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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플라톤2022프로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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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파일은 환원이 안되는데 작은 디스켓은 글이 뜬다.
예전에 천이틀밤에 올린 글인데, 그대로 옮겨 놓는다.
의학과 철학 사이를 주목하며.(55NME)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ou Les Sophiste)(Prōtagoras ē Peri Sophistai)
깡또(Monique Canto), in Les Oeuvres I, Dictionnaire, PUF, 1992, pp. 260-261.(P.2190.)
- 깡또-스페르베(Monique Canto-Sperber 1954-) 알제리태생 프랑스철학자. 플라톤 전공
소크라테스(Socrate, Σωκράτης, 469-399; 70살)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본명 아리스토클레스 Aristoclès 427-347; 80살)
(fr.Wiki) 여러 학자들에 따르면, 이 작품은 초기작품으로 라케스(Lachès), 카르미데스(Charmide)와 리시스(Lysis ou Sur l’Amitié) 다음에 쓰여 진 것으로 본다. 다른 전문가들은 컴퓨터에 의해 분석한 결과 문장의 스타일상으로 보아 플라톤의 성숙기의 작품인 향연(Banquet)에 가깝다고 한다. 배경으로는 페리클레스(Pericles, Perikles, 기원전 495경-429)의 두 아들이 참석한 것을 연역적으로 추리하여 보아, 기원전 432/430경에 전개된 이야기일 것이다. (46ULH)
내용:
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Protagoras)와 최근에 만난 것을 이야기 한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가 한 밤중에 소크라테스의 집에 찾아와서, 소크라테스가 히포크라테스를 교육시키기 위하여, 자기(히포크라테스)편이 되어서 프로타고라스에게 개입해 줄 것을 그에게 간청한다. 소크라테스는 거기에 동의하고, 새벽을 기다리며, 히포크라테스가 프로타고라스에게 무엇을 배우고자 원했는지를 물었다. 사실상 이 아테네 젊은이는 소피스트가 무엇하는 사람인지를 겨우 알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그가 상당한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고 보호하고자 한다. 그 위험은 영혼의 양식을 구[구매 구입]하고자 하는 위험이며, 그 양식이 유익한 지 또는 아닌 지를 여유를 갖고 고려할 가능성[시간]을 전혀 갖지 않고서, 이 양식을 그가 곧 바로 흡수해야 한다고 여긴 것이다. [학문, 더 정확하게는 영혼의 양식인 지혜는 받아먹는다고 바로 활동이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바로 받아먹을 수 있는 것이 없다. 길에 왕도도 없고, 활동에 즉각적인 영양제도 없다. / 벩송이 말하듯 설탕이 물에 녹기를 기다려야 한다.(46ULG)] 그러나 시간이 다가와서 칼리아스*(Callias) 집에 간다. 칼리아스는 프로타고라스 이외에도 다른 소피스트들, 엘리스 출신 히피아스*(Hippias d'Elis)와 세오스 출신의 프로디코스*(Prodicos de Céos)도 영접하였다.
소크라테스가 프로타고라스에게 히포크라테스의 안부를 전한다. 프로타고라스는 소크라테스에게 소피스트들의 기술의 오래되었음(l'ancienneté)을, 몇몇 사람들이 스스로 그러하다고 선언하는 체험에서 오는 신중함(une pudeur, 수즙음)을, 오르페우스(Orphée)*, 헤시오도스(Hésiode)*, 시모니데스(Simonide)*같은 이들은 자신들의 지식을 감추기를 원했던 가면들을, 상기하게 한다. 그러나 프로타고라스는 스스로를 소피스트이며 교육자이라고 선언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따라서 그는 히포크라테스를 받아들일 것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프로타고라스에게 소피스트의 교육 목적을 가르쳐주기를 요구한다. 그러고 나서, 프로타고라스가 자기는 사람들에게 사적인 업무들이나 도시의 공무들에서 잘 판단하는 기술과 잘 결정하는 기술을 주입할 수 있다고 대답할 때, 또한 이 업무들을 행동으로서도 말들로서도 실현할 재능을 주입할 수 있다고 대답할 때, 소크라테스는 대꾸한다. 그러한 지식은 정치 이하의 것도 아니라고 하고, 그 정치는 결코 가르쳐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증거로서, 아테네에서는 정치적 기술을 결코 배우지 않고서도 어떤 사람이든, 그가 이 영역에서 지식이 있는 자들이든 무지 한 자들이라 할지라도, 정치에서 자신의 의견을 제출하도록 간청을 받는다. 그리고 게다가, 만일 탁월함[훌륭함]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하다면, 좋은 점을 지닌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식들을 교육시키는 부족하지 않았으리라. [그렇게 되었던가?] 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가 대립 견해로서 자신을 설득시라고 하고 기다린다.
