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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21일 노평구 선생 소천 21주기 기념강연회(여성플라자) 강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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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평구 선생이 말씀한 "깊이"의 의미
– 성서연구 권두언을 중심으로
임 세 영
금년은 선생님 소천 21주기입니다. 저는 근 30년 독자로, 집회원으로 선생님께 배웠지만, 선생님 앞에 아무것도 내놓을 것 없이 나이만 먹었습니다. 받기만 하고 기여한 것이 없어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선생님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 소중한 것이 생각나지만, 90년대 선생님 연로하신 때에, 성경공부 한 것을 선생님 앞에서 발표하고, 지도를 받은 일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발표가 끝나면 몇 마디 길잡이 코멘트를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아무것에도 비할 수 없는 선생님의 큰 사랑이었습니다. 오늘은 그중 제게 가장 잊혀지지 않는 “깊이하시오!” 하는 말씀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노평구 선생님의 말씀과 뜻을 회고하고, 가르침을 이어가자는 의미로 준비했습니다.
1. 들어가며
먼저 선생님을 만나게 된 계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등학교 때 저는 내향적인, 말 없는 사춘기 소년이었습니다. ’왜 사는가‘로 고민했습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민했습니다. 73년 대학에 입학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생 선교를 하던 홍응표 선생을 만났습니다. 그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났고, 성서를 읽고 공부했습니다. 함께 요한복음을 읽으며 어깨를 누르던 무거운 짐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홍 선생께 신앙의 걸음마를 배웠습니다. 믿음의 세계에 눈을 뜨고 주일마다 성서를 읽고 공부했습니다. 대학 때 얼마나 열성이었던지 로마서를 통째로 암송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과 평화는 나에게 새로운 생명력을 부어주었습니다.
홍응표 선생은 성서연구지 독자였고, 노평구 선생님을 존경하였습니다. 그분이 노 선생님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 소개로 75년 순창 복흥 집회에 참석하여 처음 노 선생님을 뵈었고, 그 후 한달에 한번 열렸던 노평구 선생님의 대전 성서강연에도 함께 참석했습니다. 홍 선생 서가에 있던 성서연구 구호와 쓰카모도의 기독교 십강, 성서 읽는 법 등을 열독했습니다. 성서를 더 깊이 공부해야겠다는 열망을 갖고 77년 서울의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서울로 온 다음 매주 YMCA 성서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박상익, 장문강 선생과 만났고, 함께 단테의 신곡 공부, 고병려 선생 희랍어반, 히브리어반에 참석하며 기초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장문강 선생과 함께 집회 시작 세 시간 전에 YMCA에 나가 집회장을 청소했습니다. 동자승같이 꽁초로 가득한 YMCA 안마당을 쓸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것이 제 몫이었습니다.
대학원에 이어 군복무를 마치고, 처음 직장이었던 교육분야 연구기관에서 아내를 만나, 82년 노 선생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선생님 주례사중 기억에 남는 것은 일년은 봄으로 시작하여 하나님 하늘에 계시니 온 세상은 태평하다로 끝나는 로버트 브라우닝의 “Pipa의 노래”입니다.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시 낭송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혼, 절대 안되!”라는 벼락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42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결혼 생활의 방패입니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독일 정부 지원으로 유학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5~6 년 직업교육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천안에 창립된 한국기술교육대학교의 교수로 근 30년 재직했습니다.
90년대에 들어 80세가 되신 즈음에 선생님께서 집회를 해산하고 젊은이들에게 성서 연구를 해 발표하도록 하셨습니다. 저도 몇 년간 선생님 앞에서 떨면서, 혼나면서 요한복음과 갈라디아서를 공부하여 발표하였습니다. 집회에서 발표하던 그때, 선생님의 코멘트가 공부의 길잡이였습니다. 길게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뼈있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항상 후렴귀처럼 말씀하신 것이 깊이 공부하라! 였습니다. 자주들은 말씀인데, 생각해보니, 막연하고 기억이 어렴풋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선생님이 주신 가르침을 전집에 있는 글을 통해 탐구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말로 선생님이 주시고자 한 가르침을 되새겨, 생을 마무리하는 공부의 길잡이로 삼고자 합니다.
