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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은 촛불시민의 명령이었고,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해내야 할 숙제이니 누군가 해야 한다면 맡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저와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에 대한 동반책임자라고도 할 수 있어요.저는 촛불개혁을 약속한 제1야당대표였고,문재인 대통령은 촛불정부의 대통령이니까요. [추미애의 깃발 186쪽}
검찰개혁 촛불집회 #1
조국 법무부 장관 검찰 수사를 보며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땅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10년도 지난 고등학생의 기록을 검찰이 조사하고 있었다. 그것도 사냥개들이 토끼를 쫓아 달려드는 형국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이수역에서 13번 마을버스를 타고 팔레스호텔 앞에서 내려걸었다. 5시가 지난 시간인데 성모병원 앞부터 차량을 통제했다. 서초동 국립 중앙 도서관을 넘자 시민들은 자리를 펴고 앉았다. 아이들과 함께 길바닥에 자리를 폈다. 한차례 모두 일어나 앞으로 바싹 붙여 앉았다. 멀리 태극기 집회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조국 퇴진을 외쳤다. 저들이 "조국"을 외치면 우리는 더 큰소리로 "수호"를 외쳐 "퇴진"을 묻어버렸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외침에 말이 꼬였다 풀렸다. 말이 말을 받았고 또 다른 말이 엉겼다. 말과 말이 홀레 붙어 뒹굴었다. 홀레 붙은 개를 보듯 재미있는 진풍경이 이어졌다. 10만을 예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80만이 모였다. 100만이 모였다. 밀려들어오는 시민들이 태극기 부대를 한쪽으로 밀어붙였다. 사랑의 교회 앞 8차선 교차로 동서남북은 인도까지 인파로 넘쳐났다. 200만이 모였다. 보수 200 대 진보 200만이 같은 공간에서 만났다.
교대역, 서초역, 고터 역에서도 시민들은 끊임없이 올라왔다. 인터넷은 신호를 잡지 못했다. 찍었던 사진은 업로드되지 않았다. 엄청난 시민의 함성은 파도를 만들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성모병원까지 시민들로 가득 찼다.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우리는 다솜어린이집과 서초 경찰서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이 화장실을 가야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황망했다. 모세의 기적이라도 일러나야 했다. 주변에서 어떻게 들었는지 서초 경찰서 화장실이 열려있다고 했다.
서초 경찰서는 화장실을 개방해 시민들을 도왔다. 서초구청은 자한당 구청장이라 그런지 화장실을 오픈하지 않았다. 100만의 남녀노소가 모인 곳에서 정파가 무슨 소용인가? 똥은 싸고 소변은 볼 수 있게 해야 하지 않는가? 서초구청은 시민의 구청이 아니라 자한당의 구청이었다.
사랑의 교회는 화장실이 지저분해진다고 폐쇄했다. 시민의 공간도 빼앗아가더니 교회 화장실도 문을 닫아버렸다. 서리풀 축제 시간에는 문을 열었는데...... 교회가 지탄받는 이유는 멀리 있지 않았다. 강남에서 제일 깨끗하다는 교회는 생각이 더러웠다. 이 교회는 슈바이처 같은 사람은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슈바이처는 아프리카에 갔을 때 웅덩이에 빠진 마차를 빼내기 위해 흑인 마부와 마차를 밀었다. 이를 보던 백인이 투덜댔다. "뭐 하러 동물 같은 흑인을 도와줍니까" 슈바이처는 같은 사람인데 피부색이 다르다고 깔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교회 지도자들은 보수를 지지할 것이다. 심정적으로 진보를 돕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는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사람이 곧 교회다. 시민을 돕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다. 아닌가? 앞으로 계속되는 촛불집회에 동참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도움은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이 도와야 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외치지 말라. 입만 살아 나불대지 말라. 이름에 있는 사랑을 빼라. 내 주위를 먼저 돌보는 교회가 되길 소원했다.
