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내년 한국에서 열릴 U-20 월드컵을 준비하는 안익수 U-19 대표팀 감독. |
1983년 6월. 그는 18살 꿈 많은 청년이었다. 1년 전부터 축구선수의 삶을 살기 시작한 청년은 남들보다 늦은 출발을 만회하기 위해 매일 새벽 기본기 훈련에 열중했다. 바로 그 시각 멕시코에선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현 20세 이하 월드컵)가 열리고 있었다. 당시 한국 청소년대표팀(감독 박종환)은 새빨간 유니폼만큼이나 강렬한 4강 진출을 일구며 외신으로부터 ‘붉은악마’라는 애칭을 얻게 된다. 지난달 26일, 2017년 한국 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개막을 1년 여 앞두고 만난 안익수(51) U-19 대표팀 감독은 33년 전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었다. 안 감독은 “그때 나는 대표팀 발탁은 꿈도 꾸지 못한 1년차 축구 초보였다. 그 당시 경기 중계를 보면서도 저 선수들이 내 또래라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회상했다. 그는 30여 년 전 막연히 지켜본 ‘꿈의 무대’를 훗날 감독이 되어 밟게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고 했다. 한국의 두 번째 U-20 월드컵 4강 신화, ‘어게인 1983’을 기획하는 안익수 감독의 축구 인생과 U-20 월드컵 준비 상황을 들어봤다. - 늦은 나이에 축구를 시작했다고. ▲ 1982년 문일고 3학년 때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기본기가 많이 떨어졌다. 남들 1000~2000개 씩 하는 볼 리프팅을 나는 다섯 개도 못 했으니까(웃음). 이듬해 세계청소년축구대회, 지금의 U-20 월드컵이 멕시코에서 열렸다. 새벽마다 따로 추가 훈련을 하던 시기라 훈련시간 전후로 중계방송을 봤다. 저 선수들은 어쩌면 저렇게 축구를 잘 할까 감탄하며 지켜봤다. 당시엔 '동경'도 못했고 그저 '나는 저런 걸 못하니까 더 연습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 몇 년 뒤 그 선수들과 프로 생활을 함께했다. ▲ 1989년 일화(현 성남FC) 창단 멤버로 데뷔했다. 프로에 와서 알았는데 1983년 멕시코 멤버들이 다 내 또래더라. 1965년생 동갑(이문영 이기근 김종부)에 동생(김판근)도 있어서 친하게 지냈다. 1995년까지 일화에서 뛰다 이듬해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해 세 시즌을 보내고 은퇴(통산 253경기 출장)했다. - 은퇴하던 해 개인 최다인 리그 36경기를 뛰었는데. ▲ 내가 원래 ‘박수칠 때 떠나자’라는 주의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일화 코치를 했다. 그러다 은사님의 부탁으로 2006년 여자축구 대교팀을 맡았고 이듬해 여자 A대표팀 감독 제안을 받고 2009년까지 지휘봉을 잡았다. 이후 FC서울 수석코치(2010년), 부산 아이파크 감독(2011~2012년), 성남 감독(2013년)으로 지내다 2014년 말 U-18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 | | ▲ 내년 한국에서 열릴 U-20 월드컵을 준비하는 안익수 U-19 대표팀 감독. |
- 우승 운이 상당하다. ▲ 선수 때 일화 K리그 3연패(1993~1995년)와 포항 아시안클럽챔피언십(현 AFC 챔피언스리그) 2연패(1997~1998년)를 이뤘다. 지도자로 다시 성남 K리그 3연패(2001~2003년), 유니버시아드 여자축구 우승(2009년), 서울 K리그 우승(2010년)을 함께했다. 여자 대표팀과 함께 한 우승이 조금 더 기억에 남는다. 사실 성남 코치를 그만 두고 영국 유학을 준비하다 여자 선수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수락한 대교 감독직이었다. 그렇게 발을 들인 여자축구계에서 국제대회 우승까지 해서 감격적이었다. - 청소년 대표팀을 맡게 된 계기는. ▲ 부산 아이파크서 2년 간 성적이 괜찮았다. 그런데 해체 위기에 놓인 친정팀 성남에서 팀을 맡아달라고 했다. 애초 시민구단 전환까지 3년이 걸린다고 했는데 1년 만에 결정이 났다. 그렇게 2014년 성남에서 나와 독일서 3개월 간 연수를 하고 브라질월드컵도 보고 왔다. 그해 말 2017년 U-20 월드컵을 준비하는 U-18 대표팀 사령탑 제안을 받았다. 2015년 1월 러시아친선대회 때 선수들을 처음 만났는데 느낌이 좋았다. 기대 이상의 성적(준우승)까지 거두며 U-20 월드컵 청사진을 그릴 수 있었다. - 어린 선수들과 지내며 지도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다고. ▲ 1997년생들이 현재 팀 주축이다. 내가 선수 은퇴할 즈음 태어난 아이들이다. 내가 어린 시절 축구할 때와 비교해 지금 선수들은 볼을 차는 환경도, 사고체계도 다르다. 이전까진 ‘카리스마’를 앞세우는 타입이었다. 지금은 ‘광대’가 됐다(웃음). 훈련 중 선수들이 좋은 슈팅을 때리면 과장된 어퍼컷 세리머니로 웃게 만든다. 스킨십도 자주 하고. 예전의 나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도법이다. 스스로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낀다. - 지도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 아들이 1999년생으로 지금 선수들과 또래다. 아들과 대화하며 요즘 애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지내는지 파악한다. 예전처럼 강압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역효과다. 요즘은 혼내는 것보다 친근감 있는 대화가 선수들의 동기를 유발한다. 원래 ‘원칙’을 강조하던 지도자였는데 지금은 유연성이 늘었다. - ‘안익수 호’ 출범 후 1년 반 정도 지났다. U-20 월드컵까진 딱 1년이 남았다. ▲ 수차례 소집 훈련과 각종 대회를 치르며 부족한 점을 깨닫는 동시에 기대감도 늘어간다. 특히 지난해 수원JS컵에서 우루과이 프랑스 벨기에 등과 대등한 경기를 하며 자신감을 키웠다. 최근 독일전지훈련(3월 23일~4월 7일)을 진행하면서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국민들이 기대하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 안익수(오른쪽) 감독이 지난해 JS컵 우루과이전을 앞두고 상대팀 감독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밝게 웃고 있다. /사진 제공 : 대한축구협회 |
