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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을 등산
물든 낙엽이
햇살 타고
사르르 떨어지네
소슬바람 불어와
솔 냄새 향긋하고
산새들이 여기저기
숨어서 지저귀네
알밤이
쏟아져 뒹굴고
물가의 두꺼비도
가던 길 멈추고
반기듯 쳐다보는데
이름 모를
변화의 꽃들이 웃으며
반기는 구나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
풀벌레 소리 다람쥐 쇼가
함께 어우러진 그윽한 산길을
즐겨 오르던 사람
2. 가을이 오면
쪽빛 하늘에
얼굴 하나
반쪽은 단발머리 앳된 소녀
반쪽은 회색빛 빛바랜 노인
낙엽에 새겨진 회한의 시간들
바람에 찢겨 나가고
남은 것은
버리지 못한 꿈이다
3. 대지의 갈증
타는 목마름으로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갈증은 의식 없이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다
가슴 속에 심어놓은
사랑의 씨앗처럼
한줄기
소낙비를
기다리는 타는 마음
4. 감성 시대
사랑 꽃은
저녁이면
꽃과 잎을 접는구나
나비 날개 진자주 빛
고운 잎 달고
가냘픈 꽃대 길게 돋아
꽃봉오리 맺고 있네
아침 햇살 드리우면
꽃 문을 활짝 열어
가녀린 꽃을 피우고
진자주 옷 펼쳐 입고
홍조 띤 하얀 얼굴로
활짝 웃는 사랑 꽃
왠지 모르게 사랑이 가누나
그늘 피해 빛 드는 쪽
자리 옮겨 놓으면
미동의 몸짓으로
꽃은 속삭인다
난 빛이 좋아. 밤은 싫어!
해가 지면 꽃과 잎 접으니
다시 볼 수가 없네
5. 강낭콩
울타리 주렁주렁
강낭콩이 열렸다
모진 태풍 맞아
올 농사는 피롱이다
콩꼬투리 노릇노릇
여문 것만 따왔다
알알이 색깔이
저리 고울까
자주 깜장 얼룩이
남은 사랑!
6. 겨울 보리
사랑의 손길로
뿌려진 효의 보리
하얀 서리 밭에
촉을 틔웠다
칼바람 불고
살얼음 밀려와도
죽어간 보릿고개
눈물겨워
눈에 덮치고
발에 밟혀도
새파랗게 보리 싹은
다시 돋아나고
7. 겨울 나무
여름은 나뭇잎
땡볕 가리고
겨울은 알몸으로
햇살 받는다
응달에 추운 바람
손 시려도
서로서로 손잡고
겨울을 난다
낙엽으로 따스하게
발을 가리고
찬 눈이 내려도
겨울을 난다
8. 고랭지 배추밭
고도 일천미터 산비탈
청정한 자연 속에
푸른 배추밭
잡목의 불모지 돌밭 일궈
어린 묘들이
푸른 기운 펼쳐 놓고
깊은 산속에
처절한 삶이 묻혀 있고
배춧잎들이 가쁜 숨으로 너울거린다
불거진 손마디 주름진 얼굴
땀방울에 핀 환한 미소
풍성한 배추밭에
목동의 푸른 꿈도 익어간다
9. 고우(古友)
동갑내기 비보가
믿기지 않아
엊그제 만나던 날
커피 한 잔 나눴지
오가다 만나면
유년의 농담 어린
이 얘기 저 얘기
30여 년 꼭 지키던 자리
순성부동산
오늘은 지나던 길
굳게 닫힌 문
잠겨진 문 앞에
편지만 쌓이고
나들이 먼 길
어딜 가셨나
주인 없는 간판만이
나를 반기네
10. 고향이야기
개구리 울면
비 온다지
찌푸린 하늘
빗방울 던지고
비구름 안개로
산 아래 깔리면
헐떡이는 개구리
울음소리 따라
들녘 끝까지
하늘 멀리
고향 소식 전한다
11. 곡우(穀雨)
초췌한 겨울의 고뇌가
빗물에 떠밀려가고
얼굴을 내미는
푸른빛에 잠긴 하루가
살아온 날의
책갈피 속에서 웃고 있다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풍년을 약속하고
어디에 간들
이만한 삶이 있으랴
오늘은 먹물을 듬뿍 묻혀
휘호(揮毫) 하나 써보리라
그 이름
안빈낙도(安貧樂道)!
12. 공멸의 발광 시대
산엔 진달래
들엔 개나리
활짝 웃고 있다
4월의 눈발이 날린다
철 모르는 추위
북녘의 발광
이어지는 뉴스 속보
세계는 평화공존
공유의 삶이어늘
공갈 협박이 난무하니
세계가 지탄한다
속 아파 우는
하늘의 눈물이
민족의 눈물이
냉가슴앓이
얼어붙은 눈물이다
연분홍 진달래
바람에 하늘하늘
외 따른 산속
찾는 이 없어도
홀로 지키다 말없이 지듯이
조국 산하에 꽃은 피고 지고
강물은 유유히 쉼 없이 새롭건만
변할 줄 모르고
전쟁놀이로 민족의 공멸을 자초하고 있구나!
