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무리
(서정주 시 '국화옆에서'에 화답함 )
인묵 김형식
저 모래톱 하나 만들어 내려고
하늘은 그렇게 폭우를 퍼부었나 보다
저 모래톱 하나 만들어 내려고
탄천은 도심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강 입구에 모래톱 하나 솟아났다
세월의 머언 뒤안길에서
그립고 아쉬움에
우리 어머니 젖가슴 같은
모래톱 하나
다시 돌아와 자리 잡고 앉아있다
왜가리 청둥오리 가마우지 철새들 놀고 있는 자리에
갈매기 두어 마리 날라들어
이곳은 우리들의 고향이었는데...
끼룩 끼룩 눈물을 훔치고 있다
어찌 내 아니 다를소냐
고향 떠나온 길손
한가위 보름달
그 고향 달빛 그리워서 멈춰 선 나그네
네 서린 품속에서
망향의 눈물 짜 내려고
간밤에 달무리는 그리도 외로웠나 보다
(22년 8월28일, 제7집 수록)
ㅡㅡㅡㅡㅡㅡㅡㅡ
●국화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필라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보다
~~~~~~
◇.시 '국화옆에서'는 4연 13행의 자유시로 서정주의 대표작이다. 1947년 11월 9일자 경향신문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이 시집에 수록된 것은 서정주시선 徐廷柱詩選 (1956)에서 비롯된다. 이 시는 국화를 소재로 하여 계절적으로는 봄·여름·가을까지 걸쳐져 있다.
국화꽃의 처연한 이미지가 시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아울러 소쩍새의 울음소리와 천둥의 청각적 이미지가 국화꽃이 상징하는 죽음과 함께 공명한다.
젊음의 뒤안길을 돌아 한 송이 노란 국화꽃으로 핀 누이의 모습 앞에서
화자는 슬픔을 삼킨다.
우리네 삶에도 슬픔, 상실, 아픔이 존재햐다. 화자가 누이를 잃은 아픔을 느끼듯 말이다. 그러나 언젠가 그 아픔은 한 송이의 국화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국화 옆에서 아름답게 부활한
아픔을 마주하며 그렇게 우리도 한 송이 국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국화 옆에서'의 ‘국화’는 괴로움과 혼돈이 꽃피는 고요에로 거두어들여진 화해의 순간을 상징하는 꽃으로 이 시에서 ‘국화’의 상징성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봄부터 울어대는 소쩍새의 슬픈 울음도, 먹구름 속에서 울던 천둥소리도, 차가운 가을의 무서리도 모두가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시적 발상법은 작자 스스로 생명파로 자처하던 초기 사상과도 관련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의 핵심부가 되는 3연에서 ‘국화’는 거울과 마주한 ‘누님’과 극적인 합일을 이룩한다. 작자는 여기서 갖은 풍상을 겪고 돌아온 안정된 한 중년 여성을 만나게 된 것이다.
젊은 시절 흥분과 모든 감정 소비를 겪고 이제는 한 개의 잔잔한 우물이나 호수와 같이 형型이 잡혀서 거울 앞에 앉아 있는 한 여인의 영상影像이 마련되기까지 시인은 오랜 방황과 번민을 감수해야만 하였다. 지난날을 자성自省하고 거울과 마주한 ‘누님’의 잔잔한 모습이 되어 나타난 ‘국화꽃’에서 우리는 서정의 극치를 발견하게 된다.
작자는 이 시에서 한국 중년 여성의 안정미安定美를 표현했다고 하여 제3연의 ‘누님’이 그 주제적 모티프(motif)가 된다고 하지만, 그것에 못지않게 ‘국화’의 상징성도 중요하다. 이 시에서 우리는 국화가 피어나는 과정을 통하여 한 생명체의 신비성을 감득할 수가 있다. 찬 서리를 맞으면서 노랗게 피는 국화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표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