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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4 창세기 공부 지연의 변 3-4 July 14, 2026 Genesis Study: The Explanation of Delay 3
※ 이제 이 아브라함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우리는 천주교와 개신교의 오직 믿음으로 오는 의를 해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의 큰 칼로 천주교와 개신교의 500년의 논쟁을 해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행이 500년 전의 종교개혁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독일인 신부 루터는 면죄부 등의 죄에 대한 용서를 인정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릎을 꿇고 계단을 피를 흘리면서 오르는 고행을 해도 죄에 대해서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로마서 1장 17절과 로마서 3장 21-26절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말씀을 접하고 아!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즉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 돈을 드려서 면죄부를 사는 것에 있지 않고 또 피를 흘리는 고행을 하는 것에 있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해결이 됨을 본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 교리를 주장하게 되고 이를 따르는 사람들이 개신교를 열고 당시에 종교의 박해가 있었기에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으로 이들이 이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지금과 같이 개신교의 국가가 되고 선교도 강하게 해서 온 세상에 개신교가 없는 나라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으로 즉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개신교 교리에 대해서 천주교는 오직 믿음으로 만이 아니고 무언가 행위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서 믿음 구원과 행위 구원이 팽팽하게 500년 동안 조금도 양보함이 없이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천주교 교리에 대해서 개신교는 다양하게 여러 교리를 비 성경적으로 몰아서 이들을 전도의 대상으로 삼고 심지어 적 그리스도가 천주교에서 나온다고 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주교도 개신교를 인정하지 않다가 이제는 떨어져 나간 형제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거대한 역사적이고 온 세계적인 문제를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해결을 하고자 하고 그래서 아브라함의 큰 칼이란 단어가 적절합니다. 제가 지은 것이 아니라 저를 부르신 분이 제 마음속에 수년 전에 넣어 주신 단어로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천주교인 아내와 이혼을 하고 약 4년을 불면의 지옥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교회가 분리가 될 때 느끼시는 고통을 본 사람입니다. 이런 배경을 지닌 제게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온 세상에 나누는 것입니다.
약 30년은 걸린 성경의 이해로 설명도 짧게 되지 않습니다. 제 경험과 성경의 이해가 조금씩 세월이 가면서 왔고 모든 분이 이런 내용을 한 번에 이해하는 것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천주교인이나 개신교인이나 모두가 교리의 덤불에 덮여서 참된 진리를 보지 못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먼저 제게 하나님께서 주목하게 하신 내용이 믿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믿는 사람이 차별이 없이 의롭게 되는데 도대체 믿는 사람의 정의가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제게 알게 하셨고 저는 이에 대해서 너무나 놀랐습니다. 즉시 이 내용을 하버드와 예일과 프린스턴 그리고 옥스퍼드 신학교에 요약해서 보냈습니다. 4분의 교수님을 선정해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답장이 올 줄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국민일보에 간증으로 보냈습니다. 도표로 간단하게 설명을 드립니다.
오직 믿음이냐 믿음 + 행위이냐를 논하기 전에 과연 성경 로마서나 신약의 바울 서신에서 의롭다 인정을 받은 믿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규명해야 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으로 보면 사도행전 2장 37-39절과 같은 절차를 거쳐서 성령을 받은 사람이 되어야 함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니 성령의 첫 열매인 우리라는 표현에서 초대 교회에서 믿는 사람이란 뜻은 모두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그리고 죄를 용서를 받고 성령을 받은 무리가 믿는 사람임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믿으면 의롭게 된다는 의미와 비교할 때 조금은 더 정확하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성령을 받았지만 그 의미를 모르다 신학교에서 논문을 "전도자의 입장에서 본 교회성장에 대해서"란 제목으로 쓸 때 사도 행전의 2장 37-39절의 일이 제게 일어난 일과 그대로 똑 같이 기록이 된 것을 보았습니다. 저와 같이 성령을 받은 무리가 당시에 전부였으니 당연히 믿는 자 즉 의롭게 되는 믿는 자는 이렇게 되어야 함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이 내용을 위의 4 대학에 편지로 보냈고 오천만의 로마서에 서울 보고서란 제목으로 올렸습니다. 여기까지 이해로 저는 천주교와 개신교의 논쟁이 풀릴 줄로 알고 놀라고 흥분하고 기뻐하고 자부했습니다. 저는 뭐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겨우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갈 길이 더 많고 시간은 더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제게 새로운 이해가 올 때마다 저는 환호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저 홀로 그랬습니다. 약 10년은 그렇게 흥분해서 산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요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와 감화와 감동 덕분입니다. 할렐루야!!