그곳을 다니는 깨시민은 스스로 일어나 봉사자의 자세로 섬겨줄 수는 없었는가? 안내자는 될 수 없었는가? 청소자는 될 수 없었는가? 자발적인 봉사 섬김의 기회를 왜 날려버리는가? 묻고 싶었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 음료 빵 등을 먹으며 조국 수호, 문재인을 외쳤다. 박근혜를 보냈던 고사리 손에 검찰개혁이란 플래카드를 들렸다. 엘시디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던져도 깨어지지 않았다. 내가 아니면 아이들이 해야 했다. 검찰개혁 조국 수호를 외쳤다. 서초역까지 걸어가 보려 했다. 도저히 밀려 올라오는 시민에 부딪혀 길이 막혔다.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민주시민들이 계속 올라왔다.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을 외치는 시민들이 길마다 가득했다. 동지들이 한 곳에 모였다. 끝없이 자리를 찾아 움직이는 행렬은 이어졌다. 계속 인파는 몰려들었다. 조국을 지키고 문재인을 지키고 검찰개혁을 염원하는 시민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길마다 울리는 함성소리 이제는 기득권으로 살아온 자유당과 언론 기레기들과 검찰을 몰아내고 진정한 적폐 청산을 염원하는 이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땅에 암적인 3인방이 있다면 언론, 검찰, 자한당이라 생각했다. 이들을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던져버려야 했다.
검찰개혁, 검찰개혁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외쳤다. 검찰은 광복 이후 지금까지 기득권 세력이었다. 대통령은 한 번으로 정권이 끝났다. 보수는 대통령 중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입술로는 검찰개혁을 외치지만 실상은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았다. 거짓을 만들고 검찰과 결탁하고 언론으로 포장했다.
부패한 검찰은 대를 이어 권력을 이어왔다. 검찰, 법무부, 헌법 기관, 언론, 정치계, 경제계까지 침투해 저들만의 시장을 만들었다. 보수 시장은 권력을 대물림했고 서초동은 거악의 서식지가 되었다. 자본주의의 꽃은 정경유착 언론 뷔페로 시민들의 삶을 짓밟아 왔다. 이제는 끝내야 했다.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달라야 했다. 꿈꿀 수 있는 곳 대한민국이 되어야 했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했다. 지랄이라도 해야 했다. 검찰이 하는 짓이 정상이라 여기는 이들은 보수이거나 친일파들뿐이라 생각했다. 대한민국은 민국이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이다. 검찰이 주인이었던 이 땅의 주권을 되찾아 아이들에게 돌려주어야 했다. 이것은 기성세대인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길바닥에 자리를 폈다. 아이들도 나왔다. 남녀노소 모두 나왔다. 내가 조국을 지킨다. 어떤 교회 사모가 각 교회마다 골방에서 기도만 하는 이들에게 외쳤다.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오강가 (마법사) 슈바이처 박사는 목사였다. "내가 하나님과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는 생각했다. 슈바이처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의사가 되었다. 여자 친구 헬레네도 간호사가 되었다. 90세 눈을 감을 때까지 그곳에서 일생을 보냈다. 믿음을 말하는 사람들은 정권에 기대고 기득권에 기대고 보수에 기대지 말아야 한다. 오직 예수님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검찰개혁은 아이들과 함께 이루어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았던 논두렁 시계 사건을 처음으로 방송했던 씨방새(SBS)는 물러나라 외쳤다. 진실 보도를 외쳤다. 변질된 언론, 지금은 JTBC도 신뢰할 수 없는 언론이 되었다. 시민들의 진실 보도 요청에 방송을 중단해야 했다. 조중동, 채널A는 아예 입장 불가였다. 어떤 죄를 지었기에 언론이 기레기가 되고 취재현장에서 쫓겨날까 정보에 갈급한 이들은 유튜브 방송을 통해 진실을 들어야 했다.
진실을 말하는 언론은 이 땅에 없다. 단지 돈이 되는 일만 알릴 뿐이다. 그래서 기레기라 칭한다. 조국을 향한 거짓 언론의 편파방송은 선을 넘었다. 기자들은 취재를 잊은 지 너무나 오래되었다. 어떻게 취재를 하는 줄도 알지 못했다. 그저 검찰이 흘려주는 정보만 받아쓸 뿐이었다. 검찰 관료제는 변질되면서 오염된 정보는 언론의 받아쓰기로 똥칠을 했다. 깨시민은 언론을 믿지 않았다. 일인 방송 시대, 유튜버를 통해 방송을 듣고 조합해 진실을 찾아갔다.
시민의식은 어떤 시대보다 진보적이다. 지금은 민국시대다. 인터넷은 민국시대를 가능하게 했다. 백성이 주인인 세상은 오직 깨시민만이 할 수 있다. 가난했던 아버지 시대 생존에 갈급했던 아버지는 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보수 쪽에 대가리를 드물어 살아야 했다. 가난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다. 아이들을 먹여야 했다. 비굴해도 검찰에 고개를 조아리며 새파란 젊은 검사에게 영감님 영감님 높여 불러야 했다. 시간이 흘러 또 아버지가 되었다. 가난이 족쇄였던 삶은 바닥을 치고 이 땅에 새 풀이 돋아나듯 새 생명은 자라났다.