깊이‘라는 말의 의미를 공부하기 위해 먼저 선생님의 전집 “종교와 인생”(1-5권)에서 "깊은" "천박한" "깊이 공부하라" 등 이 말의 직, 간접적 용례를 찾아 보았습니다. 정독하고, 관련 문단을 찾아 필사해 보니 50개 문단이 되었습니다. 사용된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 유사한 것끼리 범주로 묶어 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의도와 맥락에 따라 분류해보니 인간의 개인적 차원, 기독교 개혁신앙사 및 민족사적 차원, 그리고 미래 세대의 분발을 촉구하는 말씀 등 3개 정도의 범주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용례의 범주를 바탕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인간의 깊은 심령: 도덕력, 인격력의 모판이며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
첫째로 선생님은 “깊이”라는 말을 인간 자체가 깊은 존재라는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은, 왜 “깊이” 공부해야 하느냐는 질문과 관계됩니다. 몸 없이 인간은 존재할 수 없으나, 몸이 전부는 아닙니다. 인간은 생각하고, 기억하고, 선택하는 이성적 존재지만, 그러나 몸과 이성으로 인간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철학자 칸트가 말했듯이 밤하늘을 수놓는 별을 부인할 수 없듯, 뚜렷한 양심의 소리는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정언명령으로서의 보편적인 도덕과 윤리를 바탕으로, 영원한 것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자리가 있고, 이를 접점으로 종교와 신앙은 존재합니다.
선생님은 “종교란 사람의 가장 깊은 심령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보통 학문진리 모양으로 그저 머리의 이해만으로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다(72. 12. 217호; 3: 272-273).”고 했습니다. “예수강탄의 목적”이라는 글에 따르면 인격을 구성하는 “깊은 심령”에 “인생의 깊은 고민”이 싹트고 그 고민이 자라 “양심과 도덕의 무기력, 그것의 완전한 부패와 타락, 인간의 죄성, 생명 자체내에 배태된 치명적 죽음”에 대한 각성으로 이어집니다. 이 각성을 통해 심판의 하나님을 만나고,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한 “생명의 혈청제(血淸劑)”인 예수의 죽음에 접하게 됩니다(49. 12. 19호; 1: 112). 영원한 하나님과 만나고, 예수와 만나는 자리가 사람의 “깊은 심령”입니다.
선생님은 이어서 기독교 신앙도 “깊은 영혼의 교제”라 설명합니다. 선생님은 “[신앙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의 깊은 영혼의 교제”라고 했습니다. 믿음에 의해 우리의 영혼이 죄에서 해방될 때 우리에게 한없는 기쁨이 임하고, 진리의 샘이 솟고, 사랑이 용솟음쳐 우선 각기 제 주위에 대해, 그리고 국가와 민족에 대해 믿음과 진리와 사랑에 의한 구원을 깊이 염원하게 된다(69. 12. 185호; 3: 122.)"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신앙고백으로 보입니다. 이 연장선에서 깊은 내적 생명을 경시하고, 외적 제도와 체계에 의지해 교회가 벌이는 사회사업이나 정치 운동을 비판했습니다.
“나는 믿음을 눈에 보이는 사업이나 운동이나 선행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내부 세계, 정신세계, 아니 도덕 문제, 심령 문제, 양심과 영혼 문제와 관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더 깊이는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하늘나라와의 관계로 생각한다. [...] 이것이 신앙의 본질적인 대상인 것을 알아야 한다. 이에 믿음의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72. 12. 217호; 3: 273).”
믿음은 사업이나 운동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 도덕, 양심, 영혼의 문제와 관계되고, 더 깊이는 그리스도, 하나님, 하늘나라와 관계되는 것이라 했습니다. 앞에서 깊은 심령을 사람됨을 구성하는 요소중 하나라 하였는데, 선생님은 깊은 심령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복음에 눈을 뜨면, 새 생명을 얻어 도덕력, 인격력이 살아난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경제력, 군사력에 선행하는 본질적인 국력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선생님이 강조하신 ‘깊은’ 주제입니다.
