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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정맥 7 구간 산행기
일자 : 2013. 9. 15 (일)
산행구간 : 7 구간 (지지대고개- 오봉산 – 감투봉- 슬기봉 – 수암봉 – 창박골)
산행시간 : 10:30 – 18:40 (8시간 10분 : 점심시간 30분 포함)
산행거리 : 약 16 km
참가자 : 27김호중, 27송기훈, 27이수룡, 27조동식, 29권효식(부부동반), 29박성재, 29오창환, (이상 8명)
출발 및 귀경
1) 출발 : 양재역 집결 – 의왕 기아자동차서비스센터: 3100 버스
기아자동차서비스센터 – 골사그네 : 300 버스
2) 귀경 : 안양역 해산
후반전의 시작
7월 종주산행은 우천으로 연기되었고 8월은 혹서기라 쉬었으니 오늘 산행은 무려 석 달만의 종주산행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종주대원들은 반가운 수인사를 나누고 상쾌하게 길을 떠난다.
어제까지 줄기차게 내린 비로 날은 제법 서늘해졌고 맑은 하늘에 조각 구름이 흩어져 있어 햇볕마저 가려주니 산행하기에는 그만인 날씨다.
오늘은 지지대고개에서 시작하여 수리산을 넘어야 하는 짧지 않은 길 한남정맥 7구간. 전체를 대략 12구간으로 나누어 보았으니 후반전의 시작이라고나 해야겠다. 아직 여정의 반이 남았을까, 아니면 이미 반이 지났을까?
지지대고개 – 오봉산 - 경기외고
지지대(遲遲臺)는 조선의 왕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고개를 넘으면 더 이상 아버지의 묘를 볼 수가 없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참을 머물며 행차를 천천히 하였고, 후에 화성유수가 정조의 효심을 기리며 ‘지지대’라 비를 세웠다고 한다.
지지대비가 있는 전각을 오르려면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돌계단을 올라 좌우를 바라보니 과연 이 고개를 넘으면 수원일대는 전혀 보이지 않음을 알고는 정조의 아버지를 향한 그 애틋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지지대 전각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길을 떠난 시각이 오전 10시 40분. 이어지는 길은 오롯한 산책길. 좌우로 빼곡하게 늘어선 나무들로부터 은은한 향기나 난다. 갓 샤워를 마친 여인네에게서 풍기는 그 상큼한 내음이다. 물기 촉촉한 길은 폭신하고 먼지도 없으니 걷기에 더없이 좋은 길이다.
그렇게 40여 분을 산책하듯 길을 나아가니 과천과 봉담을 잇는 고속도로 위의 에코브릿지다. 정맥길을 가다 보면 국토개발로 정맥길 곳곳이 신설도로로 끊긴 곳도 많지만 이렇게 다시금 에코브릿지를 만들어 길맥을 이어 많은 동물들의 이동이 수월하도록 해놓았으니 관계자들의 세심한 배려에 보다 선진화된 환경의식을 느낄 수 있다.
에코브릿지를 지나면 바로 만나는 전주 이씨 전성군파(성종의 후손) 집성촌인 고고리(古古里). 오봉산 골짜기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고고리 뒷동산을 가볍게 넘고 의왕과 부곡을 잇는 지방도를 건너면 오봉산 들머리에 닿는다. 오봉산(五峯山, 205 m)은 나지막하고 아담한 산. 오봉산은 한남정맥과 빗겨 서있어 정상을 오르고는 분기점까지 되돌아 와서 정맥길을 이어야 하지만 어차피 정맥길은 오봉산 자락부터 부곡 컨테이너 기지와 안양베네스트 골프장으로 크게 훼손이 되어 있는지라 큰 의미는 없을 터, 그냥 오봉산을 넘어가기로 한다.
밭을 낀 소박한 전원주택이 여럿 자리하고 있는 들머리를 떠난 시각은 오전 11시 50분. 오르막 길에 나무계단을 만들어 놓는 등, 작은 산치고는 제법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30분 만에 정상을 올랐다. 정상에는 정상석 대신 정상을 알리는 표지목이 세워져 있다. 산의 높이가 낮아서 인지 아니면 주위의 나무 때문인지 정상에서는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동식이 묻는다.
“오봉산의 ‘오’는 어떤 한자이지?”
“다섯 ‘오’자이겠지” 수룡이 답했다.
아무리 둘러 보아도 다른 봉우리는 보이지 않으니 다섯 오봉산일리는 없을 것 같은데, 한문 박사 창환이 거든다.
