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이사야 66:1~4
제목: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는 자들을 돌보신다고 믿는 신앙입니다.
사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
하나님께서 직접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시겠다(좋아한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에 반(反)하여,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지 않는 자들의 위선적인 종교행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매우 가증하게 여기십니다(可憎, 괘씸하고 얄미움).
사66: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
사66:3 말씀의 위선자들이 예배를 드리는 겉모습은 분명히 정결한 짐승인 소를 잡고 순결한 짐승인 어린 양을 잡아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살인하고 개의 목을 꺾으며 돼지 피를 드리고 우상을 찬송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입니다. 사66:2 말씀을 원어에 가깝게 번역되고 읽기 쉬운 새번역으로 보겠습니다.
새번역) 사66:2.주님의 말씀이시다.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며, 이 모든 것이 나의 것이다. 겸손한 사람, 회개하는 사람, 나를 경외하고 복종하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을 내가 좋아한다." 3.소를 죽여 제물로 바치는 자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자와 같다. 양을 잡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자는 개의 목을 부러뜨리는 자와 같다. 부어 드리는 제물을 바치는 자는 돼지의 피를 바치는 자와 같다. 분향을 드리는 자는 우상을 찬미하는 자와 같다. 이러한 제사장들은 나의 뜻을 묻지 않고 제 뜻대로 한 자들이다. 오히려 가증한 우상숭배를 즐겼다. 가증한 우상들을 진정으로 좋아하였다. |
겸손하게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지 않으면서도 예배를 드리려고 노력하는 위선자는 우상을 진정으로 숭배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와 다름이 없습니다. 이 위선자들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미움을 받는 이유는, 그들의 가증한 위선이 반복되고 개선의 여지가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위선자들이 유혹을 계속 받도록 택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6:4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 |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을 고의로 택한 위선자를 더 이상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필요가 없으므로 하나님은 위선자들이 선택한 유혹을 계속 행하도록 방임을 하시는 것인데요. 이 방임은 현대인의성경은 형벌로, 공동번역은 사정없이 괴롭히는 것으로, 새번역은 하나님의 뜻대로 혹독하게 다루는 것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합니다. 솔직히 이런 말씀을 들으면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 수 있는데요. 복음적으로 보면 크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66:3∼4에 해당하지 않게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경외하는 자(사66:2)가 되면 되기 때문입니다.
● 개역개정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심령이 가난한 사람으로 번역을 했습니다(마5:3).
개역개정)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새번역)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NIV)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
마음은 문맥에 따라 심령 또는 영(spirit)이 됩니다. 영혼이 가난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영혼 또는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단순하게 마음이 착하고 마음을 비운 것 정도로 볼 수 있지만, 더 깊은 이해를 위하여, 칼빈 선생님의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눅 6:20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누가는 단순한 은유를 사용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겪는 가난은 저주받은 것이자 복 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마태는 그리스도의 의도를 더 분명하게 표현한다. 병으로 눌리고 고생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여전히 계속해서 교만과 잔혹함으로 부풀어 있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환난들에 복종하여 그 징계를 잘 견딤으로써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굴복시키고, 내적으로는 겸손히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구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선언하신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를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심지어 육체를 의지할 생각조차 완전히 비워 버리고서, 자신의 가난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들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누가의 본문과 마태의 본문은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기 때문에, "가난한 자"라는 호칭이 여기에서 역경(境)으로 말미암아 눌리고 고통 받는 자들에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두 본문 간의 유일한 차이점은 마태는 형용어구를 덧붙임으로써 복이 있는 자를 오직 십자가의 연단(crucis disciplina) 아래에서 낮아지는 법을 배운 자들로 국한시킨다는 것이다. ←『칼빈주석: 공관복음』 |
칼빈의 설명을 들으면 이해가 더 됩니다. 육체적으로 가난하고 몸에 병이 들어있다고 해서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이 가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가난한 육체의 내면은 악과 깡다귀와 완악함으로 교만해져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신앙의 역경으로 고통을 받고 십자가의 연단을 받으며 낮아진 자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참된 성도가 천국에서는 영생복락 하겠지만 이 땅에서는 십자가를 크든 작든 짊어지게 됩니다.
누가복음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가복음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인데요. 예수님을 따라가면 날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집니다. 예수를 믿으면 무조건 잘 먹고 잘 산다고 허풍을 치는 종교가 바로 기복종교인데요. 그 대표적 사례인 오순절교회는 완전한 이단은 아니지만 이단성이 있거나 불건전한 교파로 종종 평가를 받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참된 복이 있다고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에 역행하여, 예수를 믿으면 이 땅에서 복을 받고 호강만 한다고 오도(誤導, 그릇된 길로 이끎)하기 때문입니다.
● 묵상자가 소박하게 사66:2(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말씀과 마5: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말씀을 연결하면, 마음 또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그 심령에 진심으로 통회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개역개정에 ‘통회’는 오늘 본문인 사66:2를 포함하여 4회 등장을 합니다.
