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 마라톤의 금메달 고전 9:24-27 히12:1-2
(고전9:24-27) 24 경주할 때 달리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한 사람이 상을 받은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리라.
25 이기려고 애쓰는 자마다 모든 일에서 절제하나니, 이제 그들은 썩을 관을 얻고자 그 일을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관을 얻고자 하느니라.
26 그러므로 내가 이와 같이 달리되, 정해진 것이 없는 것처럼 하지 아니하고, 또 이와 같이 싸우되, 허공을 치는 자같이 하지 아니하며,
27 오직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시킴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뒤에 어떤 방법으로든 내 자신이 버림받은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12:1-2) 1 그러므로 증인들이 이렇게 큰 구원을 이루며, 또한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너무 쉽게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우리가 떨려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달리며,
2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멸시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2020년 개최 예정이었던 일본 도쿄 하계 올림픽은 코로나 확산으로 사상 초유로 개최를 못하고 약 1년 뒤인 2021년 7월 23일 개막해 8월 8일 폐막하기로 했으나 올해도 개최가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달 들어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5000명 이상을 기록하는 등 확산세가 진정되지 않으면서 일본 정부가 예정된 도쿄 올림픽을 취소 발표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대회 시작 전 전 국민이 백신을 접종한다는 계획이지만, 백신에 대한 일본 국민의 부정적인 반응 때문에 접종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3월 초까지 코로나 확산 긴급사태가 계속된다면 개최 중단도 각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올림픽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예정대로 진행됐습니다. 도쿄 올림픽이 취소될 경우, 도쿄 및 일본이 피해를 보는 경우 약 4조 5151억 엔(한화 약 48조 원)의 경제 손실이 발생한다는 분석이 있다. 대회가 취소될 경우 방송사들에게 위약금을 물어줘야 한다. 바흐 IOC 위원장이 올여름 도쿄 올림픽이 열릴 것이며 대안은 없다고 했지만 코로나라는 역병이 이처럼 전지구인의 축제를 중단시켰다는 것에 우리는 코로나의 확산을 주시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바로 3년전 2018년 2월 9일부터 동계올림픽이 평창에서 열렸습니다. 올림픽 경기는 종족과 종교와 이념을 뛰어넘어 화해와 평화와 사랑으로 하나가 되다보니 스포츠를 통한 감동과 기쁨 그 자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올림픽경기입니다. 특히 올림픽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들이 배출하면서 많은 화제 거리를 남깁니다. 당시에 화제가 되었던 것은 우리나라 스켈레톤 경기에서 윤성빈이 새로운 썰매 황제의 등장을 알렸던 뉴스인데 이 이야기는 당시 윤성빈이 역사적인 봅슬레이 스켈레톤 경기에서 자신의 우상인 두쿠르스를 눌렀다는 이야기입니다.
두쿠르스는 2009-2010시즌 국제 봅슬레이 스켈레톤 경기연맹(IBSF)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세계랭킹 1위에 오른 뒤 2016-2017시즌까지 8시즌 연속 랭킹 1위를 독점했던 선수라서 그를 봅슬레이 스켈레톤 황제라 불렀다. 윤성빈은 자신의 우상이었던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를 누르고 정상에 올랐던 것에 대해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 언론도 윤성빈의 금메달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윤성빈은 2012년 까지만 하여도 평범한 고교생이었는데 썰매 입문 이후 타고난 천재성에 노력이 더해져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썰매 입문 6년 만에 올림픽 정상에 서게 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성공의 스토리를 알려주었습니다. 현대를 ‘3S시대’라고 합니다. 즉 Speed, Sex, Sports. 그 중에서도 Sports는 현대인의 가장 인기 있는 관심분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올림픽 경기 종목들을 눈여겨보면 우리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되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단거리 스피드 경주를 통해서는 우리가 최고의 빠른 경주를 해야 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며(고전9:24), 권투경기는 허공을 치면 안되고 오르지 상대방을 집중 공격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며, 장애물경기는 신앙생활에 장애물을 잘 넘어야 한다는 것이며(갈5:7), 마라톤 경기는 무거운 것과 얽매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달려야 함을 깨닫게 하며, 양궁이나 사격은 목표점을 분명히 명중시켜야 한다는 지혜를 깨닫게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마치 운동장에서 경주하는 선수들이라고 하면서 신앙생활도 운동장에서 경주하듯이 최선을 다해서 면류관을 받으라고 합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빨리 달음질하라.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당시 그리스에서는 올림픽경기(아테네)와 함께 이즈미안(Isthmian,고린도)경기장에서 4년마다 Isthmus신에게 제사하는 방식으로 각종 경기가 열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이‘이즈미안 경기’를 연상케 하면서 영적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너희도 인생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받으라”고 권고합니다. 왜냐하면 (히11:6)에 보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길을 달린다는 것은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하는 성도들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므로 이 세상 끝 날까지 인내로서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신앙의 완주자에게 상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위하여 수고한 자들에게 상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1. 선한 싸움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시는 면류관
