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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거비 전 합니다. 이거야 원...말이 판화지 그림으로 양산하는 게 낫겠다...색깔이라도 들어가면 또 손이가고 다색 판화면 또또또또또 손과 발이 가고...그냥 시간여행을 해서 한漢나라로 갈 때 복사기 한 대만 갖고 가도 떼돈을 벌고...돌아와서 떵떵거리고 자랑하고...
우서비 통판 합니다. 그런데 왜 한漢나라야? 거긴 중국이고...비자도 필요하고...거기서 돈을 벌었다...갖고 올 수 있다고 치자고...태환兌換도 안 될거고...근데 왜 한나라 이야기가 나왔지? 뭐 잠재의식이라는 바위 속에 갇혀 있다가 화과산 손오공이처럼 통 튀어나왔어?
매깨비 화 합니다. 그걸 원형原型-Archetype이라고 그래...신화시대-하-은-주까지 동이라 나중에 부르는 우리 조상이 한나라에서도 주인의식으로 살다가 당-송-명을 그 흐름으로 당연시했으니 그 피가 정신이 흐름이 어디 갔겠어? 어때...중국이라는 게 다시 보이지 않아?
이하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 발췌
수천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가는 은 주 시대에는 점술의 기록으로서의 그림문자나 상형문자가 소뼈나 거북껍질에 새겨졌다. 이는 갑골문자甲骨文字로서 말, 사슴, 호랑이 같은 동물들의 모습을 본뜬 것이다. 같은 시기에 제작된 제사용 청동기의 표면을 장식하는 크고 작은 동물과 상상의 생물, 기하학적인 문양도 흙으로 만든 거푸집에 새겨 넣었던 디자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국시대 이후에는 인장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문자는 원래 인물이나 동물을 돌에 새긴, 중국에서 말하는 초형인肖形印이었다. 그리고 도장으로 짝어 만든 부적도 제작되기 시작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7.
北京週報
中国の甲骨文字が「世界の記憶」に登録--pekinshuho
篆刻小站
什么是肖形印,肖形印题材,肖形印篆刻领域出色人物– 篆刻小站
비석의 탁본이나 법첩에 수록된 탁본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크고 작은 석각문자도 중국에서 유래한 ‘새기는’ 조형의 하나이다. 오랜 된 것으로는 긴나라의 석고문石鼓文, 낭사대(瑯邪臺-낭야???)각석, 개통포(開通褒)사도(斜道)각석(刻石) 등을 시초로 하며, 한 시대부터 송 시대에 이르기까지 서예사를 장식한 뛰어난 작품들은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겅도이다. 이러한 비석의 탁본 가운에는 문자 인쇄를 앞선 것도 있다. 고대 비석의 보고인 서안비림을 방문하며 공자묘에는 지금도 돌을 두드려?? 탁본을 뜨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7.
티스토리
임서 석고문(石鼓文 임서 : 오창석)
玲児の蔵書
琅邪台刻石 : 玲児の蔵書
한 시대에 많이 제작된 화상석은 묘실 장식으로서 중국 각지에 분포되어 현존하고 있는데 부조나 선각 위주로 표현되어 있어 회화성을 띠며, 탁본을 하면 판화와 가장 흡사한 표현효과가 나타난다. 산동성에 있는 후한 시대의 무씨사(武氏祠) 화상석은 탁본으로 유표되어 널리 알려져 있다. 그것은 전국 시대의 자객인 형가가 훗날 진나라의 시황제가 된 정(政)의 암살미수사건을 비롯하여 고사, 역사, 전설 등을 소재로 한 생생한 표현이 매우 인상적이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7.
孔孟之乡
孔孟之乡济宁嘉祥武氏祠汉画孝文化研究_孔孟之乡
이 무렵 사천성에서는 도상을 틀에 새겨서 진흙으로 찍어 만든 화상전이 묘실 장식으로 등장했다. 여기에는 곡식의 수확과 소금 만드는 광경 등이 그려져 있어 당시의 생활풍속을 알 수 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8.
육조 시대의 화상전에서도 형을 새겨 찍는 형압(形押)의 선각을 살린 정교한 표현을 볼 수 있다. 동진 시대의 죽림칠현도는 생동감 넘치는 인물을 그린 밑그림에 기초하여 벽돌을 여러개 합쳐 연결시킨 대형의 화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제작될 무렵 동시대 화단에서는 고개지 같은 거장이 배출되었는데, 종이와 비단에 그려진 이 시대의 회화가 전해지지 않은 오늘날 이 작품은 회화 사료로서도 귀중하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8.
