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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오후
김혜완
여자가 눈을 떴을 때는 실내는 반 어둠의 상태에 잠겨 있었다. 여자는 눈이 침침한지 몇 번 깜박거리다간 손으로 비벼본다. 불을 켜야지,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여자는 굼뜬 동작으로 몸을 일으킨다.
낮잠을 자고 난 후엔 온몸이 곤비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까지 빠질 듯이 아팠다. 그래서 되도록 낮잠에 빠져들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요즘 들어선 의식을 잃는 것처럼 오수에 빠져들곤 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지독한 피로가 여자를 짓누르고 있었다.
어둠이 눈에 익어서인지 그 상태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여자는 엉거주춤 소파에 주저앉는다. 저녁을 해야지, 생각하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누굴 위해서 저녁을 짓나 싶은 마음이 앞선 탓이다. 그래도 종일 굶은 위에선 밥을 넣어달라고 아우성이다.
한 술 뜨고 가게에 나가봐야지 생각이 든 건 전화벨소리가 울린 후였다. 사실은 전화벨소리를 들으면서 겨우 혼몽 상태에서 벗어난 것 같다. 여자는 물끄러미 전화기를 바라본다. 전화기는 혼자서 발광을 하며 울려댄다. 여자는 끝내 수화기를 집어 들지 않은 채 주방으로 향한다. 싱크대 위는 여자가 낮에 정리하다 만 수저며 그릇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어제는 여자의 생일이었다. 딸아이는 음식을 장만해왔고 아들 녀석들은 꽃을 사온다 케이크를 사온다 법석을 떨었다. 오랜만에 보는 딸아이의 얼굴이 수척했다. 뭔가 걱정거리가 있는 것 같았지만 딸아이는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딸아이의 침묵을 여자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지켜볼 뿐이다. 제 스스로 정리가 되어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게다가 눈물은 어찌나 많았던지, 일이 있으면 눈물부터 쏟았다. 말을 하면 시원스럽게 넘어갈 일도 터지는 울음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혼내기도 많이 했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는 제 가슴속에만 말의 성을 쌓을 뿐, 누구에게도 그 성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다른 방법으로 그 아일 대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그러나 여자는 알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에게 할 수 있는 감정 표현이라곤 손톱만큼도 하지 않는, 도무지 자신이 낳은 자식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그 아이를 어떻게 보듬어줘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런 아이에게 깊이 자리 잡은 수심을 보았기 때문인지 생일상을 받는 기분이 씁쓸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요즘 들어 몸을 이길 수 없을 정도로 피로가 겹친 탓인지 마음까지도 허랑하기만 했다.
이제 얼마나 남았나 싶었고, 이만큼 살았으면 다 살았나 싶은 게 스산하게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여기까지 온 것이 대견스러울 정도로 삶은 한 모퉁이를 돌아 나올 때마다 한숨이었고 눈물이었다. 그러나 어찌됐든 이만하면 다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살고 있는 집 외에도 자식들 몫으로 집도 두 채 마련했다. 평생을 민달팽이처럼 굴려온 자식들에게 그만하면 어미로써 충분히 할 일은 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굳이 힘을 보태주지 않아도 그럭저럭 지들 앞가림은 하고 사니 그것으로 된 게 아닌가. 그런데 이 무거운 마음은 뭘까. 이토록 기운이 빠지고 황망한 기분이 되는 연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아침나절 나른한 잠속에서 헤매고 있는 여자를 깨워낸 한 통의 전화. 결국은 그것 때문인가.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끊어내지 못한 인연이라니… 젊어 한때는 도장 찍고 돌아서면 남남인 줄 알았지만 사람살이라는 게 그렇게 단칼에 잘라버린 무처럼 한 번에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히 깨닫게 된다.
이혼으로 서로에게 돌아선 지 이십여 년.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오로지 아이들에게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관성이거나 놓여나지도 못하고 버릴 수도 없었던 그 생에 대한 집착. 혹은 목숨에 대해 치러야 할 죄값 같은 것. 그런 것들이 여자의 삶을 끌고 온 것은 아닐까 싶었다.
결국은 그런 힘조차도 애들 아버지에게 시달리며 살아온 한세월에서 나온 것이었다. 어찌됐든 부대끼며 살아온 세월이 이십 년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남편으로서, 애들 아버지로서 알뜰히 챙기거나 보살펴 준 적 없었지만 그가 키워준 악의 힘도 결국은 힘이 아닌가 말이다. 그것이 결국 이 질척거리는 세상을 버틸 수 있게 한 힘이었던가. 하지만 여자가 한 번씩 넘어질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쪽박까지 깨려했던 그 인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넌더리가 난다.
그래도 어쨌거나 자식들에게 알려야 할 것인가. 애들도 진절머리를 낼 것이다. 명색이 아버지라지만 남처럼 살아온 게 사실이다.