위에서 제가 창세기 12장-26장까지 요약은 지금 제가 이해하는 내용을 다 표현을 했지만 이도 한 번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최근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신칭의에 대한 이해도 적어도 10년 이상은 씨름을 한 내용인데 이 내용과 함께 제가 이해되는 순서로 다 오천만의 로마서에 올렸으니 참고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아브라함과 하박국의 믿음을 보면서 로마서 1장 17절에 사도 바울이 기록한 것을 보면서 저는 아브라함과 하박국에 대해서 창세기와 하박국서를 보면서 새로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믿음인 개신교에도 속하지 않고 믿고 행한다는 천주교에도 속하지 않고 주님과 함께 이신칭의 이해의 여정으로 나간 것입니다. 그 내용입니다. 먼저 로마서 1장 16-17절, 3장 21-22 절의 논의가 된 본문을 보겠습니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한글 버전)
16.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for the salvation of everyone who believes: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NIV)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개역 개정)
* 한글의 개역 개정을 그대로 올려서 한국민이 성경을 이해하는 방식을 알게 할 필요가 있다.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는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순서대로 제게 정확하게 하나씩 하나씩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리고 로마서를 영어로 배우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Faith from first to last 란 구절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료 영어를 잘 하는 부장께 무슨 뜻이냐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란 말을 알게 되었고 이는 한글 개역 개정에 믿음에서 믿음으로라고 번역이 된 부분입니다. 그리고 아직 창세기의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은 잘 모른 채 위와 같이 설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박국서 야고보서 창세기를 보면서 정리를 했는데 지금 보면 부족하지만 당시에는 이러 내용을 또 알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혼자 방방 뛰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내용을 모른 채 오직 믿음을 주장하는 목사님을 가볍게 여기고 날뛰다가 허리가 아파서 죽을 고생을 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죄악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큰 고통이 약 6개월 이상 지속이 되었는데 여자도 애를 낳을 때 겨우 하루 이틀이면 통증이 끝이 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오랫동안 이렇게 죽을 고생을 하는가 생각도 했지만 이렇게 죽도록 고통을 겪고 겨우 흥분이 진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래 도표를 그렸습니다. 제가 이해한 데로 그린 것입니다.
그리고 위의 도표도 그렸습니다. 처음보다 많이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또 제가 난리가 났습니다. 이제는 신학 대학교 교수님을 각 대학에 전부를 망라를 했습니다. 영국과 미국과 캐나다와 호주의 신학 대학교 교수님과 한국의 신학 대학교 10정도를 골라서 약 600-700분께 여러 차례 위의 내용도 보내고 다른 내용도 보내게 되었습니다. 다 영어로 번역을 해서 보냈습니다. 저는 새롭게 이해가 되는 성경 부분을 바로 바로 오천만의 로마서에 다 올립니다. 제가 알면서 올리지 않는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시면 기쁘게 받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쉬지 않고 올렸습니다. 그렇게 즐겁고 쉬운 일이 없었습니다. 약 8년에 1200편의 긴 글로 다 올려 놓았습니다.
모든 분이 도표를 보시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의롭게 됨이 아브라함과 하박국의 믿음을 보고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고 이를 바울이 로마서에 인용을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보면서 이해를 하고 하박국서로 가서 또 이해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아는 것과 조금은 다른 부분이 있지만 당시는 너무나 다른 이 보다 제가 더 많이 정확하게 이해한다고 믿고 편지를 신학대 교수님들께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답장도 받았습니다.
