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온전한 믿음 온전한 순종” 完全なる信仰・完全なる従順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보면 어떤 것은 예전에 경험해본 일, 또는 지식으로 알고 있던 일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별로 큰
문제가 없습니다. 지식이나 경험에 비추어 일을 처리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요즘도 그런 말을 쓰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른다고 할 때 보면 가끔 “FM대로 하면 된다”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FM대로>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만, 그게 무슨 약자인지는 의외로 모르는 분들이 꽤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사실 FM이라고 하는 것은 군사용어라고 하지요? 필드 매뉴얼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교본, 교과서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FM대로>라고 하는 것은 원칙대로 처리하면 되다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항상 FM대로 처리하면 되는가 하면 꼭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냐 하면 FM, 즉 매뉴얼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지요.
역사적으로 보면 세상에는 유명한 모험가들이 있습니다. 아무도 안 가본 곳에 간다거나, 또는 아무도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보는
사람들이지요.
말 그대로 전인미답. 지금까지 한 사람도 밟아보지 않은 곳을 간다는 것은,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본다는 것은, 좋은 말로 하자면 용기가
있는 것이요, 조금 부정적인 표현으로 하자면 무모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세상적으로 생각할 때 성경에 보면 이처럼 용기가 있는 것인지 무모한 것인지 헷갈리는 사람이 꽤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사람 중 하나가 아브라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말씀, 그게 바로 오늘 말씀인데, 다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3절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主はアブラムに言われた。「あなたは、あなたの土地、あなたの親族、あなたの父の家を離れて、わたしが示す地へ行きなさい。
そうすれば、わたしはあなたを大いなる国民とし、あなたを祝福し、あなたの名を大いなるものとする。あなたは祝福となりなさい。
わたしは、あなたを祝福する者を祝福し、あなたを呪う者をのろう。地のすべての部族は、あなたによって祝福される。」
부모님들이 아이들한테 보통 어떻게 교육을 합니까. 어떤 사람을 따라가면 안돼요? 예,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된다고 가르치지요.
그런데 이 아브라함이라는 어린이. 사실 어린이가 아니죠.
12장 4절을 보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그의 나이는 75세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만, 그때는 아직
가톨릭이나 개신교는 고사하고 유대교도 생기기 전이었습니다.
당시 75세였던 아브라함 어린이는, 이 짧은 세 줄의 듣도 보지도 못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모든 것을 버리고 나섰습니다.
이게 그리 쉬운 일이었을까요? 아니요. 정말 그야말로 무모하고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무엇보다 아브라함 그 이전에는 이와 같은 일이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닥쳤을 때 말하자면 FM, 필드매뉴얼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
때문에 아브라함은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습니다.
우선 아브라함은 혼자 떠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중에서 아내 사라를 데리고 간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창세기 2장 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それゆえ、男は父と母を離れ、その妻と結ばれ、ふたりは一体となるのである。
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지요. 부부는 한 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사라를 데리고 간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5절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창세기 12장 5절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アブラムは、妻のサライと甥のロト、また自分たちが蓄えたすべての財産と、ハランで得た人たちを伴って、カナンの地に向かって出発した。こうして彼らはカナンの地に入った。
얻은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은 종입니다. 당시에 종은 말하자면 재산처럼 거래되고 있었기 때문에 역시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걸리는 게 있지요?
아니, 언제 하나님께서 조카 롯을 데려가라고 하셨어요. 하나님께서는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셨냐 하면 7절 전반부를
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主はアブラムに現れて言われた。「わたしは、あなたの子孫にこの地を与える。」
이 말씀을 어쩌면 당시 아브라함은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기껏 아브라함을 불러놓고 하신다는 말씀이, 아브라함한테 준다는 말씀을
하지 않고, 자손한테 주겠다고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시키지 않았던 일, 롯을 데리고 갔던 것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아브라함이 왜 롯을 데려갔을까요. 조카라고 하니 자기보다는 젊고 힘이 있었겠지요. 그래서 어쩌면 자기들만 가는 것보다
롯을 데려가면 조금 더 도움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판단하셨냐 하면, 이를 온전한 순종이 아니라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르실 때에는 아브라함에
대해서 축복의 말씀을 하셨지만, 롯을 데리고 떠나는 모습을 보시고는, 정작 아브라함 본인에 대한 축복의 말씀은 사라집니다.
아브라함의 시행착오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12장 10절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その地に飢饉が起こったので、アブラムは、エジプトにしばらく滞在するために下って行った。その地の飢饉が激しかったからである。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주셨으면 거기 머물러 있어야 할 텐데, 생활이 조금 어려워졌다고 해서 약속의
땅을 떠나 다른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됩니까. 창세기 12장 11절~20절에 보면, 까딱 잘못했다가 아내를 빼앗길지도
모르는 일까지 겪게 되고 맙니다. 참, 이런 일은 남자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최악의 사태는 모면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십니다. 아무런 말씀도 안 하세요.
