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도심 속에서 은은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궁궐은 낮보다 더욱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산책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선선한 날씨 속에서 황금빛으로 물든 궁궐을 보고 있으면 어느덧 성큼 다가온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서울 도심에 자리한 4대 궁궐은 각기 다른 매력으로 야간개장을 즐길 수 있는데, 대표적인 궁궐이라 할 수 있는 경복궁의 경우 얼마전 야간개장이 시작되었다. 올해 9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두 달 간 진행되는데 하루 전 사전 예약을 해야 갈 수 있는 만큼 당일 방문은 어렵다는 것이 단점.
창덕궁의 경우에는 달빛기행이라는 테마로 야간개장을 즐길 수 있는데, 올해는 이미 8월 13일부터 9월 13일까지 한달간 진행되었다. 하지만 행사가 시작된 지 일주일만에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행사가 취소 되었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럼 예약 없이 편하게 밤에도 방문할 수 있는 궁궐은 없을까? 서울 시청 근처에 자리한 덕수궁과 대학로 근처에 자리한 창경궁은 별도의 예약 없이도 방문할 수 있다. 그리고 야간 상시관람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휴궁일인 매주 월요일만 제외하면 언제든지 편안하게 야간관람을 즐길 수 있다.
덕수궁의 정문 대한문
특히 지하철 1,2호선으로 갈 수 있고 광화문, 명동과도 가까워 접근성이 좋은 곳이 바로 시청역에 자리하고 있는 덕수궁(德壽宮)이다. 경복궁, 창덕궁 등 조선 궁궐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작지만 조선의 전통 목조 건축과 서양식 건축이 함께 남아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관람시간은 9시부터 21시까지. 입장은 20시까지 가능하기에 평일 퇴근 후에도 방문할 수 있다. 그리고 입장료도 만 25세부터 만 64세까지 1,000원으로 저렴한 편.
알고 보면 덕수궁은 사연이 많은 궁궐이다. 원래 덕수궁의 본래 세조의 손자 월산대군의 사저였지만 임진왜란 후에 선조가 거처할 궁궐이 없어 정릉동 행궁이라 부르며 임시 궁궐로 사용했다. 선조의 아들 광해군은 이곳에서 즉위식을 올렸고 경운궁(慶運宮)이라는 궁호를 내렸다. 이후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가 이곳에 유폐되면서 서궁으로 격하되었다가 선조의 손자인 인조가 월산대군 가문에게 돌려주었다.
그러다가 러시안 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다시 궁궐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순종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에도 고종은 계속 이곳에 머물렀고 그때 궁의 이름이 고종의 궁호를 따라 ‘덕을 누르면서 오래 살라’라는 뜻의 덕수궁(德壽宮)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덕수궁의 인상적인 건축물
중화전과 석조전 그리고 정관헌
덕수궁의 정전 중화전
러시아 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은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하다가 1902년 중화전(中和殿)을 새롭게 건립했다. 본래 2층으로 되어있는 건물이었으나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현재는 1906년에 재건된 단층 건물로 만나볼 수 있다. 중화전의 정문 중화문과 함께 보물 제 819호로 지정되어 있다.
근대식 석조 건물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1910년에 준공된 서양식 석조 건물 석조전(石造殿)은 고종이 숙소와 고관대신과 외국사절을 만나는 사무 용도로 설계되어 사용했던 건물이다. 실제로는 고종의 아들인 영친왕이 기거하고 고종은 집무실과 알현실로 사용했다고. 그 이후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는데 2009년에 복원공사를 진행하여 2014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개관하였다.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의 경우에는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방문할 수 있다. 해설사가 동반해서 관람을 진행하는 형식을 진행되는데 아쉽게도 야간에는 운영하지 않는다.
야간개장을 좀 더 재미있게 즐기는 TIP 대신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석조전 서관의 경우에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21시까지 야간개장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덕수궁 야간개장과 함께 즐기기에 좋다. 현재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확대 실시됨에 따라 별도 공지시까지 휴관을 진행하고 있지만 다시 개관을 한다면 같이 방문해보자.
덕수궁 내 근대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정관헌
정관헌(靜觀軒)은 1900년에 지은 회랑 건축물로 발코니가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 모습이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건물이다. 여기서 정관(靜觀)은 조용히 사물을 관찰함이라는 뜻으로, 정함녕전 뒤에 자리하고 있어 덕수궁의 일대를 조용히 내려다 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종이 휴식을 취하면서 다과를 들거나 외빈을 초대해 연회를 여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정관헌은 서양식 건축양식에 전통적인 요소가 가미된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난간의 경우 소나무, 사슴, 박쥐, 당초 등의 전통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바깥 기둥에서는 조선왕실과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오얏꽃 문양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오얏꽃의 한자명은 이(李)이다.
정관헌은 해방 이후 한 때 일반인을 대상으로 차와 음료를 판매하던 카페로 운영되기도 했다. 지금은 덕수궁 내에서음료를 즐기고 싶다면 대한문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 돌담길이라는 카페를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연못이 보이는 작은 야외테라스에 앉아 양탕국(대한제국 시절에 커피를 양탕국으로 불렀다)을 즐기고 있으면 어느 카페 뷰가 부럽지 않다. 대신 오후 7시까지만 운영하니 참고하자.
덕수궁은 사택이었다가 궁궐이 되었기에 전각 배치가 정연하지 못하고 석조전과 정관헌과 같은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 있어 궁궐 고유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접근성이 좋고 언제든지 야간개장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 날씨가 너무 좋아 퇴근 후 그냥 집에 가기가 아쉽다면 가을의 정취를 느끼러 덕수궁을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
덕수궁(德壽宮)
- 주소 : 서울 중구 세종대로 99
- 전화번호 : 02-771-9951
- 관람료 : 만 25세~만 64세 1,000원
- 관람시간 : 09:00~21:00 (입장마감 20:00)
- 휴궁일 : 매주 월요일
- http://www.deoksugung.go.kr/
<해당 기사는 2020년 9월 기준으로 작성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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