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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4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 연제원 목사
마태복음 5,6,7장을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위에 오르셔서 따르는 무리들게게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이렇게 시작되는 산상수훈가운데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세상의 빛이라”(마5:13,14절)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셨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소금과 빛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세상으로 들어가야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덧입이서 세상으로 파고 들어가 부패된곳에 소금으로 어두움 가운데 빛으로 부패와 어둠을 물리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모이면 기도하고 말씀먹고 흩어지면 복음증거 사명을 다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뭐 다른 것 없습니다.
모이면 기도하고 말씀먹어야 합니다. 무슨말입니까? 은혜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가운데 성령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은혜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제일 안타까운 것은 예배를 보러오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보러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드리러 오는것입니다. 즉 교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예배를 통해 은혜를 주십니다. 여러분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경배의 행위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조는 분들도 있구요 예배시간에 심지어 휴대폰 문자 보내는 분들 어린 자녀들 때문에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는 분들 이거다 예배자로서 직무유기인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성령의 은혜가 경험되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 나가 소금으로 빛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주 금요일에도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추석 연휴기간에 저희 아내에게 여보 나 40일 금식기도 할까 이렇게 이야기 한적이 있습니다. 제가 농담삼아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데로 저는 일년에 한두차례 기도원에 올라가서 월요일부터 금요일 혹은 토요일까지 기도합니다. 언젠가는 12일정도 금식한적이 한적은 있습니다. 그런데 겁도없이 40일 금식해야겠다고 저희 아내에게 말한 것은 요즘 이일저일 금융작업하느라고 정신이 엉뚱한곳에 집중하고 있더라구요... 어쩔 수 없이 얼마 안남았으니까 또 제가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정말 피곤하더라구요. 그래서 영성도 예전같지 않고... 그래서 금식기도하면서 힘도 얻고 세상일에 물든 제 자신도 정리도 하고 뭐 그래볼까 했던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세상에 소금과 빛으로 살아야 하는데 제가 세상에 물들어 있으니 세상사고를 해야만 하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비록 세상과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세상방법으로 살아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둠이고 여러분은 그들과 다른존재 빛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때문에 세상이 밝아져야 합니다. 여러분 때문에 부패 된곳이 정화되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먼저 은혜가 충만하고 말씀에 붙들려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시간 늘리십시오.
성경 많이 먹으십시오.
예배 빠지지 말고 참석하셔야 합니다.
영적인 거장들이 도전받았던 영적인 서적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세상에 나가면 백전백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일주에 한두번 드리는 예배가지고 여러분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말씀이 어떻다.
교회가 어떻다.
이러기 전에 먼저 영적으로 무장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영적으로 충만하면은 가치관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보는눈이 달라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서론이 좀 길었습니다.
오늘 짧게 18장 1-4절 까지만 보았습니다만
18장은 유명한 장이잖습니까?
17장에서 하나님은 수년간 비를 내리지 않겠다고 엘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정말 3년간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난리가 난것이죠...
이일로 하나님의 종 엘리야와 바알선지자 아세라 선지자 도합 850명이 대면한것입니다. 이것은 엘리야와 이방선지자들의 싸움이 아니라 선과 악을 가리는 절대절명의 승부였습니다
결국 승리는 누구에게로 돌아갑니까?
하나님과 엘리야에게로 돌아갑니다. 이일로
(1) 바알과 그 선지자들은 죽임을 당합니다.
(2) 하나님과 엘리야는 존귀함을 받습니다(21-39).
다시말하면 엘리야는 세상에 나가 소금으로 빛으로 승리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보았던 1-4절 말씀이 주는 교훈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승리가 있기전에 대단히 중요한 과정을 본문을 통해 교훈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우리가 엘리야처럼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으로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영적전투에 나가기 전에 먼저 무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말씀드리면 하나님과 오랜기간 동안 동행하며 영적인 충만을 이루지 않고 무조건 세상에 나가면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1절 상반절을 보십시다. 엘리야에 대한 묘사를 이렇게 합니다.
“많은 날이 지나고 = 많은 날을 지내고……(개역)”
'많은날'= br" !/y = ‘라브 욤’ '세월이 제법 많이 흘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3년이 지나고’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 데
br" !/y yviyliv] hn<v; = ‘라브 욤 셀레쉬 샤나’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서 ‘날’이라는 단어가 !/y = '욤‘이란 단어인데 이 단어는 히브리어 원문성경을 보면 욤(명남)은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300회 나오는 단어로 '날, 낮, 하루'를 의미하는 단어이지만 이런 뜻도 있습니다. 시간의 영역뿐만 아니라 시간의 한 점도 표현될 수 있다. 즉 이 단어는 - 빛의 기간, 낮(어두움의 기간과 반대)
다시 말하면 그냥 3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 아니라 3년이란 긴 시간동안 엘리야는 하나님과 영적이 교제하는 시간들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오해하는 것은 마치 엘리야가 바알선지자 아세라 선지자들과 싸울 때 열심히 중보기도했더니 3년동안 비가 내리지 않던 비가 갑자기 기도 한방으로 비가 내린 것처럼 착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무려 그전에 하나님과 영적인 기간 3년동안 ‘동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많은 날의 교제의 경험이 없이는 세상과 싸워 이기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적인 도구가 절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 모세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 영적 지도자로 사용하시기 위해 미디얀 광야에서 40년간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하는 시간을 갖게 하셨습니다.