形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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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刀銘尽大全/古刀銘盡大全・8冊/仰木伊織/初心目利手引焼刃部類分・鍛冶系図・番鍛冶・刀剣見様之事・焼刃忠
한편 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형지염(型紙染) 등의 형염은 단폭 판화와 같고, 정창원(正倉院)의 보물인 협힐(夾纈, 무늬를 새긴 판 사이에 비단을 끼워 여러 가지 색으로 염색해 내는 방법) 판에 조각된 디자인은 그 기원인 당나라의 ‘새기는 문화’의 향기를 전한다. 또한 민간 공예로서 오늘날에도 성행하는 전지는 그 발생을 6세기 이전으로 올라가는 절지세공의 전통에 두고 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8.
熊谷経済新聞
熊谷市指定有形民俗文化財「熊谷型紙岸家関連資料」熊谷染の型紙 ...
이와 같이 중국에서는 수시대 이전에 이미 판화와 원리가 유사한 탁본의 기법이 성숙해 있었으므로 다른 지역보다 앞서서 그 때까지의 ‘새기는 문화’를 집약 대표하는 목판화(木刻畵라고도 함)의 탄생과 발견을 촉진시킬만한 기술적, 문화적 기초를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고 하겠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8.
고려대학교 중국학연구소
[PDF]
≪水滸傳≫ 揷畵의 유형과 계보 연구
판목 한 장마다 글자를 새겨 조판하는 것은 회화에 필적하는 또 하나의 중국예술인 서예의 전통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요컨대 인쇄된 판목의 문자는 처음에는 붓글씨에서 그 이상적인 글씨체를 구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8.
남송 초기에 간행된 남사(南史)(남조 의 송(宋)제(齊)양(梁)진(陳) 네 왕조의 통사)의 글자체는 당시대 초기의 대가인 구양순의 서체에 가까운 판본체가 완성된 것이라 하고, 원시대 건안간본의 글자체는 조맹부체로 알려져 있는 것과 같이, 위대한 서예가의 서체에서 힌트를 얻어 이를 발전시키고 세련되게 만든 ‘새기는 글자’는 활자 인쇄에서는 볼 수 없는 조형적인 맛을 지니고 있다. 조판에 의한 목판, 즉 문자 인쇄 그 자체에 서예의 역사와 무관할 수 없는 조형활동의 측면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각공들이 정교하게 새긴 글자의 기술이 선묘를 생명으로 하는 중국판화의 회화적 표현에 응용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9.
결국 목판화는 그 생산지의 변천과 증가가 계속되면서 종교와 문학, 회화의 발전과 지역성, 생활풍속 등과 각각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중국미술사에 중요한 궤적을 남기게 된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9.
중국 목판화는 언제 만들어지기 시작했을까. 지금까지도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현존하는 작품의 완성도로 볼 때대략 수시대(581-617)에서 당시대(618-960) 초경으로 생각되고 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0.
여명기이 중국판화는 교화와 선교의 수단으로 이용되어 불교의 발전과 적지않은 관계를 갖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0.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것은 한시대이며, 수시대로부터 당 현종의 치세(712-755)인 8세기 중반까지는 독자적으로 불교가 발전해가는 시기에 해당된다. 바로 중국불교의 독립시대에 목판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0.
(당시대에는) 불교회화의 제작도 성행하여, 현장이 불경의 한문 번역에 힘쓰고 있던 자은사를 비롯한 장안이나 낙양의 많은 사원에서는 왕유(王維), 양정광(楊庭光), 오도자(吳道子), 윤림(尹琳) 등 초당에서 상당 무렵까지 활약했던 많은 일류 화가들이 불상과 변상도 등을 제재로 벽화제작에 솜씨를 발휘하고 있었다. 비록 일류화가 자신이 직접 불교판화의 밑그림를 그리지는 않았을지라도 그의 영향 아래 밑그림이 그려졌을 가능성은 생각해볼 수 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1.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불교 경전의 면지화面紙畵 판화版畵와 사원에 증정할 목적을 띤 불교판화가 만들어졌다. 결국 목판화 제작을 위한 기술적 발전의 뒷받침과 밑그림 작가나 그것을 겸한 각공의 조형의욕, 그리고 불교의 발전이라는 종교적동기, 이 세가지가 결실을 맺어 당시대 후반에는 본격적인 중국 목판화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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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급돈황고화(國寶級敦煌古畵) 돈황관음유화(敦煌觀音遺畵精選 ...