신앙생활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딤전6:11-12)에 11 오 하나님의 사람아 너는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하나님의 성품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라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영원한 생명을 붙들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이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며, 구원에 이르도록 사탄마귀와 싸우는 영적 싸움입니다. 만약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지 않고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신앙생활 한다면 당연히 낙오자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싸우는 선한 싸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싸워서 가나안을 얻었듯이 성도들도 온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어두운 세력과 싸워서 세상을 믿음으로 정복해 가는 삶입니다. 성도는 의와 복음인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핍박받는 사람으로서 그들이 추구하는 기쁨이나 당하는 고난으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는 사람들입니다. 마귀들은 언제나 절망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성도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항상 말씀을 들고 믿음을 공고히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것은 다 참으셔도 믿음 없는 것은 참지 않으셨는데, 그 이유는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자신이 믿음가운데 있는지 확인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사울 왕도 인간이 바라는 권력과 명예와 재물을 모두 가졌지만 마귀가 그의 마음가운데 다윗을 향한 시기심을 심어놓으니 무너졌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은 믿음을 공고히 하고 마귀와 대적해야 합니다. 마귀가 절망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성도를 공격해 오면 성도는 믿음의 방패와 말씀의 검을 가지고 막아내고 기도의 철퇴를 가해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믿음을 가져다주는 최고의 통로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오래 동안 나라를 잃고서도 절망하지 않고 나라를 되찾은 것은 회당중심으로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절망되고 낙심될 때 더욱더 말씀을 읽고 예배드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마귀가 주는 시험과 문제는 허구이며 안개와 같아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만 있으면 모든 안개는 순식간에 사라지게 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의심의 구름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능력 있게 만드는 힘의 원동력입니다.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기도하면 강하게 되고, 아무리 지혜 있는 사람도 기도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며, 아무리 재산이 많은 사람도 기도하지 않으면 그 물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아브라함 링컨이나 죠지 워싱턴이나 존 웨슬리가 쓰임 받은 이유는 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적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은 참는 일이다. 첫째는 이웃에게 참는 것이요, 둘째는 자기 자신에게 참는 것이요, 셋째는 하나님께 참는 것이라고 합니다.
악인의 형통이라는 부조리를 참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서 악인의 형통에 대해서 참는 것을 육체가운데 가시를 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악인의 형통은 하나님의 공의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고후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일은 모든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길들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쉽게 받기만 하는 사람은 받는 것이 은혜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건강한 사람이 그 건강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은혜만으로는 우리가 변화되지 않기 때문에, 가시와 고난을 통해서 영적으로 성숙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의 형통을 시각적인 측면으로 보아야 합니다.
(시37:16)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악인이 형통하다고 하는 것은 모두 세상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에서 보면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과 순결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73편에는 악인의 형통에 관해 원망을 쏟아놓는 장면이 나오는데,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을 때는 안목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은 악인의 형통에 대해서 그다지 원망하지 않게 됩니다. 악인의 형통은 우리를 온유한 자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인도이십니다.
(시37:3-6) 3 주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땅에 거하고 참으로 양식을 먹으리로다. 4 너는 또 주를 기뻐하라 그분께서 네 마음에서 소원한 것들을 네게 주시리라. 5 또 네 길을 주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라 그분께서 그것을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같이 네 판단의 공의를 대낮같이 내놓으시리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를 의뢰한다는 말은 하나님과 나를 연결시키고, 하나님에 의해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짐은 언제나 내 짐이지만, 하나님께 맡기면 그것은 하나님의 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짐을 맡긴 후에는 참고 기다려야 하는데, 이때 온유가 필요한데 온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시37:11)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라.