프로타고라스는 신화를 통해서 대답한다. 에피메테우스*(Epiméthée, Epimetheus)는 살아있는 자들 가운데서 자연적 특성들을 나누어가지고 있을 때, 그는 인간임을 망각했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Prométhée Prometheus)는 그 종(種, 인간)의 잔존을 보장하기 위해서 기술적 수단과 불을 훔쳐야만 했다. 그러나 이 종은 또한 두 가지 특성이, 즉 존경과 정의가, 요구되었다. 제우스는 인간들이 도시를 형성하기 위하여 모든 인간들에게 이 두 가지에 일치(합의)할 것을 결정했다. [불과 기술적 자원을 준 대신에 도시를 건설하는 데는 두 가지 점에서 모든 사람이 합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후자가 더 어렵겠지. 고난의 행군에서는 합의(일치)가 쉬운데, 각 개인이 자족적이면 합의는 어렵게 된다는 것을 제우스가 알았다는 것인가? (46UMJ)]
그러나 프로타고라스가 덧붙이기를, 교육자들은 각각의 자연적 성향들을 확정하고 그것의 방향을 바로잡기 위해 필수불가결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성향들은 변하고 있고, 또 전혀 유전하지 않는다. [유전하지 않기에 태어나면서 배운다. 이것은 무엇(que)이냐 라고 배우는 것이라기보다 어떤(quel)것이냐 라고 묻고자 한 자가 미셀 푸꼬였다.(46UMJ)]
매우 강한 인상을 받은 소크라테스는 이 탁월함과 다른 특성들, 즉 정의, 지혜, 용기들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프로타고라스는 여러 가지 역설에 빠지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집요할 때 그 소피스트는 설명하기를 망설인다. 히피아스와 프로디코스가 개입에 관해서, 프로타고라스는 소크라테스가 원하는 중재자 없는 대화를 받아들인다.
이 때에 프로타고라스는 시인들의 논평들로 나가기를 제안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 소피스트가 시모니데스의 몇몇 구절에 부여한 이해(l'interprétation)에 이의를 제기한다. 프로디코스의지지(보증)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의 해석(l'herméneutique)은 프로타고라스를 전혀 설득하지 못한다. 소크라테스는, 대화에서 자신의 질문에 만족할 만한 대답을 주지 못하는 이방인들의 모든 목소리를, 시인들의 목소리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사람들[아테네인들]이 부인한다고 한다. [전통에 대한 상반된 이해는 자라난 과정에서 문화상의 차이일 것인데, 자국민은 대부분 이방인의 해석을 거부할 것이다. 자국민의 문화란 무엇인가? 이데올로기에 주입된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자국민에게 거부 없는 해석이 주어졌던가? 소크라테스도 고발당할 때, 자국민이 믿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고발당한다. 벩송이 말한 대로 소씨의 해석(학)도 자국민이 이해할 수 없는 비전(秘傳)이었던가? 즉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여 아테네인들도 잘 이해하지 못한 도덕적 영웅인가? 아니면 시대의 난맥상의 희생자일까? 벩송은 전자에 방점을 둔다. 나로서는 아테네가 제국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시기였고 그에 따른 변화 속에 소크라테스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원전 478년 창설된 델로스 동맹의 해체: 기원전 431년 발발한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항복함으로써 델로스 동맹은 해산되었다, 소크라테스 나이 38살, 물론 플라톤이 이를 기준으로 이 작품을 쓴 것은 아닐 것이다.) (46UMJ)]