같이 살 때에도 자식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넨 적 없었고, 자상한 눈길 한번 줘본 적 없었다. 여자는 그런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자신한테 애정이 없다 한들 그래도 아버지인데 어쩌면 그렇게 무관심 할 수가 있는 것인지. 자식들은 그런 위인에게 가장 적합한 보복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말이야 때 되면 안부 전화도 하고 용돈도 부쳐 주라고 하지만 자식들은 그저 고개만 주억거릴 뿐이었다. 하기사 염치를 아는 인간이라면 접시 물에 코를 박고 죽을지언정 자식들은 찾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도 굳이 애들 고모를 통해 연락을 해온 저의는 도대체 무엇일까.
여자는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걸로 자꾸만 떠오르는 상념들을 쫓아낸다. 싱크대 위 찬장을 열고 그릇들을 하나씩 집어넣으며 보니 크기가 다른 접시들이 위태롭게 쌓여 있다. 언제 한번 정리해야지 했는데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여자는 이왕 본 김에 정리할 요량으로 접시를 한꺼번에 들어올린다. 그런데 맨 위에 위태롭게 쌓여 있던 유리그릇 한 개가 기우뚱거리더니 툭 떨어진다. 발을 빼려 했지만 들고 있던 접시 때문에 그마저 쉽지 않다.
유리그릇은 순식간에 여자의 발등을 찍고 바닥으로 구른다. 발등이 깨질 듯 아프다. 온몸의 기운이 쫙 빠지는 것 같다. 여자의 팔이 기울어지면서 들고 있던 접시들이 와장창 쏟아져 내린다. 그 광경을 침침한 눈으로 쳐다보며 여자는 그래, 그만큼 썼으면 바꿀 때도 되었다 하고 중얼거린다.
깨진 그릇들을 쓸어 담고 바닥을 닦고 있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전화를 받을 생각도 없지만 시간도 없는 게 사실이다.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는 사람은 없지만 가게 문을 열어놓고 간판 불을 켜놓아야 마음이 놓일 것 같다.
개업한 후 몇 년 동안은 새파랗게 어린 여자애들을 세 명씩이나 데리고 장사를 했던 때도 있었다. 근래 들어선 주변에 최신식 시설을 갖춘 노래방이 한두 개씩 늘어나면서 지금은 오래된 단골들만 드문드문 얼굴을 내밀 뿐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은 때는 개시도 못하고 문을 닫는 날도 많다. 먹고 살 일이 다급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몸 놀릴 수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놓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아 속이 부글거린다.
여자는 방으로 들어가 파운데이션을 찍어 바른다. 피곤한 탓인지 화장이 자꾸 들뜬다. 거울 속으로 보이는 눈꼬리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주름 제거 수술로 눈가를 편 게 칠 년 전쯤일 것이다. 그때만 해도 젊었다는 생각이 든다. 증권사를 전전하면서도 뷰티샵에도 다니고 헬스도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증시가 호시절일 때의 이야기다.
여자는 화장을 마치고 옷을 입는다. 집을 나서기 전에는 집안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평수는 사십 평이지만 공유면적이 많이 빠지지 않는 빌라여서 그런지 훨씬 넓어 보인다. 딸아이는 집이 넓어 청소하기가 힘들지 않느냐고 하지만 어지르는 사람이 없으니 매일 같이 쓸고 닦고 할 일도 없다. 혼자서 살기에 넓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래방을 시작한 후 지하 생활을 오래 한 탓에 좁고 어두운 집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싫었다.
젊은 시절 광주에서 살 때는 무슨 장사를 해도 손님이 들끓어서 돈은 벌만큼 벌었다. 그것을 잘 건사만 했다면 지금쯤은 집이 아니라 빌딩이라도 두어 채 샀을 터이다. 그런데 사람을 너무 믿었던 것이 실수였다. 보이지 않는 신용 따위를 믿지 않고 수중에 확실히 품고 있었더라면 그 정도로 나락을 구르며 살진 않았으리라.
아니,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여자의 생각대로 광주에서의 생활을 조금만 일찍 정리했더라도 나았을 것이다. 애들 교육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자는 여자의 의견을 애들 아버지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누구도 그 고집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그러다 80년 5월을 맞았고 이후 광주 지역 경제는 쑥대밭이 되었다. 부도와 도산이 이어졌고 당사자들은 도피 아니면 감옥 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한 수순을 밟아 여자도 밤기차를 타야 했다.
아이들은 챙길 틈도 없었다. 오로지 딸아이에 대한 믿음만 있었다. 그래. 어떻게든 견디고 있거라. 방 한 칸이라도 마련하면 데리러 오마. 그 방 한 칸 마련에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때까지의 운이 여자에게 주어진 전부였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울 살이는 혹독했다. 더구나 서울에 올라온 지 삼 개월 만에 급성 신장염에 걸려서 반년이나 동생 신세를 져야 했다.
