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서바이벌 키트 (제2회 / 이준호)
“ 이제
어떡할 거냐?” 아버지의 음성은 낮고 어떻게 들으면 체념한듯
했다. 근처 도시로 대학을 진학했던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갖지 못했고 집으로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늦둥이로 어렵게 가진 아들을 싸고 돌았지만 아버지의 눈에는 또래보다 한참이나 늦된 아이가 세상에 나가서
겪을 고초가 눈에 선해서 아들을 다그치던 것이 버릇이 되었다. 아들은 말문을 닫았고 그나마 둘 사이에서
말을 전해 주던 아내는 이제 이세상에 없다. 대철씨가 여러 해에 걸쳐 공무원 시험에 낙방하고, 알바를 전전하며 고생해서 모은 돈을 들고 덜컥 캐나다로 떠나겠다고 선언한그해 겨울, 오랜만에 고향집으로 돌아와 대청마루에 앉아 하릴없이 누렁이 녀석과 놀고 있을 때 문득 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나와 대철의 옆에 앉았다. “우선
캐나다에 가서, 영어도 배우면서 좀 쉬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대철씨는
머뭇머뭇 말을 이었다. “대철아, 왜 하필이면 그 먼 곳이냐. 게다가 네가 지금 무턱대고 뭘 새로
시작하기에는 모든 것이 좀 늦지 않았느냐?” 아버지의 말은 언제나 옳았으므로 반박할 수
없었다. 대철씨는 간신히 우겼다. “예에. 아버지, 하지만 아무래도 우선 제가 캐나다 가서 좀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 늙으신 대철의 아버지는 더는 대철씨를 추궁하지
않았다. 나란히 앉은 부자의 어깨에 한낮의 따스한 햇볕이 내려앉았다.
대철씨는 누렁이의 머리를 자꾸만 쓰다듬어 주었고, 누렁이는 입을 벌리고 꼬리를 팔랑팔랑
흔들었고 눈을 가느스름하게 반쯤 감았으며, 아버지는 한참 동안 그렇게 옆에서 누렁이를 쓰다듬는 대철씨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총각…… 혹시
있는가잉?” 주인 할머니다. 이제 대철씨도 나이가 삼십 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니 제발 총각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틈날 때마다 부탁해 보지만
주인 할머니는 요지부동 언제나 총각을 고집한다. 장가 안 갔으면 무조건 총각이란다. 대철씨는 주인 할머니가 총각이라고 자신을 부르는 게 겸연쩍고 거북하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반항도 겸해서 한 육십 살까지 혼자 살아볼까 생각해 본다. 설마 나이가 환갑이 훌쩍 넘었는데
그때도 장가 안 갔으니 그것 때문에 총각이라 부르실 건가? 주인 할머니가 자신이 세운 원칙에 따른답시고
환갑도 넘은 늙은이를 총각이라 부른다면, 그 인지부조화에 심적으로 얼마나 괴로우실까 생각하니 대철씨는
벌써 고소한 마음이 든다. 할머니의 음성이 더욱 은근 해진다. “총가아악…… 혹시 있는가잉?”. “예에. 할머니, 저 있습니다.” 이렇게 주인 할머니가 이렇게 과도하게 친밀을
가장한 목소리로 방문을 탕탕 두드리면서 찾는데, 뻔히 방안에 있으면서도 없는 체 꿈쩍도 안 하는 다른
세입자의 경우를 자주 보아 왔다. 주인 할머니야 당연히 오랜 경험으로 그런 저차원적 방법을 당연히 간파하고
계시지만, 바로 그것이 연륜이란 것이다, 전혀 내색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속아 주신다. 그리고는 ‘다음에 와야 긋네’하고 나지막이 한마디를 열리지 않는 문에 던져 주시는 그 순간에 마치 저주처럼 밀려드는 죄책감을 다른 세입자들이
어떻게 견딜 수 있는지 대철씨는 알 수 없다. 대철씨에게 가장 좋은 방을 가장 저렴한 임대료로 제공하고
있다는 점 외에도 눈 치우기, 잔디깎기와 잡초 제거 및 온갖 집안의 고장을 스스로 처리해야하는 단독
주택을 혼자 힘겹게 관리하는 칠순 노인네를, 그게 비록 좀비의 침공 같은 위급한 때일지라도, 외면 할 수 없음을 대철씨는 깨닫는다. “총각, 다름이 아니고 위에 올라와서 나 좀 쬐끔 도와줘야 쓰것는디.”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인가. 대철씨는 그간 단 한 번도 주인집에 가본
적이 없다. 지하층에서 주인 할머니가
사는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세입자들은 절대로 침범할 수 없는 성스러운 공간이며, 대철씨와 주인할머니의
계급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의 경계선이었다. 오늘 주인 할머니가 자청하여 위층으로
올라올 것을 허락하고 모종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대철씨의 세입자 로서의지위가 한단계 상승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정도면
