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가 없는 항아리이야기 / 이성미
이것은 시가 아니라 엄마가 항아리가 되고 딸이 항아리가 되지 않으려다 항아리가 되는 이야기
별이 유난히도 희미하던 밤에 천사가 별을 떨어뜨린 밤에
손톱이 진 남자가 항아리에 알을 넣어두고 떠난 뒤 내부에서 자라나는 밤에 관한 이야기
내가 받아 적은 이것은 시가 아니라 항아리의 밤이 말해주엏ㅆ지만 항아리가 모르는 이야기
항아리에서 자라나는 밤이 항아리를 불러오는 수상한 먹구름의 밤에 축축한 검은 실크가 펼쳐지는 밤에
항아리가 되어가는 여자를 항아리가 아니라고 적는 이야기 멀리서 검은 발들이 달려가는 소리 시냇물이 갸냘프게 흐르는 소리
몰래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보는 손이 있어 시작된 이것은 시가 아니라
빛이 통과하는 선을 그어보는 손가락이 쓰는 이야기
첫댓글 야한 밤에 시가 아닌 이야기를 시로 읽는, 이야기가 아닌 시를 읽는 야한 밤.
몰래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보는 손,
수상한 먹구름의 밤에 희미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
우린 항아리가 아니였다 라고 말하고 싶은 항아리 이야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