갑자기 여자의 걸음이 축 늘어진다. 걸을수록 발등이 욱신거리는 정도가 심해지는 데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에 대한 반작용 같다. 그게 다 애들 고모의 전화 때문이다. 이제 와서 어쩌란 말인가. 젊은 시절 속 썩이던 남편을 늘그막에 받아들이는 이야기는 명절 특집극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다. 황혼이혼이 유행처럼 번지는 세상 아닌가. 사람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지. 날 겪어보지 않아서 모를 것인가. 잡아먹을 것처럼 으르렁거리던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귀찮아지니 내게 떠넘기려는 속셈이지. 어림없는 소리, 그 뻔한 계산속을 내가 모를까.
빌라 단지 옆에 있는 주공아파트 사이길을 넘어 쪽문을 나오니 저만치 상가가 보인다. 건물 외벽을 뒤덮고 있는 간판들의 네온이 유난히 번쩍거린다. 여자의 노래방 간판만 네온이 꺼져 있다. 공연히 마음이 바빠진다. 마음 같아선 내처 달려가고 싶지만 여자 앞에는 사차선 도로가 가로막고 있다.
횡단보도 앞 신호등에는 빨간 불이 켜져 있다. 여자는 횡단보도 앞에서 초조한 눈빛으로 신호등을 쳐다본다. 주공 아파트 앞 횡단보도는 다른 곳에 비해 지루할 정도로 신호가 길다. 신호등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여자가 고개를 돌린다. 횡단보도 옆에 전을 벌여놨던 상인이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하나같이 팔릴까 싶은 것들이다. 우산꼭지, 냄비 손잡이, 등긁개, 파리채, 이쑤시개, 면봉… 물건들을 하나씩 내려다보고 있으니 사는 게 별게 아니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사소하게 별거 아닌 것처럼 살 수 있다면 애들 아버지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여자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떨쳐 내려는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벼락을 맞아 죽을지언정 이제 와서 애들 아버지와 살고 싶지는 않다. 여자가 용납할 수 있는 건 애들 결혼식 정도다. 외로움이 사무쳐 뼛속까지 시린 나이가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용서하지 못할 것이 있다니. 새삼 모골이 송연해진다.
횡단보도 주위로 행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슬글슬금 길을 건너는 사람도 있다. 신호가 바뀐다.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 나간다. 인파에 떠밀려 여자도 길을 건넌다. 중간쯤 건넜을까, 갑자기 눈앞이 핑 돈다. 진땀이 치솟고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간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 할 모양이다. 내 몸은 내가 건사해야지. 아들 녀석 혼사를 앞두고 있는 마당에 여자가 아프면 딸아이에게 이중의 부담을 주는 게 된다.
여자가 안산에 내려온 후 딸아이는 몇 년째 제 동생들을 거두고 있다. 그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 아이가 어렸을 때도 그랬고 서울로 데려온 이후에도 그랬다. 여자는 항상 장사에 매달려야 했고 아이들 뒤치닥거리는 딸아이가 해왔다.
그래서 늘 딸아이가 안쓰럽기만 하다. 그런데도 눈앞에 두면 번번이 할 말을 잃는다. 그 애가 자기 뜻만 앞세우고 제멋대로 구는 아이였다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재수 끝에 어렵게 합격한 대학조차도 동생들 때문에 포기한 아이가 아니었던가.
그때는 그렇게 목구멍에 풀칠하기만도 아등바등할 때였다. 거기에 막내가 중3, 둘째 애가 고2, 게다가 딸아이까지 대학입학을 앞두고 있던 때였으니. 애들 학비에 대한 부담 때문에 무릎이 꺾이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딸아이를 아버지에게 보냈다. 입학금만 책임져 달라고, 그 후엔 어떻게든 해보겠노라고. 딸아이는 눈이 퉁퉁 부은 채 집으로 왔다. 그리고는 다시는 아버질 보지 않겠노라고 딱 한마디 했다.
전셋집이라도 살고 있었다면 그것이라도 빼냈겠지만 월셋방을 전전할 때였고, 식당을 내느라 동생들 돈은 물론 일수까지 끌어다 쓴 상태라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딸아이는 입학을 포기한 후 한동안 말을 잃었다. 사실은 한동안 그것조차도 여자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자식이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사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까마득히 모른 채 무작정 방임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는 주춤거리며 신호등을 건너 상가 건물로 들어선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재건축 이야기가 돌고 있는 터라 처분하지도 못한 채 붙들고 있는 게 벌써 칠 년째다. 십여 년 전 부동산에 손대기 시작한 후 맡았던 가게였는데 애초에는 인테리어를 다시 해서 권리금을 붙여서 팔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손님이 많았고 벌이도 좋았다. 욕심이 생겼다. 식당을 할 때보다 훨씬 편하기도 했다. 그때 처분하지 못했던 게 지금도 후회스럽다.