이신 칭의의 문제는 오직 믿음이냐 행위냐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의 이해의 문제였습니다. 보는 바와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라 말이 분명하게 성경에 있고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이 위와 같이 있으니 이를 참고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박국의 의인이 됨도 믿고 의롭게 사는 삶에서 나옴을 보고서 위와 같이 설명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는 삶에 제가 주장하는 의신칭의는 관심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첫 믿음과 끝 믿음을 보면서 아브라함의 생애를 연령 순으로 보았습니다. 특히 로마서 4장 17-22절의 100세 때의 신앙을 본 것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오직 믿음의 부분이 신앙이 나이가 들어도 굳게 된다는 구절이 새롭게 이해가 되면서 이는 천주교도 개신교도 주목하지 않는 분야라 믿어졌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부분을 볼 때 역시 놀라지 않을 수가 없고 방방 뛰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깨닫고 전하는 기쁨보다 큰 기쁨이 있습니까?
그리고 작은 로마서인 갈라디아서와 3장으로 된 하박국서를 면밀하게 살폈습니다. 로마서보다 짧으니 쉽고 시간이 들 걸릴 것이라 믿었습니다. 특히 갈라디아서를 보면서 우리가 믿으면 의롭게 됨에 대한 책으로 알았지만 성령에 대한 내용이 많음을 보고서 놀랐습니다. 진실로 로마서를 올바로 이해하고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고자 하는 분은 그냥 예수님의 말씀대로 절차를 지킵니다. 성령을 받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착하게 살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신 구약을 성령의 감동으로 이해를 하시면 가장 정확한 로마서의 이해로 가게 될 것입니다. 바울이 산 그대로 살면서 그대로 배우기 때문입니다.
제가 몇 년을 이렇게 씨름을 하는 가운데 놀라운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으니 로마서 1장 17절의 본문을 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한글 번역 개역 개정을 영어로도 보았지만 이 부분이 보이지 않았는데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본문이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확실히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영어로 한국어로 보겠습니다.
롬 1:16.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for the salvation of everyone who believes: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NIV)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한글 번역)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 믿는 믿음입니다. 기록된 바와 같이 오직 의인은 믿음을 갖고 매일 매일 삶을 사는 사람이다 함과 같습니다. (제가 영어로 다시 정확하게 번역을 했습니다.)
사실은 본문에 너무나 정확하게 있는 내용이 이렇게 길게 길게 돌아서 옵니다. 온 성경을 돌고 돌고 온 세상의 주장을 돌고 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본문에 정확한 답이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 과정은 참으로 수 년의 여정으로 오천만의 로마서에 그 이해의 단계가 날짜와 시간이 순서대로 정확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일이 아닌 성령의 일이심을 온 세상이 알게 될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도 있고, 믿고 매일 매일 삶을 사는 사람이 의롭다 하는 것이 본문에 버젓이 있는데 오직 믿음이니, 믿고 + 행위니 하는 논쟁을 500년을 한 것입니다. 믿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삶을 사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 믿는 믿음이다 이것이 이신칭의로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를 저는 챗 GPT와 오랫동안 적어도 6개월 이상 영어로 토론을 하고 모두가 이렇게 이해를 해야 한다고 확신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전했습니다. 2026년에 전한 내용입니다.
루터는 이 구절을 보고서 500년 전에 천주교의 면죄부의 판매와 다른 이해하기 힘든 실상에 도전했고 개신교를 열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를 이 구절을 통해서 설명했고 너무나 많은 지지와 호응을 얻어 내어서 지금의 개신교가 태동하고 온 세상에 약 6억 명의 사람이 믿습니다. 같은 이 구절을 보면서 천주교와 개신교의 주장이 다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정확한 근거가 있으니 누구도 반박이 불가합니다. 로마서 4장 1-16절에 있고 창세기 15장 6절에 있습니다. 같은 사람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설명하기에 같은 내용입니다. 역시 성경 본문으로 확인합니다. 먼저 개신교의 주장은 완전한 성경적인 논리를 설명합니다. 한치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 걸음도 양보도 없습니다.