13. 광명(光明)
말구유에서 빛으로 태어난 이도
아버지 이름도 모르는 쓰레기통의 아이도
모두가 빛이어늘
해와 달이 만나
서로를 비웃다 갈라진
세월
존재가
존재이기를 거부하고
만난 천형
이별은 그리움이지
14. 그날이 온다
혼곤한 잠에서 깨어라
가야 할 길이 있다
유관순 누나의 혼이 숨 쉬고
역사의 눈이 숨 쉬는 독립기념관을 지키는 일이다
준령을 넘고
강을 건너
고뇌의 언덕을 오른
주민들이여
뭉치면 살고
헤치면 죽는다
3·1 독립운동 정신으로
피가 튀는 가슴으로
불합리를 이기고 합리를 찾아
나들이 간 행복을 부르자
16만 주민의 꿈은
우리 손으로 이룬다
하나가 되자
함께 가자
살이 튀고 피가 튈 때까지
승리를 향해 가자
그날이 오면
우리는 가슴을 열고
엉엉 소리 내어 울리라
하늘을 향해 환호하며 웃으리라
그날은 우리 손에 있다
혼곤한 잠에서 깨어나라
미망의 잠에서 깨어나라
그날이 온다
15. 끝이 없는 길
저녁 해 기울어
숲 그림자 짙은데
햇살 바람이
창으로 넘어와
또 하루를 재촉하네
바람은 붓 끝에 일고
오늘도 긴 여정
갈 길 바쁜데
홀로 울어대는
개구리 울음소리
가슴을 울리고
너도 하루를 재촉하는가
아득한 유년(幼年)의 기억들이
빛 속에 스멀거리고 있네
지는 하루 빛
마음은 붓 끝에
바삐 모아지고
가도 가도 길은
어찌 보이질 않는지
16. 김장
엊저녁 늦게까지
김장하느라
아침이
한나절이 넘었다
손녀 수연이
밥 한술 뜨고 TV 보고
이리저리
늦장만 부린다
옆자리 할아버지
소주잔 기울이며
밥 잘 먹어야
건강하지
시계는 11시
아침은 걸렀구나
점심에 오리백숙
물 건너 간 게지
17. 길(脈)
자정을 지나
잠에서 깨어나
문학의 뜨락을
서성이다가
절절한 아픔
귓전에 쿵쿵 뛴다
쉬지 않았는데
차츰 멀어진다
살아온
쉴 수 없는 길!
또 하루의 새벽이 와도
가려진 안갯속
갈 길은 바쁜데
길은 보이지 않아
18. 꿈속에 꿈이다
낙엽들의 윤무
허공에 날린다
아무렇게나
땅 위에 잠들어
마지막 빛과 향기로
아름답게 수놓고
울고 웃다 가버린
세월의 고통도 잊고
윤회는
아름다운 것인가
인생도 낙엽이어늘
참! 꿈속에 꿈이다
19. 꿈
생의 무거운 짐 길에
몰고 온 한파
무지갯빛 쫓아
허덕여 살아온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살아왔어
평생의 염원
언제나 같이 했던 너
세월만 가라 가라 했는데
흰 갈대 머리에
시린 바람 불고
새 꿈은 꾸어도 삐걱거려
아직 할 일도
남았는데
나 꿈꾸다 죽으면
꿈속에서도 꿈을 꾸리다
사랑했던 너를
못다 한 너를
20. 낙엽편지
눈부신 가을
하늘 구름 높고
나무마다
빛의 향연
가슴을
불 태운다
불길에 날리는
춤사위는
이별을 가장
아름답게 한다
숱한 사연
낙엽의 편지는
밤을 새워
읽어도 알 수 없다
너도
나도
바람에
낙엽인 것을
21. 난초(蘭草)
붉은 꽃
푸른 잎
청초(靑草) 간직한 채
고개 숙인 너
깊은 골짜기에서도
향기가 난다
비바람 눈바람
거칠어도
늘
푸른 마음
그리움
아픔의 몸살일 게다
22. 난향(蘭香)을 기리며
선녀(仙女)의 날개깃 속에서
나는 내음이다
절절한 아픔 어쩌지 못해
고개 숙이고
깊은 사념(思念)의 세계를
반추하는 시간
탁자 위에 선비가 되고
홀로
그윽한 성좌의 자태를 닮는다
몸에 밴 그리움
침묵으로 삭히며
시간 앞에 가부좌틀고
향기에 취한
나
또 하나의 그림이다
23. 내리사랑
쾌청한 날
찌푸린 날
걱정하는 하늘
빛을 내려
생을 주고
목마른 땅에
비를 내린다
하늘 마음
부모 마음
내리사랑
흐린 날 개인 날
울고 웃는다
24. 노란 살구