여자가 한걸음 내려설 때마다 나무 계단이 삐걱거린다. 갇혀있던 공기들이 여자의 콧속을 찌르고 들어온다. 오래된 목조 건물이 썩어 들어가는 냄새 같기도 하고 시궁창 물이 역류해 들어오는 냄새 같기도 하다. 두 가지 냄새가 합쳐지기도 하고 길항(拮抗)을 일으키기도 해서 형언하기 어려운 독특한 냄새를 풍긴다. 방향제를 들이붓다시피 해도 소용이 없다.
가게가 망가지기 시작한 건 삼 년 전 장마 때 침수된 뒤부터이다. 한번 물길이 생긴 후론 어느 틈에선지 계속 물이 새어 들어왔다. 주방 앞쪽에서도 화장실쪽에서도 처음엔 바가지를 들고 퍼내다 감당이 안돼서 펌프를 달아야 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손님이 들지 않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그나마 비워둘 수가 없으므로 문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는 카운터로 들어가 전기차단기를 올리고 조명을 켠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탓인지 숨이 막힐 정도로 냄새가 역하게 느껴진다. 여자는 열 개나 되는 방마다 문을 열어 방향제를 뿌려댄다. 순식간에 방향제 한 통이 동이 난다. 어차피 소용없는 짓이라는 걸 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여자의 코도 마비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여자는 카운터로 돌아와 장의자에 주저앉는다.
그때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내려오는 모양이다. 여자는 무춤하게 계단을 올려다본다. 검정색 슬리퍼가 보이고 쥐색 바지가 보인다. 검정색 등산조끼를 입은 걸로 보아 노래방 옆에 있는 슈퍼 남자다. 남자의 손에는 음료수 박스가 들려있다. 남자는 누런 이빨을 환히 드러내며 계단을 내려온다. 여자가 나오길 기다렸던 모양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인사라도 건넸겠지만 오늘은 왠지 말 건네기가 싫다. 여자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카운터 옆에 있는 냉장고를 쳐다본다. 남자는 냉장고 앞으로 간다. 박스의 비닐을 찢고 음료수를 차곡차곡 쌓는 남자를 무심히 바라본다. 그러다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손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음료수 값을 챙겨놓는다. 며칠 동안 손님이 들지 않았으니 음료수는 그대로 있을 것이다. 여자가 마신 몇 개만 제외하면.
남자는 여자가 내민 돈을 받아들고 계단을 올라간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길게 메아리친다. 여자는 계단을 올려다보고 있다가 한기가 느껴져 온풍기를 켠다.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서서히 무릎이 따뜻해진다. 장의자에 쿠션을 베고 누우니 스르르 눈이 감긴다.
나른하다. 온몸이 풀어져 내리는 것 같다. 잠이 들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눈꺼풀을 이길 수가 없다. 전화벨소리가 들려온다. 요란스럽게 울리는 전화벨소리조차도 아득하게 느껴진다. 몸을 일으켜 전화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뿐이다. 전화벨소리가 끊기고 사위가 조용해진다. 마치 관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다. 하긴 이 상태라면 누군가 죽어가도 모를 것이다. 그 고요 사이로 희미하게 모터소리가 들려온다. 반가움도 잠시 귀찮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주방 싱크대 모터를 켜놓았던가. 어젯밤에 집에 들어가면서 확인을 안했지 싶다. 텅 빈 공간을 울리는 모터소리가 이물스럽게 느껴진다. 모터를 꺼버리고 싶지만 도무지 의욕이 없다. 이 정도로 힘들 줄 알았다면 그냥 집에 있을 걸 그랬다는 후회가 슬그머니 머리를 든다. 어차피 오늘도 손님이 들기는 틀린 것 같다.
나이 들어 갈수록 하루하루가 긴 기다림으로만 채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젊어 한 때는 애들 아버지의 마음이 자신에게로 돌아오기를, 그것이 하릴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은 후에는 아이들이 커가기를, 아이들이 커가면서는 재산이 쌓여가기를, 그도저도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안 다음에는 그저 시간이 지나가버리기를 기다리며, 기다리며 살아오지 않았었던가 싶은 것이다. 이런 모든 기다림이 끝난 후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면 할수록 사는 게 검불처럼 하찮아지는 것이다. 차라리 그처럼 가벼워지기라도 한다면 술렁술렁 넘어가기라도 하련만 그렇지도 못하니 어떻게 사는 게 제대로 산다고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희미하게 목조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는 속도가 어지간히 빠르고 신경질적이다. 여자는 가까스로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킨다.
도대체 왜 전화를 안 받는 건데? 하루 종일 몇 번이나 걸었는 줄 알아? 엄마까지 왜 이래? 정말이지 피곤해 죽겠어!
