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으로 가는 길, 절약만으로 부자가 되기에는 참 어려운 현실입니다.
지난해 2월 여러분들게 할말이 있습니다. http://cafe.daum.net/mmnix/EhvN/25, 해당 링크를 걸어드리며 20년 경력의 짠돌이 대왕소금으로서는 충격적인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대왕소금의 커밍아웃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읽고 오세요.^^
오늘은 그 때보다 더 적나라한 커밍아웃을 하려고 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가난이 정말 싫었습니다. 고물장수 아버지와 1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난 저는 늘 아버지와 어머니가 돈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며 자랐으니까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고향에서의 팍팍한 삶에 지쳐 무작정 타향으로 올라온, 배운 것 없는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그저 몸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이 전부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어머니와 5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온몸이 부서져라 리어카를 끌고 동내를 돌아다니며 고물을 모으고, 소사동 공장지대에서 쇳가루를 긁어 파는 것이 아버지가 할 수 있는 돈벌이의 전부였습니다. 항상 가난했던 당시 부모님은 돈 문제로 자주 싸우셨죠.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버지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이른바 ‘고물장수’였습니다. 돈이 많지 않았음은 당연했죠. 그런데 그때 제가 살던 동네의 계량소 한 편에서는 저녁마다 100원짜리 노름판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일상에서 재밌는일을 못 찾아서일까요. 제 아버지 역시 가끔 판에 뛰어들기도 하셨죠. 그럴 때면 어머니는 제 손을 잡고 아버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아버진 가끔은 기웃거리며 구경도하고 가끔은 노름판에 끼어 하루 일당을 읽기도했는데 어머니는 그곳에서 아버지를 향해 핀잔을 주던가 노름판을 엎어버리곤 했습니다. 아버지가 벌어온 돈은 우리 다섯 남매를 키워야 할 소중한 돈이었기 때문에 단 돈 100원도 잃어선 안 되는 돈이였죠.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는 ‘돈’ 때문에 매일 싸우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가난한 집에 태어난 것이 정말 억울했습니다.
평생을 돈에 시달리던 저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송내동 전자회사에 입사했습니다. 빨리 돈을 벌고 싶어서였죠. 당시 맡은 업무는 제품에 ‘납땜’을 하는 단순직이었습니다. 납 타는 냄새를 맡는 일...정말 하기 싫었습니다. 하루 종일 반복된 일을 하고 받은 돈은 63만원. 학생 때는 참 큰돈으로 보였는데 부모님께 내복 한 벌 사드리고 친구들과 먹고놀다보니 잔고가 없어지더군요. 이렇게 살아서는 가난을 못 벗어나겠다는 생각에 졸업과 동시에 첫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사회는 녹록치 않더군요.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고졸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책 세일즈, 약장수 보조, 노가다가 전부였습니다. 이력서를 넣어봤지만 저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더군요. 저도 아버지의 삶과 다름이 없는 삶을 살게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기술이라도 배울까 싶어 컴퓨터학원에 취직했는데 정작 자판을 칠 줄 몰라 청소와 같은 잡일만하다가 영장을 받고 군에 입대하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기본인 타이핑도 못하면서 컴퓨터를 배우겠다고 나선 꼴이 우스울 정도입니다.
2년 6개월의 군 생활 동안 저는 또 다른 절망을 맛봐야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사회에 복귀할 준비에 한창이었지만, 전 복귀할 사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들의 희망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가장 힘들어 했던 질문이 있습니다. ‘넌 꿈이 뭐야?’ 꿈이 없던 저에게 이런 질문은 고문 같았으니까요. 이 질문의 답을 찾기위해 삶에 치여 남들은 10대 때나 할 법한 이런 생각을, 저는 20대가 훌쩍 지나 군대에 와서야 하게 됐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분들은 알 겁니다. 참 시간이 많죠. 그런 상황이 제게는 축복이었습니다. 천천히 제 꿈에 대해서 정리할 수 있었으니까요. 한편으로는 전역 후 현실적인 삶을 위한 준비도 병행했습니다.덕분에 컴퓨터 타이핑이 500타를 넘기게 됐죠. 당시에는 컴퓨터가 대세였고, 저 역시 관련 업계에서 종사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차입니다. 이후 1999년 군대 전역 후 컴퓨터자격증을 따고 관련된 일을 하게 됐고 이전보다 나은 회사에 취업해 돈 모으는 재미에 푹 빠져들게 됐습니다. 아끼고 돈 모으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 월급의 90% 저축하고 10%만으로 생활하며 돈을 모으고 10원이라도 아끼려는 찌질한 일상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때였습니다. 제게 있어 돈을 모으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절약뿐이었고 주식과 부동산투자로 번 돈은 다 불로소득이고 부정한 수익이자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었죠. 아는 것이라곤 열심히 일해서 받은 돈을 절약하고 저축해서 안전하게 모으는 것이 다였습니다. 그렇게 번 돈이 너무 소중했기 때문에 10원이라도 손해날 수 있는 재테크와 투자는 처다 보지도 않고 오직 절약과 저축만 생각했습니다.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커질수록 ‘역시 내 생각이 맞아’라고 읊조렸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내 집 마련에 성공했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키우고 홀로된 어머니 모시며 살았으니 제 생각의 그릇(머리)은 돌처럼 굳어져 버렸습니다.