70년대말 눈만 뜨면 새마을 노래에 수출주도 경제발전정책을 홍보하던 시기에 교육부 공직자의 대형 수뢰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이 보도를 보고 선생님은 경제제일주의가 유발한 돈 만능 사회에 대해 걱정하며 진정한 국력은 무엇인가 물었습니다.
“언필칭 국력을 말한다. 경제력을, 군사력을 말한다. 외교를 말한다. 조직을 말한다. 동원을 말한다. 다 좋다. 물론 이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역시 물리력이다. 기계력이다. 인간의 진정한 힘은 정신력, 인격력, 도덕력, 아니 종교적인 신앙의 힘인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떠는 산 양심의 힘인 것이다. 이것이 물리력, 기계력을 움직이는 것이다(77. 3. 286호; 4: 15-16).”
하나님 앞에서 떠는 산 양심의 힘, 이것이 이 나라에 가장 필요한 자산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성서강연에서 들은 말씀중 “원자폭탄이란 물질의 최소 구성단위인 원자가 지닌 에너지를 한 번에 방출시킬 때 나오는 폭발력을 원리로 한다. 물질의 원소 속에도 이런 힘이 있을진대,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의 심령이 한 번 각성하여 폭발한다면 그 에너지는 얼마나 크겠는가? 제대로 진리를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다. 수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것은 오늘 더욱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 같습니다.
노평구 선생님이 사용한 ‘깊다’는 말의 용례는 현실 기독교의 깊이 없음을 지적하고 깊이 있는 사례를 예시하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자주 사용하신 ’천박하다‘는 말은 ’깊이 없다‘와 동일한 의미로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일관되게 특히 한국의 기독교와 개신교회의 얄팍함을 비판하였습니다. 한국기독교계가 잘못되고 있는 징조를 이미 해방 이후 상황에서 읽었습니다. 교회의 정치참여와 사회운동, 교세확장, 구걸원조, 신비주의 등을 경계하였습니다. 제9호(48. 8.)에 게재된 “악마”라는 제목의 글에는 조선기독교에 악마란 “사회적 기독교를 주장하는 자들”, “교회재정의 청부사인 부흥 목사들”, “천국사업이니 무어니 하여 태평양너머, 심지어 일본에까지 굽실거리고 구걸하는 자들”, “입산수도로 부철주야 성신에 접신했다고 치병에 주력하는 자들”이라고 질타했습니다(48. 8, 9호; 1: 57-8).
선생님은 신앙이란 교회출입도 아니고, 세례나 성찬도 아니고, 소위 예배도 아니고, 도리어 이런 모든 의식적인 것, 형식적인 것을 끊고 벗어버리고,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물 샐 틈 없는 깊은 인격적, 도덕적 신뢰 관계”에 들어가 속죄와 신생의 사실을 체험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체의 외면적인 조직, 제도, 제전은 물론 교황이니 목사니 하는 인적 권위까지 부정하고, 하나님 앞에 극도로 예민한 양심과 예언자적인 엄격한 도덕 위에 서서 신앙을 깊이 체험한 개인의 인격을 통하여, 생명으로 체험된 산, 펄펄 뛰는 진리로서 배우려고 한다.” 했습니다(52. 10/11. 34호; 1: 200). 신앙을 인격을 통하여 깊이 체험하고, 펄펄뛰는 진리로서 배운다는 것은 예언이나 방언 같은 신비체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돌아온 탕자와 같이 도덕적 파산과 절망에 떨어진 자신을 각성하고 회개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새 옷을 지어 입히는 아버지 품에 안기는 체험입니다. 그 이후 하루하루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그의 자녀로서 사는 체험입니다. 회개와 신생의 체험없이 성서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3. 한민족의 문화사적 중대 과제와 개혁신앙의 역사
선생님은 ’깊이‘라는 말을 개인을 넘어 민족사와 문화사에 적용하였습니다. 기독교 개혁사라는 산맥의 한 봉우리로 한민족의 종교개혁적 개종을 보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선생님이 제도권 기독교를 비판한 것은, 성서연구 창간사에 명시된 바와 같이 본인의 역사의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원동력(原動力)으로서의 성서“라는 성서연구 창간사에서, ”지금은 해방된 조선이 인류 앞에서, 역사 위에서, 그리고 역사의 궁극적 섭리자 하나님 앞에서 제출된 독립(獨立)이란 중대한 문제로, 그 실력을 테스트 당하는 엄숙한 시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이 엄숙한 과업을 이행하는 것과 정반대의 길로 가는 것을 질타했습니다. 그리고 성서연구의 발간은 이 중차대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서는 ”모든 국가, 사회, 민족, 그리고 모든 문화 현상의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의 끝에 독일 시인 쉴러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습니다.