앙칼진 목소리다. 누굴까?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딸아이의 얼굴이 보인다. 그 아이가 내뱉은 소리 같지는 않다. 항상 낮은 소리로 조근조근 말하는 아이가 아닌가. 하지만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걸로 보아 딸아이가 내지른 소리 같기도 하다. 아이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 아이가 화를 내고 있다면 보통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도무지 화를 낼 줄 모르는 아이가 아닌가. 아이는 무엇 때문에 저렇게 화가 난 걸까. 무슨 말이건 하고 싶지만 선뜻 나오지 않는다. 꿈인듯 싶지만 소리의 결이 너무나 선명하다.
갑자기 딸아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그것도 아주 서럽게. 울음소리가 점점 커진다. 귓속을 자극하던 모터소리가 뒤로 물러선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딸아이가 이렇게 우는 걸 본 적이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자는 기다리기로 한다.
한참이 지나서야 딸아이의 울음이 사그라진다. 뜻밖에 딸아이의 눈빛에는 강한 원망이 담겨 있다.
엄마, 나 이서방하고 끝낼 거야.
딸아이의 목소리가 귓속에서 낱낱이 분절된다. 끄-으-ㅌ-내-ㅆ- 도대체 이 아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저 아이가 갑자기 무엇을 끝내겠다는 말인지 여자는 대숲에 갇힌 것 마냥 당혹스럽기만 하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 며칠 전에 이서방한테 필요하다는 돈은 엄마가 마련해 줬잖냐? 그사이 또 뭔 일이 있었던 거여? 도대체 왜?
딸아이가 어이없다는 듯 여자를 쳐다본다. 엄마가 진짜 내 엄마 맞아?
삼십이 훨씬 넘은 딸아이가 하는 질문이 너무 뜻밖이라 여자는 그만 어안이 벙벙해진다. 그러나 딸아이는 해야 할 말을 했다는 듯 당당하다.
내가 누구야? 내가 뭔데? 난 엄마 딸이잖아… 그런데 엄마가 나에 대해 아는 게 뭐가 있어? 내게 무슨 고민이 있는지,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려고 해 본 적도 없잖아. 동생들은 동생들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아버진 아버지대로, 누구 한 사람 날 생각해 준 사람이 있냐고? 이서방? 다 똑같아. 하나같이 똑같은 사람들이야. 가족이 뭔대? 도대체 가족이 뭐하는 사람들이냐고? 아버지라는 사람은 엄마한테, 엄마는 자식인 나한테, 탁구공 튕겨내듯이 서로를 튕겨내는 게 가족이냐고? 누가 지쳐 떨어지건 말건 나만 상관없이 살면 그걸로 되는 거야? 도대체 난 모르겠어. 이제와선 시어머니까지 내 목덜미를 움켜쥐려고 드니 내가 살 수가 없어. 정말이지 진절머리가 나. 이제 와선 시동생에, 시누이까지 떠맡고 살아야 하느냐고. 이서방 말이 가관이대? 아이도 없는데 그거라도 해야 명분이 서지 않겠냐고. 명분은 무슨 명분. 그딴 명분 필요 없다 그랬어. 그랬더니 동생들 얘기를 걸고 넘어가대. 그래서 내가 끝내자고 했어. 됐어?
딸아이의 악에 받친 표정을 보고 있으니 뒷골이 당겨온다. 거기까지 퍼부어대던 딸아이가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렇게 한 번씩 숨을 몰아쉴 때마다 딸아이의 눈에선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감정이 격해져서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인 탓인지 목소리도 갈라져 있다. 목소리를 가다듬기 위해 헛기침을 한참이나 해댄 딸아이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다.
내 한 몸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식을 위해선 못할 게 무엇이 있으랴.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었다. 그것으로나마 보상하고 싶었다. 거기에 자신의 마음도 실려 있는 거라고. 그런데 그건 여자만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단지 여자 혼자만의 위안이었던 것이다.