(히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믿음의 삶을 살기 시작하면 만사가 형통하는 줄로 압니다. 하지만 믿음의 삶은 그와는 반대로 고난과 역경의 싸움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삶을 산다고 해서 모두가 물질적 축복과 육신의 평안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십자가를 따라 고난과 역경의 삶, 고통의 삶이 끝까지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삶이 어떠하든지 모든 싸움에서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느냐 입니다. 아무리 편안한 삶이라 하더라도 영적싸움에 패해서 믿음을 잃는다면 그것은 축복의 삶이 아닙니다. 반대로 고통의 삶을 살더라도 믿음으로 그 모든 것을 이겨낸다면 축복의 삶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삶은 모든 상황에서 믿음을 얼마나 굳건히 지켜 승리하느냐 입니다. 믿음의 길은 고통과 피를 요구하는 길로써 믿음을 위해 끊임없는 싸움과 고통 속에서 이루어내는 역경의 길입니다. 그러한 길을 흔들림 없이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는 강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강한 믿음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사단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얻을 수 있는 승리의 면류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딤전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벧전1:6-7) 6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1) 성도들이 받을 면류관의 종류
그러면 무슨 상을 주실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상은 바로 (면류)관입니다. 마라톤 우승자에게 주는 상이 면류관이듯이 인생여정의 경주를 마친 성도들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주실 줄 믿습니다.
(살전2:19)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우리의 소망이나 환희의 관이 무엇이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 분 앞에 있을 바로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영혼을 구원한 사람에게는 자랑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자랑의 면류관이 전도의 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빛의 길로 옳은 데로 인도한 자는 하늘나라에서 해같이 빛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에서 최고의 면류관이 내가 전도했던 영혼을 하늘나라에서 볼 수 있다는 자랑의 면류관입니다. 전도한 사람만이 받는 자랑의 면류관을 기억하자.
(딤후4:8)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믿음을 지키고 달려갈 길을 다간 자에게는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벧전5:3-4) 3 하나님의 상속 백성위에 주인처럼 군림하지 말고 오직 양 떼에게 본이 되다. 4 목자장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가 사라지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받으리라. 양들을 사랑한 사람에게는 영광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고전9:25) 이기려고 애쓰는 자마다 모든 일에서 절제하나니 이제 그들은 썩을 관을 얻고자 그 일을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관을 얻고자 하느니라. 모든 일에 절제한 자에게 썩지 않을 면류관이 있습니다.
(계2:10) 너는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핍박과 시험을 이긴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마귀권세와 싸워 이긴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면류관은 마라톤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들이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 마치 우리가 올림픽의 경기장에서 마라톤 경기하는 것으로 비유된다면 우리들은 위에서 보았던 갖가지 면류관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예수님을 우리 인생의 목표로 정해야 합니다.
