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15일 토요일
등반지 : 설악산 솜다리의 추억
참석자 : 이종호, 서현숙, 이혜영, 김영도
새벽에 일어나니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올 장마는 장마다운 장마였다. 몇 년 만에 이리도 시원한 빗줄기를 보는 건지. 하지만 속초에는 오후에나 비예보가 있어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속초로 향해 출발했다. 설악산에서 오전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충분히 솜다리의 추억을 등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빗물 때문에 도로가 미끄러웠지만, 서울-양양간 고속도로에 올라서니 부담 없이 질주할 수 있었다.
휴게소에서 꾸물대느라 설악동에 좀 늦게 도착했고, 회원들과 만나자마자 바로 토왕골로 향했다. 산을 넘어 오는 검은 구름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토왕골에 들어서 계곡을 따라 오르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단 접근하기로 했다. 솜다리의 추억 접근로를 확인하고 출발지점에서 등반여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었다. 계속 비가 내린다면 야영장으로 내려가 낮술을 거하게 마셔도 좋았다.
출발지점에 도착할 무렵 비가 잦아들었다. 구름이 고산준령을 넘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동해안의 기압이 강해 비구름을 막고 있는지도 몰랐다. 솜다리의 추억 출발지점에 서니 지난 달 등반했던 노적봉과 토왕성 폭포가 훤히 보였다. 노적봉의 4인의 우정길을 등반할 때만해도 토왕성 폭포의 물줄기가 거의 말라 있었는데, 이제는 제법 굵은 물줄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2개의 등반 팀이 등반하고 있었다. 2인 1조의 한 팀은 3피치를 넘어가고 있었고, 12명이나 되는 또 다른 한 팀은 대여섯 명이 2피치를 오르는 중이었고, 나머지 분들은 출발지점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비 때문에 등반을 정리하고 하산할 예정이라고 했다. 다행이었다. 12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뒤를 쫓아간다면 대기 시간 때문에 제대로 등반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비가 그쳐 바위가 마르기를 그리고 등반 중인 분들이 하강하기를 기다리다 등반하기로 했다. 모두 서울에서 오신 분들이었다. 대부분 초로의 나이든 ‘아저씨’, ‘아줌마’였고, 대장은 나이가 지긋이 든 분이었다. 릿지 등반을 주로 하는 지역 또는 동네를 기반으로 모인 산악회로 보였고, 대부분 등산학교에서 등반 교육을 제대로 받은 바 없이 산악회 내에서 알음알음 모여 등반을 배우며 산에 다니시는 것 같았다.
우리가 흔히 어떤 사람들을 ‘아저씨’나 ‘아줌마’로 칭할 때는 그 사람들이 나이 들고, 시끄럽고, 세련되지 못하고, 부유하지 못 하거나 교육 수준이 낮고, 직업이 하찮(?)거나,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깔보기 때문이다. 어떤 의원이 급식 노동자를 가리켜 ‘밥하는 아줌마’라고 말하는 의미와도 같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내심 앞 팀의 ‘아저씨’ ‘아줌마’ 때문에 등반이 힘들겠네라고 생각했던 나 역시 ‘아저씨’ ‘아줌마’에 불과하다. 어떤 이들의 눈으로 보자면 나 역시 나이 들고, 세련되지 못하고, 그다지 등반을 잘 하는 것도 아니며 전문성이 떨어져 보일 테니 말이다.
사실 우리들 대부분은 그저 보통의 아저씨, 아줌마에 지나지 않는다. 산이 좋아 산에 왔고, 등반이 좋아 등반을 할 뿐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고, 등반력이 떨어질 수도 있고, 약간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고, 전문성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등반을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산이나 등반이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아닌 이상 말이다.
학교 급식장에서 성심성의껏 정성을 다해 식사 준비를 하는 분들을 밥하는 아줌마로 경시하며 그들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어떤 의원의 노동과 인권에 대한 천박한 인식은 산에서도 여러 사람들을 통해(어쩌면 나를 통해서도) 비슷하게 드러난다. 하긴 사람 사는 곳이 어디라고 다를까. 어떤 이들이 우리를 ‘아저씨’‘아줌마’라고 비아냥거리면 그냥 그러려니 해도 좋겠다. 그건 그들의 엘리트적인 허영과 사람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스스로 드러낸 꼴이니.
앞 팀이 등반을 마치는 것 같아 우리는 등반을 시작했다. 우리가 2피치를 마칠 무렵이면 앞 팀이 하강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2피치에 올라 앞 팀이 3피치를 마치고 하강하기를 기다리는데, 밑에서 등반을 하지 않겠다고 하며 대기 중이던 사람들이 갑자기 올라오기 시작했다. 날이 개이자 마음이 바뀐 걸까. 이때부터 등반 라인이 엉망이 되고, 줄이 꼬이고, 부산해졌다. 우리는 2피치에서 그만큼 더 오래 기다려야 했다.
어려운 3피치를 간신히 등반해 올라서니 혼자 남아 뒷정리를 하고 계시던 앞 팀의 나이 지긋한 대장님이 내게 여러 차례 사과를 했다. 부득이 좋지 않은 등반 모습을 보이며 시간을 지체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예의 바르게 사과를 하셔서 오히려 내가 몸둘바를 모를 정도였다. 등반 예절을 잘 알며 지키려고 애쓰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산에서 무례한 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운 좋게 등반 중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 솜다리의 추억의 하이라이트는 3피치인데, 이곳을 온사이트 자유 등반으로 넘어서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등반 라인이며 풍광이 너무 좋아 하강하기 싫을 정도였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1피치 2피치는 한 번에 오르고, 3피치를 오르고, 4피치 5피치도 한 번에 오르고, 6피치 솜다리봉에 올랐다가 클라이밍 다운해서 하강 포인트에서 계곡으로 하강하는 게 좋겠다. 솜다리봉을 지나 선녀봉까지 오르면 별을 따는 소년들 쪽에서 하강해야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하강길도 순탄치 않을 것 같았다.
비 내리는 토왕골
출발 지점에서 대기
2피치 구간
3피치 구간
속초시
지난 달 등반했던 4인의 우정길이 있는 노적봉
6피치 구간 솜다리봉
솜다리봉 앞에서
토왕성 폭포
별을 따는 소년들
솜다리봉 정상에서 선녀봉을 배경으로
솜다리봉 아래 하강 포인트
야영장
첫댓글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좋았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함께하신 속초의 이혜영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대장님 글을 읽어보니 다음부턴 등반할때 보다더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행동하고 등반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설악 너무 멋있습니다.
대장님 너무 현실적으로 표현 하신것 같습니다 힘들어서 배가 안아프려 하네요 종호형님 게시판 에서는 배가 아팠는데 하~ 비가 와도 좋고 안오면 등반해서 좋고 이래나 저래나 형 누나 친구 동생 보니 좋왕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