엄마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 참고 살라고, 그래도 견뎌 내라고 하고 싶지? 나 그거 안 해. 착하게 살면 좋은 끝은 있다고? 그 말도 믿지 않아. 이제부터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거야. 엄마가 말려도 소용없어. 그래도 엄마는 우리들이라도 있어서 견디고 살았겠지만 내겐 그나마 명분도 없어.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견디고 싶지 않아. 여태까지 참아온 것만으로도 너무 힘이 들어. 지금껏 엄마를 대신해 무거운 짐을 져야 했고, 동생들을 지켜봐야 했어. 나는 정말이지 그 짐이 너무너무 무거워서 어깨가 바스라질 것 같은데도 엄마는 모른 척 했어. 그래서 결혼이라도 하면 그 짐에서 벗어날 줄 알았는데 그렇게도 안 되고… 말해봐. 언제 한번 날 향해 마음에서 우러난 말을 건네 본 적이 있었어? 언제 한번 날 따뜻하게 품어준 적 있었어? 뭐 옛날 얘기는 할 필요도 없어. 지금만 해도 그래. 친정엄마라면서 내가 울면 왜 우느냐 물어야 하고 힘들어 보이면 뭐가 힘드냐? 엄마가 도와줄 일이 없냐? 물어보고 다독거려야 하는 거 아냐? 엄마가 해결해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 그래도… 엄마는 너무 몰라. 그래도… 내가 얼마나 힘들고 괴롭게 이 결혼 생활을 지켜내고 있는지. 언제 엄마가 한 번이라도……
딸아이는 그만 입을 닫고 만다. 아이가 하다 만 한마디가 귓속을 후벼 판다. 여자는 할 말을 잃은 채 딸아이를 보고 있을 뿐이다. 이 아이가 왜 이러나, 이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여자가, 아니 이혼녀라는 꼬리표를 단 여자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어떻게 가르쳐 줘야 하나. 그것은 정말로 여자 혼자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하지만 도무지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든 이혼만은 막아야 할 텐데. 여자는 고개를 깊숙이 수그린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하나…
여자가 언제 딸아이 앞에서 이렇게 심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던가. 뿐만 아니라 그 누구 앞에서도 주눅 들거나 움츠려본 적이 없다. 강해 보여야 누구도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여자의 강한 면을 애들 아버지는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여자를 눌러보려고 그렇게 패악을 부리고 주먹을 휘둘렀던 것 같기도 하다. 힘이 힘을 부르는 그런 결과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딸아이에게는 좀 더 부드러웠어야 했을까. 결국은 자신의 삶이 너무나 신산스러웠던 까닭이다. 어렸을 때 생모를 잃고 원치 않은 결혼으로 집을 떠나온 뒤 여자에게 삶은 거친 파도 위를 표류하는 조각배 같은 것이었다. 어디에도 닻을 내려놓을 곳이 없었다. 유약한 시어머니에게도 강퍅한 남편에게도. 그러다 딸아이를 낳았고 여자는 밤마다 싸던 보따리의 양이 두 배로 늘어난 것에 경악했다. 여리고 예민한 딸아이는 정확히 그것을 간파했는지 잠시도 여자 곁에서 벗어나려 하질 않았다. 그 모습에서 여자는 어린 시절 생모를 잃고 허허롭기만 했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그때부터 딸아이를 양육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딸아이 팔자는 어미를 닮는다는데 조금이라도 강하게 키워놔야 어디서든 당당하게 한몫을 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래서 딸아이에게 그토록 매몰차게 굴었다.
딸아이는 고개를 외로 꼰 채 여자를 외면하고 있다. 화장을 하나도 안한 딸아이의 눈 밑 다크 서클이 도드라져 보인다. 딸아이가 다시 입을 열어 무슨 말이라도 해줬으면 싶다. 속이 터질 것 같다.
이년아아, 말을 해. 달팽이 뚜껑 덮는 것마냥 입 다물고 있지 말고.
그러나 말들은 입안에서만 맴돌 뿐이다.
우리 모녀는 왜, 이렇게 조금도 사소해지지 못했을까. 그저 편하게 이런저런 말들을 속닥거려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여자의 속을 훑는다.
저렇게 벽을 쌓아버린 게 언제부터였을까. 아이들을 두고 광주를 떠난 후였을까. 분명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아이들을 데려온 건 이 년이 지난 다음이었다. 여자가 광주를 떠난 후 악에 바친 애들 아버지는 애들을 외가에 데려다 줘버렸고 아이들은 새외할머니 밑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이 년을 살았다. 애들 할머니가 울며불며 아이들을 데려오면 다시금 데려다놓는 식으로 아이들은 방치되었다. 그때 여덟 살 열 살 무렵의 아이들이 얼마나 끔찍하게 무섭고 외로웠을지. 특히나 예민하고 조숙했던 딸아이는 더했을 것이다. 그랬으니 다시 만난 어미 앞에서도 꼭 필요한 말만 몇 마디 건넬 뿐 예전처럼 재잘거리거나 눈물바람을 쏟아놓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피눈물이 흐르는 것 같다.
귓가에서 멀어졌던 모터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딸아이가 몸을 일으키더니 주방으로 걸어간다. 딸애의 발소리가 멀어져가고 모터소리가 뚝 끊긴다. 주방에서 나온 딸애는 목이 마른지 냉장고 문을 열고 음료수를 꺼내든다. 캔을 따는 소리가 들리고 몇 모금 마시던 딸아이가 긴 한숨을 내쉰다. 제 딴에도 진정하느라 애쓰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면 그렇지. 저 애가 나한테 그럴 리가 없지. 긴장이 풀린 탓인지 잊고 있던 발등의 통증이 되살아난다.
