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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평생 화학 공부에 전념하고 기술 개발 연구만 해온 박선미 수석에게 갑작스러운 베트남 파견 제의가 들어왔다. 기술 연구를 주 업무로 하던 그에게 갑작스럽게 갤럭시 S6·갤럭시 S6 엣지를 생산하는 제조 담당을 맡으라는 것이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S6·갤럭시 S6 엣지에 쏟는 노력은 사원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이야기였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제조 분야를 담당해야 한다는 것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제조 분야로 해외 파견된 여성 주재원은 아직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간 고민하던 그는 결국 베트남행을 결심했다.
“그 때 제 마음은 1%의 도전, 그리고 99%의 걱정으로 가득 찼었어요. 그런데 그 1%의 마음이 나머지 99%의 두려움을 눌렀습니다.”
▲ 제조 분야 여성 첫 주재원 박선미 수석
그렇게 그는 삼성 베트남 생산법인으로 파견되었고 제조 분야 첫 여성 주재원이 되었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고 본인의 주 업무였던 기술을 제조에 접목시켜 눈부신 성과를 이룬 박선미 수석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Be willing to contribute. 기꺼이 뛰어들어서 일하는 사람. 저는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04년, 미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던 박선미 수석은 삼성으로부터 인터뷰 제의를 받았다. 당시 삼성전자는 전자공학, 기계공학 전공자가 대부분이었는데, 새로운 사업을 위해 화학 분야 전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박 수석은 이듬해인 2005년, 삼성전자의 메카트로닉스(생산기술연구소의 전신)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는 설비를 만드는 일을 담당했다. 하지만 전체 조직원 중 화학과 출신은 혼자였기에 업무를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다른 전공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잘 알지 못해 대화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잘 모른다고, 안 하겠다고 뒤로 빠지면 앞으로도 절대 내 것으로 만들 수 없을 것 같았어요. 나의 전공이 아니더라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움직이는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죠. Be willing to contribute. 기꺼이 뛰어들어서 일하는 태도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환한 미소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박선미 수석
갤럭시 S6·갤럭시 S6 엣지, 그녀의 손에서 자신의 색을 찾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박 수석은 인정받는 연구원으로 거듭났다. 그런 그가 갑작스레 베트남 생산법인으로 파견된 이유는 갤럭시 S6·갤럭시 S6 엣지에 적용되는 메탈 아노다이징(Anodizing) 기법 때문이다. ‘아노다이징’이란, 화학반응을 이용해 물질에 색을 입히는 것을 말한다. 이전에도 아노다이징은 카메라나 노트북, 플라스틱을 기반으로 한 제품에 널리 사용되었는데, 이번 갤럭시 S6·갤럭시 S6 엣지에 적용된 아노다이징은 이전과는 조금 다르다.
우선 플라스틱이나 작은 메탈 부품에나 가능했던 아노다이징 기법을 메탈 전체(갤럭시 S6·갤럭시 S6 엣지는 전체 소재가 메탈이다)에 적용했다. 더 나아가 협력사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삼성이 자체적으로 만든다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 이 제조 과정에서 ‘화학적 반응’이라는 아노다이징 기술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박 수석과 같은 화학 전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처음 베트남행을 결정하기까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결정을 망설였던 박 수석. 하지만 직접 개발한 기술이 제품으로 구현되는 것을 눈으로 목격했던 이전의 경험이 떠올라, 제조 분야에 대한 1%의 호기심이 생겼다.
▲ 동료와 함께 현장에서 업무 중인 박선미 수석. 아노다이징 기계를 체크하고 있다.
제조 분야에서의 여성 주재원 1호에 대한 책임감
처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막중한 책임감과 함께 부담감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박 수석은 본인이 잘 해내야 후배들도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하루하루 더 힘을 내 업무에 임하고 있다.
그는 “처음이라는 것에 대한 책임감 외에도 ‘내가 내린 결정’이라는 것에서 오는 책임감도 막중하다”고 말했다. “비록 1%의 도전 정신이 내린 결정이지만, 그것도 나 자신이 내린 결론”이라며 “나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현장 업무 중인 박선미 수석
제조를 이해하는 기술, 제조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기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하듯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작도 하기 전,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중간에 포기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박 수석은 용기 내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었고, 어려움을 묵묵히 견디고 본인의 전문분야와 접목해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앞으로도 박 수석은 끊임없는 도전을 해 나갈 예정이다. 그는 “제조를 이해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싶다”며 자신의 목표에 대해 이야기했다. 제조 업무를 하면서,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다음 과정인 제조 라인이 받아들이고 흡수할 수 없는 기술이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새롭게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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