도덕적 특성들은 비슷한 것들인가 다른 것들인가? 용기를 구별해내는 프로타고라스에게 대답하는 소크라테스는, 용기란 위험한 과학(une science 학문)이며, 사람들은 선을 목표로 하지 않고서는 용기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더 멀리 있는(나중에 오는) 선(善 le bien)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고려할 수 없다면, 사람들은 직접적인 쾌락에 의해 설득된다는 것이다. 두 가지 잘못 사이에서, 인간은 그중에 가장 작은 것을 선택할 수 있을 때, 결코 가장 큰 잘못을 선택하지 않는다. [긴 안목에서는 차악의 선택도 잘한 것은 아니지만,] 따라서 우리는 척도의 기술을 다룰 줄 알아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 척도의 기술이란 그 시대에 선과 가까운 거리와 먼 거리를 계산하면서 우리가 선과 쾌락에 대해 각각의 정당한 가치들을 계산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만일 그 용기가 우리에게 고통을 겪게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고통이 선이라는 것을 안다는 경우이다. 따라서 용기는 어떤 지혜이다. 대화는 여기서 멈춘다. 이 계기에서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와 자신의 관점의 전도를 주목한다. 프로타고라는 탁월함은 가르쳐 질 수 있다고 하고, 그리고 그것은 지식(une science, 학문, 과학)이라는 것을 부정한다. 소크라테스는 또한 사람들이 그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나, 그러나, 그것에서 지식(과학)을 인정하기를 바란다. 따라서 사람들은 어느 날엔가 이 질문을 다시 할 것을 빠뜨리지 않을 것이다. [정의, 용기, 지혜 등이 지식(학문)이어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사에서 오래 묵혀서 알려지는 지혜의 것인지에 대한 논의라 보인다. 플라톤은 “국가론”(Politeia)에서 이 3가지를 개인에서 잘 볼 수 없다고 국가라는 큰 틀에서 보자고 한다. / 그런데 문제를 지혜, 용기, 정의가 사회 안에서 생성하는 것인지 개인의 성향에서 몸에 밴(선험적) 경험에서 나오는지에 대해 어느 것이냐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같은 성질들의 다른 방향(속성의 드러남)인 것 같이 보인다. / 긴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몸에 밴 것과 외부와 관련된 지식은 동일한 것일까? 나로서는 양면성이 언제나 분리의 측면을 지닐 것으로 보인다. 전자의 영혼과 후자의 정신은 상보관계이지만 우선권을 전자에 두는 쪽이 자연주의일 것이고 후자에는 주지주의가 있다. 51%가 자연주의일 때 삶은 부드럽고 즐거울 것 같다.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지식은 학문 그자체로서 흥미(수학, 천문학, 미시물리학, 미시 생물학 등)있을 수 있지만, 현실적 삶에는 영향이 적다. 그렇다고 긴 안목에서 학문이 무용한 것이 아니라 필수 불가결하다. 그 필수불가결이 몸과 더불어 이루지기를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종의 변화.. 호모파버의 종이 스스로 종말을 고하고 영혼의 안식을 찾는 호모사피엔스가 진솔하게 추구하는 방식을 찾을까? (46UMJ)]
(46UMJ)
# 등장인물들 ---
* 소크라테스(Socrate, Σωκράτης, 469-399; 70살)
*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Πρωταγόρας 기원전-490경-420경) 트라키아지방 아브데라(Abdère) 출신,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이다. 그의 아버지는 메안드리오스(Méandre ou Méandrios)이다. 그는 여러 번 아테네에 거주하기도 했는데, 페리클레스(Périclès)와 가깝게 지냈다. [참조: 30살가량 어린 원자론자 데모크리토스(Démocrite, gr. Dêmokritos, 기원전v. 460-v. 370)(90살?) 아브데라 출신이다.]