여자 앞으로 다가와 앉는 딸아이의 눈시울이 빨갛다. 젖을 뗀 후 한 번도 안아본 적이 없는 딸아이를 안아보고 싶다. 품안의 자식이라는데, 한 번도 제대로 품어본 적이 없으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아니 딸아이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엄마 노릇 몇 십 년을 하고서도 서툴기만 한 이 에미를 잘 좀 봐달라고 간살이라도 부리고 싶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딸아이의 얼굴이 흐릿해 보이기만 할 뿐 도무지 선명해지지가 않는다. 현기증이 인다. 눈앞이 까마득해 보인다. 정신을 놓으면 안 된다. 여자는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는다. 여자의 눈앞에 딸애의 얼굴이 둥실 떠오른다. 딸아이가 망설임이 가득한 표정으로 여자를 건너다본다.
아직도 할 말이 남았냐? 아예 날 잡아 온 모양인데 뭘 망설이냐? 어차피 내친김인데 다 말하지 그러냐?
여자의 채근에 딸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다. 또 입을 닫아걸려는 게 틀림없다. 딸아이의 침묵을 견딜 수가 없다. 여자는 가슴이 답답해져서 시선을 돌린다. 이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감정이 생기는지 모를 일이다. 에미니까 자식이 무슨 말을 하건 들어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평생에 단 한 번 그렇게 속을 털어놓고 나서는 아이한테. 그런데 여자는 왜 그렇게 딸아이가 낯설기만 한지 알 수가 없다. 아니 딸아이에게서 쏟아질 말들이 무섭기까지 하다. 그게 다 아침나절 곤한 잠을 깬 전화 때문이다. 새삼 역정이 인다. 그렇지 않아도 죽을 정도로 피곤한데 잠 한숨 곤히 못 자게 아침부터 그따위 전화질을 해?
니들 큰 고모한테 전화 왔다. 니 아부지 쓰러졌다더라.
여자의 말에 딸아이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래서?
딸아이는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는다. 그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뒤늦게 뇌리를 스친다. 기다렸어야 했다. 딸아이가 다시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참았어야 했다. 게다가 아들한테 하면 했지 딸아이에게는 하지 말았어야 할 얘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못 살겠다는 아이한테, 그 애가 아버질 어떻게 생각하는지 뻔히 알면서 얘기를 꺼내버리다니. 해결책도 없는 마당에 문제를 끌어내 놓으면 또다시 딸아이에게 책임을 떠맡기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이번에도 그 애를 방패막이 삼으려고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쨌든 알고는 있어야지 싶기는 하다. 그런 연후에 그래도 부모라고 끌리는 게 있다면 대책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는 것이다. 하긴 달리 대책인들 뭐가 있겠나. 결국 병든 부모란 자식에게 짐밖에 더 되겠는가. 아무리 돌려서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딸아이가 긴 한숨을 쉰다. 여자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딸아이를 지켜본다.
숨이 막혀. 여기만 들어오면.
그래. 그럼 그만 가라.
그 말이 터져 나온 것은 아차 하는 순간이다. 여자는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지만 이미 뱉어진 말을 되담을 수는 없는 일이다. 딸아이의 어깨가 부르르 떨린다. 잠시 참으려는 기색이다가 대뜸 일어선다. 여자는 딸아이를 붙잡으려 하지만 완강한 뒷모습에 질려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한다.
낡은 목조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여자의 귓가에 소용돌이친다. 딸아이를 뒤쫓아 나가려던 여자는 발등을 덮쳐오는 통증 때문에 하릴없이 주저앉고 만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치솟고 눈앞이 아득해진다.
금쪽같은 내 새끼… 금을 준들 너를 사랴. 은을 준들 너를 사랴.
어디선가 웅얼웅얼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아가! 잠깐만 있거라. 내 금방 다녀오마.
노랫소리에 섞여 들려오는 음성은 분명히 여자의 것이다. 그러나 목소리는 한순간 사라지고 노랫소리만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며 성량이 커진다. 아이가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웬일인지 아이의 얼굴이 한순간 흐릿해지더니 작아진다. 작아지고 작아지다가 아예 눈앞에서 지워져버린다. 여자는 두 팔을 허우적대며 아이의 얼굴을 찾는다. 하지만 아이는 기척도 없이 사라진 후다.
은자둥아, 금자둥아 우리 애기 잘도 잔다.
여자의 허둥거림과는 상관없이 노랫소리는 이어진다. 도대체 어디서 들리는 소리일까. 여자는 소리의 향방을 추적하려 애쓴다. 방마다 문을 열어보고 창문을 열어 내다본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당황한 나머지 명치끝에서부터 울음이 터져 나온다. 가슴이 찢기는 것 같다. 여자는 젖무덤을 움켜쥐며 울부짖는다.