(고전9:26)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여기서 말하는 향방이 없다는 것은 목표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목표 없이 달리는 것은 탈선이고, 목표를 이리저리 바꾸면서 달리는 것은 방황입니다. 목표없이 달린다는 것은 마치 권투 선수가 허공을 치는 것과 같은 것이며, 달리기 선수가 방향을 잃고 아무방향으로만 달리는 것이므로 헛수고입니다. 인생살아가는 동안에도 삶의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삶의 목적을 분명히 알고 살아가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왜 사는가? 왜 일하는가, 왜 돈을 버는가, 왜 공부를 하는가? 이에 대한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사는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는 목표가 분명하여야 사는 의미가 있으므로 때로는 고민도 하고 계획을 수정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짐승들은 삶의 목적이 없습니다. 짐승은 먹이를 먹으며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매사에 생각이 있고 왜 하는지 분명한 목적을 갖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오직 이 세상 것에만 목표를 두고 삽니다. 그 사람의 평생 소원은 고급 아파트 아니면 고급승용차 아니면 승진이나 명예 아니면 돈 수10억 등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목표 둔 사람 즉 세상 것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눅12:16-20)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 많은 소출에 크고 새로운 창고를 짓고 만족해 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 어리석은 자여 이 밤에 네게서 네 혼을 요구하리니 그러면 네가 예비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그 밤에 죽음을 맞이하는 부자처럼 아무 소용없는 헛된 일에 목표를 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목표를 어디에 세워야 합니까?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신앙인의 삶의 목표는 바로 우리 주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인데 곧 뒤에 있는 그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그것들에 도달하려고 나아가는 것입니다(빌3:13)
사도 바울은 (빌3:1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밀고 나아가노라고 말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주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와 찬송과 말씀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루 이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사는 날까지 하는 경기입니다. 완주하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신앙마라톤에서는 과거 잘 하던 것이 중요치 않습니다. 현재 지금 잘하면 최고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지금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신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면 충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자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그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늘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 영광돌리는 삶이 무엇인가 생각하셔야 합니다. 2003년 오사카 세계유도선수권대회,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남자 73kg급 금메달을 획득하므로서 유도에서 그랜드슬럼을 달성한 유도 이원희 선수는 우승할 적마다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습이 기억납니다. 금메달 따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는 그의 인터뷰가 기억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목표로 하고 살아가십니까? 돈버는 것입니까? 사업을 확장하는 것입니까? 출세입니까? 여하튼 무슨 일을 통해 목표가 달성되었더라도 그것을 통해 예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2 인생마라톤의 기준
마라톤 경주는 올림픽 경기중 마지막 경기입니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우승하는 자에게 면류관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경기 중 마라톤 금메달은 가장 값진 메달입니다. 선수들은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마라톤 규칙을 지키고 완주한 자에게 주는 상이므로 아무나 탈 수 있는 상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1) 자기와의 싸움에서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마라톤 선수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면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다는 말인데 어떻게 해야 자신을 이길수 있나요?
(고전9:25-27) 25 이기려고 애쓰는 자마다 모든 일에서 절제하나니.
27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시킴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뒤에 내가 버림받을가 두려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절제 또는 억제는 극기와 인내와 훈련을 말합니다.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절제하고 억제해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절제이며 가장 이기기 어려운 것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입니다.
(잠16:32) 분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영을 다스리는 자는 도시를 취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승리는 노력 없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한 자기 관리, 처절할 정도로 자기 자신과 싸움에서 이겼을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입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선수촌에 입촌하면, 먼저 규칙을 준수할 것을 다짐하고서 그 이후로는 철저하게 자기와의 싸움이 진행됩니다. 시간, 체력, 식사, 훈련, 절제하면서 관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싸우기 전에 먼저 자신과 싸워서 이긴 자들이 경기에 나가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선수들은 몇 분, 몇 초의 경기를 위해서, 수년간을 땀 흘리면서 준비합니다. 초기 올림픽시절에는 며칠 못가서 시들어 버릴 월계관과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 질 메달을 얻기 위해서 선수들은 자기 절제와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생 누구나 장거리 마라톤 경주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생마라톤에서 금면류관은 시들어 버릴 면류관과는 비교가 될 수 없으며 올림픽 금메달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진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이다. 이런 면류관을 목표로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에게 자신의 신앙관리, 자기 절제와 훈련이 필요한 것은 당연합니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진정한 행복은 절제에서 솟아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절제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16:24)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 마음에 스며드는 욕심을 절제하고 세상의 유혹을 부정해야하고 경건훈련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 모두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므로써 금메달 리스트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고전9:24) 경주할 때 달리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한 사람이 상을 받은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리라에서 달리다는 말은 힘써 전진하라는 의미입니다. 경주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경주마가 경마장에서 달릴 때처럼 혼신의 힘을 쏟아 달려야 합니다. 신앙의 경주에 있어서도 주님께서 예비하신 승리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는 주어진 환경속에 안주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달려야 합니다. 바울의 간증을 들어보십시오.
(딤후4:7-8)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은즉 8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관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친 사람 즉 사명을 완수한 자에게 주시는 상이 의의 면류관이라고 합니다. 이런 면류관은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신6:5)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데 게을리 하면 안됩니다.