푸른 잎 사이
노란 살구들이
바람을 노래한다
엊그제 꽃피고
열매 맺더니
잘 익은 그 빛깔
해를 닮아
달을 닮아
그 빛도 반반
잔잔한 유혹
황홀함
세월에 밀리고 갈 곳은 없다
뚝뚝 떨어져 침묵의 늪으로
깨지고 이지러져도
마알간 아침 웃음
깨끗함의 극치는
순백의 버진
어제도 오늘도
세월을 줍는다
나도
세월인 것을
26. 노을 앞에서
저마다의
아름다운 빛들이
머물다간
빈 공간에
하루의 그리움 안고
어둠이 내린다
오늘도 내일도
가야 할
보이지 않는
길을 간다
그 길을 가다 보면
보이지 않는 사람들
멈출 줄 모르는
시간은 흐르고
노을빛 저무는 언덕에서
자신을 만난다
26. 눈 내리는 날
나풀나풀 춤을 추다가
기진맥진 땅 위에 앉아
꽃이 되는 순간이다
차가운 이성
쌓이고 쌓이면서
고향을 잃어버린 유랑
하늘을 날던
유년의 꿈
사위어 가는 육신의 한
질식하였던
젊은 날의
그리움이 녹는다
세상이 덮일 때까지
쉬지 말고 내려라
27. 눈 오는 날
거리에
함박눈
퍼붓는다
차들이 눈을 맞아
하얀색
엉금엉금 기어간다
한산한 사무실
화사한 회 두 접시와 소주
할 일 없이 앉았던
오랜만에 찾아온 사람들
희뿌연 눈발이 쏟아지는
창밖을 보면서
한 해를 보내는 회한의 미소
서로 권하는 한잔 술에
짜릿한 전율
하나가 된다
우물쭈물하다가 가버린 한 해
그리움과 아쉬움들이
눈발 되어 휘날린다
28. 달빛
둥근 보름달
금빛을 뿌린다
풀잎에 이는 바람
그쳤다 다시 일고
들리다 안 들리다
귀뚜라미 소리
풀숲에 숨어서
달맞이 하나보다
차면 기울고
기울면 차는
오랜 세월 말해주는
달빛이 아니더냐!
서리바람 불어와
나뭇잎 고우니
풀숲에 모여서
달맞이 하나보다
흐르는 달빛 타고
고향 들녘 아득히
들리다 안 들리다
풀벌레 소리!
29. 독립기념관
흑성산 봉우리
반공에 높이 솟고
낮은 구름 산허리를
하얗게 둘렀다
길게 산자락
남으로 뻗어
그 품에 우뚝 솟은
독립기념관
붉게 타는 단풍은
겨레의 횃불인가
조국의 수호신
애국지사들
오늘도 나라 걱정
끊을 길 없네
30. 동해의 빛
녹음의 축복 속에
활짝 핀 웃음
은빛 햇살 눈부신
중부고속도로
단합대회 만남은
신뢰의 하루
음주가무로
이어진 여행(旅行)
혁신의 바람을 꿈꾸고
솔밭을 지나
모래톱을 걸어서
푸른 바다
쾌속정에 승선해
검푸른 파도를 타고
흰 물살 일며
치어 떼어 도약(跳躍)처럼
가슴 치는 시원함
동해의 빛 속으로
빠져들었다
31. 만가(輓歌)
곡우날 비는
단비라는데
풀잎마다
꽃잎마다
봄비가
촉촉이 내린다
푸른빛에
잠긴 하루
4월에 꽃비가
눈처럼 내리는 날에
낙화(洛花)는 빗물에 실려
만가(輓歌)를 부른다
32. 만수계곡
맑은 물 돌 사이
굽이쳐 흐르고
흰 물빛 깊어서
검푸르다
절정의 녹음 빛
골마다 푸르고
한나절 매미 소리
끝일 줄 모른다
33. 맹꽁이 소리
장마 끝
저녁 바람 타고
창틈 스며오는
가까이 멀리서
맹꽁이 울음소리
들리다 안 들리다
귀 기울이면
풀벌레 소리로
밤이 흐른다
34. 목숨으로 같은 은혜
동악의 명산
보은(報恩)의 설화(說話)
신라 천년 역사
살아 숨 쉬는 곳
상원사 종소리
가슴 울린다
소복(素服)한 바위에
숨겨진 전설
치악산(雉岳山) 혈루에
가을빛이 물든다
35. 무릉계곡
두타산(頭陀山) 봉우리
구름 위에 치솟고
산자락 골마다
구름 꽃 피웠다
오색 단풍 희미하게
운무(雲霧) 속에 숨고
무릉계곡 깔아놓은
너른 반석(磐石) 위로
쏟아지는 흰 물살
지축을 울린다
우람한 물소리
세속사(世俗事) 모두 끊고
그 옆에 노송(老松)들
둥근 바위도
청초함과 굳은 절개
오늘도 변함없이
묵묵히 안개비
젖어있구나!
