 푸성귀를 꽂았다고 하는데

라후족은 지금도 푸성귀를 꽂는다는 사실이었다


- 라후족의 명절이나 제사에서 찾을수 있는 유사성

라후족의 설은 우리나라 처럼 1년중 가장 큰 명절로 떨어져있던 가족과 만나고 이웃 부락과의

교류를 통해 한해동안의 풍년과 평온을 기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특정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농사에 적절한 시점에 따라 부락마다

해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명절을 보내는 일반적인 모습에는 많은 유사성이 보인다.


'까끄뵈'라는 라후족의 새해 첫날 아침에는 세심하게 만든 색동옷을 입으며, 마을한가운데 제사음식을

올려두고 발을 엇갈리면서 주변을 도는 것은 땅을 밟아 땅의 신을 자극하여 한해의 평온과 풍년을

기원하는 단체 의식을 치르는 데 이것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전하는 고대 마한의 제천의식을

연상시키는 지신밟기와 비슷하다.


 *  아직도 흔적으로 남아 있는 우리말들 *

인간의 언어는 의외로 빨리 변한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100여 년 전, 육지 사람들은 제주도 사람들이 같은

민족이면서도 통역이 없이는 의사소통에 곤란이 많았다.

저자의 어머니는 강원도 고성(高城)분인데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전북 군산(群山)으로 시집을 가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이 그 지방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회고를

하시곤 했다.

만약 우리가 삼국시대에 살았던 조상들과 만난다고 하자.

그들은 분명 우리들의 조상들인데도 의사소통이 안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언어 가운데서도

가장 쉽게 바뀌는 것이 일반 어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원시(기본) 어휘는 가장 더디게 변한다. 민족의 뿌리를

찾는 학자들에게 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어법(語法)은 어휘와는 달리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큰 폭으로 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20세기에 들어 경이적으로 발달한 서구의 물질문명이 우리의 일상생활 속으로 침투했지만,

테레비죤, 컴퓨터와 같은 외래어 명칭들은 여전히 우리의 고유한 어법 위에 얹어서 사용이 되고 있다.

저자가 라후족이 과연 고구려의 유민이며 따라서 우리민족인가 의문을 가지고 연구 조사를 착수하기도 전에

서양에서는 벌써 라후족에 관해서 심도 깊은 연구를 실시하고 한국인과 언어적으로 아주 유사하다는 사실을

밝혀 낸 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연구는 현장을 게을리하고 책상 위에서 참고 서적이나 뒤적였던 우리의

민족학자들을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라후족을 연구했던 외국의 학자 한 분은 바로 세계적으로 저명한

언어학자인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제임스 매티?(James Matisoff) 교수, 그의 저서에서 내린 다음과 같은 결론은

우리에게  충격일 수밖에 없다.
[Lahu language is remarkably similar to that of Japanese and Korean in grammar.]
(라후어는 어법 면에서 일본어, 한국어와 기가 막힐 정도로 유사하다)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그간 무엇을 했단 말인가?

1995년, 저자가 중국 운남성 서남단에 위치 해 있는 란창라후족자치현(蘭滄拉祜族自治縣)에 가서 라후족

역사학자 호타극(胡打克)씨를 만났는데, 그 분 말에 의하면 매티? 교수가 벌써 10년 째 라후어 연구를 위해서

매년 그곳을 방문해서 일정기간 체류를 한다고 했다. 매티? 교수는 세계 최초로 라후어 사전을 편찬하기도 했다.

 

저자가 지난 10여 년 동안 현장을 누비며 라후족에 대해서 연구를 한 결과, 이 지구상에서 언어, 민속, 음악,

식생활, 신화 등 모든 분야의 민족학적 내용이 우리와 가장 유사한 종족은 라후족이었다. 얼마 오래지 않은

과거에 같은 지역 내에서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풀릴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사실이다.

다음으로 우리와 유사한 민족은 리수족과 하니족(미얀마와 태국에서는 아카족으로 부른다), 그 다음으로는

인도의 아쌈 사람들 그리고 묘족이었다.

