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2) - 복된 성도, 강한 교회
본 문 : 데살로니가전서1:2-8
일 자 : 2024. 6. 16(주일 낮 예배 설교)
우리가 평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를 못할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고,
쓸모없는 것에 붙잡혀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붙잡혀 살고 있는 쓸모 없는 것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평안과 행복을 빼앗아 가는 것들이 무엇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것들 몇 가지만 살펴보면 이런 것들입니다.
첫째는 죄책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지은 죄책감에 붙잡혀 살고 있습니다.
무슨 일만 생기면 과거 자기가 했던 일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한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평안하고 행복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시편기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32: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아멘
그러면 허물 곧 죄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사람,
그래서 복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우리 그리스도인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로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복있는 사람으로 죄책감에서 벗어나 평안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분노와 시기, 원망 불평입니다.
특별히 인간관계에서 오는 분노와 시기입니다.
여러분! 분노하는 사람이 어떻게 평안하겠어요?
시기하는 사람이 어떻게 행복하겠어요?
어떻게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평안하고 행복하겠습니까?
이 분노와 시기, 원망과 불평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평안도 행복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욥기 5장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욥5:2)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아멘
분노와 시기는 사람을 죽이고 멸합니다.
셋째는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불신에서 오는 공포감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니까, 그분의 사랑을 믿지 못하니까 두려움이 몰려 오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붙잡혀 살고 있는데, 어떻게 평안하고 행복하겠습니까?
넷째는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는 탐심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겸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물질에 붙잡혀 돈을 더 사랑하는데 어떻게 평안하고 행복하겠습니까?
그래서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우리는 쓸데없는 근심에 붙들려 인생을 허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의식 / 분노와 시기 / 원망과 불평 /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오는 두려움 / 물질에 대한 탐심, 이 쓸데 없는 것들을 오늘 성령께서 다 소멸해 주시고 우리 모두 평안하고 행복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성경도 우리의 평안과 행복을 위하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 교회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아십니까?
교회는 크게 우주적 교회와 지역교회로 구분합니다.
우주적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을 믿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의 교회로 보고 일컫는 말입니다. 그리고 지역교회는 그 우주적 교회의 살아있는 성도들이 지역마다 동네마다 모여 있는 세분된 예배공동체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우주적 교회의 교인이고, 서울시 강서구 등촌동 지역에 세워 주신 지역교회의 교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역교회는 거기에 모여 있는 성도들이기 때문에, 그 성도들이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현재의 모습도 달라지지만 특별히 미래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스피노스 조디아티’라는 목사님은 지역교회를 살아있는 교회와 죽어가는 교회로 구분하고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 살아 있는 교회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떠드는 소리로 늘 시끄럽지만,
죽어 가는 교회는 어른들이 다투는 소리로 시끄럽다.
* 살아 있는 교회는 선교 활동이 활발하고,
죽어 가는 교회는 선교활동이 점점 위축된다.
* 살아 있는 교회는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겸손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만,
죽어 가는 교회는 사람들 앞에 나타내고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 살아 있는 교회는 부지런히 배우고 봉사하기 위하여 바쁘지만,
죽어 가는 교회는 아는체 , 잘난체 하기에 바쁘다.
* 살아있는 교회는 내일을 꿈꾸고 있지만,
죽어 가는 교회는 어제 일을 가지고 불평 불만만 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에 세워진
모든 지역교회가 다 살아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에서 살아있는 한 교회를 봅니다.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데살로니가로 가서 세 안식일 동안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며 전도를 했는데, 그 때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데살로니가를 떠나게 되는데, 나중에 이런 기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오늘 본문 7-8절을 보십시오
(살전1:7-8)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아멘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고, 주의 말씀이 그들로부터 전파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다는 것은 그 교회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살아있는 교회라는 증거는
오늘 말씀 3절입니다.
(살전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살아있는 교회라는 증거,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는 믿음의 역사입니다.
교회는 믿음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역사는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앞에 겸손히 섬김과 봉사로 헌신하는 것은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믿음의 역사입니다.
믿음의 역사는 우리의 신앙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합니다.
우리 모두 믿음의 역사가 있는 살아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둘째는 사랑의 수고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사랑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사랑은 교회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계시록 2장에서 사랑이 없는 교회는 존재 가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4-5절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람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에베소 교회가 이단과의 싸움을 하느라고 사랑을 잃어버렸는데,
그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촛대 즉 교회를 옮기시겠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누가 뭐라고 해도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워졌으니,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셋째는 소망의 인내입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내일을 꿈 꾸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바라보는 인내가 있습니다.
사람은 많은 것 중에 무엇을 보고 살며, 얼마나 인내하는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고 했습니다.
살아 있는 교회는 믿음으로 바라는, 소망이 있는 교회요,
그 소망,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면서 인내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모두가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있는
살아있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