말살되었던 민족 혼은 부활했고 독립을 열망했던 이들은 밤마다 씨를 뿌렸다. 이제 100만 대군이 되었다. 100만 촛불로 태어났다. 저들과 싸울 때가 되었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보수의 구습에서 진보로 돌아섰다. 삶을 살아내고 더 이상 민주주의를 외면할 수 없다. 우리는 일어나야 했다. 모여야 했다.
지난 70년 동안 이승만에서 이어진 적폐 세력 자유당을 시작으로 다시 자한당이 될 때까지 저들은 친일파가 되었다. 이 땅에서 주인 노릇 했다. 시민을 개 돼지라 칭했다. 저들에게서 언론과 검찰 정경유착의 사슬을 끊어야 했다.
조국이 아니면 문재인이 아니면 또 누가 이 대업을 이룰 것인가? 또 한 시대를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이제는 끝을 내야 한다. 친일파 자한당, 검찰개혁, 공수처 설치, 기레기 말살 이 시대의 소명이라 생각했다.
내가 이 자리를 지키는 이유이다."경험이 앎을 얻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과정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소금이 짜다는 것은 맛을 봐야 알고 승리가 얼마나 달콤하지는 이겨봐야 한다. 경험하지 않고 아는 것은 올바른 앎이 아니며 기껏해야 관념적인 앎일 뿐이다." [개념어 사전, 남경태, 25쪽]
5만, 10만, 100만, 200만 그것이 중요한가? 민심이 자발적으로 조국 수호를 위해 모였다는 것이 중요했다. 당신들은 대가리 수가 중요할지 모르지만 참가했던 사람의 마음을 읽고 독해가 되지 않는가?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학벌 가진 이 시대의 지식인이란 사람들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
당신들은 사람이길 포기한 짐승들인가? 결국 들통날 거짓말은 나 대표 당신이 하고 있지는 않은가? 조국 장관처럼 당신을 탈탈 털 어보라고 말해보라. 자신 있으면 남의 일이라고 말만 앞세우지 말고 당신부터 거짓의 탈을 벗고 거리로 나와보라. 야당 등 떠밀어 대머리 만들지 말고 당신도 동참해 보라. 무엇하나 떳떳하지 않은 당신이지 않은가?
오 대표 당신의 아내가 병들어 있고 갑자기 9명의 특검들이 가정방문을 했다고 치자 아내가 당신에게 전화해서 말도 못 할 정도로 공포에 질려있다면, 당신에게 전화를 바꾸어주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법무부 장관이기 이전에 한 여인의 남편이고 아이들의 아버지이다. 당신은 공감하는 바가 없는가? 그런 당신이 당대표를 하는가? 일반 시민조차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을 당신은 이해할 수 없는가? 대표 일 잠시 내려놓고 집에 가서 아이들과 놀아라. 소설도 읽고 시도 좀 쓰고, 책도 읽고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성해 총장! 내 직원이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감싸 주는 것이 리더의 할 일이라 생각한다. 당신의 인터뷰를 보며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신은 메몰 차게 진실을 말했다. 교육자의 양심을 운운했다. 교육자가 말한 양심은 얼마 가지 않아 수면 위에 드러났다. 명예 박사라는 포장은 사라지고 고졸이라는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당신이 남발했던 동양대 총장 표창장은 고졸 총장의 초라한 쓰레기 조각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을 검찰은 사문서 위조라고 말했고 기소했고 구속까지 몰아갔다. 고졸 총장의 표창장을 찾겠다고 11시간을 가정집 압수수색을 했다. 당신이 한 일은 아마 대한민국 역사에 남을 것이다.
학교를 지키고 싶었나? 그런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당신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여교수를 구속시켜 감방에 보내고 싶었나? 그것이 교육자의 양심이란 것인가? 당신이 말한 진실이 그런 것인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도 할 말이 남았는가?
검찰개혁 촛불집회 #2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19년은 보수와 진보로 진영을 구축하고 있다. 깊은 골이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고 성숙된 시민의식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섬겨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님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배려와 섬김으로 민주주의는 발전해 가야 한다.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고통스럽다고 하여 내가 짊어진 짐을 함부로 내려놓을 수 없다."
