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늙는다
안혜자
메일을 확인하려는데 평소와 다른 창이 뜬다. 오래 써서 익숙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바꾸란다. 몇 번 무시하고 넘어갔는데 계정이 통합된다고 한다. 먼저 쓰던 것은 가까운 시일 내로 사용할 수 없으니 자꾸 새로운 계정으로 옮기란다. 할 수 없이 새로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만든 게 지난주였다.
오늘 새 비밀번호가 떠오르지 않아 모니터 앞에서 한참을 헤맸다. 아무리 생각해도 깜깜했다. 나를 너무 믿었나 보다. 메모를 안 한 것이 후회됐다. 여러 차례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겨우 로그인이 되었다. 5분 남짓 되는 시간이었지만 몹시 당황했다. 하려던 일을 미루고 건망증과 치매의 차이를 검색해 보았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을 놓쳐 버린 나의 상태가 어디쯤 와있는지 궁금했다.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는 머릿속이 원망스러웠다. 뇌는 점점 늙어가는데 세상은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라고 하니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추운 날 은행 앞에서 시위하던 노인들이 있었다. 몇십 년간 이용하던 아파트 단지 앞 지점이 갑자기 문을 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보내준 용돈이나 적은 연금을 받던 소중한 통장을 가지고 가서 공과금도 내고 현금을 찾기도 했던 곳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은행의 입장은 자동화기기를 그 자리에 두니 불편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동화기기가 모두에게 편리한 것은 아니다. 기계 앞에서 쩔쩔매는 고령자들의 불편을 친절하게 도와주던 직원은 이제 없다. 도움을 받으려면 통합된 먼 지점까지 가야 한다. 은행은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어르신들에 대한 배려 없이 기어코 지점을 닫았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외면당한다. 피켓을 들고 선 노인들이 겪는 어려움에서 조금 벗어났다고 안심할 수 없다. 나도 이미 여러 곳에서 소외되고 있다.
TV 광고를 보다가 어리둥절해졌다. 도무지 무엇을 광고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세탁기를 팔고 싶은 것인지, 고장이 난 휴대폰을 고쳐주겠다는 것인지, 영어 선생을 구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어떡하지’만 반복하고 있다. 검색해 보니 숨은 고수를 찾아 불편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하는 앱을 광고하는 것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을 연결해 주는 곳이었다. 광고를 이해하고 업체의 이름이 뜻하는 의미를 알아내긴 했으나 조금 허탈했다.
내 나이의 보통 수준 정도의 이해력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요즘 광고를 보면 멍할 때가 있다. 광고를 기획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물건이나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 여겨 제외한 모양이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알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남겨져야만 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아쉬운 것은 그 집단에 속한다는 불안 때문이다.
친정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머니는 멀리 가는 딸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는 듯 전철역까지 동행했다. 가는 길에 대학교 앞의 수많은 간판을 보며 이것저것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무심히 지나쳤던 가게들의 이름은 ‘솔리드웍스’ ‘시요키키’ ‘에딕티’등 외래어로 뒤덮여 있었다. 몹시 불친절하게 무엇을 하는 집인지 일부러 숨긴 것처럼 알기 어려운 말이 넘쳐났다. 어머니는 매일 그 길을 오가며 문맹에 가까웠다. 간판은 분명 한글이었지만 뜻을 알 수 없었다. 할머니는 몰라도 되니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경고처럼 느껴졌다.
“저 집이 뭐하는 집이여?”
친정어머니는 새로 개업한 스터디카페가 어떤 곳인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냥 애들 공부하는 곳이라고 잘 설명하면 될 것을 몰라도 된다는 말을 덧붙이고 말았다. 그게 이제야 후회가 된다. 무언의 사인들이 나를 내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 어머니에게 했던 말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버려두고 앞으로만 향하는 세상이 두렵다. 조금만 더 친절할 수는 없는 걸까? 몰라도 되는 사람은 없다. 알고 싶어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가성비가 좀 덜 나오더라도 함께 가는 길도 열어놔야 하지 않을까? 세상은 쉼 없이 바뀌고 지금 정보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변두리로 밀려난다.
새로운 트렌드를 연구하는 송길영 작가는 지금의 시대를 ‘신 고려장’으로 표현한다. 나이 탓인가? 공감 백 퍼센트다. 산속에 부모를 버리고 왔다는 이야기만큼이나 문화의 단절도 사람을 소외시킨다. 변화하는 시대에 앞선 사람들의 작은 배려가 따라가는 사람들에게는 사다리가 된다. 딸의 무성의한 설명에 친정어머니가 하신 말은 이 한마디다.
“너도 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