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맞는 아침이다. 찌뿌둥하던 날씨가 말갛게 고개를 든다. 이 방 저 방, 문을 열어 보니 습기가 나붓이 앉아있어 창을 열고 내보낸다. 차를 한 잔 우려내 베란다로 가니 바닷물도 기분 좋게 남실거린다.
남편이 며칠 집을 비우게 되었다.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날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울렁인다. 아버지가 장남이고 우리 형제도 일곱 남매라 항상 가족의 북적임 속에 살았다. 결혼도 맏이와 한 덕에 청소하고 빨래하고 음식 준비하는 집안일에서 놓여날 수가 없었다. 살림나서 단출하게 살거나 식구가 적어서 하루를 여유롭게 쓰고 남는 시간에 잠까지 자는 주부가 부러웠다.
금쪽같은 시간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 고향 친구들에게 전화하니 서울, 대구에서도 멀다 않고 오겠단다. 1박 2일을 우리만 생각하며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나서 휘파람을 불었다.
무엇을 대접할까 생각하다 어릴 적 먹던 감자 수제비가 떠올랐다. 양식이 넉넉지 않던 때라 보릿고개를 지나 감자를 캐면 엄마는 커다란 함지박에 밀가루 반죽을 했다. 마당 구석에 있는 양은 솥에 그것을 넣어 수제비를 끓였다. 우리는 두 그릇씩 실컷 먹었고 양푼에 떠서 이웃집으로도 날랐다.
여름밤 엄마와 냇가에서, 목욕을하고 왔을 때, 평상에 친구네가 갖다 놓은 수제비가 있으면 얼마나 좋았던지…. 그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
친구들이 오면 옛날 서로의 집으로 나누던 기억을 되살려, 수제비를 끓여야겠다. 밀가루를 덜어 내 소금과 물, 식용유 한 방울을 넣고 되직하게 치댔다. 잘 반죽 된 것이 숙성되게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대구에서 출발한다. 하고, 서울 친구가 경주서 기차를 탔다는 소릴 듣고 멸치 육수를 준비했다. 커다란 솥에 물을 붓고 멸치와 다시마를 넣은 뒤 무와 파, 양배추 등 냉장고 속 채소들을 모두 넣었다.
육수가 완전히 우러나 집안에 구수한 냄새가 퍼졌을 때 친구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감자 수제비란 말에 반가워서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로 그것을 떼 넣겠단다. 숙성시킨 반죽을 내주니 친구 들이 마주 서서 자분자분 얘기를 주고받으며 수제비 떠 넣는 재미에 푹 빠졌다. 풋고추와 마늘을 다지고 김치랑 밑반찬을 차려 다섯이 동그랗게 앉았다. 음식은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니라 마음과 눈으로도 먹는다. 우리는 김칫국물에 옷자락이 젖어도 상관없이 웃고 떠들며 경쟁하듯 두세 그릇씩 떠먹었다. 수제비 한 솥을 다 비웠다.
이기대로 가 갈맷길 옆 숲속에 들어서자 모두 오십여 년 전으로 돌아가 시골 아이가 되었다. 장난치며 걷다가 단단한 비탈길에서 미끄러져 손바닥에 생채기가 났지만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빨리 가겠다고 나뭇가지를 헤치고 오르다 부딪쳐 넘어져도 아픈 줄 모르고 신이 났다. 오륙도 스카이워크에서는 덧신을 신고 기분 좋게 나갔지만 까마득한 발밑 바다에 놀라 서로 부둥켜안고 엄마를 외쳐 불렀다. 돌아와 바다를 내려다보며 걱정거리들을 큰 숨으로 토해냈다.
고향 마을 앞에는 남천을 향해 흐르는 내가 있었다. 거기에 높게 ‘무지개다리’가 서 있고, 정월 대보름날 나이만큼 그것을 밟으면 일 년이 건강하다고 했다. 보름달이 환하게 떠오르면 우리는 다리에 올라가 나이 수만큼 밟았다. 워낙 높은 데다 난간은 낮아 겨울바람에 날려 갈까, 겁이 나서, 너덧 명씩 팔짱을 끼고 발을 맞춰 가며 건넜다. 달님을 올려다보며 한 해 동안의 건강이 아니라, 공부 잘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걷는 동무 중 제일 참한 애를 쳐다보며 쟤보다 더 예쁘게 해달라고 소원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음지마을에서 출발해 서욱마을에서 한두 명을 보태고 아랫인왕을 지나 박물관 앞에서 양지마을 애들과 만나면 대여섯 명이 되었다. 거기서 학교까지는 허허벌판 속 비포장도로였다. 추운 날은 손을 입에 대고 호호 불다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책보를 허리에 매고 뛰었다. 떠들썩하게 달리던 빨간 볼의 우리들이 눈에 선하다.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다 보니 창밖이 어둑해지며 파도 소리가 커졌다. 두꺼운 옷을 하나씩 걸치고 밤바다로 나갔다. 갯바람이 불어와 수변을 때린다. 발밑에서 파도가 철썩이니 가슴 깊은 곳에서 떨림과 흥분이 인다. 한 친구가 ‘멋지다!’ 하며 뛰자 덩달아 왁자지껄 내달렸다. 한참 뛰다 서서 까만 수평선을 보니 지나간 시간이 우리들 옆으로 와서 멈춰 선다.
추억과 낭만에 젖어 라이브 카페로 갔다. 어쩐지 쑥스러워 이리저리 살폈지만, 마시고 노느라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다. 조명이 반짝이고 가수의 노랫소리가 커지자 한 친구가 모두에게 춤을 권했다. 쭈뼛쭈뼛했지만, 아는 이가 없다는 안도감에 하나둘 일어나 몸을 흔들었다. 영화(써니)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자신을 이곳 분위기에 맡겨 버렸다. 한바탕 춤을 추고 나니 살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다 떨어져 나가 날아갈 듯하다.
씻고 가뿐하게 앉아 서로를 쳐다보다 눈에 띄게 날씬해진 순이에게 모두의 눈이 멈춘다. 예쁜 얼굴에 가냘프던 몸이 결혼하고 점점 살이 불어났던 친구다. 많이 왜소해졌다고 하니 요즘 에어로빅을 한다며 일어나 시범을 보인다. 옆의 친구 둘이 따라 하자 나머지도 손뼉을 치며 한 덩어리가 된다. 이 집안에 우리밖에 없는것을 마음껏 즐긴다.
우리는 20여 년 각각의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지만, 산길과 스카이웨이를 걷고 추억과 낭만에 젖어 같아졌다. 음악 속에서 흥분된 몸과 마음을 흔들어 서로의 모서리를 털어 내고 동일해졌다. 밤새 눈빛 주고받으며 이야기 나누고, 무릎 맞대고 손뼉 치며 하나가 되었다.
밤을 꼬박 새웠지만, 이튿날 우리는 고향의 들판처럼 푸르고 싱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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