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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는 사람
17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여기서 장로들은 오늘날의 목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사도들도 장로라고 부르기도 했다.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은 에베소 교회를 개척했던 바울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관계는 어떤 관계였을까?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신랑과 신부가 사는 집을 가정이라고 하지 않는다. 신랑과 신부를 가정이라고 한다. 건물을 가정집일 뿐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야 사람이 되듯,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사회가 되고, 성도와 성도가 만나야 하나님의 집이 되고 교회가 된다.
바울과 함께 교회를 이루며 살았던 사람들이 바울이 오라고 하자 에베소에서 밀레도까지, 즉 증평에서 대전까지 정도의 거리를 거리를 걸어왔다. 교통수단이 없었던 때에 60Km 정도의 거리를 걸어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바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단지 바울이 밀레도에서 만나기를 원하다는 말만 듣고도 그 먼 길을 걸어서 바울을 만나러 왔던 것이다. 그들의 결속력을 짐작하게 해 주는 것이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그들을 불렀고 그들은 바울에게로 와서 거기서 교회가 되었다.
밀레도는 로마 시대에 에베소만큼 큰 항구도시였다. 원형식 연극장을 보면 인구를 짐작할 수 있는데, 인구의 1/10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연극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밀레도에 가면 매우 큰 원형극장을 볼 수 있다. 훗날 이 밀레도에 매우 큰 교회가 생겼다. 이방 신전을 개조해서 만든 교회당 터가 남아 있다. 예배당 규모가 매우 크다고 한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산다. 좋은 관계를 맺고 살면 행복해지고, 나쁜 관계를 맺고 살면 불행해진다. 좋은 관계와 나쁜 관계의 기준은 끝을 보면 된다. 끝이 좋은 관계는 다 좋은 관계이고, 끝이 나쁜 관계는 다 나쁜 관계이다.
사람이 술과 관계를 맺을 때도 술은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다. 그 판단은 술을 마시고 난 다음에 판가름 난다. 술을 먹고 난 다음 날 몸이 아프고 머리가 아프고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다시는 술을 먹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면 술과 나쁜 관계를 맺은 것이다. 기분 나쁜 일이 있다고 술과 만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다. 술은 기분 좋을 때 마시는 것이고 그 끝이 행복으로 끝나야 한다.
바울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18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31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바울의 말 속에는 ‘눈물로’이라는 말도 있고 ‘거리낌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쳤다’,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는 말도 있다. 이것은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눈물이 많다는 것은 고집이 세다는 것이다. 거리낌 없다는 것은 자신이 뭔가를 하고 싶을 때는 참지 않고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그들과 같이 있을 때 피하고 싶은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세계 최고의 회사인 애플의 회장은 스티브 잡스였다. 그는 회사원들에게 악당, 황제, 폭군, 독재자, 심지어 적그리스도란 별명까지 얻었다. 호락호락한 회장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회사원들은 그와 만날까봐 아무리 높은 층에 사무실이 있어도 걸어다녔다고 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스티브 잡스를 만나기라도 하는 날에는 스티브잡스의 질문 세례를 맏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여기서 무슨 일을 하고 있나?” “당신은 지금 회사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나” 직원들을 엘리베이터 벽에 몰아붙이고 쏘아 대는 잡스의 질문세례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진땀을 빼거나 엉뚱한 대답을 하면, 잡스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딱 이 한 마디를 외쳤다고 한다.
“당신은 해고야.”
직원들이 회사 식당 밥이 맛이 없다고 하자 식당의 모든 요리사를 해고해 버렸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가지지 못하는 요리사는 ‘차라리 웨이터 조수나 하라’고 독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는 직원의 면전에 대고 ‘얼간이, 쓰레기’ 등의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직원들은 스티브 잡스를 신뢰했고, 충성했다. 그리고 무능하지 않기 위하여 밤낮 열심히 일했다. 그것은 스티브 잡스가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으로 대했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무난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바울은 자신에게 은인과 같은 바나바와도 의견이 안 맞으면 결별하는 사람이었다. 청년 마가는 1차 전도여행 중 바울과 바나바에게서 도망쳐서 고향으로 돌아갔었다. 바울과 바나바가 2차전도 여행을 가려고 할 때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고자 했으나, 바울은 예전에 자기들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마가를 또 데리고 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 일로 바나바와 심하게 싸우고, 바나바와 결별하여 각기 다른 방향으로 전도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바나바와 바울은 바울에게 있어서 기억나는 사람들이었고, 다시 만나서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로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바울이 자신이 죽기 직전 쓴 디모데 후서를 보면 자신이 모질게 대했던 마가를 생각하면서 그를 다시 보고 싶다고 편지한다.
딤후4:10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이 편지글을 읽어보면 데마라는 사람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고, 마가는 기억나는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다.
이제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기억나는 사람이 되는 순서를 밟고 있다.
25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사람이 시간을 볼 줄 안다는 것은 지혜롭다는 것이다. 백화점이나 오락장에는 시계가 없다고 한다. 시계를 보면 현실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화점에서 쇼핑을 한 사람들은 자신이 그 안에서 얼마나 있었는지 모른다고 한다. 사람은 자신의 인생의 시계가 어디 정도 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바울은 자신의 인생의 시간 속에서 다시는 에베소 형제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로마로 갈 것이고, 그 후에는 가장 서쪽에 있는 스페인까지 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36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37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38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것은 그들의 관습이었다. 바울은 그들에게 다시는 자기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고, 그 말에 그들은 울었다. 남자들이 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울었다. 그리고 근심했다. 그리고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배를 타고 떠날 때까지 아쉬워하며 바울을 전송했다.