조국 법무부 장관
10월 3일 광화문 자한당 집회와 구국 기도회란 명목으로 300만 시민이 모였다고 조중동을 비롯한 모든 언론은 크게 보도했다. 9월 28일 서초동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에 자극을 받은 영향일까? 그들은 태풍이 올라와 많은 피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집회를 강행했다. 자한당은 단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달라는 공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공문은 강제동원령과 같았다. 그러나 동원은 없었고 자발적이라 말했다. 기독교 기도성회도 광화문에서 열렸다. 일급 20,000원을 준다며 기도성회 참석 알바를 구하는 공지가 26일, 27일 자로 올라왔다.
집회 결과는 폭력 시위자 46명 체포, 1명을 구속되었다. 여기자 성폭행, 언론기관 차량 파괴, 무자비한 폭언만 난무한 저질의 집회가 되고 말았다.
이곳저곳 페이스북에는 인원 동원을 한 흔적들, 보기만 해도 섬뜩한 장면들로 너저분했다. 자발적인 모임임을 가장했지만 저들의 노력은 한없이 초라했다. 진정성 없는 집행부는 자신들의 행사만 마치고 총총히 사라졌다. 울분을 토하는 이들의 고성은 광화문을 넘어 전파를 타고 이리저리 흘러 다녔다. 수많은 인파들은 길 잃은 자들이 되어 이곳저곳을 기웃댔다. 발정 난 수캐가 암캐를 찾아 헤매듯 했다.
세월호 가족들이 있는 천막을 포위한 태극기 부대는 세월호 '기억 공간'에 "침 뱉고, 사진 찍고 욕설하고 손가락질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프다"라고 (고) 김시연 양의 어머니 윤경희 씨는 말했다. "각오했지만 마음 아파 펑펑 울었다"라고 했다.
귀와 눈을 닫아버린 시민은 진실을 말해도 통하지 않았다. 오직 거친 입으로 고장 난 레코더처럼 자기 말만 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 페르소나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무섭다. 이것이 가장무도회였으면 좋겠다.
방송은 모인 숫자에 민감했다. 200만이 모였다. 2,000만 명이 모였다. 요란하게 떠벌였다. 여기자 성폭행과 차량 파손을 당한 JTBC는 망연자실했다. 언론은 아는지 모르는지 정치 언론은 거짓으로 포장했다. 숨겨진 진실을 묻으려는 듯 악한 소리만이 진실이라 했다. 진실은 또 묻혔다. 시민들은 이제 메이저 언론사는 믿지도 듣지도 않는다.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뉴스 공장과 김현정의 뉴스쇼와 같은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지난주에는 방배동에서 서초동까지 버스로 이동했다. 마을버스 13번은 검찰청까지 운행하지만 그날은 펠리스 호텔까지 운행했다. 집회 장소까지는 걸어서 갔다.
10월 5일 아침 아이들과 아침을 가볍게 먹고 서둘러 서초동으로 출발했다. 오늘 아침부터 정경심 교수의 재소환 소식이 들렸다. 어제 입원으로 조사를 받지 못해 오늘 오전부터 강도 높은 조사를 시작한다고 했다.
우리 공화당 집회가 오후 12시 40분부터 서초동 서울 성모병원 인근에서 있었다. 우리 공화당은 "검찰개혁이 아니라 검찰 정의가 우선"이라며 검찰의 조 장관 일가를 먼지 털듯이 탈탈 털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페이스북은 남부터미널로 오시면 안 된다는 글이 올라왔다. 전철로 사당에서 서초역까지 이동했다. 보수 성향 시민단체인 자유 연대도 오늘 오후 2시부터 서초역 6번 출구 인근에서 검찰 지지 집회를 연다고 했다. 답답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아이들이 안전한 곳으로 가야 했다.
서초역에 도착하자 빨간 모자를 쓴 군복 차림의 자유연대 지지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6번과 7번 출구 앞에는 자유연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많은 인파가 모이자 자유연대는 심한 욕설을 하면서 우리당 쪽으로 이동했다.
서초역 교차로 4곳에는 거대한 스크린이 설치되었다. 개혁운동본부는 밤을 지세며 어떤 곳에 앉아도 볼 수 있도록 준비했다. 오후 1시인데 벌써 시민들은 서초역 사거리를 향해 계속 모여들었다. 메인 거리인 검찰청 방향이 먼저 스펀지가 물을 흡입하듯 채워졌다. 미리 온 시민들은 현명하게 자리를 확보했다. 자유연대와 우리당 차량이 본 무대 근처로 진입하려는 시도를 사전에 막았다. 길 양쪽으로는 자유연대와 우리당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자리를 펴고 시민들이 자리를 잡았다. 도로로 진입하기 어렵게 되자 인도에서 집회를 방해했다. 막힌 바리케이드로 향해 갑자기 달려드는 좀비 마냥 달려들었다. 욕을 했고 시비를 걸었다. 눈을 부라리며 손 주먹을 날렸다. 허공을 가르는 손 주먹은 악의적이었다. 그들의 행동은 난폭했고 거칠었다.