예를 들면, 일본어가 우리의 말과 아무리 유사하다고 해도 뜻이 같은 문장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오늘날 라후족이

사용을 하는 말 가운데는 한국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아직도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한국어                               라후어
                       ..........                                 ..........
                         나                                        나
                         너                                        너
                         너희(복수형)                     너흐
                         나도너도                            나터너터
                         이렇게 저렇게                   이케 저케
                         갈려나 올려나                   까일래나 라일래나
                         너희들은 나에게 와요.     너흐래 나게 라웨요.

                          ** 라후어 ‘흐’는 복수형
                               ‘래’는 주격조사(지금도 북한에서 사용)
                               ‘게’는 여격조사로 우리말 ‘에게’ 또는 ‘께“
                               ‘요“는 우리말과 같은 문장의 종결어미

                          나와 너와 서울로 갈래?       나터 너터 서울로 까이라?

                           ** 라후어 ‘터’는 우리말 접속사 ‘도’
                                ‘로’는 우리말 향진격 조사 ‘로’
                                ‘까이’는 우리말 ‘가’
                                 의문사 ‘라?’는 우리말 ‘래?’에 대응

아직도 라후족들이 말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들어보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마치 화석처럼 남아 있음을

알게 된다. 라후어와 우리말의 유사성을 더욱 확인하기 위해서 어법의 예를 들어보자. 어법 면에서 우리말의

세계적인 특징 중의 특징은 조사(助詞)의 활용, 라후족의 조사 가운데서 음성학적으로 우리의 것과 유사한 것만을

예로 선택했다.

                           한국어                    라후어
                           ..........                      ..........
1. 주격조사        -가 (북한 ‘래’)         -래
                            -이                            -
2. 여역조사        -에게, -께                 -게
                            -테                            -타(선사시대 우리민족의 구성원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이 되는 아이누 족은 ‘타’를 목적격 조사로 사용.)

3. 소유격조사     -의                            -베, 웨
4. 시간격조사     -까지                        -까가
5. 향진격조사     -로                            -로
6. 호격조사         -아                            -오, -아

라후족의 문장은 우리의 말과 같이 평서문의 경우 주어+목적어+술어+문장의 종결어미 순서이고, 의문문의 경우

의문사가 종결어미로써 문장의 마지막에 위치한다.

              한국어                                      라후어
              ..........                                        ...........
              나는 너를 좋아해요.              나래 너타 됴조베요.

       ** 라후어 ‘됴'는 ’조‘에 해당하는 이조시대의 말 ’됴'와 동일.(됴 고약-조 고약)

              나의 형은 김씨 이예요.         나웨 어뷔 어니 김 메웨요.

       ** ‘어뷔’의 ‘어’는 우리말의 경칭(어머니, 어라하<백제 시대 왕을 일컷는 말> 등)

                  ‘어니’는 오늘날 우리말의 ‘언니’에 상응.

   또, 의문문의 경우도 우리의 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한국어                                       라후어
             ..........                                         ...........
             하느님께 노래 부를래?          으사타 까므 까웨라?

             ** ‘으사’- 환웅(桓雄)천왕이라고 추정이 됨.(‘으’뜸 환, ‘수’컷 웅)
             ** 까므- 고대 한국어에서 하느님(神)을 뜻하는 ‘감’에서 기원
             ** 의문사 ‘래?’- ‘라’?

   라후어는 우리말의 특징인 동사와 형용사가 굴절을 하며, 부정문의 경우도 똑 같다.
      
              한국어                                    라후어
              ..........                                      ...........
             밥을 먹지 마시오.                 어자 마조.

             ** 라후어 ‘자’는 한국어로도 ‘먹는다’는 뜻.(밥을 ‘자’시오)
             ** ‘마’는 금지를 나타내는 부정사로 라후어, 한국어 동일.
             ** 문장의 종결어미 ‘요’도 한국어와 라후어가 일치.


4, 라후족의 신앙과 탄생설화

만약 라후족, 리수족 그리고 하니족이 지금은 인멸되어서 찾을 길이 없는 삼국시대 우리의 풍속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역사를 복원하는데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

라후족, 리수족, 하니족의 신앙적 특징은 모두 하느님을 믿는 유일신 사상이다.