“’오’자가 많지요. 다섯 오, 오동나무 오, 까마귀 오 등등…”
나도 한마디 거든다.
“창환 ‘오’자도 있잖어~ㅎㅎ”
산행기를 쓰며 검색을 해보니 五峰山이 맞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할 뿐이었지 실제 그 작은 산에는 봉우리가 다섯이나 있단다.
오봉산 정상을 뗘난 시간은 12시 20분, 식사시간은 지났으나 중간에 과일로 간단한 요기를 하여 그리 시장기를 느끼지 못하니 점심은 수리산에 들어서 먹기로 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그러나 낮은 산이라 우습게 여겼는데 하산길이 생각보다는 제법 험하고 길다. 곳곳에 바위가 있고 급경사 오르막내리막길에서는 설치된 밧줄을 붙잡아야 한다. 그렇게 30여 분을 진행하여 날머리인 경기외고에 닿았다.
버스를 기다리며 - 양재역에서
지지대를 오르는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 뒤의 도로는 1번 국도 경수산업도로
출발,1초전~! - 지지대비에서
길은 푹신하고 먼지 안 날리고---
과천-봉담 고속도로 위의 에코브릿지 - 의왕 시내가 멀리로 보인다
고고리 마을 입구 - 벼가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다.
생각보다 험한, 그래서 더욱 재미있는 오봉산길
수룡은 늘 무엇이든 간식을 많이도 싸 온다. - " 오늘 내가 찰옥수수 삶아 놓고 깜빡 했어..쩝~"
이제 205 m 올랐네 - 오봉산 정상
모처럼 이칠파가 모두 모였다.- 좌로부터 이수룡, 김호중, 송기훈, 조동식
오봉산은 작은 산이지만 곳곳에 안전장치를 해놓았다.
날머리인 경기외고를 눈 앞에 두고
당동 – 감투봉 – 슬기봉
경기외고부터 감투봉의 들머리인 당동까지는 도심지역이라 택시를 타고 점프를 했다. 많은 정맥꾼들은 끊어진 정맥길을 최대한 이어 가고자 굳이 개발된 아파트 단지며 도심지역을 걸어서 이어간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달랐다. 실제 정맥길을 가다 보면 도저히 길을 이을 수가 없는 곳이 너무도 많다. 군부대가 위치한 곳은 돌아가야 하고 곳곳에 위치한 골프장도 크게 돌아가야 한다. 너른 자동차 전용도로로 잘린 곳은 이리저리 돌아 지하통로를 통해서 건너야 하고 아파트촌으로 변한 지역은 단지내에 개설된 도로를 따라 돌아서 걸어야 한다. 그러니 온전히 정맥길을 걷기란 불가능한 일. 그렇다면 애초의 정맥길을 얼마나 벗어나지 않는 것이 옳은 정맥종주란 말일까? 10 미터? 100미터? 아니면 1 키로미터?
정맥종주의 참의미는 한반도의 골격을 이루는 대간과 정맥을 따라 펼쳐진 산야를 내 발로 두루 걸어 보고, 내가 내 몸 구석구석을 손으로 만져보듯 내 나라의 산야를 이루는 그 맥을 살피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니 애써 아파트촌이며 도심을 걸어서 통과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그곳에서 맥은 사라져 버렸으므로.
오후 1시 10분, 택시를 잡느라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들머리인 당동 아파트 공사현장을 떠나니 곧 산길이 나온다. 용호낚시터를 지나 얼마 가지 않아 본격적인 수리산 등산로로 올라서는 작은 철제 계단을 올라선다. 그리 가파르지 않은 언덕길을 10여분 걸었을까 이내 감투봉에 도달한다. 감투봉부터는 소풍길같이 완만하고도 널찍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1시 40분, 모두 시장기를 느끼나 보다. 둥그렇게 원형으로 만들어진 벤치를 식탁 삼아 모두 정성껏 싸온 도시락을 꺼낸다.
시원한 바람, 싱그러운 숲향기, 그리고 갖가지 반찬이 곁들여진 풍성한 식탁. 우리는 그저 즐겁기만 하다.