"일본 자민당의 한국지부=자유한국당,토착 왜구를 내년 총선에서 퇴출시키자"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검찰개혁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절박한 현실을 표현하고 있었다. 자한당을 비판하는 글은 곧 검찰을 비판하는 글로 읽혔다.
대한민국은 1945년 8.15 광복을 맞았지만 이승만으로 시작된 자유당의 집권으로 친일파 정권이 들어서고 말았다. 그리고 70년이 지났지만 진정한 독립을 이룰 수 없었다. 자유당은 절대 권력인 검찰과 거짓 언론의 비호 속에 정치, 경제, 역사할 것 없이 친일파 세상을 만들어 왔다. 강단 사학자들은 열심히 일본을 찬양하는 역사를 만들었다. 친일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 잘못된 역사를 심으려 했다. 자기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역사가, 정치 인사들은 언제든지 적색분자, 빨갱이로 몰았고 쥐고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했다. 검찰과 경찰, 언론 그리고 자한당의 카르텔 집단은 올가미를 만들어 토끼몰이를 했다. 지금도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을 공격하고 있다.
10월 3일 구국 기도회 주관자 전광훈 목사는 "문재인 저놈을 빨리 끌어내려 주시옵소서.
주사파 50만 명 척결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집회 현장은 2만 원에 동원된 사람들이 가득했다. 헌금함을 들고 다니며 돈을 걷었다. 헌금함에는 "본 헌금은 전광훈 목사님의 모든 사역을 위해 드려 지며 헌금의 처분 권한을 전 목사님께 모두 위임한다"고 적혀 있었다.
기독교는 한경직 목사가 북에서 내려온 청년들 중심으로 서북청년단을 창단했다. 그들은 이승만의 지시로 제주 4.3 사건을 빨갱이 집단으로 몰아 피바다로 만들었다. 군부대의 항명으로 촉발된 여순반란사건도 공산당 빨치산으로 몰아 수없이 많은 시민을 총칼로 죽였다. 그 공을 인정받아 경찰이 되었다. 기독교는 이승만을 등에 업고 대형교회가 되었고, 거대 기업이 되었다. 이것이 전광훈 목사가 있는 한기총이다.
서초역 빨간 모자를 쓴 자유연대는 자유당의 '서북청년단'을 떠올리게 했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들을 피해 아이들과 함께 서초역 4번 출구로 올라왔다. 필요한 물품을 편의점에서 준비했다. 물과 아이들이 먹을 과자와 음료, 커피를 준비했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야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장실이 가까워야 했다. 우선 메인 거리인 검찰청 방향으로 올라갔다. 지난번에 앉았던 서초 경찰서는 메인 무대에서 너무 멀었다. 차례대로 시민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다행히 이른 시간이라 듬성듬성 빈자리가 많았다. 어디든지 앉을 수 있었다. 처와 아이들 때문에 여자화장실이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박원순 시장님의 배려로 간이 화장실 차량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런 대규모 집회에 나오면 먹는 것과 용변이 문제였다. 공공건물이 우선 개방을 해주고 주변 빌딩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시작까지 오랜 시간이 남았지만 시민들은 표시해 놓은 안전선을 지키며 자리에 앉았다.
자원봉사자들은 팸플릿과 앉을 수 있는 방석을 무료로 나누어주었다. 아마 누군가 구입해 시민들을 위해 제공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팸플릿도 다양했다. 각자가 준비하라고 했는데 이름을 밝히지 않은 누군가가 제공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마다 예쁜 손글씨로 만들어 온 이들 모양과 형태는 다양했다. 쓰인 것은 달라도 담긴 것은 검찰 개혁, 조국 수호였다.
우리 아이도 먹었고 등산용 깔개도 이용했다. 우리당 집회로 올라가는 사람들은 처음 본 사람들에게 검찰 개혁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욕지거리를 했다."정신 차려라"라며 소리쳤다. 시비를 걸어 싸움을 조장했다. 시간은 흘러갔다. 끝이 보이지 않던 8차선 도로는 어느덧 끝까지 시민들로 채워졌다. 4시가 넘자 지방에서 온 사람들도 시민들 사이로 합류해 들어왔다.