- 아쉬운 점은? ▲ 소속팀에서 풀타임을 뛰는 선수들이 너무 없다. 대학 선수들은 저학년이라 많이 뛰지 못하고 프로 선수들은 대부분 R리그(2군리그) 출장이 전부인데 그마저도 주전급이 아니다. 매 경기 90분을 지속적으로 뛰는 선수와 45분을 뛰는 선수, 2~30분을 뛰는 선수는 경기력 및 컨디션 유지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번 독일 전지훈련 중 평가전을 가진 독일 U-19 대표팀은 주전 대부분이 소속팀에서 매주 꾸준히 활약 중이다. 그런 상대와 맞붙어 본 우리 선수들도 이번에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 이승우 백승호 장결희가 소속된 FC바르셀로나 후베닐A팀 경기도 직접 보고 왔다고. ▲ 독일전지훈련 후 선수들은 귀국하고 나는 스페인으로 넘어갔다. 어린 나이에 큰 무대에서 경쟁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볼 수 있어 기뻤다. 승우와 결희, 승호 모두 한국축구의 기대주다. 구단의 징계로 2년 여 가까운 공백기를 가진 선수들인데 앞으론 시간이 갈수록 더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이다. 기대가 크다. - 이승우 장결희는 팀 주축 선수들에 비해 나이가 2살 어리다. ▲ 경쟁력을 갖췄다면 연령대는 전혀 상관없다. 조영욱(언남고)등 고교 선수들에게도 대표팀의 문은 열려있다. 최고의 선수를 찾기 위해 K리그, R리그, U리그, 고등리그를 가리지 않고 전국을 누비고 있다. 단 한 선수라도 출장할 가능성이 있으면 현장을 찾는 중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일주일이 너무 짧다(웃음). - 곧 2016 수원JS컵 U-19 국제청소년대회가 열린다. ▲ 브라질(18일 수원월드컵경기장)-프랑스(20일 수원종합운동장)-일본(2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차례로 상대한다. 내년 U-20 월드컵은 한국 포함 6개 대륙 24개국이 참가하는 대회다. 각 대륙의 서로 다른 축구 스타일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한데 이번 JS컵을 통해 남미와 유럽, 아시아팀을 만나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 내년 U-20 월드컵 목표는? ▲ 4강이다. 그 목표를 향해 준비 기간 동안 일희일비하지 않고 꿋꿋이 가겠다. 팀으로서 롤모델은 지난해 U-20 월드컵 우승팀 세르비아다. 당시 현장에서 직접 지켜본 세르비아 U-20 대표팀은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선수 개개인의 창조적인 플레이를 겸비한 축구를 했다.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요즘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 도르트문트(독일) 레스터 시티(잉글랜드) 등 ‘저비용 고효율’을 자랑하는 클럽팀 경기도 자주 본다. 내년 U-20 월드컵에서 개최국 자존심을 지키고 팬들에게 감동을 안기겠다. | | | ▲ 내년 한국에서 열릴 U-20 월드컵을 준비하는 안익수 U-19 대표팀 감독. |
‘안익수 호’ 소집공문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내년 U-20 월드컵 4강을 노리는 ‘안익수 호’는 2014년 12월 출항 후 수차례 소집훈련을 치렀다. 그때마다 안익수 감독은 소집공문에 ‘특별한 준비물’을 명시했다. 바로 책이다. 명지대 대학원 체육학 박사이기도 한 안 감독은 평소 독서를 강조하는 지도자다. 그가 감독을 지낸 대교, 부산, 성남엔 숙소 내 독서실이 구비됐다. 자비로 책을 구비하거나 기부를 받아 독서실을 채우고 연령별 권장도서를 리스트업 했다. 안 감독은 “독서는 정서 함양을 돕고 선수로서 발전은 물론 은퇴 후 삶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청소년 대표팀을 맡은 후에도 독서 전통을 이어왔다. 안 감독은 “소집공문을 통해 책을 가져오라고 했다. 처음엔 만화책도 괜찮다고 했다. 일단 책 읽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이후 선수들에게 인문학 등 여러 방면 책을 추천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수들 생일 선물로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박한빈(19·대구FC)에겐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건넸다. 한상복 작가의 <배려>도 안 감독의 추천서. 안 감독은 “10대 후반 20대 초반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책들을 선물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책을 읽으면 스피치 시간을 갖는다. 안 감독은 “선수들이 책을 읽고 본인의 생각을 정리해 발표한다. 독서 및 비평 능력이 당장 효과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 축구선수로서,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고민도 있다. 안 감독은 “요즘 어린 선수들은 스마트폰에 익숙해 독서를 힘들어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선수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는 “수원JS컵 대비 소집훈련이 9일부터 시작되는데 이번엔 책을 가져오라고 할지 말지 고민 중”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