2001년 12월 5일, 제게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바로 ‘짠돌이카페’가 탄생된 날이죠. 짠돌이카페를 운영하며 책도 쓰고 적잖이 유명세를 타며 광고도 받아 부수입을 올릴 수 있었기에 만족하고 살 수 있었습니다. 이후 온라인마케팅 분야의 창업을 해 꽤 많은 수입을 창출하며 ‘이제 잘 사는 일만 남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사회로 나온 지 10년 만에 제가 이루고자 한 것들을 대부분을 해냈고, 그 방법은 ‘절약’이었습니다. 아끼면 돈은 모일 수밖에 없죠. 너무 당연한 것이죠. 그래서 망했습니다.
사업이란 것이 시기 잘 탄 것도 모르는 초짜가 사업으로 번 돈 사업에 재투자하며 소위 ‘자산 없는 사업’을 했으니 지속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웠죠. 수도권 부동산이 폭락한다는 남 말을 믿고 있던 집도 팔아 전세살이하며 집 값 떨어지기 기다리다 또 망했습니다. 제 선택이기에 누구를 탓 할 게 아닌데, 막상 일이 잘못 흘러가니 남 탓을 하며 살게 되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등신 중 상등신이 바로 저였습니다. 시야가 좁다보니 금세 한계에 부딪혔고 절약만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고집을 부렸죠. 하지만 다시 한 번 사업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제 특기인 절약 덕분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장단점이 있듯... 제 머릿속을 더욱 단단히 굳게 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아내와 제가 맞벌이로 번 돈을 악착같이 아끼고 모아 재기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다시 사업을 준비하고 이번엔 나름 전공분야인 마케팅으로 아내의 사업을 키움으로써 제가 망해도 또 다른 살길을 만들고 난 후 다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작게 시작하고 유지비 안 나가게, 급여는 주지 안아도 되도록 모든 일을 나 혼자, 그렇게 사업도 돈 나가는 일이 없게 하려다보니 될 일도 안 될 때가 많았습니다. 오로지 마케팅이나 홍보와 같은 내 돈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 위주로 찾다보니 할 수 있는 일이 그게 다였습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시기가 지나 코스트는 말할 수 없을 만큼 낮아진 시기에 투자 없이 할 수 있는 일만 찾았으니 돈이 될 턱이 없었던 것입니다.
제 인생의 두 번째 기회를 만난 것은 소상공인 온라인 마케팅을 지원하고 있던 2015년쯤이었습니다. 짠돌이카페 대구운영자이신 나눔부자님이 서울부동산투어를 오셨다고 해 차를 한 잔 하게 됐습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뭐 하러 저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온 거지’라는 생각을 했죠. 그저 신기했죠.
그렇게 시작된 나눔부자님과의 부동산 인연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018년 3월 20일 오전 6:18분의 저를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커밍아웃을 하려합니다. 저처럼 귀 막고 눈감고 꽉 막힌 마인드를 갖고 남들처럼 나도 돈은 벌고 싶은데 정작 돈 버는 방법을 몰라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궁금한 분은 제 이야기에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자기 생각이 전부 맞다고 고집을 부려서도 안 되고, 남 탓으로 일관해도 안 되고, 현실을 부정해도 안 되고, 감성에 판단이 흐려도 안 되고, 자포자기해도 안 됩니다. 특히 공짜로 받으려하면 큰 것을 잃을 수밖에 없으니 절대 공짜를 받지 마세요.
성공으로 가는 길, 바로 눈앞에 있지만 스스로 보지 못한 것이고 이제부터 제가 보고 알게 된 것을 알려드릴게요.