왜요? 그렇죠. 아브라함은 아직 온전한 순종, 하나님께서 말씀하지는 않으셨지만 인간적인 생각으로 왠지 롯을 데리고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브라함과 롯 사이에 다툼이 생겨서 결별하게 됩니다.
창세기 13장 14절~17절
“14.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ロトがアブラムから別れて行った後、主はアブラムに言われた。「さあ、目を上げて、あなたがいるその場所から北、南、東、西を見渡しなさい。
わたしは、あなたが見渡しているこの地をすべて、あなたに、そしてあなたの子孫に永久に与えるからだ。
わたしは、あなたの子孫を地のちりのように増やす。もし人が、地のちりを数えることができるなら、あなたの子孫も数えることができる。
立って、この地を縦と横に歩き回りなさい。わたしがあなたに与えるのだから。」
결국 아브라함과 롯이 결별하게 되는데, 결별하자마자 하나님께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말씀을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자기 생각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방법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처럼 FM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모세는 또 어떻습니까.
출애굽기 7장 7절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였고 아론은 팔십삼 세였더라”
彼らがファラオに語ったとき、モーセは八十歳、アロンは八十三歳であった。
하나님께서는 여든 살 먹은 모세와 그보다도 세 살이 더 많은 그의 형을 시켜서 이스라엘 민족 성인 남성만 60만명, 아이들과
여성들까지 하면 총 200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민족의 구출을 위해 부르셨습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까지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젊은 날 다 가고, 좋은 날 다 보낸 모세 할아버지가 그보다 나이가 더
많은 형님과 함께, 당시 강대국인 애굽의 왕을 만나서 담판을 짓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하라? 이게 말이나 됩니까.
어디 그 뿐인가요. 모세는 이후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아브라함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FM이 없어요. 매뉴얼이 없었던 것입니다. 뻑 하면 목이 마른다고 아우성입니다. 식량이라도 넉넉히 주시면 모를까, 하늘에서 만나를
주시는 것은 좋지만, 항상 간당간당 해요. 오늘은 만나가 있어서 먹을 수 있지만, 내일 또 만나를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좀 불안하기 때문에 모아두려고 했더니 어떻게 됐대요?
출애굽기 16장 19절~20절
“19.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20.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モーセは彼らに言った。「だれも、それを朝まで残しておいてはならない。」
しかし、彼らはモーセの言うことを聞かず、ある者は朝までその一部を残しておいた。すると、それに虫がわき、臭くなった。モーセは彼らに向かって怒った。
아니, 이게 그렇게 잘못한 거예요? 라고 묻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마치 아브라함이 롯을 데려간 것이 그렇게 잘못한 거예요?
라고 묻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만 믿으라는 것입니다. 나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모세 나이도 마찬가지죠. 좀 팔팔하고 혈기 왕성한 젊은이를 택한다 하더라도 모자랄 판에, 왜 하필이면 나이 든 여든 살 먹은
할아버지와, 여든 세 살 먹은 할아버지를 택하셨을까요.
이는 사사기에 보면 그 답이 있습니다.
일단 사사기 6장 1절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イスラエルの子らは、主の目に悪であることを行った。そこで、主は七年の間、彼らをミディアン人の手に渡された。
하나님께 죄를 범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미디안 사람들을 시켜서 이스라엘을 괴롭게 만드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에 이스라엘 민족이 회개하였더니 한 지도자를 세웁니다. 그 이름이 바로 기드온이지요.
이제 기드온이 미디안을 물리치기 위해서 사람들을 모읍니다. 그랬더니 몇 명이 모였냐 하면 3만 2천명이 모였습니다. 미디안 군대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3만 2천명 정도가 모였다면 한 번 해볼만 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몇 명까지 줄이냐 하면, 예, 300명까지
줄입니다. 아니, 지금부터 전쟁을 하려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있으면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사사기 7장 2절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主はギデオンに言われた。「あなたと一緒
にいる兵は多すぎるので、わたしはミディアン人を彼らの手に渡さない。イスラエルが『自分の手で自分を救った』と言って、わたしに向かって誇るといけないから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많아서 이기면 그 영광을 하나님한테 돌리는 게 아니라 너희들이 잘 싸워서 이겼어. 이렇게 말할
게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 때도 모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젊은 조카 롯이 있으니까 해냈어, 역시 젊은 모세와 팔팔한 아론이 있으니까 해낼
수 있었어……. 너희들 그렇다고 할 거 아니야? 나는 그 꼴 못 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지요.