”세계역사는 세계심판“ 이는 엄숙한 세계역사의 결론입니다. 우리는 영원부동하는 성서진리만이 이에 견딜 수 있는 것을 확신하여 사랑하는 조선을 이 성서진리 위에 세우려고 하는 바입니다. 동시에 모든 진리의 적에 대해 싸움을 포고하는 바입니다(46. 11. 1호; 1:17).”
선생님은 한국이 세계사에서 실력을 테스트 당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종교를 관찰하고, 비판하였습니다. 개혁신앙으로 민족의 도덕적 척추를 세운다는 목표를 세우고, 성서연구 발간을 소명으로 하였습니다. 성서연구의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이 전력을 다한 전투였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쉽게 달성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4~5백년 걸릴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런 역사의식으로 선생님은 신구약 성서 5천년사에서 이 시대의 한국과 동양세계, 나아가 세계가 직면한 도전이 무엇인지, 이에 대한 대응책이 무엇인지 읽어 내셨습니다. 그것을 선생님은 ’개혁신앙의 부흥‘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연구하여 이 민족에게 주면, 4천년 역사를 통해 소진된 생명력이 살아날 것으로 믿었습니다. 선생님이 본 역사에 나타난 개혁신앙의 부흥 사례는 82년 5월 김교신 기념강연회에서 말씀한 “나의 무교회 신앙(82. 11. 333호; 4: 216 이후)”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글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새(82년 4월) 자타 최고 문명국으로 자처하는, 러셀과 토인비의 나라 영국이 아르헨티나와 교전에 들어갔다. 그새 우리나라 의령에서는 개인 살상으로서는 세계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우순경에 의한 백여 명의 인명 살상이 있었다. [그 원인으로] 사람들은 언필칭 현대의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파행을 말한다. 그러면 이 파행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우리는 그 원인이 종교의 후퇴에 있다고 감히 단언하는 바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영혼의 존재이며 영혼은 도덕을 먹고 사는 것으로, 종교야말로 도덕의 추진력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도덕의 후퇴, 약화에 인류 문제의, 그 문명의 위기가 있다고 할 것이다 (82. 11. 333호; 4: 226 이후).”
글은 영국-아르헨티나 간 전쟁과 경남 의령 우순경의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선생님은 두 사건이 모두 하나에 기인한다고 보았습니다. 선생님 보시기에 물질문명의 팽배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평화문제, 도덕문제에 대해 아무런 힘도 못쓰는 이유는 바로 종교의 후퇴, 약화에 있었습니다. 이어 종교의 후퇴로 인한 신앙생명의 고갈은 종교의 의식화와 형식화로 이어지고 도덕적인 힘의 근원 상실로 나타납니다.
“깊이 생각하면 현대문명은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에 의한 신앙진리에 바탕을 두고 오늘날까지 발전 개화의 길을 걸어왔다. 이 점에서 엄밀히 따져볼 때 현대 종교의 후퇴, 약화란, 결국 이 개혁정신, 개혁신앙의 약화로 봐야 할 것이다. [...] 신앙생명의 고갈, 진리의 후퇴 현상은 [...] 종교의 의식화 내지 형식화로 산 하나님을 미신화, 우상화함으로써 세속적이고 직업적인 종교로 타락하여, 인간의 심적 기능은 물론 생활과 온갖 영위에 대해 도덕적인 힘을 미치지 못하게 되고, [...] 신앙 본래의 거룩, 숭고한 힘을 상실하게 된 것에서 왔다고 본다(82. 11. 333호; 4: 217).”