제가 집을 판 건 2010년이었습니다. 당시 수도권중심으로 부동산은 붕괴할 것이란 남 말을 맹목적으로 믿고 팔았던 거죠. 하지만 부동산은 지금까지 붕괴된 적이 없습니다. 최소한 현상 유지, 그 이상은 됐죠. 이때만 해도 저는 ‘전세나 영구임대주택에 살면서 주거비를 줄이고 돈을 더 열심히 벌고 모으면 된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 내 집 마련은 더더욱 어려워지더군요. 세금과 중개수수료, 가전제품과 가구, 새집이 아니면 도배와 장판도 해야하고 결정적으로 부족한 돈은 대출을 받고 꽤 많은 이자도 내야하고... 집 한 번 사려면 무슨 돈이 이렇게 많이 들어가는지 온 몸에 기운이 쭉 빠지더군요. 온전히 집값이 아니라 다른 지출비도 정말 많이 들어갑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전 재산을 털어넣어서라도 집을 다시 샀어야했습니다. 폭락할 지도 모르는 내 집을 사는 것보다 영구임대주택에서 주거비 적게 들이며 살고자 했죠. 하지만 아내는 생각이 달랐고 결국 영구임대주택 입주계획은 물거품이 돼버렸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정말 다행이죠. 주거안정이라는 미명아래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주거안정을 위해 쓰는 지출의 크기와 내 집 마련 후 가치상승으로 얻는 이익 중 무엇이 더 큰지를 몰랐으니까요. 만약, 임대주택에 살았다면 월 27만원의 세가 나가는 것보다 매년 수천 만 원씩 치솟는 집값을 모르며 살게 됐을 테고 지금까지도 내 집 마련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입니다. 적은 돈으로도 주거가 해결되면 주위의 내 집 마련이나 부동산은 보이지 않게 되고 단순비교로 ‘공공임대 월세 vs 전 재산과 대출이자’ 중 쉬운 길을 택해 타협을 하게 됩니다. 다행히 아내의 반대로 저는 2013년 내 집 마련에 도전합니다. 그것도 재건축 조합원 입주권을... 미분양 아파트 내집마련,후기 http://cafe.daum.net/mmnix/Eeuw/102
부평5구역이였던 래미안부평 아파트 입주권을 살 때, 뭐가 뭔지도 모르고 부동산중개소에 들어가 부동산과 경제 좀 아는 체하며, ‘부동산중개소에서 시키는 대로’ 입주권을 사게 됐습니다. 당시는 미분양이 한참인 시기라 대부분 프리미엄도 없었고 조합원들도 감정평가가 낮게나와 기존 주택시세보다 손실이 많았었기에 모두가 불평·불만이 가득할 때였습니다. 래미안부평도 풍림과래미안으로 두 건설사가 있었지만 풍림건설이 부도나며 풍림과 조합원, 래미안건설의 관계가 복잡하게 꼬여있었고 조합장도 구속된 전력이 있는 단지였습니다. 그런 최악의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거기서도 조망이 좋은 물건을 산다고 프리미엄 1900만원을 더 얹어줬습니다. 프리미엄은커녕 마이너스도 있었는데...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죠. 부동산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죄입니다. 및줄 쫙! 거기다 풍림이 지분권을 청구하고 있는 상황이라 조합원의 경우 추가분담금이 발생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주변 지인들은 ‘이시기에 누가 집을 사며, 거기다 프리미엄까지 주고 사냐’고 핀잔주기 바쁘더군요. 또 멸실된 입주권이기에 세금 또한 4.6%로 일반분양물건과 달리 감정가와 프리미엄을 합친 돈에 4.6% 취득세를 내야했습니다. 물론 부동산 무지자인 저는 그런 모든 사실을 몰랐죠ㅜㅜ 중개비 역시 감정가와 프리미엄을 합친 돈에 0.4%가 맞았지만 당시 100만원을 드렸으니 2배 이상 더 많이 들었습니다. 일반분양에서 46평은 미분양이 났고 전 34평이라 그런 건 나와 관계없다고 생각했지만 저 미분양이 지속되고 조합이 유지되는 동안 조합유지비를 조합원이 내고 미분양분에대한 부담이 추가분담금이 될 수도 있던 위치였습니다. 하지만 많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 때 집을 산 건 정말, 정말정말, 정말정말정말 잘 한일입니다. 조합원이 포기한 입주권을 재분양해 분양가 3억 9400만원에 완판하였고 저는 조합원분양가 3억 2000만원 + 프리미엄 1900만원 / 현시세 49000만원 2년 실거주를 충족한 덕분에 양도세면제(일반분양자는 양도세5년 면제)를 받고 진행비(세금, 수수료, 이자)를 빼고도 1억 4000만원의 양도차익이 생겼습니다. 이 집은 실거주목적으로 구입해 실제 거주한 집이니 투자도 아니었는데, 3년 동안 실수령 연봉 5000만원의 수익을 아파트 한 채가 벌어준 것이죠. 무식하고 무모하게 산 아파트지만 결과는 명명백백, 성공인 셈입니다. 