- 사도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비늘같은 껍질이 벗겨지고 바로 세상 속으로 나아간 것이 아닙니다. 무려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간의 기나긴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혹시 셀프리더십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몇해전 한참 유행했던 단어입니다.
이 셀프리더십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관리하는 것, 스스로를 점검하는 것’이런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많은 사역을 하셨지만 그 사역의 중간중간 항상 홀로 가셔서 기도하시고 묵상하시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을 절대로 도외시하지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교제가 있어야만 능력 있게 쓰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영적교제가 세상에서의 강력함을 보증하는 능력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또한 모세나 바울이나 또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많은 날을 같이 보내는 깊은 영적인 교제가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엘리야처럼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으로서 승리하기 위해서는‘오직 이 길 밖에 없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엘리아가 하나님과 오랜 기간의 교제를 통해서 생긴 의식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이 땅에 주밖에 없습니다.’ 이 생각을 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가 충만하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하나님 외에는 다른길이 없다는 생각”밖에 안든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이것저것 대안이 참 많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주님과의 교제가 깊어지고 깊어질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오직 그 길밖에 없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아는 찬양가운데 이런 곡이 있잖습니까?
이 땅에 오직 주 밖에 없네
그 무엇도 나를 채울 수 없네
주님의 평안 내 안에 있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네
세상은 변해가고 소망은 힘을 잃어도
변함없이 붙드시는 그 구원의 손길
폭풍이 몰려와도 두려움 물러가네
우릴 위해 싸우시는 그 손을 의지해
이 세상 어디에서 평안을 찾을 수 있나
목숨까지 내어주신 그 깊은 사랑을
우리가 바래왔고 꿈꾸어왔던 미래가
그 한없는 사랑 안에서 열리고 있네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주님밖에 없다는 것을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삼하 12장을 보면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일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서 낳은 아이를 심히 치셨다고 말합니다.(15절) 그래서 아이가 앓게 되는데 다윗은 이일로 하나님 앞에 일주일 동안 매달립니다. 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그 길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는 죽었지만 다윗은 새힘을 얻고 하나님을 경배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름다운 덕소가족 여러분!
하나님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들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가운데 왜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너무 많은 대안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것입니다.
힘이 분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땅에 오직 주 밖에 없다는 믿음으로 달려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가정이 살고
직장 사업장이 살고
교회가 사는 방법은 그 어떤것도 아닙니다.
오직 주님밖에 없다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융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여러분 20억 25억이 작은 돈입니까?
사업부가 잘되서 갚아가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그거 너무 믿지 마십시다. 사업분과 위원장 이원식 집사님 이일로 여러 가지 애를 많이 쓰고 계십니다만 그것은 차선이고 최우선은 주님입니다. 교회가 영적으로 부흥되고 교회가 꿈뜰거리고 교회에 많은 영혼들이 몰려온다면 문제는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밖에 해결책이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돈으로 될 것 같아도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강한 자들의 특징이 무엇 입니까? 항상 오직 이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달려간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이 뭡니까? 솔라 피데, 솔라 그라티아, 솔라 스크립투라, =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말씀’
전부 솔라 솔라 솔라 아닙니까?
only! only! only! 그것밖에 없다. 그것밖에 없다…… 그래서 힘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달려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오직 주밖에 없습니다.’ 이 고백이 내 가슴 속에 불과 같이 일어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이렇게 무장하고 난 다음에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2절을 보니까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세상을 등지고 숨어드는 수도원주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의 중요한 멘털리티는 - 황무지를 향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 세상을 향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 죄인들이 있는 곳을 향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세상으로 들어가서 그들을 건져내야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이 험한 세상 가운데 살면서 성도들이 해야 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첫 번째는 누가 뭐래도 하나님과 동행해야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없이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좋은 뜻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몰라서 못하는 존재가 아니라 할 능력이 없어서 못하는 존재입니다. 주님 손에 붙들린바 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서 ‘오직 주님 밖에 없다’ 거기까지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불같은 확신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서 지저분하지만 세상 속에 나가서 싸움을 벌일 때 주의 성령께서 항상 우리를 반드시 도우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름다운 덕소가족 여러분!
하나님과 동행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직 주님밖에 없다는 고백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세상으로 나가십시다.
승리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