시편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이사야 57:15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이사야 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
충심(衷心, 속에서 우러나는 참된 마음)으로 통회하면 확실한 구원을 받습니다(시34:18). 상한 심령으로 통회하면 주님께서 멸시치 않고 존귀하게 여겨 주십니다(시51:17).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은 겸손히 통회하는 자의 영을 소생(蘇生, 거의 죽어 가던 상태에서 다시 살아남)시켜 주십니다(사57:15). 이것이 참된 통회의 은혜와 결과인데요. 이 묵상을 읽은 우리 모두에게는 충심으로 진심으로 전심으로 통회하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첫댓글 제 마음이 가난해지고 제 심령이 통회히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아멘22
아멘22
저의 생각과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참고할 부분이 있는 주석 내용을 아래와 같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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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P 성경주석: 예언서> 사66:1-5 환영받는 예배자와 거절당하는 예배자.
몇몇 사람들의 주장처럼, 이 본문은 성전 재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성전 재건을 명령하셨기 때문이다(학 1:2-11). 오히려 이것은 교권주의, 즉 사람의 벽으로 하나님을 가두는 태도를 책망한다(1-2a절; 참고. 삼하 7:6-7; 행 7:48-50, 54).
2b절. 누가복음 18:13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겸손한 태도를 주목하라. 사람은 보잘것없을 뿐만 아니라 죄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57:15 을보라.
교권주의는 허구(3절)와 편협함(5절)을 낳는다.
3절. 히브리어 표현은 (문자적으로) '소를 죽이는 것, 사람을 죽이는 것' 등으로 (동사가 없이 -역주) 전개된다. 이 절은 (대부분의 번역본들처럼) 단순히 정확한 제의가 몰지각한 살육 및 우상숭배와 같다는 뜻이거나(참고, 1:13; 렘 7:21), 혹은 현재 상태에서 제의가 폭력 및 신성모독과 공존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5절에 나타난 편협함은 요한복음 9:24 34 에서 거의 글자 그대로 실현되었다. 이 절은 순전한 종교적 핍박과 신학적 증오심에 대한 최초의 암시 가운데 하나로, 이것은 교회의 가장 어두운 오점 가운데 하나다.
@장코뱅 교권주의는과 신비주의 허구외 편협함을 낳는다는 표현에 공감합니다. 특히 교주 1인 독재체제로 운영되는 이단과 신비주의에서도 많이 나타나는 현상 같습니다.
@노베 공감합니다.
<베이커 성경주석: 구약편> 이사야 66:1~24
구약 신자들은 하나님의 왕권을 한 지방에 국한시키려는 유혹을 받았다. 그들은 하나님이 온 땅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의 보좌는 하늘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또한 땅, 특히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 하나님의 발판이라는 것을 배웠다. 성전에 다가가는 것은 하나님께 다가가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여호와의 주권과 왕적 장엄함에 적합한 예물을 가지고 여호와께 나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성전은 참된 예배의 장소가 되기보다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양심을 달래러 오는 곳이 되었다. 그들은 참된 통회의 정신을 보여 주지는 않은 채 자신의 악행들을 속죄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들은 타락함, 불의, 미움 가운데 있으면서 여호와께 거슬리는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이사야의 예언은 참된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으로 결론을 짓는다(66:1~6). 하나님은 순종, 사랑, 정의의 행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함을 보이는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고 싶어 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겸손하고 심령에 통회하는 자 안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불의한 세상에서 고난을 당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옳다는 것을 입증해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은 믿음의 공동체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에게 그리고 믿음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가지지 않고,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응하실 것이다.
@장코뱅 참된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거짓된 예배에 대한 보응에 대힌 대비를 잘 설명한 것 같습니다.
@노베 공감합니다.
저의 묵상 작성 후 주석들을 본 것인데요. 톰슨3의 내용이 저의 생각과 많이 비스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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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3 성경주석> 사 66:1-4 심판의 이유
이사야는 지금까지 곳곳에서 악인들이 심판 받아야 할 이유를 여러 가지로 제시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 죄와 인간을 향한 수평적 죄로 구분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수직적 죄를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는데 사실 먼저 수직적 관계가 회복되어야 수평적 관계도 회복될 수 있다. 그런데 수평적 관계의 회복만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신학도, 수직적 관계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위선적 종교 제일주의자들도 둘 다 비성경적이다.
한편 이 부분은 거짓 이스라엘의 수직적 신앙 생활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바 이스라엘의 잘못은
① 신앙 대상인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였고
② 예배의 자세가 이기적 기복 신앙이었으며
③ 예배의 방법이 비성경적이라는 세 가지였다.
톰슨3는 가성비가 높고 내용도 매우 복음적인 것 같아요. 너무 좋습니다.
@노베 공감합니다.
마음을 겸손하게 해주는 은혜로운 묵상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의미를 아주 정확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통회하는 것, 십자가의 연단으로 낮아짐을 배움, 환난에 복종하고 견디며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구함의 의미라는 것을요.
개역개정에 통회가 총4회 언급되는데 마음이 가난한 것과 통회가 같이 나오는 것을 제시해주셔서 큰 도움이 됩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며 겸손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가 되어서 하나님이 찾으시고 사랑해주시며 복을 주시는 그런 자가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아멘!
아멘! 은혜의 댓글에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소박하게 묵상을 하다가 칼빈 주석을 보았는데요. 신앙적인 득템을 한 것 같습니다^^
코람데오님의 댓글에 매우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
술 취한 듯이 온갖 신비주의와 이단적 교리로 열을 내며 거짓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과 모임에 경종을 울리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며 겸손히 통회하는 성도들에게 위로를 주는 좋은 묵상입니다.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