이사야 48장 11절에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わたしのため、わたしのために、わたしはこれを行う。どうしてわたしの名が汚されてよかろうか。わたしの栄光を、ほかの者に与えはしない。
참 이기적인 하나님이시죠? 너무나도 이기적인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이기적이면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입힐 수가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이기적이시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모두한테
크나큰 축복이 허락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절~29절
“26.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兄弟たち、自分たちの召しのことを考えてみなさい。人間的に見れば知者は多くはなく、力ある者も多くはなく、身分の高い者も多くはありません。
しかし神は、知恵ある者を恥じ入らせるために、この世の愚かな者を選び、強い者を恥じ入らせるために、この世の弱い者を選ばれました。
有るものを無いものとするために、この世の取るに足りない者や見下されている者、すなわち無に等しい者を神は選ばれたのです。
肉なる者がだれも神の御前で誇ることがないようにするためです。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본인에 대해서 만족하세요? 아, 내가 좀 더 돈이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좀 더
능력이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좀 더 젊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좀 더 힘이 세거나 지위가 높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혹시
그런 생각 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여러분, 참~ 다행입니다. 돈이 없는 덕분에, 능력이 부족한 덕분에, 젊지 않은 덕분에, 힘이 약하고 지위가 낮은 덕분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쓰시기를 원하고 계신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된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상상도 못할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크고도 놀라운 비밀인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금방 좌절합니다. 금방 절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알면 어떻게 됩니까. 이 비밀을 알면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왜 믿을 수가 있어요? 예, 우리에게는 FM이 있습니다. 매뉴얼이 있어요. 그 매뉴얼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는 성경이 있기 때문에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나 자신한테는 힘과 능력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마침내는 잘 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끝내는 잘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작년 11월 말 쯤이라고 기억되는데, 저희 집 우체통에 보니까 무슨 안내장이 들어있더라구요? 그래서 보니까 집안에 있는 무슨 전기
설비 안전점검을 할 텐데 12월 몇 일 몇 시쯤에 방문예정입니다……라는 안내문이에요. 뭐, 점검하는 시간은 한 10분 정도라고
하던데, 좀 흥미로운 것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그 점검은 4년마다 한 번씩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올림픽도 아니고 4년마다 한 번씩 하냐……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예정된 날짜, 예정된 시간에 정확히 점검하시는
분이 오셔서는, 정말로 한 10분 정도 집 안에 들어와서 여기저기 점검을 하셨습니다. 다 마치시고는 이상이 없다고 하시면서 나가시는데
그 때 이 분이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럼 4년 뒤에 뵙겠습니다”
이러고 가시더라구요.
그렇죠. 전혀 이상할 건 없습니다. 4년마다 점검이 있고 오늘 마쳤으니 4년 뒤에 또 하겠다는 인사말이었습니다만, 좀 생각해보니까
지금까지 4년 뒤를 기약하면서 인사를 나눈 적이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상당히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분이 오셨을 때가 작년
2018년 12월이니 그로부터 4년 뒤라고 하면 2022년 12월입니다.
2022년 12월.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에 계속 살고 있을까. 지금부터 4년 뒤라면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들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하는,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기대와 불안함이 느껴졌습니다. 사실
기대보다는 불안감이 조금 더 많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온전한 순종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피를 흘리고 죽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서
그러셨나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지혜가 있는 사람입니까. 누가 미련한 사람입니까. 예수님? 아이구, 필요 없어. 나는 내 힘이 있으니까, 내 능력이
있으니까, 예수님 없이도 나는 잘할 수 있어……이것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나는 힘이 없기 때문에, 능력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 없이는 안돼. 반드시 예수님이 함께 해주셔야 해……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 중에
지혜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고백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十字架のことばは、滅びる者たちには愚かであっても、救われる私たちには神の力です。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1년 뒤, 5년 뒤, 그리고 10년 뒤에, 그는 자기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알지
못했습니다. 모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기 전인 79세가 되던 때까지도 모세는 어쩌면, 그래, 인생 별거야? 그냥
이렇게 살다 가는 거지 뭐……그랬는지도 모르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도 모세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크게 높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온전한 믿음, 온전한 순종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는 지금 현재 4년 뒤를 갔다 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4년 뒤는 고사하고 1시간
뒤, 1분 1초 뒤도 갔다 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땅에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미래는 모두에게 공평한 전인미답. 아무도 안
가본 땅이요, 아무도 안 해본 일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부르십니다. 누구누구야. “너는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네게 큰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あなたは、わたしが示す地へ行きなさい。そうすれば、わたしはあなたを大いなる国民とし、あなたを祝福し、あなたの名を大いなるものとする。
이렇게 하나님께서 부르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온전한 믿음, 온전한 순종입니다.
그렇다고 꼭 이사를 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도전, 새로운 세계로 주님께서 이끌어가실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영원한 FM, 영원한 매뉴얼 성경 말씀을 따르면 됩니다. 성경 말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시행착오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직 성경 말씀, 하나님 말씀을 따라, 우리의 구주 되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며, 예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온전한
믿음과 온전한 순종으로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 놀라운 축복을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