그 가운데서도 라후족과 리수족의 하느님은 우리의 환웅천왕이라고 추정이 되는 ‘으사’이고, 하니족의 신은

‘아퓌미애’인데 출처가 불분명하다. 그러나 하니족은 지금도 마한시대의 것과 같은 것이라고 추정이 되는

소도(蘇塗) 신앙과 장승을 가지고 있다.

[여러 나라의 고을에는 각기 한 사람이 하느님에게 드리는 제사를 주관하고, 이 사람을 천군(天君)이라고 부른다.

천군은 일정 지역에 소도를 세워 관리를 하는데 이를 별읍이라고 부른다]
                   -後漢書 東夷傳 韓, 三國志 東夷傳 韓-


또 라후족은 하느님이 온 세상의 만물을 창조했다는 경천사상이 그들의 주된 신앙이다.

더욱 특이한 것은, 리수족에게는 우리민족 고유의 것과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은 홍수설화가 지금껏 전해오는데

(우리의 일어버린 역사를 찾아서-하서출판사 참조),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라후족의 탄생설화도 우리의 것과 매우 유사하다. 라후족은 우리처럼 난생설화(고주몽, 김수로왕 등)을 가지고

있다. 그 내용을 간추려 소개를 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어느 때, 이 세상에는 박이 한 개가 있었는데 그 박 속에는 남여 어린이 한 쌍이 들어 있었다. 

이 어린이들은 바깥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서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저희들을 밖으로 꺼내주세요’


마침 곁을 지나가던 사슴이 외침 소리를 듣고는 어린이들을 도와주려고 무진장 애를 썼으나 박 껍질이 너무나

단단해서 어찌할 수가 없었다.

주위의 동물들이 모여 사슴을 도왔으나 어린이들을 꺼 낼 도리가 없었다. 때마침 참새가 그 곁을 지나가다가

날카로운 부리로 박을 쪼고 다른 동물들도 협력을 해서 드디어 박 껍질을 쪼개 어린이들을 밖으로 나오게 할

수가 있었다. 이 어린이들이 자기네들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라후족들은 지금도 이 박이 자기네들의 조상이 나온 신성한 물건이라고 해서 집집마다 걸어 놓는가 하면,

운남성에 사는 라후족들은 돌을 다듬어 박을 만들어 전시해 놓기도 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라후족

설화가 한반도에서 사는 우리에 의해서도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는 내용이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라후족의 것 과 똑 닮은 내용의 이야기를 처녀 가정부에게서 들었던 것이다. 또 우리의 창해역사가

박에서 탄생을 했고, 일설에 의하면 신라의 박혁거세가 박에서 나왔다고도 했다.

또 박 석조물 주변에 세워져 있는 벅수와 돌하루방을 보는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라후족이 우리민족이 아니고서는 그와 같은 유사성이 발견 될 수가 없다.

난생설화(卵生說話)는 동남아시아, 인도 등 남서방계통의 민족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탄생설화이다.

북방민족의 주된 동물설화(動物說話)와는 기본 틀이 다르다.        


5, 무속(巫俗)

라후, 리수, 하니족 모두 마을에는 무당이 있고, 이 무당을 중심으로 그들의 사회가 형성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강신무로써 몽환(Ecstasy)적인 북방형이 아니고, 우리민족의 주된 것과 같은 남서방의 빙의(Possession)

타입이다.

오늘날 리수족이 행하고 있는 무속을 소개해 보자. 리수족은 무당이 되려는 사람은 신병 (身病)등으로 인해

통을 겪은 후 마을의 영력이 강한 신체(神?; 우리나라의 최영, 남이 장군 또는 죽은 자식 등과 같은 대상)와

결합을 한다. 새 해가 되면, 무당은 마을의 재액을 물리치고 번영을 위한 주술적인 행사를 주관한다.