* 히포크라테스(Hippocrate)는 여기서 단순히 소크라테스의 친구이다. 이 사람은 의사 히포크라테스와 혼동하지 말라고 한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 Ἱπποκράτης, 460년경-370년경) 코스섬(l’île de Cos)에서 태어나 라리사(Larissa)에서 죽었다. 페리클레스 시대의 의사이다.]
* 칼리아스(Callias)는 아테네 부유한 귀족이다. 그는 426년에 베이티안(les Béotiens)과 전투에서 타나그라(la victoire de Tanagra)를 했다. 여기서 그의 역할은 다른 사람들이 말하게 용기를 북돋우며 요약하곤 한다. [다른 버전: 칼리아스(Callias, Καλλίας/Kallías)-(fils d'Hipponicos Ammon)는 기원전 5세기경 아테네 정치가이다. 그의 이름은 “칼리아스 평화”(la paix de Callias, 449)라는 이름 속에 있다. 이는 칼리아스2세라 부른다. 그는 아테네 운동선수이며 정치가인 칼리아스1세(Callias, fils de Phésippe)의 손자이다.]
* 히피아스(Ἱππίας, Hippias d'Élis, 기원전 465- 396 et 390) [귀중품 제작자(L'orfèvrerie)이다. 보석, 아마도 쇠종류와 값비싼 돌을 잘 다루는 사람일 것이다. 또한 기억술의 발명자라고 한다.] 히피아스는 엘리스라는 도시 출신의 유명한 소피스트이다. [엘리스(Élis)는 펠로포네소스 반도 서쪽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그는 전 그리스인들에게 알려져 있으며, 수학, 천문학 수사학 등의 많은 과학들을 잘 다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는 프로타고라스가 말하게 내버려 두면서 2차적 역할을 할 뿐이다.
* 프로디코스(Prodicos de Céos, Πρόδικος) 세오스섬 출신 소피스트. 동의어 학자들의 운동을 대표한다. 여기서 그는 간간히 등장하지만, 매우 가까운 단어들 사이에 미묘한 구별을 하는 그의 방식에 대해 플라톤에게 조롱할 기회를 준다.(46ULH) [프로디코스(Prodicos de Céos, Πρόδικος / Prodikos, 470 et 460 -mort après 399) 아테네 남쪽 에게 해에 있는 섬 케오스(Céos, (Κέως). 프레소크라틱 철학자. 언어와 문법 연구자.]
* 알키비아데스(Alcibiade, Ἀλκιβιάδης Κλεινίου Σκαμβωνίδης /Alkibiadês Kleiniou Scambônides) 아테네의 유명한 정치가 장군. 그는 이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를 방어하기 위해 여러 번 개입한다. 알키비아데스I(le Premier Alcibiade)에서처럼 그는 소크라테스를 항상 사랑한다고 한다. / 그(전 450- 404)는 클리니아스의 아들이다. 페리클레스의 양자이다. 페리클레스는 알키비아데스의 어머니와 (이종인지 고종인지 모르지만)사촌간이다.(46UMJ)
* 다른 인물들로는, 프로타고라스 주변에는 페리클레스의 두 아들(Paralos et Xanthippe), 카르미데스(Charmide), 크리티아스(Critias) 등이 등장하고, 히피아스 주변에는 Eryximaque, Phèdre de Myrrhinonte (voir Le Banquet) et Andron 등이, 프로디코스 주변에는 Pausanias, Agathon et Adimante 등이 등장한다고 한다. 그리고 음악의 거장 피토클리데스(Pythoclidès)도 암시 한다.(46UMJ)
# 역사적 인물들
* 헤시오도스(Hésiode, Ἡσίοδος/Hêsíodos, en lat. Hesiodus) 기원전 8세기 그리스 시인. 작품으로는 신통기(Théogonie), 노동의 나날들(Travaux et les Jours), 헤라클레스 방패(Le Bouclier d'Héraclès) 여성들의 목록(Catalogue des femmes)등이 있다.