대철씨가 그럴 리야 없겠지만 한달정도 월세가 밀려도, ‘담 달에 같이 드릴께요’ 정도로 쿨 하게 말하고 넘어가도 어쩌면 괜찮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 예, 할머니, 뭐 제가 힘쓸 일이 있나 보죠? 지금 같이 올라가시죠.” 일단 할머니가 사람의 언어를 썼으며 대철씨를
즉각적으로 공격하지 않았고 건너편 열린 욕실 안에 걸려 있는 거울로 흘끗 자신의 모습을 체크한 것으로 대철씨는 할머니가 좀비가 아님을 확신했다. 좀비는 거울을 보는 등의 행위로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는 법이 없다. 3년만에
위층으로올라간대철씨는할머니가 좀비가 아닌 것이 안심이 됨과 동시에 주인집에 드디어 초대된 것에 대해서 뿌듯한 마음을 가졌으나 겉으로는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와 어르신이자 집주인에 대한 당연한 존중의 태도가 그의 음성과 온몸의 움직임에 자연스럽게 표출되도록 신중하게 위층으로 향하는 걸음을 옮겼다. 사실 이집에는 지하실 내부에서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철씨가 살았던 3년간 그 계단 끝에 붙어 있는 문은 열린적이 한 번도 없었고, 호기심에 라도 계단 끝까지 올라가 지상으로 향하는 손잡이를 돌려본 적조차 없었다. 그 하얀 문은 언제나 닫혀 있는게 정상이었고 닫혀 있는 그 자체로 주인집과 세입자가 영유하는 공간의 명확한
경계를 의미할 뿐 결코 열려서는 안되는 사회적 약속 같은 것이었다. 주인 할머니도 단 한번도 그 문을
사용해서 지하로 내려 오신 적이 없었고 그래서 번거롭지만, 지하층에서 건물 밖으로 나가는 옆 문을 열고
나와 집 정면에 있는 현관을 향하는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주인 할머니가 현관문을 열자, 작은 개가 달려와 할머니 뒤에 서 있는 대철씨를 향해 미친 듯이 짖는다. 어찌나
심하게 짖는지 대철씨 팔목 만한 그 개의 작은 몸이 짖는 소리에 심하게 요동치며 꼬리까지 흔들릴 정도였다. 주인
할머니는 충실한 개를 제지하는 그 어떤 행동도 없이 그냥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지만 대철씨는 머뭇거리며 현관 앞에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작은 개는 눈동자가 녹색으로 변할 정도로 계속해서 짖었다. 대철씨는
작은 개의 적개심에 속수무책이었다. 작은개는 앞다리를 약간 굽힌 채 대철씨가 한걸음이라도 더 발을 집
안으로 들인다면 추호의 자비도 없이 온몸을 던져서 달려들 기세였다. 하지만 작은 개는 대철씨가 상대하기에는
너무 작았다. 대철씨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그냥 서 있기만 했다, 작은 개에게 공포심을 내보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해삐 !” 집 안으로 들어간 주인 할머니가 개를 부른
것은 단 한 번이었다. 작은 개는 즉시 대철씨를 향한 분노와 위협을 접고 할머니 쪽으로 바라락 달려갔다. 아니 감정이 이렇게 갑자기 없어질 수 있단 말인가? 문득 대철씨는
지난 겨울 어느 늦은 밤, 장갑 속에 주먹 쥔 손이 곱을 정도로 추운 크리스티 공원 벤치 앞에 선 채, 창백한 불빛 아래 얼굴을 반 이상 덮은 머플러 안에서 한참 동안의 침묵 끝에 들려온 그녀의 음성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뭐가
안 돼?” “우리
말야” “우리가
왜?” “......” “우리가
어때서?” “……”
그렇게 예고 없는 어머니의 부음처럼 그녀는
떠났다. 늦은 나이에 캐나다로 와서 커뮤니티 칼리지에 진학하여 2년을
보낼 때까지만 해도 대철씨는 자유와 희망에 차 있었다. 한국에서는 나날이 더 고집이 세어지는 아버지와
병중에 누워있는 어머니의 아들이었던 무직자 김대철이 아닌 그냥 캐나다 대철씨 그 자신으로 살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스펙과 학벌을 따지지 않았고, 대철씨를 있는 그대로 좋아해 주었다. 대철씨가 칼리지를 졸업하고
한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을 때도, 전공과는 전혀 다른 어느 작은 회사 창고의 입출고 담당 일자리를
가졌을 때만 해도, 그리고 1년도 채 못 넘기고 그 직장을
잃었을 때조차도, 이윽고 편의점을 운영하는 그녀의 아버지가 그의 존재를 알아채기까지. 너와 나는 괜찮은데 왜 ‘우리’는 될 수 없는가?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떠났다. 한때 티없이 좋아했던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이 작은 개는 어떻게 그렇게 몸서리치도록 날 향해 짖어대다가도 한순간에 그걸 멈출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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