만약 마을에서 환자가 발생을 하면, 무당은 신체와 접신을 한 후(이 때 무당은 자기의 혼을 잃어버리고 신체의

혼이 대신한다) 신체의 강한 영력을 이용하여 환자를 치료한다. 이 과정에서 리수족의 무당은 처음 벌렁 누워서

주술을 왼다. 다음, 길게 휘파람을 부는데 이것은 접신을 완료했다는 신호이다. 이때부터 무당은 긴 칼을 휘두르며

방안 이곳저곳을 훌훌 뛰어다닌다. 다음, 환자 주위를 돌며 치료를 하는데, 환자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먹거나

거리제(환자의 의복, 음식 등을 길가에 버리는 풍속; 불과 50여 년 전까지 우리민족도 이와 같은 풍속이 있었다)에

사용할 물건들을 말한다.


주술 행사가 끝나면, 무당은 마을 사람들에게 자기의 영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펄펄 끓는 돼지기름을 마신다.

마치 우리나라의 무당이 시퍼런 작두 칼날 위에 올라서는 것과 같은 맥락의 행동이다. 마지막으로 펄펄 끓는

돼지기름을 마시고는 횃불에다 뿜어서 방안에 불똥들을 만들고 이것을 집 밖으로 쓸어내는 것으로 무속 행사가

끝난다.

또 리수족의 무당은 우리가 들으면 무시무시한 행위도 하는데, 바로 시체를 해부하는 일이다. 리수족은 산모가

죽으면 무당이 죽은 산모의 배를 갈라서 태아를 꺼낸 후 따로 묻는데 이 작업을 영력이 있는 무당이 하는 것이다.


6, 꿈과 해몽 그리고 금기 사항

라후족과 리수족은 꿈으로 길흉을 판단하기도 한다. 그들의 해몽법은 한국 전통의 것과 어찌나 비슷한지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이다.

(1) 꿈에 웃거나 어금니가 빠지면 부모나 가까운 친척어른이 죽고, 아래이가 빠지면 손아래 사람이 죽는다.
(2) 꿈에 큰 나무가 쓰러지면 마을에 나쁜 일이 생기거나 나라의 어른이 죽는다.
(3) 꿈에 흰 옷을 입고 나타나면 그 사람이 병들어 죽는다.
(4) 이미 죽은 사람이 나타나서 불러내면 따라간 사람이 죽는다.
(5) 불 꿈은 불길하고 물 꿈은 길하다.
(6) 꿈에 새 옷을 차려 입거나 웃는 얼굴로 나타나면 그 사람이 병들어 죽는다.

꿈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은 예후도 믿는다. 즉, 눈꺼풀이 경련을 계속하면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이 죽는다.


7,  임신과 출산

(1) 임신 무렵에 부모의 한 쪽이 태몽을 꾼다.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도 부모님으로부터 태몽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장을 했다. 꿈에 거북이를 보면 여자 아이를 낳고, 뱀을 보면 남자 아이를 낳는다.

(2) 임신 중 비늘이 없는 물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비늘이 없는 물고기를 먹으면 다음 임신이 안 된다고

믿는다. 혹시나 영양가가 높은 뱀장어 등 비늘이 없는 물고기를 먹으면 태아가 커져서 출산이 어렵게 된다거나

혹은 다른 미신에서 생겨난 금기 사항이 아닐까?

(3) 애기를 낳으면 대문 앞에 낫이나 칼을 꽂아두어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다. 우리도 금줄을 쳐서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똑같은 맥락의 풍속이 있었다.

(4) 하니족은 쌍둥이나 언챙이, 육손이 등 기형아를 낳으면 즉시 땅에 묻어 죽인다. 쌍둥이는 나중에 커서 마을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한다.(하니족 남자들은 글자가 없기 때문에 50대 이상의 조상 이름을 차례로 암기를 하여야

한다) 또 쌍둥이나 기형아는 조상을 섬길 자격이 없다고 생각을 해서 살해를 한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똑 같은

풍속이 있었다. 쌍둥이 중 한 명은 산에 묻고, 다른 한명은 강물에 내던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고대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수 백 명의 인물 가운데서 쌍둥이였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5) 어린애의 명이 길 라는 뜻에서 손목에 실을 감아준다. 우리도 어렸을 적 돌잔치 때 어머니나 할머니가 손목에

실을 감아 주었다.