깃발을 든 연합회 단체들이 재치 있는 푯말은 시민들을 웃음 짓게 했다. 서로 환호했고 인사했다. "전국 미남 협회" 도 등장했고, "검찰의 장모"도 등장했다. 즐거운 축제 시간은 리허설이라 했지만 그 자체가 시작이었다.
다른 어떤 소식보다 기쁜 소식이 들렸다. 지난주 지저분해진다는 이유로 화장실 문을 개방하지 않았던 '사랑의 교회'는 시민들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그것도 활짝 열어주었다. 친절한 안내원까지 있었다는 멋진 소식을 듣게 되어 기독인의 한 사람으로 너무 기뻤다.서초구청은 화장실을 개방했는지 아직 모르겠다. 서초구청은 구청장이 자한당이라 시민을 개, 돼지로 보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오늘은 이백만 이상의 시민이 서초구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축제를 즐겼고 먹고 마셨다. 시민 집회로 어떤 가게는 대박을, 어떤 가게는 쪽박을 찼다. 서초구청은 서리풀 축제를 하면서 수억 원을 썼을 것이다. 자발적인 시민이 서초구를 찾아와서 행사를 하는데 화장실조차 개방하지 않는다면 서초구민은 들고일어나야 할 것이다. 서초구청 직무유기를 질책해야 할 것이다.
폭력을 쓰라는 말이 아니다. 폭언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서초 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오직 바른 글로 지랄 지랄하라는 것이다. 구청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따져야 할 것이다. 서초구의 깨시민은 말해야 할 것이다.
"서초구청은 시민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라"
명령해야 할 것이다. 시민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면 구청장을 해임해야 할 것이다. 누구를 위한 구청인가? 생각해 보라. 시민 이백만이 서초구에 왔다면 이것은 큰 재해 수준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보수 진보를, 각자 정파를 떠나 오직 시민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몇 천명 모이는 동네 수준 서리풀 축제 하나를 준비하며 몇 날 며칠을 준비하면서 수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축제를 단 하루도 도울 수 없다면 그런 공무원은 서초구에 필요 없지 않은가? 시민을 위한다는 말은 거짓인가.
서초구는 구청장의 것이 아니다. 개인 회사도 아니다. 시민들의 혈세로 운영되는 곳이란 사실을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박원순 시장이 화장실 차량을 공급해 주었다고 면피할 생각은 버려야 한다. 화장실 차량 몇대로 충분하겠는가? 서초구는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매번 행사 때마다 확인하고 확인할 것이다. 공적 기관은 화장실을 개방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행사를 돕는지 감시해야 한다.
오후 6시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비가 오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이들 우선 우산을 씌워주었다. 두 아이는 비를 맞지 말아야 했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비를 멈추어 주세요. 다행히 비를 먹은 먹구름은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하늘은 흐렸고 날씨는 추워졌지만 행사에는 지장이 없었다.
오후 9시까지 진행된 순서마다 지난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만족한 행사였다.
첫째, 스피커는 앞이나 뒤나 차이 없이 들을 수 있었다. 지난주 검찰청 누에다리 앞쪽에 앉아 있었다. 무대는 너무 멀었다. 윙윙 거리를 소리를 들으며 우리끼리 지랄 지랄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빵빵한 현장음은 앞 뒤가 없었다. 최고였다.
둘째, 안전요원들은 곳곳에서 질서유지를 하며 도왔다. 지난주는 경찰 이외에는 안전요원이 없었다. 시작 전에 메인 무대는 완전히 찼고 교대로 예술의 전당 쪽으로 시민들을 안내했다.
셋째, 화장실 차량이 준비되었다. 앞쪽에는 여자화장실 2대, 뒤쪽으로는 남자 화장실 2대가 있었다. 시작과 함께 서초 경찰서 화장실도 개방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줄을 서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질서 있게 자연의 부름을 받은 시민들은 차례를 지키면서 해결해 나갔다.
넷째, 프로그램은 알찼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지 못했다.
8차 집회는 다시 찾은 태극기의 행진이었다. 개개인마다 태극 문양이 건, 곤, 감, 리 모여서 태극기를 만들었다. 촛불 시민들 위로 펄럭인 감동의 대형 태극기 물결은 내 머리 위를 지나갔다. 돌아왔다. 아이들은 신나서 소리쳤다.