아니야! 이게 아니야!
엄마? 엄마! 엄마아!
문득 들려오는 소리. 딸아이의 목소리다. 여자가 눈을 뜬다. 놀라서 뒷걸음질치는 딸아이가 보인다. 여자는 필사적으로 딸아이의 어깨를 움켜쥔다. 순간 모래더미가 허물어지듯 딸아이의 어깨가 무너져 내린다. 여자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온다.
아가, 엄마가 잘못했어. 가지마아. 돌아와아.
“윤아 엄마! 정신 차려!”
누군가 여자의 어깨를 흔든다. 여자는 가까스로 눈을 뜬다. 누군가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다. 여자가 손사래를 친다. 눈앞을 가로막고 있던 얼굴이 뒤로 물러선다. 슈퍼 남자의 여편네다.
“뭔 초저녁잠이 그렇게 깊이 들었대. 누가 업어가도 모르겄어?”
그게 다 꿈이었구나. 꿈. 하지만 너무나 선명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꿈이고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다만 딸아이의 얼굴만 아른거릴 뿐이다. 답답한 나머지 한숨이 마구 터져 나온다. 여자는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몸이 많이 안 좋은 모양인데 집에서 쉬지 뭣하러 나와서 이 고생이여?”
슈퍼 여자가 지청구를 주면서도 여자를 부축해준다. 여자는 카운터에 몸을 기대고 마실 것을 좀 달라고 말했다.
슈퍼 여자가 굼뜬 동작으로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다준다. 여자는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신다. 반쯤 마셨을 때 비로소 할 일이 떠오른다.
여자는 전화기를 끌어당긴다. 번호를 누르는 집게손가락이 파르르 떨린다. 딸아이의 핸드폰은 꺼져 있다. 사위에게 전화를 해 보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사위에 대한 노여움이 여자의 감정에 불을 지피기 시작한다. 내가 지놈한테 어떻게 해주었는데, 이제 와서 처남들 데리고 있었다는 유세를 하나. 서방이라고 계집 감싸 안을 궁리는 안하고 지네집 식구들만 싸고 들어?
여자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수화기를 내던져버린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딸아이 집으로 가야 한다. 여자는 슈퍼 여자에게 문단속을 부탁하고 노래방을 나선다. 언뜻 본 시간이 열 시를 넘어서고 있다.
딸아이가 여기까지 온 것일까. 아니면 그게 모두 꿈이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꿈처럼 느껴지는 장면도 모두 현실이라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게만 생각했었다. 그 애의 어깨가 그렇게 무너지는 것도 모르고, 그 애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것도 모르고 그저 자식이니까, 그것도 큰아이니까, 생각하면서 당당하게 울타리를 삼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홀가분했던가 싶지만 단연코 그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던 여자 역시 평생 울타리가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딸아이에게 의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택시는 안산역 앞에 멈춰 선다. 택시에서 내리던 여자의 동작이 일순 정지된다. 이주노동자들로 붐비는 역 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 한 여자가 눈에 박힌 탓이다. 좀 꾸미고 다니라고 해도 한사코 하얀 남방에 청바지를 즐겨 입는 딸아이는 뒷모습이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딸아이는 어깨를 늘어뜨린 채 서성거리고 있다.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광장을 맴돌기만 하는 게 언뜻 봐도 황황하기 짝이 없다.
그때 누군가 여자의 옆구리를 치고 지나쳐간다. 언뜻 고개를 돌려보니 여자가 들고 있던 가방이 어느새 사내의 손에 들려있다. 갑작스런 가격으로 인한 통증 때문에 비명도 나오지 않는다. 여자는 맥없이 주저앉는다. 광장의 환한 조명이 찌르듯이 부딪혀온다. 여자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여자는 딸아이가 서 있는 곳을 바라보며 팔만 허우적거린다. 그때 여자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탓에 쇳소리가 날 듯 날카로운 음성이지만 분명히 딸아이 목소리다.
엄마? 엄마!
여자는 별거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쳐댄다. 딸아이가 여자를 부축해서 일으킨다. 딸아이가 괜찮냐며 연신 물어댄다. 여자는 염려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옆구리로 손을 넣어본다. 피가 흐르는 줄 알았는데 손은 말갛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다. 많이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여자는 느꺼운 심정이 되어 딸아이를 품에 안는다. 미안하다. 아가. 정말 미안하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여자의 품에서 빠져나가려 버둥거리던 딸아이의 움직임이 멈춘다. 여자의 눈에 비친 역사의 광장이 대낮처럼 환하다.
김혜완
서울 출생. 2009년 『시에』로 등단.
―『시에티카』 2010년 하반기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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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누군가의 울타리가 되어주고픈 날입니다.
편안하게 앉아 연속극 본 느낌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그 여자, 흔들리며 흔들리며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