36. 무아(無我)
오늘은
나
어제는
나 아닌 너
내일은 꿈
어쩌면 하루살이
나를 나라고
부르는 순간
나 아닌 나
존재의 존재는
어디에도 없는 것인가!
37. 무위(無爲)
책장 앞에 펼쳐 놓은
반야심경
무위(無爲)의 독경소리
공간에 흐르는데
아침 햇살 살며시
창가에 밝았네!
38. 물극필반(物極必反)
봄의 따스한 햇살
활기와 싱그러움
생의 촉을 틔우고
땅을 뚫고 빈공에
야들한 새싹들 꽃 피워 환한 웃음 짓더니
봄빛도 잠깐 꽃잎이 날린다
여름의 열풍은 용광로
녹음이 뭉글뭉글 피어오르고
쉼의 그늘 펼치니 생의 소리 가득하고
보채는 풀벌레 매미들 보듬어 안고
지친 바람도 더위를 식혀간다
갈바람에 출렁이는
황금불결 불타는 단풍
스며드는 무지갯빛 슬픈 노래
요령소리 되어 가을 들녘 울린다
낙엽을 떨구고
제 몸 추스르는 나목들
할 일 잃은 허수아비
빈 들녘에 성긴 눈발 날리니
깊은 회환에 빠져
계절의 윤회 앞에 성쇠의 무상함을 본다
39. 물길
땅으로 천년
수도(修道) 끝에
억겁(億劫)의 바위 틈으로
얼굴을 내민다
차고 투명하다
온갖 빛이 빨려 들고
떨어져 피는
순백의 안개꽃에
가는 바람이
희살 짓고
강으로 천년
구름으로 천년
파아란 길
나도 가야 할 길
40. 바닷가 회식
움츠린 햇살
대천항 부두
푸른 바다 술렁이고
창 너머 그리움 부른다
맑은 소주잔을
부딪힐 때
카~! 아찔한 전율
보드란 횟감이
입안에 꼬리 친다.
한해의 세월 끝에서
인생 무상함의
서글픔보다
어울린 술잔 속에
시름을 잊는다
너르고 깊은 바다
푸른 교훈 일렁인다
푸르다 못해
하얀 포말의 물살
갈매기도 부러워서
바다 위를 에운다
41. 바람
비집고 헤집는
송곳 바람
병색이 완연한 세월
무위 세월을 잉태한다
사랑을 잃어버린
구름
비
열풍은 용광로
가슴은 한겨울
詩는 없는 것인가
바람(風)은 바람(望) 되어
한 줄의 시구에도
이지러진 비아냥
하늘과 땅 사이
비좁은 골목을 넘나드는
바람 같은 詩
배낭 속의 작가 노트가
뜻 모르게 웃는다
42. 바람이 되고 싶다
창문으로 밀려오는 바람
가슴속까지 파고든다
달력을 자꾸 넘긴다
밀리는 세월
채찍하는 바람을 본다
시계 초침은 쉬지 않는데
마음은 정지된 체
몸만 앞서간다
하늘을 보면
떠가는 구름
날아가는 기러기
푸른 바람 타고
하늘 저편 가는 곳 몰라
사라지는 그리움
땅을 보면
언덕배기 마른풀 살랑이며 노래하고
강물에 잔물살로 詩를 쓰는 이여!
우주에 떠도는 아름다운 빛들을
시로써 적을 수 없어 잠 못 이루는 시인이여!
하늘과 땅 사이 바람이 되고 싶다
43. 반지하
창(窓)으로 내다본
화려한 앞집
베란다에 놓인
팬지꽃 화분
나도 그 꽃을 키우고 싶다
꽃피면 손주와 어울려
향기를 맡고 싶다
창이 작아 시야는 좁지만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삶이 눅눅하고 어둡지만
소박한 행복
찬란한 불행은 허망한 삶의 덫
지상으로 가는 너는 주춧돌
어두컴컴한 방
창틈으로 현란한
무지갯빛을 본다
44. 반가운 참새
산과 들에 눈이 하얗고
창 밖에 앵두나무
가지 위에
바람 타고 날아든
참새 두 마리
그 깃털 고운 빛깔
반가운 참새야
너는 그대론데
나만 어찌 변했는가
눈은 초롱초롱
고개만 가웃가웃
참새야 그때처럼
이웃해서 살자꾸나
뛰놀던 옛 시절
참새야! 너는 알지?
서산 노을 속에 해가 기울고
어스름 길 속에 집을 찾든
하루하루 즐거운 희망이었지
참새 날아간 빈 가지
그리움 걸리고
노을과 무지개는
꿈이었나
45. 밝은 빛
영혼들이 잠든 병상에 누워
자신을 돌아보니
세월 앞에 짐 하나
내려야 할 시간인가 보다
짧은 인생 위대한 빛
아름다운 사랑
봐서 안 될 것을 보면
볼 것을 못 본다
빛바랜 시간 속에
하얀 머리
땅이 열리고!
하늘이 열리고!
