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또 한명의 연예인이 안타깝게 운명을 달리 했다.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돌 그룹 샤이니 멤버인 종현의 사인은 자살이라고 한다. 사망 전 가족에게 이제까지 힘들었다고 보내달라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고 한다. 공개된 유서에서 그는 힘들다며 왜 살아야하는지 묻고 있다. 그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서 주목받는 만큼 처절하게 외로웠을까. 그의 마음을 감히 헤아리지도 못하겠다.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동료, 선후배뿐만 아니라 많은 팬들도 SNS에 애도 글을 올리며 그를 추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몇몇 연예인들에게 비난이 가해지고 있었다. 조문하지 않았거나 슬픔이 보이지 않는 글들을 올리는 연예인들이 비난의 대상이었다. 동료로써, 선후배로써 어느 정도의 애도는 보여줘야 하지 않냐는 비난이었다. 특히 빅뱅의 멤버인 승리는 인스타그램에 라멘 가게 개점을 홍보하는 글을 올렸다가, 왜 지금 시기에 이런 글을 올렸느냐, 팬으로서 너무 부끄럽다, 소중한 사람이 곁을 떠났는데 이런 게 중요하냐, 게시물을 내렸으면 좋겠다 등 부정적인 댓글들이 실시간으로 달리고 있다.
댓글을 다는 대중의 마음이 전혀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위는 또하나의 폭력이다. 자신의 슬픔에 대한 기준을 남에게 강요하는 ‘잣대 폭력’. 대체 적당한 애도의 기간은 어느 정도일까. 애도의 기준이 자신의 일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안된다고 누가 정한걸까. 애도에 틀이 있나. 있다면 그 틀은 모두가 동일한가. <Option B>라는 책에는 버지니아 심프 네이시라는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55세 때 남편이 사망하고 6년 반 후 딸의 결혼식 전날 아들이 헤로인 과다 투여로 사망한다. 엄청난 절망 속에서도 이 여성은 딸의 결혼식을 그대로 추진한 후에서야 아들의 장례식을 치뤘다. 그렇다면 이 여성은 아들을 제대로 애도하지 않은 걸까. 모두가 합의하는 최소한의 애도의 방법과 기간이 있는 걸까. 인스타그램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알 수 없다. 그 사진을 올리는 시간 이외에는 엄청난 슬픔의 시간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삶, 맥락을 모른 채 가해지는 비난은 옳은 것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왜 타인의 죽음으로 그의 일상이 무너져야 한다고 지시하는 걸까. 남은 사람의 과제는 일상 지키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늘로 간 고인도 남은 지인들이 자신의 죽음을 계속 안타까워하며 일상을 포기한 채 지내길 원치 않으리라 믿는다. 일상을 지키며 자신을 기억해주길, 추억해주길 원할 것이다.
대중이 연예인의 취약한 위치를 악용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다. 수많은 인문학 강의를 통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야 한다고, 타인의 잣대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하면서도, 대중의 인기를 받아야 하는 연예인은 어쩔 수 없이 타인을 신경 써야 한다고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왜일까. 더불어 사는 삶의 범위가 이제 인간만이 아닌 동물, 자연까지 확장되어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연예인은 그 범주 밖에 있는 가혹한 운명의 집단인건지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