(6) 아기를 등에 업고 띠로 묶는다. 아기를 등에 업었던 민족은 지구상에서 한국, 일본, 라후, 리수, 하니, 그리고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의 다약족 정도였다. 근래에 서양인과 중국인들이 우리의 것을 본받아 아기를 뒤로 업기도

한다. 그들은 원래 아기를 구덕에 넣거나, 옆구리에 끼거나 그렇지 않으면 안고 다녔다.


8, 사랑과 결혼

(1) 서로 사랑을 하는 사이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애정관계가 무척 자유 분망하다. 옛 고구려인들도

친하거나 소원하거나 한 냇물에서 목욕을 하고 한 방에서 잠을 잤다. 또 중국의 사서가 기록하기를, 풍속이 음란한

것을 좋아하여(당시 중국인의 시각) 조금도 이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만약 노는 여자(과부를 지칭)가

있으면 아무나 남편이 될 수가 있었다.

(2) 처녀는 장래의 신랑을 위하여 새 옷을 만들어 둔다.

(3) 처녀는 자기 결혼식의 피로연을 위하여 따로 돼지를 기른다. 이 풍속도 근세에 까지 내려왔던 우리민족의

전통 풍속이었다.

(4) 어린 여자 아이를 사다가 길러서 며느리를 삼기도 한다. 이것도 우리민족의 민며느리 제도였다.

(5) 하니족은 결혼식 날 동네 남자들이 얼굴에 숫 검뎅을 칠해 악귀를 쫓는다.(우리나라의 중방아비 풍속)

(6) 혼인식은 신부 집에서 하며 일가친척과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한다.

(7) 신부와 신랑은 닭을 곁에 두고 결혼식을 거행한다. 다산과 부부간 금술을 위한 것인데 우리민족의 옛 풍속과

같은 것이다.

(8) 결혼식을 끝내면 신랑 신부는 신랑 집으로 가서 신랑 부모와 친척들에게 인사를 한다.

(9) 첫날밤 동네 사람들이 신방을 엿보거나 짓궂은 장난질을 한다.

(10) 다음날 신랑과 신부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한 짐씩 해다가 신랑과 신부의 부모에게 가져다준다.

(11) 신랑은 농기구와 옷가지를 가지고 신부 집으로 와서 자식들이 성장을 할 때까지 처가살이를 한다.

(고구려 풍속과 동일)

(12)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맞는다.  

     [형이 일찍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맞는다.]          -후한서 및 삼국지 부여전-

고구려도 같은 풍속을 가지고 있었다. 고국천왕(故國川王)의 왕비 우씨(于氏)가 남편이 죽자 시동생인

연우(延優; 후에 山上王)과 결혼을 하여 2대에 걸쳐 왕비 노릇을 했던 유명한 일화도 있다. 묘족(苗族),

소아시아의 메소포타미아, 고대 이스라엘도 같은 풍속이 있었다.    


9, 죽음과 장사

(1) 사람이 병이 들면 음식물을 차려놓고 병이 낫게 해달라고 빌거나 무당을 불러와 푸닥거리를 한다.

(2) 집밖에서 죽으면 시체를 집 안으로 들이지 못한다.(우리나라 옛 풍속)

(3) 사람이 죽으면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 슬피 운다. 옛날 북방민족은 자기 부모가 죽었는데도 술 먹고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했다.

(4) 시체를 깨끗이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힌다.

(5) 시체의 머리와 발밑에 ?불을 밝힌다.

(6) 사람들이 밤새워 시체를 지킨다. 고양이가 세 번만 시체를 넘으면 시체가 벌떡 일어선다고 믿어서이다.

(7) 시체는 새끼줄을 사용하여 5군데를 묶고, 나무관 속에 넣는다.(우리나라에서 염하는 풍속)

(8) 가난한 사람은 하루만에, 부자는 3-5일 만에 장사를 지낸다.

(9) 가족들은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장사를 지낸다.