창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NIV)
롬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 4: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롬 4: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NIV)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갈 3: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NIV)
너무나 정확하게 개신교의 이신칭의를 설명합니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가 없이 명백합니다. 그래서 천주교의 주장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500년을 버팁니다.
이제 천주교의 주장을 살펴봅니다. 천주교는 오직 믿음이면 된다는 개신교의 주장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고 믿음 +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근거도 너무나 명확하게 또 성경에 있으니 또 천주교인은 모두가 이렇게 믿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보시겠습니다.
약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NIV)
너무나 정확하게 천주교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그래서 개신교는 이 주장을 행위 구원이라 하면서 반박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도 받고 의롭게도 된다는 개신교의 주장과 다른 주장이 있습니다. 과연 바울의 로마서를 따라야 하는지 야고보의 야고보서를 따라야 하는지 혼동이 올 수도 있습니다. 두 성경에 의롭게 되는 것에 대해서 서로 다르게 설명하기 때문에 서로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양보도 없이 500년을 논쟁하면서 때론 심하게 비판도 합니다. 이를 어찌합니까? 같은 예수님 같은 하나님과 성령님을 믿고 성경도 같은 신약 성경 구약 성경을 보면서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2026 이신칭의 끝장판 주장입니다. 한국의 목사의 주장입니다. 너무나 쉽고 재미있는 성경의 공부의 길이고 성령께서 주관하시고 이제 서로 다투지 말고 하나가 되라는 명령입니다. 먼저 본문을 다시 가져다가 보아야 합니다. 본문에 해답이 있습니다.
롬 1:16.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for the salvation of everyone who believes: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 믿는 믿음입니다. 기록된 바와 같이 오직 의인은 그 믿음을 갖고 매일매일 삶을 사는 사람이다 함과 같습니다. (제가 영어로 다시 정확하게 번역을 했습니다.)
영어를 조금 하시는 모든 분은 제가 너무나 정확하게 본문을 이해하고 번역을 했다고 인정할 것입니다. 이제 한국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에 대해서 주목하시는 분이 계심을 보았습니다. 미국인이나 영국인이나 영어를 하시는 분은 위의 번역(NIV) 번역으로 보는 분은 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이해를 합니다. 그리고 믿음에서 믿음으로 번역이 된 부분도 역시 같은 의미입니다. 오직 믿음이란 말도 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에 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설명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제 누구의 믿음을 이렇게 설명을 하는지 보시면 됩니다. 같은 한 사람의 믿음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도 하고 또 다른 한 사람에 대해서도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누구냐 하면 하박국과 아브라함입니다. 하박국서의 내용을 그대로 바울이 인용을 했습니다. 하박국서 2장 4절에 있는데 로마서 1장 17절과 정확하게 같습니다. 하박국의 질문에 하나님의 답으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역경에도 나라가 망하는 상황 속에서도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하실 일을 믿고 정의롭게 매일 삶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불의가 판을 치고 전쟁으로 나라가 망하는 상황에서 의인은 누구냐 하면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는 이는 누구냐 하면 바로 하박국과 같이 정의롭게 매일매일 정의로운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정확한 의미가 이렇습니다.