오늘따라 늦은 점심을 빨리 먹고 오후 2시 20분, 다시 길을 나선다. 잠시 오르막 길이 나오더니 다시 길은 고속도로처럼 넓고도 길게 뻗어 있다. 이제 등산객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수리산을 중심으로 군포, 산본, 부곡, 안산 등 인구밀집 지역이 위치하다 보니 사방으로 뚫린 등산로를 따라 많은 시민들이 등산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아줌마, 아저씨, 젊은이, 애들 모두가 각양각색의 차림으로 가을을 만끽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여유롭다. 오후 2시 50분, 안부 사거리의 너른 쉼터에 도착해서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여기부터 슬기봉까지는 가파른 오르막길.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호중은 더 이상의 산행은 무리라 하며 이곳에서 하산을 하기로 한다. 일단 슬기봉을 오르면 중도에 하산하는 길이 마땅치 않으므로 중도 탈출을 하려면 여기서 수리동 방향으로 하산하는 것이 좋겠지. 호중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다시 슬기봉을 향해 오른다.
슬기봉 오르는 길은 깔딱고개. 덥지 않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땀을 뻘뻘 쏟으며 슬기봉을 오른다. 길게 솟은 나무계단 중간의 관망대에 서니 지나온 길이 또렷이 보인다.
효식이 묻는다.
“오봉산이 어디죠?”
내가 일러준다.
“저기, 붉은 박스가 널려 있는 곳이 부곡 컨테이너 터미널이고 그 왼쪽에 나지막한 봉우리가….”
발 아래로 펼쳐진 군포 시내 너머로 멀리 광교산, 백운산이며 오봉산이 보인다.
“맞네요~! 참, 멀리도 왔군요~~^^”
저 길고도 긴 길을 걸어 걸어 왔다니, 사람이 발길이 참 무섭다고 느껴진다.
슬기봉 정상(475m)에는 군부대가 있어 철조망을 따라 크게 돌아 슬기봉 정상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다 되었다. 창환이 쏜 아이스케잌을 달게도 먹고는 길을 재촉한다.
감투봉 오르는 길은 살짝 가파르다.
풍성한 식탁. 갖가지 반찬이 식욕을 돋운다.
다시 출발, 슬기봉 가는 길 초반에는 약간의 업다운이 있다.
길은 다시 소풍길처럼 이어지고
그 길을 데이트하듯 다정히도 걷는 29권효식 부부
임도와 만나는 사거리다.
다시 슬기봉 정상을 향해 출발
아기자기한 슬기봉 등산로- 성재가 가리키는 것은?
슬기봉 – 수암봉 – 창박골
슬기봉부터는 제법 험한 산길이다. 슬기봉에서 밧줄을 잡고 내려서는 길을 지나니 수암봉으로 가는 길이라는 팻말을 붙여 놓은 지붕을 씌운 계단길이 슬기봉을 길게 돌아 나간다. 짧아진 가을 붉은 해를 보며 이제 시간이 넉넉치 못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계단길이 끝나는 지점은 너른 공터. 아마 군부대를 위한 회차장인듯 하다. 공터에는 차양막까지 설치한 간이 매점이 있어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목을 추기고 가기로 한다. 몇은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추기고 얼린 생수 몇 병을 구입한다. 오후 4시 40분, 산객이 일러준 대로 능선길대신 우회로를 택하여 수암봉으로 진행을 한다. 매점에서 산객이 일러준 바로는 수암봉까지 10분이면 간다 했는데 낚시꾼과 산꾼의 큰소리는 믿지 말라는 격언을 잠시 잊었었나 보다. 능선을 따라 설치된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걷다가 다시 평탄한 오솔길을 만나고 그렇게 30여 분을 걸으니 헬기장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수암봉까지는 다시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그러나 오르막길은 길지 않아 10여 분 만에 수암봉 정상(398m)에 올랐다. 바위로 이루어진 수암봉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서쪽으로는 멀리 송도 신도시, 시화호, 안산 시내가 보이고 북으로는 광명시, 다시 동으로는 안양, 군포 시내가 보인다. 마치 백운대 위에서 사방을 조망하는 기분이다.
안산쪽을 바라보며 수룡이 슬쩍 농을 시작한다.
“나, 안산 땅 많은데…”
동식이 놀라 되묻는다.
“안산에도 땅이 있어??”
나와 수룡은 그저 웃을 수 밖에. 왜냐하면 안산 땅이란 안산에 있는 땅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지 않은 땅 즉 ‘안 산 땅’이란 개그이기 때문이다.