"10월 3일 개천절에도 태극기를 달지 못했는데....." 태극기 하면 마치 "박근혜 편입니다. 자한당을 지지합니다. 우리당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가치를 담아 태극기를 찾아왔다. 이 기막힌 아이디어를 낸 손혜원 전 의원께 감사드린다.
자한당을 지지하는 국민들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 수준 차이는 현격했다. 정서적 간극은 더 이상 메워질 수 없었다.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떻게 이들과 함께 가야 할 것인가 커다란 숙제가 남았다.
가수 이은미의 피날레를 한 명의 시민으로 시민들과 함께 같이 보고 싶었다. 아이들 때문에 먼저 일어서야 했다.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잠에 떨어진 6살 딸을 안았다. 8살 아들은 걸어서 우리당이 집회하는 곳을 지나 고터를 향해 걸었다.
무대에서 이은미의 "아침이슬"이 흘렀다. 뒤를 돌아보며 앞으로 길을 찾아 계속 올라갔다. 바리케이드를 지나 우리당 집회 장소에 들어섰다. 섬뜩한 분위기 이곳은 다른 나라였다. 인도를 따라 걸었지만 우리당 극우 시민들은 지나가는 검찰개혁 시민들을 향해 지랄 지랄을 했다.
아이를 안고 가는 나에게도 "정신 차려"라고 외쳤다. 육두문자가 날아왔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듣는 욕에서 살기를 느꼈다. 내가 안고 있는 아이는 그들에게 적의 아이로 보일 뿐이었다. 경찰들 사이를 지나며 걸어서 내려갔다. 성심병원을 지나 고터를 거쳐 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과 함께 '이은미' 마지막 공연 아침이슬을 다시 들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눈물이 났다. 이은미는 말했다. "태극기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어요." "상처입지 마십시오", "아프지 마십시오.", "여러분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시민들은 이은미를 연호했다. "여러분, 여러분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진보합니다. 그 도도한 진보의 흐름 속에 대한민국 호가 정의의 깃발을 달고 멋지게 흘러갈 수 있도록 늘 깨어있으셔야 합니다. 깨어있어야 합니다."
오늘 함께 했던 사람들, 질서 정연한 모습들, 앉았던 자리는 잘 정리하고 떠나는 모습들, 경찰의 지시와 안내를 받으며 질서를 지키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습들, 화장실 줄을 서면서도 무대 행사에 집중하는 모습들, 시민들의 의식은 이은미의 아침 이슬처럼 살아있었다.
우리당 지지자들, 자한 당 지지자들, 한마디로 잔당들은 검찰개혁을 지지하는 시민들을 위해 준비한 1인용 스펀지 방석이나 태극기 팜프렛 등을 몰래 훔쳐 가지도 했다.
시민을 위해 깔아놓은 자리를 걷어가기도 했다. 인도를 따라 걸으면서 앉아 있는 시민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욕을 했고 싸움을 부추겼다. 그들은먼저 민주시민의 자질부터 갖추어야 할 것이다.
오늘은 행복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시민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놀랐다. 10월 3일 300만 자한당 행사 후라 내심 걱정했다. 오늘도 머리수 하나 더 보태는 심정으로 나왔는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믿기지 않았다. 눈물이 났다. 자발적인 시민들의 힘은 돈으로 얼룩진 저들과 모든 면에서 달랐다. 나는 여기 서초동 촛불 축재에 있었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여러분, 여러분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진보합니다. 그 도도한 진보의 흐름 속에 대한민국 호가 정의의 깃발을 달고 멋지게 흘러갈 수 있도록 늘 깨어있으셔야 합니다.
깨어있어야 합니다."
행사 후 모습 청소부 아저씨들도 놀라워했다. 깨시민은 앉고 일어섬이 동일했다. 아이들은 안고 오면서도 모든 팸플릿 한 장 안 버리고 집으로 가지고 왔다. 모든 행사가 끝난 시간 아이들과 함께 휴지를 줍는 가족도 있었다. 행사는 참석할 수 없었지만 청소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밤늦게 도착해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눈물이 났다. 이들이 대한의 시민이었다.