이어서 신구약 5천년사를 통해 종교의 의식화와 도덕적 타락을 개혁하고, 영적생명력을 복원한 사례를, 열거합니다. 정의를 강물같이 흐르게 하라고 외친 아모스, 바알에 의한 도덕적 타락을 규탄한 호세아, 하나님께서 번제의 기름에 배가 불렀다고 형식화된 종교를 비판한 이사야, 율법을 입으로만 외우지 말고 마음판에 새기라는 예레미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바울, 초대교회 정착기 등장한 이단 사설과 싸운 여러 교부들, 그리고 우상화된 가톨릭의 구태를 벗겨내고 현대 유럽문명에 생명을 불어넣은 루터의 싸움을 되새깁니다. 그리고 우찌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 신앙에 주목하여, 이것의 시대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우치무라 자신은 자신의 무교회적인 신앙진리를 루터의 종교개혁의 재개혁이라고, 즉 개혁정신의 모토인 신앙만의 신앙의 완성을 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프로테스탄트주의를 그 논리적 귀결에까지 끌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신프로테스탄트는 완전히 자유이고 거기 추호의 교회주의의 흔적도 있어서는 안 된다. 참 생명은 제도가 아니고 친교이며, 조직 또는 단체가 아니고 영혼의 자유스러운 교제다.[...]‘ 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동양세계의 기독교 전수는 이 우치무라의 정신으로, 소위 외적인 교회교 아닌 깊은 복음 이해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71. 7. 200호; 3: 223-224).”
김교신 선생님이 그랬듯이 노평구 선생님도 우치무라를 무작정 따르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인의 영혼문제는 한국인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인의 영혼 속 깊이, 심정 깊이 믿음을 생명으로 체험하여 깍두기 냄새 나는 기독교로 소화하는 것이 본인의 무교회주의라고 했습니다. 여기 “깊이”라는 말의 용례를 봅니다.
“나의 무교회주의란 한마디로 믿음은 교회나 형식이나 외면으로, 즉, 하나의 전통으로 받지 않고 한국인의 영혼 속 깊이에서, 심정 깊이에서 실로 생명으로 이를 소화하고 체험하고 이해하려는 것이다. 우치무라도 한국인의 영혼문제는 한국인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이나 미국 다 한국인의 영혼문제에 관여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로서는 깍두기 냄새나는 기독교의 소화가 곧 우리 무교회 신앙이 되는 것이다(69. 4. 175호. 3: 99-101).”[밑줄은 필자]
일찍이 선생님이 30대 중반이던 17호(49. 9/10)에 게재한 글에서 나의 무교회주의는 교회공격이나 교회확청이 목적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새롭게 싹트고 자라는 것이라 했습니다.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 양심과 도덕이 살아나고, 자유와 독립이 싹트고, 정의와 사랑이 물흐르듯 흘러 흘러 삼천만이 천국의 백성이 되고, 삼천리 강산이 진리와 영으로 수선화같이 아름답게 피어나기를. 이것이 무교회 신자의 기원인저! 그들의 생활이고 유일한 목표인저! (49. 9/10. 17호; 1: 103).”
신자로서 자신이 품고 있는 유일한 목표는 삼천만이 천국 백성이 되고 삼천리 강산이 진리와 영으로 피어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깍두기 냄새나는 기독교가 이 땅에 뿌리내리고 수선화처럼 피어나는 것이 선생님이 평생 간직한 꿈이었습니다.
4. 후학들의 성서 공부를 권면함 - 배수의 진을 치고, 생사를 걸고
노평구 선생님이 말씀한 ’깊이‘의 의미를 추적하다 보니, 인간의 죄와 본성을 깊이 자각하고, 역사를 깊이 보고, 성서를 깊이 이해하고, 제도 종교의 얄팍함을 벗어나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깊이 교제하는 것, 그래서 참된 신앙에 이르며, 이것이 민족적 개혁신앙의 부흥을 넘어 인류를 구원하는 참으로 장대한 비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일이 자신의 세대에서 이루어질 수 없음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400년, 500년 걸리는 큰일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김교신 선생님이 성서조선 창간사에서 ”동지를 한 세기 후에 기한들 무엇을 탄할손가!“ 라고 쓴 것과 같습니다. 장대한 역사의 관점에서 선생님은 성서연구 독자와 집회원들에게, 특히 젊은 세대에게 진지하게 성서 공부를 하라고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무교회주의 성서연구자의 길은 매우 험난하였습니다. 창간 30년을 앞에 둔 238호(74. 9)에는 “주일집회원은 30-40명이고, 성서연구 독자는 300-400, 30년에 고작 그것이냐?” 는 비난을 인식하고 쓴 글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답입니다.