이제 또 한 사람 아브라함의 예를 보시겠습니다. 같은 사람 같은 믿음을 보고서 로마서와 창세기와 야고보서가 서로 다르게 기록을 했습니다. 이미 두 주장을 통해서 본문도 확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두 교회가 조금 주목이 덜 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이 두 주장 중간에 있는 믿음입니다. 역시 성경에 있고 로마서에 있습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NIV)
우리는 성경에 이렇게 자료가 있음을 누구나 인정하고 확인도 가능합니다. 이제 천주교와 개신교가 하나가 되는 이신칭의에 대한 설명이 위의 구절로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신앙의 여정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한 순간 즉 개신교가 본 순간과 천주교가 본 순간과 이들이 본 순간과 다른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이 있습니다. 그의 나이가 100세때 무렵입니다. 그렇다면 개신교의 주장은 과연 언제 아브라함의 모습입니까? 처음 하나님을 뵈옵고 명령에 따라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이스마엘을 낳는 약 86세 전의 어떤 때입니다. 그래서 75-85세 때 아브라함의 신앙의 여정 때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고 이는 우리가 확인한 로마서의 부분과 창세기의 부분입니다. 모든 분이 읽은 개신교의 근거가 되는 내용입니다. 로마서 4장 1-16절과 로마서 3장 28절, 로마서 5장 1절 그리고 창세기 15장 6절에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5-6절도 있음)
그리고 이제 100세 무렵의 하나님의 의롭다 인정이 로마서 4장 17-22절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살펴본 천주교의 주장이 있는 야고보서 2장의 내용이 있습니다. 이때는 아브라함이 약 118-125세 정도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소년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해서 행동으로 바치는 아브라함을 보고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십니다. 이를 이제 우리는 같이 연결해서 보기로 합니다. 즉 아브라함 한 사람의 믿음을 이렇게 3번의 여정으로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보면 처음 믿음은 75-85세 무렵이고 끝 믿음은 118-125세 무렵입니다. 이 무렵의 신앙과 하나님의 의롭다 인정하심을 천주교와 개신교는 정확하게 보고서 각자의 논리를 펴니 성경에 근거한 두 주장은 절대로 틀리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100세가 되어서 의롭다 인정을 받은 부분을 두 교회는 인정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무나 엄연하게 성경에 있으니 누가 부정을 합니까? 다시 보여 줍니다. 놀랍게도 성경을 100번을 읽어도 이 부분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냥 개신교의 교리로 믿으니 의롭게 된 것이다 하고 그냥 넘어가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무언가 아브라함의 75-85세 무렵의 의롭다 인정을 받은 부분과 다른 아브라함의 신앙이 있으니 믿음이 세월이 가도 견고해졌다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에 세월이 가도 견고해지는 믿음이 등장합니다. 이를 포함을 시켜야 합니다. 또 본문을 확인합니다. 성령께서 시시 때때로 정확하게 인도하십니다. 저는 성경 연구가가 아닙니다. 목사로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이해를 즉각 즉각 쉬지 않고 적고 전하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기쁨으로 전합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NIV)
이제 이를 포함을 시켜서 보면 한 사람의 믿음이 세 순간으로 나타났고 천주교 개신교는 각각 이 세 부분의 세 순간의 믿음을 종합해서 보면서 칭의를 논해야 했었습니다. 각각 아브라함의 한 부분 즉 한 순간의 믿음에 500년을 집착해서 보면서 서로 틀렸다고 한 것입니다. 이제 이를 아브라함의 일생의 믿음으로 보면 즉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살펴보면 처음에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믿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개신교의 주장대로 정확하게 의롭다 인정을 받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갑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백세가 다 된 아브라함에게 또 오셔서 그분의 믿음을 보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믿음이 더 견고 해졌습니다. 이것을 보시고 의롭다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믿음 즉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하니 118-125세가 된 아브라함은 망설임이 없이 하나님을 믿고 즉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대로 순종합니다. 즉 이제는 믿음과 정말로 순종하기 어려운 아들을 잡아서 바치는 행위를 그대로 합니다. 이도 역시 너무나 천주교의 주장대로 정확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를 종합해서 보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 사람의 믿음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각각 다른 사람이면 종합하지 못하지만 천주교 개신교가 다 주목하고 서로 옳다고 하는 한 사람의 믿음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란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이 너무나 선명하게 존재하니 우리는 이를 종합해서 보아야 합니다. 처음 아브라함은 오직 믿습니다. 그리고 중간의 아브라함은 그 믿음이 견고 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아브라함의 믿음은 아들을 바치는 행위를 수반합니다. 