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함께한 40일 (1)
이태호
동이 트이자마자 매미가 운다. 한 놈이 울자 이내 합창이다. 아무리 고운 소리라도 똑같은 음색으로 계속 들으면 귀가 아프다. 간밤 해루질로 지친 몸뚱이가 짜증을 낸다. 입안이 까칠하다. 아침밥은 걸러야겠다. “끼니는 꼭 챙겨 드세요.”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이놈의 날씨는 해가 뜨자마자 후끈거린다. 약봉지를 털어 넣고 바닷가로 나왔다. 문턱을 넘으면 곧바로 바다다. 가로림만 바다는 만리포 바다와 사뭇 다르다. 표면이 마치 얇은 유리판과 같다. 고함이라도 지르면 쨍, 하고 깨질 것만 같다. 바람 한 점 없다. 나뭇잎까지 숨을 죽이고 있다. 숨막힐 정적이 흐른다. 당분간 이런 분위기가 계속될 것 같다.
바다도 털썩 주저앉았다. 연이은 폭염에 지친 것 같다. 우도(牛島)를 향하여 길게 갯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굴이나 바지락을 실어 나르는 길이다. 오랜 세월 다져져서 조수간만에도 단단하게 버티고 있다. 그 길은 나의 산책 겸 운동 길이기도 하다. 내 발걸음으로 일천 오백여 걸음이니 왕복 3Km 남짓이다. 물때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아침과 저녁으로 나는, 그 길을 오간다. 곁에는 부드러운 갯벌이 광활하게 펼쳐있고, 바다 생물들의 삶도 엿볼 수 있다. 가끔 그들과의 대화는 자연이 통역한다.
그늘 장수를 포기하고 이 섬에든지 오늘로 꼭 40일이 되었다.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몸뚱이 한 곳에 나사가 헐거워져서 제 기능을 상실했단다. 그 때문에 수리를 한 다음 조용한 곳에서 요양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손을 뻗으면 이내 문명의 이기와 편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많다. 하지만 그런 곳은 외면해야만 했다. 요양 생활을 방해하는 요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곳은 육지와 멀지 않은 가로림만에 떠 있는 작은 섬 중 하나이다. 그의 이름은 분점도(分点島)다. 이곳 주민들은 이 섬을 일러 쇠똥 섬이라 부른다. 곁에 있는 牛島(쇠 섬)의 꼬리 부분에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니까 소가 똥 한 덩어리를 눈 것 같이 작다는 것이다. 이처럼 ‘분점도’는 가로림만에 떠 있는 섬 중에서 가장 작고 아담하며 때 묻지 않았다. 6천 평 남짓한 면적에 열한 채의 집이 납작 엎드려있다.
주변에는 우도(牛島), 고파도(古波島), 웅도(熊島), 조도(鳥島)들이 조롱박 닮은 아담한 가로림만에서 함께 발을 담그고 있다.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연안에는 넓은 천해간사지(淺海干瀉地)가 발달해 있어 각종 조개류와 어류가 회유하고 산란하는 장소로 적합하다고 했다. 그 때문에 이곳 주민들의 생업으로 바지락을 긁거나 낙지를 잡고 굴을 양식한다. 부근에 염전도 많아서 어류의 염장처리에 중요한 몫을 하는 천혜의 수산조건은 갖추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방문한 여름철에는 바다생물의 산란기이며 휴식기간이다. 그들의 주기에 맞춰 주민들도 숨을 고르는 계절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퍽 조용했다. 섬에 도착했을 때 나와 함께 숨을 쉬고 있는 주민은 열두 명이 전부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집만 남겨놓고 도심으로 살림을 옮겼거나 노환으로 입원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민 다수가 칠십을 넘긴 분들이다.
내가 머무는 집은 지인의 소유다. 세상을 오래 살다 보면 구석구석 아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도심에서 사업을 한다. 도심에서 삶을 낚기에 피곤하면, 가끔 이곳에 들린다고 한다. 풍류를 아는, 여유 있는 사람인 반면 이재에도 능한 사람이다. 바지락이나 굴 채취 기간에는 섬에 있는 돈이 자신을 부른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섬 주민들과 상부상조한 결과 부를 축적하는 데 일조를 했다고 한다. 상주하는 집이 아니고 잠시 들렸다 가는 집이라서 그런지 제대로 갖춘 것이 부실하다. 하지만 실망할 수준은 아니다. 호강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어 달 머물기엔 손색이 없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무엇보다 순수한 자연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섬 주민(세대)에게는 자가용 대신 큼직한 보트 한 대씩은 필수라고 한다. 언제 어느 때라도 육지와 연결할 수 있는 고리인 셈이다. 그 때문인지, 각종 가게나 식당 등 편의시설은 전혀 없는 상태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연락선을 타거나 자신의 배를 운항하면 된다.
들고 온 것이라고는 노트북과 책 네댓 권이 전부다. 인터넷망 연결이 안 되어 있어 오히려 편했다. 에어컨이나 텔레비전도 없다. 현대인에겐 교도소와 엇비슷하다. 종일 책을 읽거나 잡글이나마 연실 글을 쓴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선선한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나절이다. 그것도 물때가 맞아야 운동도 할 수 있다.