멋진 풍광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오후 5시 40분. 하산길은 아직 멀기만 하니 자칫하면 어둠 속을 헤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속도를 높여야 한다. 날카로운 암봉을 잠시 내려서니 다시 길은 부드러워진다. 밑으로 수암터널이 지나는 길은 아름답기만 한데 터널이 가까워서인지 차량 소음이 심하다. 이제 길의 끝이 가까웠으므로 지는 해를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오늘 일정의 막바지를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고 있다. 6시 즈음에 335봉이 바로 앞으로 보이는 곳을 통과하고 호젓하고 아름다운 길을 걷는다. 그런데 무엇인가 이상하다. 산맥의 흐름이 엉뚱한 곳으로 뻗어 있다. 마침 쉬고 있던 부부 산객이 목감 사거리 방향은 저쪽이고 이 방향은 안양으로 가는 길이라고 일러준다. 나무에 달린 표식리본을 따라 왔건만 정작 그 리본은 정맥꾼의 리본이 아니고 다른 산악회의 리본이었던 것이었다. 갈림길까지 되돌아 가기에는 너무 멀리 지나쳤고 시간도 없으므로 우리는 그냥 이 길로 하산하기로 했다. 나머지 구간이 길지도 않지만 그리 의미 있는 정맥길도 아니라는 자기합리화적(^^) 의견에 만장일치하는 데에는 불과 0.5초의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름다운 하산길을 즐겁게 걸어 내려오다 드디어 마을이 있는 창박골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40분. 해는 넘어 갔지만 아직 초가을 땅거미는 깔리지 않았다.
슬기봉을 내려서면 바로 만나는 수암봉 가는길. 정상 군부대를 피해 크게 돌게되어 있다.
계단 위에는 지붕까지 씌워 놓았다. 비와 눈을 피하기는 좋으나 어쩐지 어색하다.
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만나는 간이 매점. 차량이 올라 올 수 있는 곳에서 파는 음료값이 장난이 아니다.
다시 수암봉을 향해 마지막 힘을 써 본다
철조망 길을 벗어나면 다시 평탄한 산책길.
그리고는 헬기장을 만난다. 뒤에 보이는 암봉이 수암봉.
수암봉 정상 가는 길은 제법 가파르다. 절벽 끝 바위에 걸터 앉은 아름다운 여인- 효식은 땡 잡은 사내다.(창환어록에서)
수암봉 정상이다. 높이는 398m로 그리 높지 않지만 사위가 탁 틔여 조망이 일품이다.
이제부터는 계속 내리막길,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헤딩 중이고...
창환의 뽀얀 다리가 다비드상처럼 아름다워서 찰칵~! 원래 쩍벌남 포즈를 찍으려 했지만 카메라 들이대니 그만 닫는다. ㅋㅋ
"어릴 적 별명이 옥환이었어용~^^"
수룡 : "얼렁 하산해서 당구 한껨 하자~"
창환 : " 당구는 무슨....개콘 봐야 해요~^^"
누가 저 돌탑을 쌓았지? 정성껏 쌓은 돌탑에 무슨 사연이 있을까?
날머리에 자리한 대한불교연화종 총본산 - 오늘 산행의 마침표
창박골에는 사찰이 참 많이 있다. 기가 좋은 명당인가 보다.
오늘 뒷풀이는 삼겹살로. 즐거운 산행, 맛있는 식사, 멋진 산우들~~
후기
몇몇 종주대원들이 개인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다는 전갈을 보냈고, 금요일까지 산행공지에 댓글이 별로 없어 쓸쓸한 산행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뒤늦게 성재, 창환, 효식이 참석한다 댓글을 달았고 동식, 호중이가 전화로 참석을 알려 왔다. 다행히 훈훈한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산행을 강요하거나 불참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늘 각자의 사정이 각각 다르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미리 피할 수도 있는 일정 때문에 산행을 같이 하지 못함은 못내 아쉽기만 하다. 산행은 주업이 아닌 여가활동인데 여가활동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다는 것은 혹시 산악회의 운행에 부족함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열정이 식어서일까 무척 궁금해진다. 무엇을 어떻게 개선하고 보완해야 할까 고민해 본다
첫댓글 형님 수고 많으셨읍니다. 27기 형님들 화이팅.
29 동기들도.......
형님들의 훈훈한 내음이 물씬 전해오는 아름다운 가을 산행입니다...
7구간 종주산행도 멋졌습니다
우리 부부 지각이라는 큰죄를 졌음에도 너그럽게 배려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에도 선후배간에 정담을나누며 즐거운 산행 이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추석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회계결산이 늘 늦어 죄송~
전기이월 : -77,800
7구간 수입 : 160.000 (20,000 x 8 )
7구간 지출 : 식대 125,000 + 택시 12,000 (3,000원 x 2대x 2회) = 137,000
7구간 결산 : + 23,000
현 잔액 : - 54,8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