(10) 죽은 자가 평소에 사용을 하던 물건은 무덤 주위에 매달아 놓는다. 칼과 활등을 무덤의 머리 부위에 놓는

것은 혹시나 죽은 자가 살아생전에 죽인 짐승의 혼이 달려들면 베거나 쏘아서 죽이라는 뜻이다.

(11) 관은 땅을 파서 묻은 후, 봉분을 한다.

(12) 죽은 사람이 입었던 옷가지는 태워서 없앤다.

(13) 무덤 앞에 물을 뿌려 초혼을 한 후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낸다.

(14) 1년에 1-2회 씩 벌초를 하고 추석이면(산족 가운데서 오직 라후족만 추석을 쇤다)성묘를 한다.


10,
 의복 및 장신구

(1) 설날에 여자들은 색동옷을 입는다.(라후 셀레족)

(2) 여자는 긴 두루마기 같은 옷을 입고, 남자는 저고리와 핫바지를 입는다.(라후 셀레족)

(3)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두른다.(라후 셀레족)

    [세인들은 마포 옷에 고깔을 쓰고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다.]
              - 唐書 東夷傳 高句麗 -

(4) 여자는 허리에 노리개를 찬다.(리수족)

(5) 여자는 방울로 장식한 모자와 옷을 입는다.(하니족)

    하니족은 옛 한족(韓族)의 풍속을 지켜오고 있다.

   [금 은과 보배, 그리고 비단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또 소나 말을 탈 줄도 모른다. 다만 구슬만을 소중하게

여겨 이것을 옷에 장식하여 입기도 하고 또 구슬을 목에 매달아 내려뜨리기도 한다.]
              - 後漢書 東夷傳 韓, 三國志 東夷傳 韓 -

(6) 라후족, 리수족, 하니족 모두 다리에 행전을 맸다.

(7) 결혼 한 여자는 머리를 양쪽으로 나누고 뒤에서 위로 쪽을 찐다.

(8) 옷에 수를 놓기도 하고, 은장식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공회에 모일 때 의복은 모두 수를 놓아 입고, 금과 은으로 장식을 한다.
                  - 梁書 諸夷傳 高句麗 -         

11,  식생활

(1) 음식을 먹을 때 젓가락과 숟가락을 사용한다.
(2) 메주를 만들어서 그냥 반찬으로 먹는다.
(3) 김치를 만들어 먹는데, 감치를 ?찌(옛 한국말 앗찌 - 醬앗찌)라고 부른다.
(4) 설날 찹쌀로 인절미 떡을 만들어 먹는다.
(5) 동남아시아에서 살면서도 한국인들처럼 차진 쌀(Japonica Type)을 주식으로 한다.
(6) 말린 벼를 금속판에 튀겨먹는다.
(7) 개고기를 먹는다.


12,  주거생활

(1) 방 한가운데서 불을 지펴서 방을 덥히기도 하고, 음식물을 만들어서 먹는다.(고구려 풍속과 동일)
(2) 사람은 모두 산 속에서 산다.
(3) 집 곁에 조그만 창고가 있는데 주로 곡식을 저장한다.(고구려 시대 부경)

13, 노래와 춤(歌舞)

(1) 노래에 장단이 있다.
(2) 노래의 가락은 단조이며 애조를 띤다.
(3) 고구려 시대의 악기인 호로생황, 담고 등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4) 제천의식 때, 마을 사람들이 모여 서로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강강수월래 같은 춤을 춘다.
(5) 또 온 마을 사람들이 서로 뒤를 따르며 껑충껑충 뛰면서 춤을 추기도 한다.
(6) 설날이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땅바닥을 힘껏 발로 차며 지신밟기를 한다.


14. 놀이문화

(1) 팽이치기, 실뜨기, 팔방놀이, 공기놀이, 비석치기, 쎄쎄쎄, 굴렁쇠 굴리기 등 과거 우리민족이 했던 놀이를

아직도 하고 있다.


15. 기타

(1) 리수족은 절을 할 때 한 쪽 다리를 뒤로 뻗는 고구려식 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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