이제 우리는 너무나 아름다운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의 아름다움을 봅니다. 약 100년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세월이 가도 약해지지 않으셨고 도리어 강해졌고 그리고 종국에는 아들까지 바치는 행동하는 순종하는 믿음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을 받아야 하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한 인간을 준비하셔서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시고 우리도 이와 같이 세월이 가도 하나님을 더욱 잘 믿고 순종도 잘 하도록 본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성실히 무궁하시고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이 위대합니다. 널리 찬송을 받으실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500년 동안 한 사람의 믿음을 오직 한 부분만 보고서 서로 옳다고 우긴 두 교회는 깊이 생각을 하시고 서로 하나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역시 본문 로마서 1장 17절을 보시면서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혹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번역이 된 한글의 성경과 달리 영어는 이렇게 되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의인은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삶을 사람이다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역시 천주교와 개신교와 다른 부분이 있으니 천주교의 행위와 개신교의 오직 믿음과 다른 삶이 있어야 된다고 본문은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서 그 믿음에 근거한 생활 즉 삶을 살아야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성도는 그 생명이 끝이 나는 순간까지 생활을 해야 하고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자기 주관대로 살지만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을 방편으로 믿음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그 믿음에 근거한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됩니다. 그렇게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이 의롭게 된다는 것이 본문입니다.
이런 종합적인 내용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의 생활이 무엇입니까? 먼저 처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서 의롭다 인정을 받은 바와 같이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틀림없이 의롭다 인정을 하나님께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는 날까지 생명이 있으니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오늘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 얼마 후에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께서 오시거나 혹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반드시 보실 것입니다. 첫 믿음 이후에 5년이 될지 10년 이 될지 15년이 될지 모르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언제나 보실 수가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믿음이 아브라함과 같이 견고 해져야 하는데 이제 먹고 살만하니 물질에 의지해서 하나님을 덜 믿고 이제 고난이 길어지고 응답이 늦어지니 낙담해서 덜 믿고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아브라함과 같이 어떤 어려움이 있고 믿음에 장애가 와도 굳게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고 이렇게 되어야 의롭다 하심이 연결이 되고 다시 의롭다 인정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또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아브라함의 본과 같이 잘 믿는 우리가 되기를 하나님께서 바라시며 우리가 어떻게 믿는가 보십니다. 이제 50년을 믿고 물질도 태산만 하고 명성도 높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아들을 바치라고 하지 않으시고 부자 청년에게 요구하신 것과 같이 재물을 가난한 이웃과 형제에게 나누라고 우리 모두에게 명령을 하십니다. 모든 한국인 성도가 이 요구를 하나님께 받고 있습니다. 이제 어떡해야 의롭게 됩니까? 당연히 모든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이웃과 나누어야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됩니다. 내가 피를 흘려야 됨도 아니고 내가 죽는 일도 아닌 내 소유를 가난한 이웃과 나누라는 명령을 하시는 데 내가 순종하지 않으면 여태까지 의롭다 하심의 연결이 이제 끊기게 됩니다.
여기까지 제가 2026년 1월에 전하고 이신칭의의 끝장판이라 스스로 외쳤습니다. 그런데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창세기를 또 영어로 공부하는데 앞에서 설명 드린 데로 아브라함의 전체 신앙의 여정이 다 보였고 이를 통해서 더 정확하게 정교하게 설명을 드린 것입니다. 그 도표도 앞에서 다 보았습니다.
인간은 조금 알면 날뛰고 이것이 다다 합니다. 보잘것 없는 인간의 능력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멈추지 않으시고 이런 뻘떡이는 저를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합니다. 엄한 매로 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 정확하고 온전한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할렐루야! 크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립니다.