“나 자신은 종교란, 특히 기독교란 믿음이요 진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부족한 나의 생애와 집회와 본지지만 나는 오로지 이를 기독교의 경전인 성서 자체의 진리를 분명히 하려는 데 걸었다. [...] 수라고 하지만 키르케고르는 베드로가 하루에 3천명에게 물세례를 주는 것으로 초대 기독교가 출발한 데 기독교 타락의 근원이 있다고 했다. 수란 정말 물질에, 돈에, 광고에, 운영에 의해 좌우되는 것 아니냐. 일언이폐지하고, 나는 하나님의 진리로 되지 않는 것이란 그것이 정치건, 경제건, 생활이건, 예술이건 도덕이건 다 한푼의 가치도 없는 물거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들을 정말 진리로써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에게 위대한 진리에의 노력이, 그리고 이의 체험적인 파악이 있어야 될 것 아니냐? 이것이 오로지 본지가 건 목표다(74. 9. 238호; 3:339-340).”
기독교의 민족적인 이해와 체험에 의한 토착화를 위해 선생님은 우리 자신에 의한 신구약성서의 깊은 연구가 필수적이라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신라불교의 깊은 불전 탐구와 경전에 대한 노력을 타산지석으로 삼자 하였습니다. 신라불교에 비하면 “오늘날 입교 100년이 되었다는 우리 기독교는 그야말로 4천년 묶은 미신에 서양 기독교의 형식 등 남루를 걸치고, 교리, 신학 등 찌꺼기를 주워 먹고 지내는 처참한 거지꼴이 아닐 수 없다.” 한탄하며 우리 기독교 학도들의 성서연구를 간절히 기원했습니다.
79년 12월 선생님은 162쪽이나 되는 ‘성서연구 300호 기념호’를 냈습니다. 기념호의 권두문에는 해방과 더불어 깊은 생각 끝에 ‘민족의 도덕적 척추’를 세우기 위해 예수 복음의 본질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성서연구를 시작해 30년을 붙잡고 왔지만, 우리 기독교에 아무런 공헌도 못하셨다 하면서, 소수라도 본지 독자중에서 영, 독어 등에 의해 본격적으로 성서를 공부하는 분들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우리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즉 토착화된 우리의 자주적인 기독교 신앙이란 아직도 없다고 단언하는 바이다. [...] 나는 소위 30년간 ’성서연구‘를 붙잡고 왔지만, 결국 나의 불신과 나태로 나의 생각과는 반대로 우리 기독교에 대해 아무런 기여도 못한 것을 진정 부끄럽게 생각하는 바이다. 그러나 다만 소수라도 본지 독자중에서 앞으로 차츰 영, 독어 등에 의해 본격적으로 성서를 공부하는 분들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이런 나의 기원의 표시로 이번 300호를 기념하는 본 호에 간단한 성서 참고서의 목록을 첨부했다(79. 12. 300호, 4:119-120).”
앞으로 공부할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격려하신 말씀입니다. 진리 없이는 기독교도, 소위 에클레시아 공동체도, 사랑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우선해서 “신앙 진리의 체험과 생산”에 진력하길 바랐습니다(79. 12. 300호; 4: 119-120). 300호에는 공부할 사람을 위해 구체적으로 기독교 고전과 참고서를 코멘트를 달아 소개해 선생님의 절실한 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참고서 소개 끝에 앞으로 우리 기독교의 원효와 퇴계가 나와서 한국인의 종교성에 기반한 기독교 진리를 찾아내고 동양의 기독교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79. 12. 300호, 4:136-137)고 하였습니다. 선생님께는 이것이 “모든 종교의 완성인 기독교 진리로써 하는 우리 민족의 존재 이유”이고, 하늘이 내리신 “세계사적 사명”이었습니다. ’여담‘이라는 312호(81. 1) 권두문에서는 배수의 진을 치고, 생사를 걸고 성서공부에 매진하라 권고하였습니다.
