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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땅 정탐 활동(21-24)
같은 것을 보고도 사람에 따라 정반대의 결론을 내립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하여 언약을 따라 나아가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눈에 보이는 것들에 근거합니다. ‘안될 것’이라 결론을 내리고, 두려움과 자기 비하에 빠집니다.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시선과 태도가 문제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보며 믿음으로 실천해 나갑니다.
21이에 그들이 올라가서 땅을 정탐하되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에 이르렀고 22또 네겝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 소안보다 칠 년 전에 세운 곳이라 그 곳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더라 23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따니라 24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포도를 베었으므로 그 곳을 에스골 골짜기라 불렀더라(21-24)
정탐꾼들이 신 광야 가데스 바네아에서 출발하여 하만 어귀 르흡에 이르기까지 40일 동안 이스라엘 전역을 다니면서 정탐 활동합니다. 출발 지점인 가데스 바네아를 가리켜 바란 광야에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본문처럼 신 광야에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마 가데스 바네아는 신 광야와 바란 광야가 겹치는 지점에 있었을 것입니다. 바란 광야의 가데스 지역은 정탐꾼들이 거점으로 삼아 가나안에 진입했던 곳이며, 그것과 어울리게 다른 곳에서는 가나안 땅의 남쪽 경계선으로 묘사됩니다(민 34:3-4; 수 15:1-3). 정탐꾼들은 신 광야 곧 가나안 남쪽 경계선에서 출발하여 멀리 가나안 북쪽 끝단 성인 “하맛” 근처의 “르홉”에 이르기까지 그 땅을 두루 살폈습니다(21). 이곳은 가나안 땅의 북쪽 경계에 해당하고(민 34:8), 실제 다윗과 솔로몬,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는 이스라엘의 경계 도시입니다. 르보하맛(하맛 어귀)이 다메섹 북쪽 76km 지점까지 올라가는 길에 있기 때문에, 정탐꾼들이 실제 여행한 거리는 대략 350km를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가나안 땅의 크기가 경상도 정도밖에 되지 않기에 40일 동안 정탐 활동을 했다는 말은 비교적 세세하게 가나안 땅 전체를 정탐하고 다녔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내려오는 길에 네겝 지역을 둘러보고, 그곳에서 헤브론을 방문합니다.
본문은 재미있는 정보를 제공하는데, 헤브론이 애굽의 소안보다 7년 전에 세운 곳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소안(아마도 타니스)이 세워진 때를 대략 주전 1730년경으로 봅니다. 정확한 연대보다 이렇게 소안을 언급을하는 것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친숙했을 것입니다. 헤브론은 대단히 오래되었고, 이스라엘 족장들의 삶에서 거룩한 장소로 중요하게 언급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헤브론에 대한 또 다른 정보는 그곳에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소개되는데, 이 이름은 아마도아낙 자손 지도자의 직책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후일 여호수아가 정복 전쟁을 할 때, 유다 지파는 헤브론을 쳐서 이들 세 사람과 그 족속을 물리치게 될 것입니다(수 15:14). 아낙 자손이라는 말도 단순한 혈통적 관계를 강조하는 표현이 아니라, 아낙 즉 목 장식물을 하고 다니는 일종의 용병 집단임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이것이 아낙 자손들이 헤브론만 아니라, 다른 지역 인드빌, 가사, 아스돗 등에서도 나타나는 이유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탐꾼들은 에스골 골짜기에서 채취한 포도송이와 다른 과일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에스골이라는 말 자체가 포도송이를 뜻합니다. “골짜기”의 히브리어 단어는 ‘강’을 뜻하기 때문에 여기 골짜기는 평소에는 마른 땅으로 있다가 우기가 되면 강으로 변하는 계절천 와디(wadi)를 뜻할 것입니다. 포도송이의 골짜기에서 실한 포도가 달린 포도나무 가지를 메고, 석류와 무화과를 함께 가지고 온 것입니다.
정탐꾼들의 보고(25-33)
살다 보면 큰 장벽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성도는 얼마든지 그 장벽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문제 앞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깐 “이길 수 있다!”라고 신앙하면 이길 수 있지만, 스스로만 바라보며 “이길 수 없다!”고 하면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에 인도하심을 받아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최대한 절제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말은 문제를 얽히게 하고 병을 들게 하지만, 긍정적인 언어는 문제를 해결하고 병을 낫게 합니다.
