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석출(水落石出)
- 물이 빠져 바닥의 돌이 드러나다.
[물 수(水/0) 떨어질 락(艹/9) 돌 석(石/0) 날 출(凵/3)]
강물이 수량이 줄어 물이 빠지면(水落) 당연히 밑바닥의 돌이 드러난다(石出).
이 쉽고도 건조한 표현의 성어가 오랫동안 유명해진 데에는 宋(송)나라 제1의 시인으로 꼽는 蘇東坡(소동파)의 명구에서 유래했기 때문일 것이다.
소동파는 이름이 軾(식, 軾은 수레가로나무 식)이며 부친 蘇洵(소순, 洵은 참으로 순),
동생 蘇轍(소철)과 함께 3부자가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에 들어간다.
그가 지은 赤壁賦(적벽부)의 ‘후적벽부’에 이 말이 나오는데 처음 이 말을 썼을 때에는 겨울 강의 물가 경치를 표현한 말이었으나 점차 어떤 사건의 진상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을 비유하게 되었다.
적벽이라 하면 삼국시대 劉備(유비)와 孫權(손권)의 연합군이 曹操(조조)의 백만 대군을 맞아 화공으로 격파한 적벽대전이 떠오른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서 많이 부풀려진 것이라고 하지만 전투가 있었던 곳(嘉魚縣/ 가어현)과는 다른 곳(黃州/ 황주)인 줄 알면서 소동파는 옛 싸움터 적벽 아름다운 경치와 영웅들이 활약한 역사를 대비하며 유려한 문장으로 남겼다.
이 곳 황주에 오게 된 사연도 기구하다. 송나라 神宗(신종)때 王安石(왕안석)의 과감한 개혁정책을 반대한 소동파가 좌천된 곳이고 동파도 황주 지역 지명이다.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틈나는 대로 주변의 명승지를 유람하며 3개월 사이를 두고 쓴 글이 전, 후 적벽부이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인용해 보자.
동파가 두 객과 함께 길을 걸을 때 서리와 이슬은 이미 내리고 밝은 달빛 아래 나뭇잎 떨어져 운치가 절로 나는데 술이 없어 허전했다.
두 객이 물고기 안주를 준비하고 동파가 술을 마련하여 적벽강 아래에서 모여 놀았다.
‘강물 흐르는 소리 아득히 들려오고, 물 빠져 끊긴 강둑은 천 자나 되었다. 산은 우뚝하고 달은 기울었는데 물이 빠지니 바위가 드러났다
(江流有聲 斷岸千尺 山高月小 水落石出/
강류유성 단안천척 산고월소 수락석출).’
세월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강산이 빨리 바뀌어 알아볼 수 없음을 한탄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