검찰개혁 촛불집회 #3
노무현의 꿈, 문재인의 운명, 조국의 사명 10차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9호선 국회의사당 역 2번 출구 앞에 자리를 잡았다. 8살 아들, 6살 딸도 함께했다. 집에서 쉬고 싶은 날 토요일 아이들과 산으로 들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여행 간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파란 하늘에 이끌려 여의도로 소풍 왔다고 생각했다. 국회의사당 가을 하늘에 검찰개혁, 조국 수호, 공수처 설치란 문구를 새겨 넣고 싶었다. 페스트 트랙 공수처 설치 법안 통과를 고민하는 국회의원들이 잊지 못할 폭탄을 머리 위에 올려 놓아주고 싶었다.
광주 1호 차, 광주 2호 차 푯대가 정겹다. 전국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온 이들, 먼 거리를 생각하지 않고 매주 달려온 이들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났다. 가슴이 찡했다. 금강산에 맑은 물은 동해로 흐르듯 우리는 전국에서 출발하여 여의도로 모였다. 승용차로, 버스로, 지하철로, 기차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까지 흘러왔다. 나도 이렇게 시대의 물결에 밀려 여기와 있다.
자유연대는 오늘도 시민 집회를 방해했다. 모임 장소 옆에 웅크리고 앉아 똬리를 틀고 독을 품었다. 독사같이 가는 혀를 날름거리며 우리 쪽으로 소리를 품어냈다. 녹음된 구호와 외침은 민주시민의 심장을 향해 끊임없이 날아왔다.
대한민국이 멍들고 병들어 죽어갔다. 정치 검찰 정치권력의 마지막 발악처럼 느껴졌다. 옆 사람이 말하는 소리도 아이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청력을 잃을까 걱정했다. 도저히 더 이상 집회를 할 수 없었다. 4시 집행부는 자유연대와 협상을 요청했다. 협상은 잘 이루어졌다. 그들은 그들의 집회를 하고, 우리는 우리의 집회를 하게 되었다.
자유연대는 서초동에서도 방해했고 여의도로 오자 여기까지 쫓아와 방해했다. 광화문 보수집회가 있으면서도 굳이 여의도에 모인 이유는 뭐란 말인가? 우리의 싸움이 보수와 진보의 싸움인가? 진영의 대결로 몰아가고 싶은 것인가?
검찰개혁 공수처 설치를 원하는 시민집회를 어깃장 내고 훼방하려는 행동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조국 수호 검찰개혁은 대세이다. 도도한 시대의 흐름을 막으려는 저들의 외침은 마지막 폭압이라 생각했다. 마음은 다급해도 천천히 바르게 가야 한다. 민주시민 의식이 깨어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조국 사태는 진영논리가 아닌 참과 거짓, 정의와 비 정의의 프레임을 정확하게 갈라주었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시민들을 깨우며 가야 한다. 길은 좁고 험하지만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한 걸음 앞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진실을 보도하라는 외침, 시민들의 외침 "언론은 응답하라"라고 외쳤다. 돌아온 마봉춘, 외면받는 JTBC. 언론사는 진실 보도란 원칙 위에 있어야 했다. 사실을 사실로 볼 수 없는 언론의 눈은 1인 유튜버 유시민과 KBS의 대결 구도처럼 진실 언론이 누구인가? 가려야 했다. 이제 시민들은 개, 돼지가 아니다. 진실을 추구하는 깨시민이 되었다.
유튜브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것일까? 여기 모인 사람들은 유튜브 1인 방송을 듣고 이 자리에 왔다. 100만에 가까운 시민이 모이자 공중파는 모임이 있다고 알렸다. 공중파를 보는 시민들은 다음 주 토요일 행사에 올 것이다. 시대는 달라졌다. 1인 미디어가 공중파를 이끌고 신뢰를 창출하는 시대가 되었다.
조국 장관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시민들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공감, 그저 내 일로 받아들이는 이들의 사연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조국은 이제 개인 조국을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가 되었다.
정경심 교수는 두 아이의 엄마에서 대한민국의 미래의 어머니가 되었다. 시민들은 조국을 서울대 교수 조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조국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손 편지를 쓰고 마음을 전하고 생각을 전하고 함께 호흡하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법무부 장관에서 대한민국의 지도자로 우뚝 섰다.
대한민국의 민중 시위는 진화하고 있다. 성장하는 미래의 모습은 오늘날 다가오는 새로운 모습일 것이다. 노무현의 꿈, 문재인의 운명, 조국의 사명을 생각했다. 우리는 조 국 이다를 외치는 순간 조국의 사명이 내 사명이 되었다. 운명이 되고 꿈이 되었다.
앞으로 깨시민이 해야 할 일이 많다.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와 너를 연결하고 우리가 되고 생각을 묶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조국이다.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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