25사십 일 동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26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27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28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30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1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25-33)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의 정탐꾼은 똑같은 땅을 탐지하고 보았습니다. 그중에 10명은 가나안 땅 정복이 불가능하다고 절망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반면에 똑같은 현실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라고 말했습니다.
(1) 긍정적인 측면 (25-29)
가나안 전역을 40일 동안 탐지한 지휘관들은 과일을 어깨에 메고 와서 모세와 백성들 앞에서 정탐 결과를 보고합니다. 26절에서는 가데스 바네아가 바란 광야에 속했다고 설명합니다. 모세가 정탐꾼들을 보낼 때, “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를 탐지하라고 했기때문에, 정탐꾼들은 그 땅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모두 보고합니다. 그들이 먼저 보고한 것은 가나안 땅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입니다. 그들은 가장 먼저 그 땅이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사실을 보고합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함도 느껴집니다.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을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이라고 묘사합니다. 그들이 모세의 명에 따라간 것이 맞지만, 그 땅은 하나님께서 주겠노라 약속하신 땅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땅이고, 하나님이 가라고 명령하신 땅이었습니다. 그들의 보고에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의 결핍이 느껴집니다. 그 땅은 실제로 ‘젖과 꿀이 흐르는땅’입니다(27). 젖(할라브)과 꿀(데바쉬)에서 꿀은 과일 꿀입니다. 일종의 과일 시럽이라 할 수 있는 과일 꿀은 주로 대추나무 열매(dates)로, 때로는 포도로 만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성경들이 이 둘을 모두 ‘꿀’로 번역해 구분이 안 되지만 문맥에서 구별이 가능입니다.
풍부한 젖은 가축들이 잘 자란다는 뜻이고 풍부한 꿀은 과일 농사가 잘된다는 의미입니다.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목축과 농사가 잘되는 땅을 말합니다. 그들은 그 증거로 자신들이 가져온 커다란 포도송이와 무화과와 석류를 보여주었습니다. 정탐꾼들의 두 번째 보고는 ‘그러나’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28). 앞의 내용을 상쇄할 만큼 부정적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 땅이 비록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할지라도, 그 땅은 요새와 같이 견고했고 그 땅을 지키는 이들은 거인 종족이었습니다. 아낙 자손들이 땅을 차지하고 지키고 있다면 자신들의 힘으로는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 땅은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다양한 지역을 차지하고 생업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이미 정착한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내는 것은 매우 힘든 과업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정탐꾼들은 그 땅이 비록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만, 군사적 상황이나 인종적 신체 조건 등을 고려할 때,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이 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2) 부정적인 측면(30-33)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언급으로 인해 백성들 사이에 상당한 동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보다 못한 갈렙이 일어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외칩니다. 우선 웅성거리는 백성들의 동요를 진정시키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미완료형 동사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갈렙이 백성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노력을 얼마간 지속한 것으로 보입니다. 갈렙은 모세와 백성들 앞에 서서 짧지만 매우 단호하게 ‘우리가 반드시 올라가서 하나님이 주신 땅을 상속받자’라고 호소합니다. 갈렙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악명은 그치지 않습니다. 이제 열 명의 정탐꾼은 작정하고 그 땅을 폄훼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모욕합니다. 장대한 아낙 자손들 앞에 서면 이스라엘 백성은 메뚜기처럼 무기력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고 외칩니다.
땅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에서 사실 갈렙과 열 정탐꾼 사이에 아무런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갈렙, 여호수아와 열 정탐꾼 사이에는 중요한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현실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믿음의 눈을 가졌느냐의 여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상속받는 길은 현실의 어려움에 경도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붙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 그리스도인들 역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미래를 믿음으로 내다보면서 두려움 없이 도전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11은 광야 생활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이 현재 우리에게도 중요한 본보기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경고받고 깨우치도록, 광야 이스라엘 백성의 삶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우리 믿음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입니다(딤후 1:7).
우리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바라보고 신음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자기 스스로 메뚜기라고 결론 짓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시길 바랍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을 바라보고 담대함으로 마음을 채우시길 바랍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그 강한 손으로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도와주시고,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운 마음을 주지 아니하시고 담대한 마음을 주시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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