* 시모니데스(Simonide, Σιμωνίδης/Simônídês, 기원전556-467) 세오스(Céos)에서 태어나 아그리젠트(Agrigente)에서 죽었다. 그리스 목가적 시인(lyrique grec)이다.
(46ULH)
# 대화 상에서 등장하는 신화 주인공들 - 슈미트(Joël Schmidt)의 사전참조
* 오르페우스(Orphée, gr. Orpheus)
트라키아 지방의 왕 외아그르(Oeagre)와 음악의 요정들(les Muses) 중의 하나인 칼리오프(Calliope)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오르페우스는 그리스에서 전설적 시인 중에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 ... 그는 이집트를 여행했으며, 오지리스(Osiris)의 비밀교에 입문하였고, 이에 영감을 받아서 엘류시스(Eleusis) 지방의 오르페우스 비밀교를 성립시켰다. 아르고 탐험대와 귀환한 후에, 그는 트라키아(현재 이스탄불 부근) 지방에 자리 잡고서, 거기서 요정 에우리디케(Eurydice, Eurudike)와 결혼하였다. ..(36TLF)
* 에피메테우스(Epiméthée, Epimetheus) Joël Schmidt,
에피메테우스는 쟈페(Japet)와 클리메네(Clyméné)의 아들이다. 거인족에 속하는 그는 그의 형인 프로메테우스의 전설과 연관된 공통적 전설의 주인공이다. 제우스와 한판 겨누기를 서슴치 않았던 프로메테우스는 에피메테우스에게 제우스가 주는 어떤 선물도 받지 말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피메테우스는 제우스의 선물인 판도라(Pandore)를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부인으로 삼았다. 그 상자 속에 든 모든 불행한 것들을 그의 부인이 열었다. 그 불행들은 인간 종족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게 했다.
참조: 에피메테우스와 판도라 사이에 딸, 퓌라(Pyrrha)가 있다. 그녀는 데우칼리온(Deucalion)과 결혼하였다. 데우칼리온은 테살리아의 세운 그리스 전설의 영웅이다. 이 부부는 프로메테우스의 예고 덕분에 큰 상자를 만들어, 제우스가 내린 비로 인한 대홍수에서 살아남았다. 이 대홍수 설화는 노아의 설화를 닮았다. (42NKJ)
* 프로메테우스 Prométhée gr. Prometheus
가계는 이러하다. 우라노스(Ouranos)와 가이아(Gaïa)의 아들인 자페(Japet)는 클리메네(Clyméné)와 결혼했다. 이들 사이에 프로메테우스, 에피메테우스(Epiméthée), 아틀라스(Atlas), 그리고 메노에티오스(Ménoétios)가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클리메네와 사이에 두칼리온(Deucalion)이 있고,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Pandore)사이에 피라(Pyrrha)가 있다. [가이아에서 우라누스가 생겨나고 우라누스와 가이아와 결합하여 여러 티탄(Titan)이 있듯이, 프로메테우스는 클리메네와 결합한 것이다. 그러나 서구에서 부모의 이름을 자식에게도 쓴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거인족(Titan)의 아들로서 거인이다. 제우스를 도와 올림푸스 신들이 승리하는데 프로메테우스가 기여했으나, 제우스는 항상 프로메테우스의 권능을 두려워했다.
예언자이며 발명가인 프로메테우스는 물을 섞은 찰흙 덩어리로 최초의 인간을 창조하였다. 그는 자기의 피조물(인간)이 모든 것에 결핍된 상태로 내버려두고 싶지가 않아서, 불똥을 태양의 바퀴로부터 훔쳐서 풀(회향풀 férule)줄기에 붙여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가 없는 사이에 지상에는 인구가 불어났고, 그는 그들에게 신의 불의 근원[불씨]를 주었다. 제우스의 절대 권능에 대한 훼손이기도하고 인간에 대한 쾌거이기도한 불의 전달에 만족하지 않고서, 그는 두 번째 일을 꾸몄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과 더불어 두 가지를 따로 준비하였다] 한편으로는 연한 고기와 내장을 짐승 껍질로 덮어놓고, 다른 한편에는 뼈를 동물의 지방으로 덮어놓고서, 그는 제우스에게 둘 중의 하나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제우스는 흰 지방으로 덮인 것에 매료되어 뼈만 포함되어 있는 부분을 선택했다.