“기독교의 진리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결국 그 모든 사실의 위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렵다고 탐구를 중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개인의, 국가와 민족의, 인류 전체와 역사 전체의 생사 흥망에 관계되는 것이라면 더욱 기독자로서는 배수의 진으로 생사를 걸고 이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인하여 독자들은 신구약 독송을 열심히 하고, 그 교훈을 신앙화 생활화하기에 전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젊은이 가운데서는 영어, 독어 및 성서 어학인 희랍어, 히브리어 등을 열심히 해서 2천년 기독교사에서의 방대 심오한 성서진리 탐구의 유산을 소화, 이해, 체험하는 일에 생애를 거는 이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렇게 되면 나의 부족한 생애와 본지의 존재 역시 아주 무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자위(自慰)해 보기도 한다(81. 1. 312호; 4:165-6)”
이글은 성서연구 “지우와 신앙동지들에 대한 나의 유언” (81. 10. 320호; 4:185-186)과도 같습니다.
5. 마무리
앞에서 선생님의 ’깊이‘라는 말의 용례를 분석해 보았습니다. 먼저 말씀한 것은 인간의 깊은 심령은 도덕력, 인격력의 모판이며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종교 신앙은 양심의 깊은 각성으로 싹이 트며, 죄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과 믿음에 의해 죄에서 해방되는 한없는 기쁨을 체험합니다. 영원한 하나님과 만나고, 예수와 만나는 자리가 사람의 “깊은 심령”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그리스도와 개인의 깊은 영혼의 교제가 신앙생활입니다. 선생님은 복음에 눈을 떠 열리는 도덕력, 인격력이 경제력, 군사력에 선행하는 본질적 국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천박한 현실 기독교의 비판적 인식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입교 백년에 우리 기독교가 이렇게 혼미만 계속하는 원인은 “기독교를 신앙적, 도덕적, 인격적으로, 산 진리로 받아 소화하고 체험하지 못하였기 때문” 이라 보았습니다.
둘째로 역사를 깊이 읽고 민족의 종교개혁적 개종을 사명으로 천명하셨습니다. 국제분쟁이 늘어나고, 사회 폭력 사건이 폭증하는 것은 물질문명의 팽배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평화문제, 도덕문제에 대해 아무런 힘도 못쓰는 깊은 이유가 종교의 약화에 있다 했습니다. 신구약 5000년을 보면 문명이 멸망하는 것은 종교의 의식화와 형식화로 신앙 생명이 고갈되고, 인간 정신과 생활에 도덕적인 힘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멸망치 않은 것은 호세아, 이사야, 예레미야, 그리고 그리스도, 바울, 교부들과 루터의 개혁신앙 회복이 있었기 때문이라 보았습니다. 역사상 깊은 신앙적 각성의 대 폭발 사건들입니다. 이 산맥의 한 끝에 깍두기 냄새가 나는 우리가 이해하고 체험하고 생산한 개혁신앙이 새롭게 자라기를, “삼천만이 천국의 백성이 되고, 삼천리 강산이 진리와 영으로 수선화같이 아름답게 피어나기를” 기원했습니다.
끝으로 후학들의 성서 공부를 간절하게 권면하셨습니다. 요컨대 선생님 스스로 한국이 세계사에서 실력을 테스트 당하고 있다 하시며, 4-5백년이 걸리더라도 개혁신앙으로 민족의 도덕적 척추를 세운다는 목표를 세우고 일관되게 앞서 달리셨습니다. 성서연구 발간을 소명으로 평생을 바치셨습니다. 성서연구의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쓰는 것이 전력을 다한 전투였습니다. “정신차려라, 이놈아!” 하는 말씀이 들리는 듯합니다. (2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