(계2:10) 너는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약속했습니다. 면류관을 받고 안받고는 바로 충성하느냐 게으르냐에 달려 있습니다. 주의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는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하나님은 언제나 최고보다 최선을 원하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은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상주시는 분입니다. 신앙의 경주에서는 ‘누가 더 빨리 달렸느냐보다 누가 더 최선을 다했느냐?’로 승패가 결정됩니다. 최고가 되기보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는 최선의 신앙생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3) 법대로 달려야 합니다.
운동경기마다 다 규칙이 있으므로 규칙을 범하면 실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딤후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모든 경기가 규칙이 있고 법이 있습니다. 거꾸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은 신앙의 영적 경기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 마라톤경기에는 2차전은 없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경주를 달리면서 방향을 모르고 무조건 달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 번 더 반칙하면 끝날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앙에는 정도가 있습니다. 지름길로 가려 하지 말고, 반칙을 해서 이기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정도는 말씀입니다. 오직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는 길이 정해진 길입니다. 각자가 자기인생의 경주를 다 마치고 주님 앞에서 서는 날에는 신앙의 금메달을 목에 거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금메달을 받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규정이 히브리서 12:1-2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히12:1-2) 1 그러므로 증인들이 이렇게 큰 구원을 이루며 또한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너무 쉽게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우리가 떨려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달리며 2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멸시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이 무거운 죄악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들의 무거운 죄 짐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믿음의 창시자이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기르는 가축 가운데 사람과 아주 친근한 짐승이 있다면 개입니다. 주인의 마음을 잘 알아보기로 말한다면 개를 따라갈 짐승이 없습니다. 개는 멀리서도 자기 주인의 음성을 분별하고 주인의 발자국을 분별합니다. 그리고 꼬리를 치면서 주인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를 알아주는 개를 반려동물로 키우게 됩니다. 그런데 개 중에도 영리한 진돗개나 세파트 같은 개는 주인이 훈련시킬 때 주인이 허락하는 것과 금지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인이 고깃덩어리를 놓으면 처음에는 먹을려고 하지만 그때 주인이 안돼! 하고 소리를 치면 멈칫 하고 먹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도 동일한 방법으로 고기를 갖다 놓으면 또 개가 고기쪽으로 접근할 때 안돼! 하고 소리치면서 개를 가볍게 때려줍니다. 그렇게 여러번 반복해서 훈련시키면 그 다음에는 고기를 갖다 놔도 고기를 보기 전에 주인부터 바라보게 됩니다. 주인이 먹으라고 하는지 먹지말라고 하는지 눈치를 살핍니다. 개는 그렇게 해서 길들여집니다. 하물며 개도 이렇게 주인에게 길들여지는데 이성과 영을 가진 우리 인간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마땅히 해야 될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을 분별하면서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런 성도는 바로 신앙의 금메달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의 주인되신 예수님을 먼저 바라보고 주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행동한다면 이런 사람을 가리켜 주님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인생의 올바른 길을 가게 될 뿐만 아니라 주님앞에 갔을 때 면류관을 받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히브리12장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하나의 운동장으로 비유하고 우리 인생의 삶을 운동장에서 경주하는 경주자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운동장 양 옆 스탠드에는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인생마라톤 하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히브리 11장에서 믿음으로 승리했던 신앙의 위인들을 수없이 등장시키고 12장에는 그들이 지금 구름처럼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간 신앙의 선진들, 위에 계신 하나님,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금 인생 마라톤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신앙마라톤을 하고자 한다면 우리들의 삶은 언제나 주님 중심이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려고 하면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서 전심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목표를 향한 전심전력은 마치 경마장에서 달리는 말처럼 최선을 다하여 달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경마장에서 달리는 말은 옆을 보지 못하도록 눈가리개를 하고 앞만 볼 수 있도록 오직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전심전력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님만 봐야지 세상을 바라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해바라기라는 꽃은 해만 따라다닌다고 하여 해바라기라고 하지만 우리는 주님만 바라본다고 하면 주바라기가 되어야 합니다. 