섬에 대한 궁금한 사항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파악하기 위하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섬이 작아서 하루나 이틀이면 거의 알 수 있었다. 그 때문에 괜스레 땡볕에 나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처음에는 엄청 답답하여 달리 할 일이 없나? 찾아보았다. 지질학자도 아닌 녀석이 망치로 갯바위를 두드리기도 했다. 다른 바닷가와 달리 갯돌의 색깔과 모양이 특이했기 때문이다. 얕은 지식으로 갯돌의 이력을 살필 수는 있었다. 지질은 주로 쥐라기의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도 이삼일 돌아다니니 싫증이 났다. 동서남북, 섬의 방향 따라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그다음으로 숲에 들어가 관속식물들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름을 알 수 없는 식물들이 더 많았다. 사진만 찍고 포기했다.(식물학자인 친구 초청 예정)
오늘도 나는, 집 안에 있는 문이란 문은 모조리 다 열었다. 웃통도 벗었다. 얼굴과 뒤통수 양쪽으로 선풍기를 세웠다. 그런 다음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엄청 더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조용히 앉거나 누워서 머리와 눈알만 움직인다. 익숙해지면, 오히려 선풍기 바람은 시원하기는커녕 끈적거릴 뿐이다. 지금도 나는, 이 섬에 온 목적을 상실하지 않으려고 무진 노력을 한다. 머지않아 나는 섬에게 독대를 요청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숨긴 보물을 찾아낼 것이다.
벌말에서 출발한 가야호가 유행가를 부르며 분점도로 다가온다. 손님이 있거나 없어도, 하루에 세 번씩 꼬박꼬박 운행한다. 말이 좋아 여객선이지 어선을 개조한 것이다. 사실, 섬 주민을 위하여 市의 재정으로 운영하는 것이니 굳이 클 까닭도 없다. 정원은 선장 포함 열두 명이다. 뱃삯은 주민 2천 원, 외지인 3천 원이다.
뱃머리가 보인다. 이물 쪽에서 아내가 손을 흔든다. 손님은 아내와 이웃에 사는 할머니가 전부다. 아내는 2주일에 한 번씩 금요일에 왔다가 토요일에 간다. 주일에는 하나님을 만나러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녀가 오면 갑자기 식탁이 부산해진다. 갈비나 닭고기가 오르는 날이면 소주와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그런데도 꾹! 참는다. “죽으려면 맘대로 하시오.”라던 의사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려~ 지금은 죽을 때가 아니지!”
*1차 섬 생활을 마치고 일단 집로 돌아왔습니다. 태풍은 겁만 잔뜩 주더니 은근슬쩍 떠났군요. 대신 빗소리가 요란합니다. 그토록 기다렸던 빗줄기였지만, 소리 없이 내리는 저 비의 눈빛이 심상치 않습니다.
회원여러분, 올여름 엄청 더웠죠? 올해 더위는 여니 해와 달랐습니다. 지구온난화현상도 작용했지만, 아열대로 가는 전조인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올해는 중복과 말복 사이가 긴, 월복이라서 더위가 더욱더 길게 느껴졌을 겁니다.
건강은 생각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무엇보다 질긴 악연을 매듭지었더니 홀가분합니다.
종일 붙어 다니며 그토록 다정다감하던 술과 담배에게 내가 먼저 배신했습니다. 나에게도 매정한 면이 있었음에 스스로 놀랐습니다. 40일간의 ‘분점도’이야기와 사진은 정리 되는대로 회원님들과 공유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섬에 들어갈지, 검진을 받은 다음에 결정될 것입니다.
뉴스를 보니 대전에도 물난리가 난 것 같습니다. 피해 없기를 희망합니다.
첫댓글 선생님, 어디가 많이 아프신지요? 걱정이 많이 됩니다. 부디 쾌유를 빕니다~
네, 몸뚱이를 함부로 대한 벌을 받았습니다. 진단 결과 이번에는 마지막 경고입니다. 다음에 또 위반하면 퇴장이라는 말에 몸조심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박미련 수필가님,
만리포가 아닌 분점도에서 여름을 나셨다니.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니라니,웬-
7월 17일 출발하여 약 40여일 머물다 왔습니다. 덕분에 분점도와 우도, 고파도 등 두루 구경하면서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간과 위, 신장 등 종합 세트로 문제가 있었습니다. 약물과 요양으로 치료 가능하다니 하나님께서 봐 준 것이지요. 대신 약속 사항이 있는데 잘 지키겠습니다.
선생님~ 여름 내 너무 뜨거운 날씨에 만리포에서 어찌 지내시나 궁금했어요. 긍정적 결과를 기도합니다.
욕심을 부리며 '그늘장수'를 강행했다면 병이 기승을 부렸을 겁니다. 섬에 들어가 있으니 나를 만나러 만리포에 찾아오신 지인들께 가장 미안했습니다. 아내가 나를 대신하여 대접하느라 고생 좀 했지요. 네, 김지안 작가님의 기도에 힘입어 보다 빨리 완치되리라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먼저 이태호 선생님의 배신에 박수~~~~
이번 가을은 최고의 가을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제 사전에 배신은 없었는데 용기를 냈습니다. 악연도 인연이건만 시원 섭섭하다는 이중적 잣대로 대변하자니 이 또한 나 답지 않습니다. 다행인 것은 이제 대화할 때 술찌검지와 니코틴 냄새 지독하다는 소리를 안 들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체중도 늘어난 것 같습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