부평래미안의 주위환경이 안 좋다고 하지만 앞으로 광역철도망(GTX B)가 진행됨에 따라 인근 재개발이 현실화될 때마다 아파트 가격은 상승할 것입니다. 물론 한계는 있겠지만 부평을 거주지로 지하철교통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가격에 래미안 브랜드의 새아파트 수요욕구는 충분히 있습니다. 그래서 전 같은 단지 내 미분양 46평으로 이사를 시도합니다. 34평에 살다 보니 넓은 집에 살고 싶은데 34평과 46평의 가격차이가 얼마나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지만 대형평형의 몰락을 뉴스와 기사를 많이 접해서인지 두려웠습니다. 넓은 집 살아보겠다고 죽도록 벌어모은 돈 몽땅 잃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부동산 전문가를 초빙해 의견을 듣기로 했죠. 서울로 버스 몰고 부동산투어를 왔던 대구운영자 나눔부자님, 꼭 나 필요할 때 찾는 게 전문가죠^^;;
대구에 사시는 나눔부자님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더 많이 계셨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장기부동산침체를 겪고 있었는데 대구에 사는 나눔부자님은 수도권과 서울에서 부동산투자를 하느라 살다시피 하셨습니다. 휴가철도 서울로 부동산여행을 한다며 올라와 계셨다고... 그 땐 이렇게 열심히 투자하고 계신지도 몰랐었고 그저 제 집살 때 조언이나 해주셨음 좋겠다고 전화 드렸는데 이런 저런 상황과 실거주목적이면 ‘사는 게 맞다’고 해주셨죠. 다만,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기존 34평을 매매하지 말고 전세를 준 후 그 돈에 조금 더 보태 46평형을 사라는 것이었습니다. 1가구 2주택을 선택하라는 의미였죠. 자칫 양도세면제도 못 받을 수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습니다. 부족한 돈은 어떻게 매우고 세금은 또 어쩌지... 머릿 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죠. (사실 알고 보면 별것도 아닌데, 저 때는 모르다보니 혼자 걱정인형이 됐죠.) 그래도 선택은 제 몫이니 조언을 따르기로 하고 계약을 했습니다. 큰 집 가는 기쁨보다 돈 걱정이 더 앞서는 상황이라 이사도 인부한몫을 제가 하겠다며 비용을 줄였습니다. 참 미련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한 상황이었네요. 악착같이 돈 모아 전세금과 잉여금, 벌어서 모은 돈으로 잔금을 치루고 46평 래미안아파트에 살 권리를 얻게 된 것이죠. 다시 한 번 정말 매우 잘 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2년 지난 지금 46평 아파트는 매입 금액보다 8000만원이 올랐습니다.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니 야외로 나가는 일이 줄고 집에서 여가를 즐기는 게 더 좋더군요. 이렇게 아파트 두채로 2억에 가까운 시세차익이 발생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부동산투자에는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이듬해 내 집 마련기념으로 가족여행을 간 제주에서 나눔부자님의 문자를 받게 됩니다. ‘이거 사요! 급한 거야~’ 잠시 아내와 이야기 후 귀신에 홀린 듯... 계약금으로 500만원을 입금합니다. 응암10구역 재개발물건을 나눔부자님 말만 듣고 투자한 거죠. ‘혹시 나한테 집을 팔아먹은 건가?’라는 의심은 서울에 도착해서 하게됐습니다^^;; 나눔부자님께 죄송! 하지만 저는 솔직히 나한테 집을 팔아먹으려는 부동산 업자들만 생각했었는데 뜻밖에 재개발아파트 투자라니... 제 인생에서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남 말 듣기’의 처음이 바로 나눔부자님의 응암10구역 재개발물건 매입입니다. 아무리 믿고 도움을 주신분이지만 돈 문제, 특히 뜬금없는 투자권유에 투자를 하다니... 사고나서 살짝 겁나고 두려웠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대박! 매입 이후 해당 물건이 한 달에 500만원, 1000만원씩 오르는 걸 눈으로 직접 보니 정신이 없더군요. 내 평생에 언제 내 몸으로 일하지 않고 돈을 벌었던 적이 있었던가요. 마침내 아버지의 삶과 다른, 내가 원했던 삶에 첫눈을 뜨게 됐습니다. 돈이 돈을 버는 것을 드디어 실제로 경험하게 된 것이죠. 분명 실거주가 아닌 투자 목적이었고 결돠는 1년 만에 100%가 넘는 투자수익을 얻게됐으니까요. 