나중에 놀림 당했다는 것을 안 제우스는 인간들과 프로메테우스에게 복수하고자 결심했다. 첫 번째로 그는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처녀 판도라(Pandore)를 내려 보내어, 그녀가 그 유명한 상자를 엶으로써, 지상에 모든 불행을 퍼뜨리게 하였다. 두 번째도 곧바로 헤파이스토스에게 서둘러서 시켰다. 그래서 프로메테우스는 코카사스(Caucase)산의 정상에 사슬로 묶였다. 그리고 매일 매일, 수세기 동안, 독수리가 와서 이 불행한 프로메테우스의 간, 즉 끊임없이 매일 다시 소생하는 간을 쪼게 했다. [생물학적으로 인체의 기관 중에서 소생력이 강한 것은 간이다.] [헤라클레스가 프로메테우스를 해방시키는 것은 과거의 흔적으로 옭매여 있는 상흔을 해방시키는 것으로 억압의 해방을 의미할 수 있다. 프로메테우스가 권력에 대한 항거를 넘어서 제우스와 화해는 또 다른 해결의 방식이며, 공가능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42NKH)]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굴복하지 않았다. 제우스가 테티스(Thétis)와 결혼하면 그 아들이 아버지를 물리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주신인 제우스에게 관용을 베풀 권리를 가졌다. [우라노스 세대를 우라노스의 아들인 크로노스가 전복하고, 크로노스 세대를 크로노스의 막내아들인 제우스가 전복하듯이, 제우스세대를 전복할 자는 테티스와 결합하게 되어 낳을 아들이라는 것을 프로메테우스는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옛 파일이 뜨다니, 6:05, 55N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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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벩송의 강의록(1903년 기억록)을 읽으면 영혼과 신체의 대응적 관점의 차이가, 고대 철학에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차이쯤된다. 그리고 철학사에서 알렉산드리아를 주목하지 않았지만, 벩송에 의하면 이런 사고 방식이 아프로디지에우스와 플로티노스의 사이에서도 보인다고 한다. 게다가, 스콜라 철학이 과거를 신에 맡기면서 성행했지만 프란체스코의 걸승의 계열은 딴지(같잖은 소리)를 건다. 중세에서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차이도 과거 스콜라철학의 대응관계와 프란체스코의 삶의 연관 만큼이나차이를 드러낸다. 이를 해소하는 실증과 실험이 등장했더라도 여전히 습관과 지배방식에 의해 존재(형이상학)이 논의가 우세하다. 벩송은 영혼은 저세상에서 또는 절대자에 의해 전달(회상)된 것이 아니라, 생명이 삶을 살아가면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만들어지는 과정이라 한다. 이런 이야기의 발단이 프로타고라스를 만나는 두 학구열에 뛰어난 도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와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20세기 초에 서로 만나지 않았지만 프로이트와 벩송도 고대의 쟁점만큼이나 유사한 관계에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현존에서 환자를 치료해야 하고, 벩송은 환자의 등장(징후)의 양태가 시대마다 다르게 보이더라고 시대가 억압(심하게는 죽음을 주는 위협)과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제반 위험을 맞서는 생명을 말한다. 프로이트와 벩송은 플라톤과 아리스토레레스이래도 양자의 분열에 대해 고심였고, 아프로디지에우스와 플로티노스,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프로이트와 벩송 사이에서 차히화를 불쑥 불쑥 드러내는 과정이었다. (55NMF) // (6:25, 55NM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