먼저 99-100세 때의 창세기 17장과 18장, 로마서 4장 17-22절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같은 사건을 놓고 한 성경은 웃었다고 하고 한 성경을 믿음이 단단해졌다 하는 문제를 위와 같이 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하셨고 믿으니 불뚝! 행하니 임신! 이란 짧은 문구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한눈에 보게 도표를 하나님의 은혜로 다 그렸습니다. 주님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의 공로이고 성령님의 인도하심 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신앙도 하박국의 신앙도 다 보시고 아십니다. 그리고 2000년의 세월이 지나니 바울 사도가 예수님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과정을 설명할 때 성령께서 감동으로 아브라함의 예와 하박국의 예를 다 보시면서 로마서를 쓰게 하십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17절은 아브라함의 백 년의 믿음이 다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며 믿고 하루 하루 믿음에 근거를 둔 성실한 그분의 삶이 다 포함이 된 내용인 것입니다. 그리고 의롭게 됨도 한 번에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거쳐서 테스트가 있습니다. 처음에 잘 믿다가 타락한 사람에게 절대로 정의로우신 분께서 의롭다 하지 않으십니다. 이를 아셔야 합니다. 이를 에스겔서 18장에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착오가 없어야 합니다. 잘 믿어야 합니다.
겔 18: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이신칭의의 이해는 일부 성경의 이해로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성경의 이해로 모두가 그래 이것이 올바르다 하는 이해로 해결이 될 것입니다.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논리적으로 하자가 없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함의 일생의 신앙의 이해는 이렇게 천주교와 개신교가 둘 다 옳지만 서로 옳은 것을 다 합쳐서 서로 인정할 때 풀리는 것으로 믿습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신자가 처음 교회나 성당에 오면 믿고 행하라 바로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무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적어도 3년을 자신에게 잘 배운 사도나 성도에게 성령을 받고 세상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초신자를 적어도 3-5년을 잘 교육을 시키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이 맞습니다. 그리고 신앙 생활을 20-60년을 하신 분이 여전히 개신교의 오직 믿음으로 계시면 너무나 믿고 행하고 바치는 아브라함의 신앙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런 분께는 오직 믿음이 아니라 믿고 행해야 하고 믿고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모든 오래 된 개신교 신앙인은 천주교의 믿고 행해야 된다는 성경적인 진리를 그대로 수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천주교와 개신교는 조금도 다툴 필요가 없이 하나가 될 수가 있으니 아브라함의 큰 칼로 가능합니다. 제가 이렇게 전함은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요 십자가 대속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성령의 한결 같은 내주와 쉬지 않는 감동임을 믿습니다.
제가 행정고시 2차에 1점차 떨어지고 하나님께서 목사가 되라고 해서 초혼을 천주교인 아내와 해서 장신대에 가서 신대원 준비를 할 때 테리 홀이 쓴 파노라마 성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책에서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것을 보고 신대원 준비도 잊고 이 방법으로 성경을 읽고 정리하기 시작해서 약 30년이 되어 갑니다. 제가 글을 쓰는 기초는 이 성경 정리와 전도한 것 그리고 대학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을 약 13시간씩 약 8년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짧은 영어는 카투사와 미국부대 10년의 경력에서 나옵니다. 장신대 신대원에 가지 못하고 독립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모든 세상의 사람과 같이 가정을 꾸리고 직장에 다니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쉬지 않고 이렇게 글을 올리니 너무나 공부에 대한 부족함이 느껴지고 집중적인 공부가 필요한데 매일 매일 벌어야 하니 가장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싸우면서 배우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기도가 꼭 필요합니다.
500년 천주교 개신교의 다툼이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주의 간절하신 바램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풀립니다. 제가 본 우리 주 예수님의 교회 분리 시에 겪으신 아픔이 이제는 천주교 성도와 개신교 성도의 서로 이해와 사랑으로 치유가 되실 줄로 믿습니다. 서로 다툴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이제 또 다투면 고집이요 무지입니다. 세상에 스스로의 성경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 공산당의 거대한 기독교에 대한 도전과 이슬람의 거침없는 공격을 분열된 교회가 절대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 시대 진정한 영적인 도전과 대적이 이들입니다. 바로 분별하고 바로 대적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