새벽을 향한 요요한 별빛
밤은 광활하다
우주의 밝은 빛을 보라
그 속에 나도 우주인 것을
46. 백두산 단풍
황금 용포로
휘감은 영성
숨소리마저 고요한
늪에 빠져 있는
거대한 짐승의 울음소리
바람 구름 일어
몸을 가린다
각혈하는 붉은 넋
흔적 없는 춤사위가
하늘을 가른다
무지개 빛살로 낙화하는
슬픔의 작은 소리를 듣는다
사계(四季)의 빛
윤회의 굴레
47. 백지
꿈꾸다
깨어 보니
어둠 속에
하얀 빛
백지인 줄
알았는데
줍고 보니
달빛이네!
48. 버들피리
개울가 버들잎
파릇파릇 눈뜨면
버들피리 꺾어 불던
애절한 사연
오아 오아 애고애고
삘릴리 삘릴리
들녘에
아지랑이 일고
뒷동산 할미꽃
올해도 피었는데
이사 간 옛 동무
소식이 끊겼네
49. 봄길에서
벚나무 가지마다
새눈이 텄다
수줍은 소녀의
방긋 웃는 얼굴로
불그스레 몽실몽실
꽃망울이 부푼다
연약하고 부드럽게
부푼 젖가슴
그 어찌 강인함이
추위를 떨치고
향긋한 입김
무언의 손짓은
황홀한 봄날을
들뜨게 한다
50. 부들채반
이삭주운 인삼(人蔘)을
물에 씻어
널 그릇을 찾는다
온실 속에 비어 있는
낯익은 부들채반이
나를 반긴다
담아 말릴 퇴색된 채반
어머님의 슬픈 미소
아 어머님!
여기 계시네!
굽이굽이 한 돌림
두 돌림
힘써 조이며
애쓰신 흔적
여기다 널어라
소용하게 써라
그리운 음성이
옆에서 나는 듯하다
몇 날의 손길과 정이 담긴
부들채반에 인삼을 널었다
어머님과 같이 널어 놓았다
51. 불신(不信)
사랑은
안개꽃
묵묵부답
진리는
말이 없는데
빛과 어둠이
호기로운 세상
화려한 불행은
허망한 삶의 덫
진실은
없는 것인가?
52. 불꽃같은 세상 속으로
나침판 위에서
방향을 잃어버린
굴뚝새 한 마리
굴뚝은 없고
화기는 구름이 된다
구름을 타도
바람을 타도
길은 보이지 않고
가슴은
용광로 같은 불 속
세상은
용광로 보다
더 뜨거운데
날자! 날자!
세상 속으로
53. 불이(不二)
한해의 끝에서
나뭇가지도 움츠린다
찬바람 타고 날아든
깜장머리 솔새 한 마리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방을 돌아보고
나무껍질을 쪼아 본다
쪼다 쪼다 날아간다
남기고 간 말 한마디
난 불행하지 않아!
행(幸) 불(不)도 내 탓
살아 있음의 기쁨일 뿐
54. 불이문(不二門)
5월의 푸르름 속
흐드러진 으름꽃
줄기마다 연등불
총총히 밝히고
꽃향기 가득
바람 이는데
공중(空中)에 소리 없는
五月의 낙화(落花)는
너와 나 둘이 아닌
불이문(不二門)
55. 빨간 자두
텃밭에 빨간 자두 한그루
색깔이 고와서
맛이 좋아서
까치들이 꼬인다
독수리연 공중에
허수아비 땅 위에서
까치 쫓느라
밤을 꼬박 샌다
낮에는 셋이서 까치를 쫓는다
삽괭이 들고 왔다 갔다
강렬한 햇살에 땀에 젖는다
허수아비 밀짚모자
내 모자와 바꿔 쓰면
허수아비 고개만 갸우뚱
먹히고 먹는
울고 웃는 양면에
허허로운 눈빛
빨간 자두 터질 듯
익어간다
새콤달콤한 그 맛!
56. 사람대접
천형(天刑)으로 멈춰진
작은 몸
이리저리 밀리어
버려진 삶
움츠린 햇살
퇴색된 아픔
갈증의 바람 몰아치고
가슴은 까맣게 타
숯검정
마음도 몸도 잦아들 뿐
찬바람만 설렁한
겨울이다
버려진 종이컵만도
못한 인생(人生)
환히 웃는 종이컵
그의 부름을 들었다
종이컵을 팔아 장학금 전달
맘을 바꾸니 세상이 바뀐다
오라는 곳 많고
사람대접 받으니
작은 몸 닳고 닳아도
종이컵 쌓이는 기쁨
몸도 마음도 커진다
57. 산을 오르며
산은 말이 없다
고독은 지나간
바람일 뿐이다
새로운 바람이
산자락에 불어온다
산은 오르기는
어렵지만
오를수록 시야가
펼쳐지는 산
산길은
아늑하고 포근하다
마음은 유리알 같아
물을 보면 물이 되고
산을 보면 산이 되고
자연은 무언의 교훈이다
58. 한복
박물관 초가집에
전통 혼례식
푸른 댓잎 사이에
고운 한복 차림
무지개 빛살로
젖어드는 전율
대추나무 아래
초례청 마주한 신랑
나는 아버지
그녀는 어머니
일순 스쳐간 인연의 늪
한 귀퉁이에
쪽빛 치마에 옥색 저고리
고왔던 살결
가버린 세월
그래도 아직은 남아있는
저린 가슴에 담긴 한(恨)은
그녀의 눈빛일까?