누가 칭찬을 좀 한다고 우쭐대거나 교만에 빠져도 안되고 누가 책망 한다고 해서 시험들어도 안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라톤 선수는 42.195km를 달리면 되지만 우리 인생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세상 떠나기까지 쉬지 않고 달리는 경주자들인데 어떤 사람은 80년을 달리고 어떤 이는 70년을 달리고, 어떤 사람은 불의의 사고로 30년도 채 살지 못하고 마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 세상에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인생경주를 마친 후 우리를 구름처럼 둘러서서 보아왔던 믿음의 선진들이 이미 가 있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이 세상 인생경주를 마친 후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두번째는 죄많은 세상에 살면서도 죄문제를 해결한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이 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안에서만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의 지신 십자가를 통해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주님의 사랑을 경험한 우리를 통해서 또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를 이 땅에 잠시 머물러 두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참사랑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하려고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히12:1절에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달리기 선수는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속옷 입고, 겉옷 입고, 외투까지 입고 달리기하는 선수가 없듯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무겁게 하여 전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죄짐이라고 했습니다. 무거운 죄짐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1) 욕심이라고 하는 죄가 주님께로 달려가지 못하도록 붙들고 있습니다. 욕심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는 다릅니다. 먹고 싶다면 그것은 욕심이 아니라 본능입니다. 욕심이란 하나님이 금한 것까지 자기가 갖고자 하는 것이 욕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그 곳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제외하고는 동산 안 갖가지 종류의 실과를 먹도록 허락하셨는데 인간의 조상은 하나님께서 금지한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먹으면 죽으리라는 금한 것을 취하는 것이 바로 욕심입니다. 욕심의 결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약 1:14절 에는 이런 말씀이 있지요.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으리라고 합니다. 말씀을 통해 인간들로 하여금 엿새 동안은 열심히 일하고 제7일째 주의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세상사람들과 구별되게 살라고 했는데 주일까지도 자기 날로 삼으면 욕심입니다.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라고 했는데 십분의 일까지도 취한다면 욕심입니다. 그래서 시험에 빠지는 것입니다. 허락한 것은 임의로 할 수 있지만 금한 것을 취한다면 욕심입니다. 욕심이라는 죄에 붙들리는 사람은 부지런히 살아도 늘 곤고합니다.
2) 벗어 던져야 할 무서운 죄로 자기 교만입니다. 자기 교만이라는 말은 자기 생각대로 믿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믿는 사람들이 교만한 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내 믿음은 내가 지킨다고 합니다. 내 믿음 내가 못 지킵니다. 주님이 붙들어 주셔야 합니다. 베드로가 자기 믿음 지키려고 주님앞에서 말하기를 다른 사람들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끝까지 주를 따르겠다고 다짐했는데 실패했습니다. 주님없이 나혼자 내일을 하겠다는 것은 교만입니다. 나는 할 수 없으니 주님 도와 주세요 그래야 자기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신앙인들 중에는 내가 하나님 앞에서만 바로서면 되지, 뭐 사람들이야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것도 교만한 말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신앙양심 앞에 거리낌이 없어도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거리낌이 없어야 됩니다. 그래서 마18:18절에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묶으면 그것이 하늘에서 묶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풀면 그것이 하늘에서 풀리리라. 사람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도 인정을 받아야 하고, 사람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심지어 마귀에게조차도 인정을 받아야 됩니다. 마귀가 생각하기를 그 사람은 손댈 수 없어, 그 사람은 목숨까지도 아까와 하지 않을 정도니 무서운 사람이야, 도저히 우리가 해볼 사람이 아니야 하고 마귀가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니 자신들을 말씀에 비추어 보기 바랍니다.
(대하20:20) 주 너희 하나님을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굳게 서리라. 그분의 대언자들을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히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과 거룩함을 따르라. 그것들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과도 화목해야 되지만, 사람들과도 화목하고 의리가 있고 사랑의 관계가 이어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하나님 앞에서 영혼이 바로 서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서도 무엇인가 맺혀 있어서 마음과 몸은 병들어 있는데 본인은 그 원인을 알지 못합니다.
말씀중심으로 교회중심으로 신앙생활해야 하는데 아직도 자기중심으로 인본주의적으로 믿는다면 입으로는 주님을 부르지만 실제로는 주님과 상관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주님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까 다음 말씀으로 점검하여야 하겠습니다.
