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71〉죽음조차 삶으로 받아들인 수행의 경지
멋진 선사들의 삶과 수행이야기
감옥에 가두고 칼을 맞아도
평상시 다름없는 평정심 갖춰
옛 스님들의 일화를 대하다보면, 일반 세인들의 삶만큼 참으로 다양하다. 선사의 통쾌한 행동에서는 미소를 짓게 되고, 선사의 고달픈 삶에서는 삶과 수행의 지혜를 배운다. 이 세상의 어느 종교에서 이렇게 훌륭한 수도자의 모습이 있을 것인가? 멋진 선사 몇 분을 만나보자.
경성 일선(1488~1568)은 조선 중기 승려로, 벽송 지엄의 법을 받은 제자이다. 일선이 50세 무렵, 나라에서 승군에게 제방을 쌓게 하였는데, 일선은 표연히 걸어갔다. 걸림 없는 모습에 감독관은 스님을 세우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스님의 물외도인적 풍모를 느끼고 집으로 모시고 가 공양을 하였다. 스님은 그 집에서 보름 정도를 머물렀는데, 당시에 스님을 친견코자 찾아오는 사람이 문전성지를 이루었다.
이를 염려한 어느 유생이 사헌부에 ‘경성당이라는 중이 혹세무민하고 있으니 빨리 잡아가라’는 투서를 올렸다. 사헌부에서 스님을 잡아다 금부에 가두고 국문하였다. 그런데 스님은 얼굴빛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의연히 가부좌를 한 채 평상시와 다름없이 정진하였다. 관리들은 스님의 의연한 태도에 감복해 방면했다.
선사 가운데 ‘천연스럽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사람이 단하 천연(739∼824)이다. 천연은 출가 동기부터 심상치 않은 인물이다. 천연은 출가 전 방거사와 과거시험 보러가는 도중 발길을 돌려 출가한 것이다. 스님과 관련한 단하소불(丹霞燒佛) 공안은 널리 알려져 있다. 법당의 목불(木佛)을 태워 방바닥을 따뜻하게 해놓고, 주지에게 ‘부처님 몸에서 사리가 나오나 했더니, 사리가 나오지 않더군.’하며, 오히려 큰 소리를 친 분이다.
이보다 더 배짱 두둑한 이야기가 있다. 천연이 천진교(天津橋) 위에 드러누워 있는데, 마침 지나가던 그곳의 유수(留守) 정공(鄭公)이 일어날 것을 종용하였다. 당연히 관리가 지나가니 일어나서 예를 표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천연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딴청 부리자, 정공이 천연에게 물었다.
“왜 사람이 지나가는데 일어나지도 않습니까?”
“일 없는 게 중이요.”
고려 말 나옹 혜근(1320∼1376)이 원나라에서 수행하고, 귀국해 해주 신광사(神光寺)에 머물고 있었다. 홍건적이 침입해 사람들이 모두 남쪽으로 피난을 갔으나 스님만은 대중을 안심시키고 평상시와 똑같이 법을 설하고 정진하였다. 하루는 적군 수십 명이 절에 들어왔으나 스님은 매우 태연자약하였다. 오히려 홍건적이 법당에 향을 사르고 스님께 절을 하고 물러갔다.
당나라 때, 제자들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기로 유명한 덕산 선감(782∼865)선사의 법을 받은 제자 중에 설봉 의존과 암두 전활이 있다. 전활(828∼887)과 의존(822∼908)이 젊은 시절, 행각을 하는 중에 낭주의 오산이란 곳에 있다가 눈이 갑자기 많이 내려 고립되어 갇혔다. 의존은 불안에 떨며 잠을 이루지 못한 반면, 전활은 느긋하게 편안히 잠을 잤다. 전활이 의존보다 나이가 6살이나 아래인데도 전활은 의존의 공부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만년에 암두 전활은 동정의 와룡산에서 법을 펼쳤다. 그런데 나라에 도적떼들이 일어나 민심을 어지럽혔다. 그 지역 사람들은 모두 떠났으나 스님만 홀로 절에 남았다. 어느 날 도적떼들이 절에 몰려와 공양거리를 달라며 스님을 칼로 찔렀다. 스님은 칼을 맞고도 태연한 자세로 소리 한번 외치고 입적하였다. 그런데 이 소리가 수십리 밖까지 들렸다고 한다. 백년만에 한분 나올만한 고승이 이런 업보를 받으면서도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선사들은 죽음조차도 수행의 경지에서 삶과 여일하게 받아들여 승화시킨다. 출가한 스님들도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겪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선사들은 기쁜 일이 생겨도 기쁨에 떨어지지 않고, 슬픈 일이 일어나도 슬픔에 마음 두지 않는 평정심(捨)을 갖고 있다. 이것이 바로 수행의 힘이다.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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