한복일까?
59. 삶의 갈등
산다는 건 부디 침
거미줄에 걸린 생명들
실고의 아픔을 본다
하루해 저무는 바람길
벚꽃들이 지는 계절 속에
꽃비 되어 땅끝을
하얗게 물들인다
누가 술잔에
진달래를 떨어뜨린다
술을 마셨다
빛 향취 휘감은 술
짜릿한 맛
먼 유년 시절
산비탈에 붉은 진달래
그 꽃을 꺾지 마라
꽃이 아닌 아픔이다
보이지 않는 길
그림자 일고 지니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60. 새해 소망
다사다난한 해가 어둠 속에 가고
여명을 밀치고 붉은 해가 솟는다
하늘과 땅에 생명의 빛깔
붉게 타 그 빛이
온누리에 찬란하다
어두운 마음에 밝은 빛을
시린 생명들에게 따스한 빛을
가없는 사랑의 빛을 내린다
진하고 아름다운 태양의 神이시여
살고 살아도
불안과 허전함
사랑과 희망이 가득하게 하소서
새로운 시작을 잃지 않게 하소서
61. 생(生)과 사(死)
아침 식사
같이 했던 외아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아
화급히 걸려온 전화
병원 영안실
문 밖이 저승이라더니
학교길 교통사고
집 잃고
영안실에 누었는데
저녁상 차려 놓고
기다리는 어머니
방문을 두드린다
불러도
텅 빈 방
62. 생의 뒤편
눈 감은 돼지머리
고사를 지내기 위해
가마 속에 삶으면
하얀 눈을 치뜨고
세상을 향해 웃는다
고사신이 되어
웃는 너의 모습 속에
삶에 무상함을 보고 간다
생의 뒤편에 서서
유무를 떠난 마음의 자리
63. 생의 초점
훤히 밝아오는
창 밖을 보았다
길도 나무도
하얀
눈꽃을 피웠다
동쪽 하늘 불그스레
동이 터오고
허공에 찬 기류
태초의 새벽
새로운 빛이
창을 두드린다
오늘도
생의 초점에 서서
새바람 길을 연다
64. 생일날
아침 창문을 여니
생일 축하드려요
바람과 햇살이
나를 반기며
조용히 속삭인다
케이크 위에
칠십 생애의 촛불이 웃고
회한의 촛농 눈물되어 흐른다
흔적마저 지워지지 않는
그루터기 앉아
스러지는 석양을 향하여
고개를 주억거린다
햇살아! 바람아!
너희들 참 고맙다!
65. 서성이는 바람
창밖에 봄비가
내린다
나도 비가 된다
싸락비가
싸락눈으로
뜰 위
서성이는 바람!
가고 오는
아쉬움도
무거움인가!
변화의 그리움들이
부서져 내린다
66. 설날
아가 종손들 둘이 서서
한복 곱게 입고
종알종알 노래하고
절도 해보고
세배하려고 준비한 모양이다
몰라보게 모두 커서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어린 손들은 귀엽고
큰손들은 씩씩해 보이고
어린 종손부터 세배를 받았다
“건강하세요. 오래 사세요.”
두 손 모아 공손히 엎드려 세배한다
세뱃돈을 나눠주니
“고맙습니다.”
입이 벙긋 싱글벙글
웃음 짓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엔 주름만이 가득히
일가족 모두 모여
즐거운 날이다
67. 설 명절 -떡국-
떡국 먹고 나니
나이 한 살
더 늘었네
조상님 계신 곳
산길 오르는 데
나이 팔십 큰 형님
가쁜 숨 몰아쉬네
하얀 눈 쌓여 가파른 비탈길
누군가 올라간 발자국 따라
조심조심 산소에 올랐다
눈 이불 덮고 잠드신 부모님 산소에
제물로 포 과실 술 따라 올리고
하얀 눈 위에 엎드려 사죄한다
68. 성묘 길에서
시간이 익으면
고개 숙인 벼이삭이 무거워지는
청명(淸明)한 가을 하늘의 공허
성묫길에 오른다
상석(床石) 위에 놓인 햇과일이 웃고
잡초 속에 누워있는 어머니의 미소
성긴 잔디 위에 술을 뿌린다
비명(碑銘)의 눈물 불효자식(不孝子息)의 한(恨)
엎드려 흐느끼며
육중한 어머니의 무게를 느끼는 시간
나도 세월이 다하면 어머니 곁으로 가야지
돌아오는 길
주름진 이마 위에 가을 햇살이 더 따갑다
나 자신 자식의 자식도 이 길 위에 서있겠지
갈 때 보다 더 처연하다
69. 세월
변하는 인생의 늪에서
평생 염원
세월에 담아왔지
고향을 찾아도
빛바랜 유년의 꿈
내 집은 없어
스쳐간 인연들
쓸쓸한 바람으로 불어와
봄빛 햇살에
내 그림자 밟고 서서
변화가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저 반짝이는 물살
옛이야기 물소리
아득히 밀려온다
여보게!