(마7:21-26) 21내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는 아니하고,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그것들을 행하는 자를 나는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하리라.
26 나의 이 말을 듣고 그것들을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자는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라.
주님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평소에는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어떤 시험이 왔을 때 반석위에 집을 짓는 사람인지, 모래위에 집을 지은 사람인지 드러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 중심으로 신앙생활하지 말고 꼭 예수님 중심으로 교회중심으로 신앙생활 하기를 바랍니다.
(히5:7-9) 7 그분께서 친히 육체로 거하던 때에 자기를 사망으로부터 능히 구원하실 분에게 강렬한 부르짖음과 눈물로 기도와 간구를 드리셨고 또 친히 두려워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들으셨느니라. 8 그분께서 아들이실지라도 친히 고난 받으신 일들로 말미암아 순종하기를 배우사. 9 완전하게 되셨으므로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창시자가 되시고.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 단 한번도 하나님 말씀앞에 아니오 한 일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예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얼마든지 예가 되나니 그러므로 우리들도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집부리는 것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고집, 교만은 무지에서 오는 것입니다. 성경을 모르면 고집을 부리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배우지 않고 듣지를 못해서 남을 속이기도 하고 자기가 속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됨으로써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 성경말씀만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케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인지를 들추어내는 것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조명이 우리 속에 비추어 오게 될 때 내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러니 사람이 얼굴을 보려면 거울 앞에 서야 되는 것처럼 자기 심령을 보려면 말씀앞에 서야 되는데,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면서 자기 모습을 밝히 봐야합니다. 그래야 죄를 회개할 수도 있고 하나님이 허락하는 것인지 금한 것인지 분별력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것은 성경 말씀밖에 없습니다.
회개없는 믿음, 회개없는 천국, 회개없는 축복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회개는 깨닫고 고치는 것입니다. 뉘우치기만 하고 고치지 않는 사람은 회만 하고 개를 안 한 것입니다.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면 우리들의 마음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근심 걱정은 사라집니다. 성령은 권능의 신이기 때문에 새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지혜의 신이기 때문에 분별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시므로 아무도 그를 대항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약해 보여도 하나님의 성령에 붙들린 자는 강한 자요 조금은 모자라 보여도 하나님의 성령에 붙들리면 지혜가 넘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욕심이라고 하는 죄와 자기 교만이라고 하는 무거운 죄를 벗어 던져 버리고 믿음의 경주를 계속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탈무드에 나오는 지혜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어느 산속에 가난한 농부와 아내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살고 있었던 가난한 농부가 집을 떠나 멀리 다른 마을에 가서 돈을 벌어 오기로 하고 아내와 집을 두고 떠났는데 떠나기전 농부와 아내는 서로를 향한 믿음을 지키자고 굳게 약속했습니다. 집을 떠난 농부는 이십일을 걸려 어느 마음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부잣집에서 20년을 일하기로 했습니다. 농부는 주인에게 20년 동안 자신의 일한 보수를 저축해 두기를 부탁했습니다. 드디어 20년이 차서 농부는 주인에게 자신의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둘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라는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20년간 번 돈을 가져갈 것인가 아니면 세가지 삶의 지혜를 들을 것인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2틀동안 고민한 농부는 20년간 주인을 잘 알았기 때문에 20년간 번 돈 대신 주인이 주는 세가지 삶의 지혜를 듣기로 했습니다. 주인이 미소를 지으며 조목조목 세가지 삶의 지혜를 말해 주었습니다. 첫째로 인생에서 지름길을 택하지 말게. 그러면 대가를 크게 치르고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네. 둘째로 과하게 호기심을 가지지 말게 과한 호기심은 다칠수도 있다네. 셋째로 화가 났을 때 절대로 무언가를 결정하지 말게. 그렇지 않으면 끝없는 후회를 하게 된다네. 주인은 그에게 빵 세덩어리를 주면 말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빵은 돌아가는 길에 먹고 세 번째 빵은 집에서 먹게나. 농부는 주인에게 감사하며 길을 떠났습니다. 첫째 날에 그는 그가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는 여행자를 만났습니다. 