사람 떠나는데 전송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나에게 귀한 사람일수록 끝까지 전송해야 한다. 그것이 기본 교육이다. 가족 중에 출근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문까지 나가서 전송하는 것이 좋고, 먼 길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버스 터미널까지 가서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같이 있어주고 전송해 주는 것이 좋다. 이것이 좋은 사람들끼리의 관계이다. 사람은 매일매일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한다. 좋은 사람과는 만날 때 인사 확실히 하고 헤어질 때 전송을 확실히 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 소양이다.
바울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말한다.
사람은 기억으로 산다.
얼마 전 칠순 잔치를 한 할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4남매의 어머니였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30대 초반이 되었을 때 암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기 얼마 전에 마지막으로 그녀와 함께 여행을 가기를 원했다. 그의 원대로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자신의 손을 1시간이나 꼭 잡고 걸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마지막 시간을 보내며 죽었고, 그의 아내였던 그녀는 칠순을 맞는 잔치 자리에서 자녀들에게 말했다.
“그 때 너희 아버지가 내 손을 잡아준 한 시간이 나를 40년 간 버티게 했다.”
할머니가 경험한 그 한 시간은 그냥 시간이 아니라 특별한 시간이다. 그 시간에 대한 경험은 그녀의 일생을 이끌었다.
바울은 그들과 3년을 있으면서 그들에게 기억에 남는 순간을 선물로 주었다.
교회가 겪을 어려운 일은 바울과 다른 삯꾼 목사, 이리 같은 목사가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었다. 바울이 장차 일어날 일을 어떻게 간파했는지는 모른다. 이미 그런 사람이 나타날 징조가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떤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던 1대 목회자 바울을 기억하라는 것이었다.
29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바울의 전도 여행 중 3년이나 머문 곳은 오직 에베소 교회 뿐이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일하지 않고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복음을 전했다. 두란노 서원에서의 2년 동안의 가르침이 그것이었다. 낮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사람들이 휴식하는 시간에 바울은 휴식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었다.
26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통신병이 제대로 통신업무를 했다면 전투에 진 것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지만, 통신병이 통신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패전의 책임을 지고 사형을 당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파수병으로서의 사명을 다 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2. 겸손한 사람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존경 받는 학자 어거스틴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질문했다.
“신앙 생활에서 첫째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겸손입니다.”
“둘째는 무엇입니까?”
“겸손입니다.”
“그럼 셋째는 무엇입니까?”
“셋째도 겸손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겸손이라는 보석과 같은 능력이 있어야 한다. 겸손은 그것을 가진 사람에게 보석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겸손해지려고 해도 연단과 희생 없이는 겸손해지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바울은 자신이 겸손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그들을 대했다고 회고한다.
19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겸손의 능력은 어디서 오는가? 겸손은 인생을 살면서 많은 고난과 실패를 겪은 후에 생기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핍박자였고, 스데반 집사를 죽인 살인자이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겸손을 배우기까지 많은 세월을 무명의 목회자로 살아야 했고, 전도 여행을 하면서도 많은 실패를 하기도 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이고, 사람은 지혜를 얻을수록 겸손해지는 것이다. 겸손의 흉내를 내는 것은 가짜 보석이고 진짜 겸손한 사람은 진짜 보석이다.
인간은 스스로 겸손해질 수 없다. 마귀는 교만했고, 아담과 하와 역시 교만했다. 겸손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고 예수님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1908년에 조선의 어느 마을에 미국 선교사가 와서 복음을 전했다. 그 때 그 마을의 양반이고 부자이고 학자인 조덕삼과 그의 마부로 머슴 생활을 하던 경상도 출신 이자익이 함께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주인과 머슴이 함께 교회에 있게 되었는데, 교회에서 장로를 선출하게 되었을 때 머슴 이자익이 선출되고 양반 조덕삼은 선출되지 못했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창피하고 질투할만한데, 조덕삼은 진심으로 기뻐하고 이자익의 말에 순종했다. 다음 해에 조덕삼 역시 장로가 되었는데, 조덤삼은 이자익을 먼저 장로가 된 사람으로 존경하고 받들었다.
나중에 이자익이 신학교 들어가서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는데, 그 길에 대한 비용을 대주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이자익은 훗날 장로교 교단의 총회장이 되었고, 한 번도 선출되기 어려운 총회장을 13회, 33회, 34회 세 번이나 하였다. 조덕삼은 이자익을 늘 겸손하게 섬겼다. 그 조덕삼의 손자는 국회부의장을 지낸 조세형 장로라고 한다. 겸손은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3. 목표가 있는 사람
22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결박과 환난이 닥칠 것이라는 예고는 성령이 바울에게 직접 말씀해 주신 것일 수도 있고, 바울의 주변에 있는 예언자들이 바울에게 해 준 예언일 수도 있다.
행21:4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10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목적이 없고 목표가 없는 사람의 걸음은 똑 바로 가지 못하고 휘청거리게 되어 있다. 하다못해 밥을 먹으러 가는 길도 어느 음식점을 정해 놓고 가야 똑 바로 가는 것이다. 가야할 곳을 정해 놓지 않고 가는 길은 휘청거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이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가야할 길을 알고 그 길을 달려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 길이 비록 편하고 좋은 길이 아니고, 험한 산길을 오르듯이 힘든 길이라도 상관없는 것이다.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