잠시
쉬어 가게나
70. 순천만 갈대밭에서
갈밭에 누워 익사를 꿈꾸는 노을은
저 혼자 심심하다
거룻배 한가로이 주인을 기다리다 누워있고
햇살의 편린은 거먹게를 눈멀게 한다
바람결에 들리는 갈대의 소리
너도 세월이 가면 머리가 하얗게 센단다
머리보다 먼저 하얘진 마음이 웃는다
부대끼며 살아온 갈대의 고뇌들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이 소중한 것
윤회는 쓸모없는 기다림의 연민인가
내 인생 갈대보다 나은 게 없다
71. 술 한 잔의 행복
삶의 얼룩으로
허기진 세상
유년(幼年)의 기억은 가고
남은 것은 골목길 바람
오늘도 여망을 담은 태양
회색빛으로 진하다
혀끝에 감도는 한 잔 술에
짜릿한 전율의 행복
시름의 구름 걷히니
세상이 내 것이다
72. 신록
햇살이 낮게 내리고
야들한 잎들
바람과 속삭인다
이름 모를 들꽃
몰래 꽃망울을 피웠다
지저귀는 새소리
녹음에 묻히고
무게 잡는 돌
나르는 벌
살랑이는 풀잎
끄덕이는 꽃대
푸른 솔 사이로
피는 바람
향긋한 입김은
신록의 오월을
들뜨게 한다
73. 포장마차
바퀴가 고향을
잃어버린 집
드리워진 차일에
어둠이 깃들면
간드레 불빛
유녀처럼 흐느낀다
쉼터를 찾는
굶주린 영혼들
소주잔 속의 대화
한숨이 녹는다
74. 아카시아
아카시아
향기 가득
푸른 바람 일고
흐드러진
꽃들이
눈처럼 희다
오가는
세월의
길목에 서서
가시마다 퍼렇게
날을 세우고
백의종군
하얗게
길을 밝힌다
75. 알 수 없는 날
창밖이 밝으면
희뿌연 하늘빛
까치 떼들 그림자
새벽하늘 수놓는다
저들만의 대화
다정한 가족이다
피뢰침에 매달려
생을 담론한다
살아온 날의 좌표
살아온 날의 꿈들
오늘도 알 수 없는 날
바람은 멈추지 못하는데
빨간 해가 웃는다
76. 어딜 가지
산마다 타는 단풍
지기도 서러운데
진눈깨비 펄펄
몰아친다
정지된 가을
땅으로 들고
산 위에 하얗게
겨울이 내렸다
변화의 꽃길
거닐고 싶다
떨리는 낙엽들
어딜 가지
바람길 따라
앞서간 길 따라
작은 먼지로
나르는 날
시공(時空)은
자유로울 것을!
77. 얼굴
오랜만에 만나서
관광(觀光) 가는 날
반가운 얼굴마다
애틋함이 서려있다
미소(微笑)진 얼굴
행복(幸福)한 얼굴
고생(苦生)을 낙(樂)으로
사는 길이었다
웃음과 울음의
교차(交叉)하는 만감(萬感) 속에
세월(歲月)의 자욱이
얼룩진 얼굴
미소짓는 얼굴에서
그 얼마나 애틋함이
이젠 더 이상
웃음 가득 안고 가야 한다
생사일여(生死一如)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행고일여(行苦一如 )
헤아림 속
부처님 얼굴이었다
78. 읽어버린 풀 등걸
잃어가는 생명 앞에
바람은 거세다
얼음 사이 오리 떼
봄꿈에 깊고
고개를 흔드는
마른 풀 등걸
불지 않으면
바람이 아니더냐
어제는 친구
오늘은 아닌 너
그게 아닌데
고요한 늪 태초의 빙판
찢기는 굉음
가슴을 찢고 허공(虛空)을 가른다
물밑 경칩(驚蟄)도 놀라 눈을 뜨고
꿈틀 거린다
봄꿈에
봄꿈이 되돌릴 수 없는 나
79. 여명의 새 아침
어제는 영원한
역사 속으로
어둠은
오늘을 탄생하고
변화는
변화를 낳는데
무지갯빛으로
찬란한 당신!