농부는 대답했습니다. 20년의 머슴살이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20일이나 걸린답니다. 여행자가 말했습니다. 제가 5일밖에 걸리지 않는 더 빠른 지름길로 안내해 주겠습니다. 농부는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지름길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인이 들려줬던 첫 번째 조언이 떠올랐습니다. 농부는 지름길 대신 긴 여정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노상강도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밤이 되어 농부는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을에서 하룻밤을 머물기로 했습니다. 그가 잠을 자고 있을 때 큰 울음소리가 그를 깨웠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궁금해져서 그는 일어나서 문을 조금 열었습니다. 하지만 주인이 해줬던 두 번째 조언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집주인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호랑이가 밤에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문을 단단히 잠그고 있었지요.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농부는 20일이 걸려 집에 도착했는데 밤이라 집에는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부푼마음으로 그는 창문쪽으로 다가갔습니다. 집안을 들여다 보는 순간 기쁨이 충격과 분노로 변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다른 남자를 함께 자고 있었끼 때문입니다. 증오가 그의 마음을 지배했고 그는 들어가서 둘을 죽이고 싶었는데 주인이 말해준 세 번째 조언을 기억했고 자신을 억제했습니다. 그날밤 그는 헛간에서 잠을 잤습니다. 해가 떠오르자 그는 마음을 진정하고 생각했습니다. 주인에게 돌아가서 일을 다시 구하고 아내와 그의 애인을 죽이지 말자. 하지만 돌아가기 전에 아내에게 자신은 믿음을 잃지 않았다고 말하기로 했습니다. 그가 문을 두르렸을 때 아내는 문을 열고 그의 품에 안겨왔습니다. 그는 아내를 거칠게 밀어내며 슬프게 말했습니다. 나는 항상 믿음을 가졌는데 당신은 나를 배신했어 아니예요. 아내가 강하게 머리를 저었습니다. 나는 당신과 어젯밤에 한 남자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단 말이요. 농부가 말했습니다. 아내가 대답했습니다. 그 남자는 우리 아들이예요 당신이 떠날 때 저는 임신중이었고 우리 아들은 스무살이 되었어요. 그 말을 들은 농부는 아내를 꼭 껴안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인의 지혜를 20년의 노동으로 산 것이 지금 이순간의 행복이구나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부부와 아들은 마지막 남은 빵을 먹기 위해 마주 앉았습니다. 농부가 빵을 자르니 그가 20년 동안 번 돈과 이자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이 농부가 주인의 지혜를 택한 것이 이처럼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달리기 위해서는 꿈과 소망을 가지고 고난을 인내해야 됩니다.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를 기쁨으로 질 수 있었던 것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인하여 라고 했습니다. 뭐가 즐겁습니까? 내가 이렇게 십자가를 짐으로 삼일만 지나면 아버지가 날 부활시키시고 천하만민이 나를 통해 구원받게 되었다는 것을 믿었던 것이 즐거웠습니다. 이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난 이후에 난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올라가고 아버지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준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지금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나 장차 나타날 영광을 미리 바라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사람은 소망이 있을 때 인내할 수 있고 희망이 있을 때 노력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꿈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부활의 꿈이 있어야 하고 천국에서 영생의 꿈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믿는 이유는 우리가 죽고 난후 천국에서 부활한다는 말씀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부활의 꿈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좇으라. 나와 복음을 위해서 이 수치와 고난의 십자가를 감당하기만 하면 금세에서 백배의 복을 받게 되고 내세의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고 그랬습니다. 이 세상의 스포츠 경주에서는 일등을 해야 면류관을 주지만 천국에서는 일등만 면류관을 주는 게 아니고 누구든지 끝까지 들어오기만 하면 면류관을 주십니다. 이 말씀은 딤후 4:7에 나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시고 주님을 사랑하시면서 끝까지 경주하십시오. 가다가 중단하면 아니가는 것만 못합니다. 무거운 짐을 벗어 던졌으면 힘껏 달리십시오.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 선수는 체력도 필요하지만 정신력도 있어야 됩니다. 중도에서 포기하는 마라톤 선수는 실격처리되지만 천국에서는 끝까지 완주하는 사람들에게 면류관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끝까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고난중에도 참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금메달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마치 운동장에서 경주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이 인생마라톤 경주에서 면류관을 받으시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진정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