이 물건만으로도 대기업 부장이 1년 연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하는 만큼의 돈을 벌게 됐죠. 모은 것이 아니라 돈이 돈을 벌었음에도 말입니다. 이 후 송도 분양권을 대출규제로 겁먹은 사람들이 투매할 때 40층 이상을 250만원에 매입했고 제 평생 로망이었던 동해가 보이는 멋진 집도 구경하고 후분양, 1000만원 갭투자, 특별공급당첨과 법인 설립 후 매매한 첫 부동산을 1개월 만에 재매도해 1000만원의 수익도 내기도 합니다. 이 후 갭투자와 아파트분양권, 입지나 협상을 통한 초급매 매수등 약 30채의 아파트를 2년 만에 매입했고 지금은 10여 채를 되팔아 이익을 실현한 후 해당 금액으로 토지투자와 월세세팅이 가능한 투자에 진입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부동산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과거의 저처럼 부동산을 알지 못해 수없이 지나가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앞서 얘기했듯 부동산은 모르면 당하는, 참 냉혹한 분야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알면 알수록 적어도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는 의미죠. 우리가 평생 동안 중고등학교 내내 배운 함수나 미적분을 쓸 일이 있을까요?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동산은 다릅니다. 적어도 전세, 월세 계약서라도 쓸 일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짠돌이에서 투자자로 변신한 지난 3년을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글연제 미리보기 1편, 대한민국 짠돌이 이대표, 부동산 투자를 시작했다고? 갑자기 왜? http://naver.me/FkT7iSvK 2편, 이거 사요! 응암동 재개발 감정가 11800만원+프리미엄3400만원! http://naver.me/xu8gM3Gs 3편, 프리미엄 3000만원에서 300으로 폭락하는 분양권을 사라고? 미분양 천국 송도에... http://naver.me/xZtrxnmz 흔한 부동산투자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저 여러분과 같이 아끼고 아등바등 살아온 대한민국 대표 짠돌이, 대왕소금이 실제 경험을 통해 지금까지 보지못했던 돈과 부동산을 통해 돈이 돈을 버는 법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모두가 부동산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몰라서 당하는 억울한 일은 없어야겠지요. 저는 여러분에게 나눔부자가 제게 그랬듯 새로운 기회를 제시해드렸습니다. 제가 드린 이 기회를 잡는 것은 결국 여러분의 판단이죠. 부디 여러분들 모두가 더 나은 삶으로 향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길 바라봅니다. 이 후 계획... 제가 돈을 모은 방법은 일을 해서 번 동을 짠테크로 아끼고 모았습니다. 그래서 얼마전 방영을 마친 EBS 6개월에 1천만원모으기를 통해 멘토로 참여했고 돈 모으는 짠테크기술로 월 수익 150만원인 20대 여성이 6개월간 1000만원에 근접한 돈을 모을 수 있었고, 다른 한명은 내집마련을 성공했습니다.
우리 짠돌이회원분들께도 짠테크 멘토를 통해 돈을 모으는 법을 전해드리려합니다. 그래서 1단계로 "짠돌이 6개월에 1천만원 모으기"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그렇나 공짜가 아닙니다. 처음 생각할 때만해도 어떻게든 무료진행을 하려했지만, 어떤 멘토도 모실 수 없었네요. 그리고, 저역시 공짜로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제 지식과 경험. 시간도 소중하니까요. 2단계는 모은 돈을 굴릴 수 있는 재테크입니다. 재테크는 ETF와 부동산이고 분야는 내집마련.아파트.재개발.재건축.월세세팅.토지.절세입니다. 자신과 맞는 투자방법을 골라서 배울 수 있습니다. 3단계는 투자정보공유입니다. 짠돌이카페는 성격이 다른 별도의 투자정보망을 통해 정보공유를 하겠습니다.
이제 확실하게 커밍아웃을 하게 되었네요. 이제 되돌릴 수 없겠죠.^^ 전 솔작하게 돈 많이 벌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20년째 짠돌이 대왕소금의 부동산커밍아웃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책도 많이 사서 읽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