당신은 몸을 태워
어둠을 가리지만
어둠 속에
당신은 더 아름다워
80. 여행
산을 뚫고 바람을 타고
세월의 길을 간다
집착을 떠나
유영하는 영혼
산과 나무
하늘과 구름
하나가 된다
오가는 술잔 속에
정이 듬뿍 웃음이 가득
달리는 속도이상
끝을 향해 질주하는 운명들
체념 속 하루는 가고
가로등이
환히 꽃길을 연다
지는 저녁노을
만남의 여운 안고
추억의 노래가 흐른다
인생은 소풍의 하루
주어진 시간
어둠 속에 찬란(燦爛)한
빛줄기 하나
81. 길
꽃마다
빛이 있듯
뜻은 달라
밤길 낮길 먼 길
살아온 여정
자국만 남기고
길 따라간다
오늘이 있어
내일이 있는 것
돌아올 수 없는 강
슬퍼도
기뻐도
최선의 하룻길
태양을 향한 꿈
내 가야 할 길
사는 이유다
82. 우담바라 바위 꽃
연화봉에
성긴 바위 꽃
봉우리 핀
그 빛이여
고뇌 끝에
맺힌
하늘 향한
천년 염원
기다림은
무위가 아니다
선정에 든
영혼의 빛
우담바라의
미소
83. 연꽃봉 바위
만상(萬像)의 웅장(雄壯)함
구봉 칠 폭포
시각([視角) 따라
형상(形像)이 달리 바뀐다
연꽃봉 사이사이
폭포수(暴布水) 경을 읽고
암반(巖盤) 맑은 못
하늘을 담아
억겁(億劫)의 세월
바람 먼지 일어도
청정(淸淨)을 잃지 않는다
연꽃봉 처염상정(處染常凈)
끝없는 염원
그 영혼!
그 빛이여!
먼 길 돌아 다시 오면
그 자리!
염화시중의 미소!
84. 주인 없는 몸(默墓)
찾는 손(孫) 없어
망부석(望夫石)이 된 몸
하루 이틀 삼 년 십 년
강산(江山)이 변해도
밤엔 달빛
낮엔 햇살
외롭지 않아!
별과의 이야기
밤의 속삭임
풀 나무 등걸이
울(鬱)을 처서 지켜준다
산속에 누워
기다림에 지친 시간
불효의 업보(業報)가
눈물겹다
85. 은행나무 꿈
그늘진 길목에
은행나무 한 그루
슈퍼은행이라
알이 크다
협소한 공간에
항상 움츠려 있다
가지 고르고
뿌리 자르고
너른 공간으로
옮겨 심었다
아픈 상처
찬바람 시려도
시린 만큼
꿈은 크다
잘리는 아픔보다
자르는 아픔이 더 크다는 것을
꿈을 깨면
알게 되겠지
86. 휴지조각
하얀 두루마리 꽃
나 자신 진정한 삶
시간 속에 내 몸
찢기어 여위어만 간다
내 하얀 순정
앗아간 우악한 손
탓하면
무엇하나!
어차피 살아온 생애
억겁이 순간이어늘
윤회 길은 하나
꽃은 꽃이 아니다
고독과 시련의 아픔이다
87. 외로움
아무도 가지 않은
하얀 눈길에
이따금 지나간
짐승 발자국
작은 발자국
큰 발자국도 지나갔다
어떤 놈일까
무서운 놈일까
혼자 사는 놈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하얀 눈밭에
바람이 쓸고 간
바람 발자국
아무도 가지 않은
하얀 눈길에
혼자 간 내 발자국
외로운 밤 도란도란
바람소리 일거야
88. 형의 빈자리
설날 아침이다
가고 없는 형!
평소보다 환한 모습으로
영정만이 웃고 있다
진수성찬 상차림
한 젓가락도 줄지 않아
시접을 두드리며
시저를 바꿔 놓는다
생전에 좋아하시던
고기 채 나물
보고만 있는 것 같아
가슴 쓰려 온다
실고의 아픔 속에서도
부모 제사에
향을 피우고 잔을 올리던
효자였던 형
기다리는 어머니 곁으로
먼 길 떠나니
모습만 맴도는 집 주위
빈 바람 쓸어가고
하늘도 파랗게 통곡한다
89. 옹달샘
갈증이 나고
세상이 싫어지면
나는 시를 찾는다
갈대가 되어
희어진 머리
내 가슴에
아직도 남아있는
나 외에는
찾는 이 없어도
마르지 않고
혼자 있어도 고독하지 않은
필요할 때
퍼낼 수 있는
詩의 옹달샘
세상이
어지럽고 힘들어도
너 있어 나는 산다
내 혈액 속에
내 영혼 속에
숨 쉬는 내 詩에 샘물이여!
90. 호수에서
비릿한 물 냄새
가슴 스미고
울긋불긋 산자락
푸른 꿈 접는다
스치는 갈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꽃
잔잔한 푸른 물살
가슴에 살랑인다
추연한 가을빛
고즈넉한 호숫가에서
살아온 칠십 생애
반추하며
일몰의 낚싯대에
그리움을 드리운다
첫댓글
최응열 시인 시집 [불이문]!
작품 90편 엄선하여 편집 합니다.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팟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