초창기의 작품으로 현존하는 것에는 사천성 성도에서 8세기 중순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다라니 경주도(經咒圖)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 성도에서는 그 당시 이미 일력서와 불교 관계서 등이 만들어지고 있었으며 후에 그 목판 인쇄는 촉판으로 불리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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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Tibetan Buddhist mantra for protecting Buddhist sutras to ...
성도 뿐 아니라 장안에서도 판화가 제작되었으나, 현종과 희종이 정변을 당해 사천, 즉 촉나라로 도망간 그 때에 장안의 최신문화를 그곳에 널리 퍼뜨린 점, 이후 회창 5년(845), 무종의 강력한 폐불로 인해 장안의 불교가 큰 타격을 입은 점 등은 수도 장안과 그 주변이 아닌 사천이나 감숙성(특히 돈황), 그리고 실크로드가 뚫린 오늘날의 신강 위구르 자치구 부근에 판화 및 판화와 비슷한 유형의 귀중한 작품이 지금까지 남아있게 된 이유를 말해준다. 실제로 당시대의 판화유품은 대부분 돈황의 막고굴에서 발견되었다. 도2.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2.
그 중에서도 제작 시기가 분명한 가장 오래된 판화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은 함통(咸通) 9년(868)의 금강바라밀경 金剛般若波羅密經 面紙畵-도3 -이다. 석가가 기원정사에서 수제자인 수보리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화면 왼쪽 상단에는 기수급고독원, 그 하단에는 장로 수보리라고 목각되어 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2.
부산문화관광 - 부산광역시
부산시 문화관광 > 역사 > 문화재 현황 > 부산시지정문화재 > 무형 ...
만당부터 오대에 걸쳐서는 돈황에서 발견된 일련의 불교판화나 역서와 같은 간단한 삽화판화가 전해오고 있으며, 불교판화는 모두 소망을 이루기 위해 막고굴 천불동 사원에 기부된 것들이다. 이것들은 일찍이 스타인과 펠리오가 각각 중국과 맺은 인연으로 인해 현재는 대부분 대영박물관과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3.
그 중에서도 특히 대진(大晋) 개운(開運) 4년(947)의 대성비사문천왕상도 도4.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은 그 의의가 크다. 전자는 조원충(曹元忠)간(刊) 뇌연미각(雷延美刻)이라는 목각이 있어 간행자겸 기부자의 이름과 각공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현존 작품의 예가 된다. 후자는 좌상인 본존을 중앙에 두고 약동감 넘치는 명왕상 이외에도 수십구가 넘는 여러 부처와 존자들을 치밀하게 나타내고 이으며, 가장자리에 제자(弟子)도조(道照)각인(刻印)시(施)라고 새겨 있는 정교한 판화로서 송대로 이어지는 수준높은 기교를 보이고 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3.
才府
刻工雷延美-才府
송시대(960-1279) 초기에도 여전히 목판화 존재의 첫 번째 이유는 불교와 관련되어 있었다. 왕조 300년의 기반을 구축한 2대황제 태종(재위 976-997)은 불교경전을 통합 정리한 한역 대장경의 간행이라는 일대 사업을 완수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3.
출판사업...예술관계 서적으로는 궁정에서 소장해온 유명 서예가의 필적을 모든 순화(醇化)각첩(刻帖)이 순화3년(902)에 출판되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3.
维基百科
淳化閣帖- 维基百科,自由的百科全书
서예에 능한 왕저(王著)의 모사본을 밑글씨로 한 목판은 명필을 정교하게 복제한 것으로, 송시대에는 물론 원시대의 조맹부를 비롯한 많은 서예가들이 이를 귀중히 여겼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4.
이하 요약
북송시대 초기작이자 중국불교판화사상 첫 번째 명품... 태종 도화원에서 만들어낸 판화의 귀중한 유작..현재 교토京都 세이료지(청량사(淸凉寺))에 소장되어 있는 미륵보살상彌勒菩薩像 도7.... 이 작품은 날 도다이지의 학승인 조넹()이 송나라에 갔다가 일본으로 가져간 것으로 옹희 원년(984)간행...고문진(高文進)이 밑그림, 월주의 승려인 지례(知禮)가 치밀하고 섬세하게 판각.. 석가여래상 태내납입물-복장...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7.
같은 석가여래상 복장... 별도 4점 있는데 밑그림화가, 각공, 제작연대가 알려지지 않았다. 그중 3점인 문수보살기사상, 보현보살기상상-도8, 영산변상도 도9, 는 미륵보살상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선묘의 정밀한 판각... 나머지 1점은 985년 간행된 금강반야바라밀경 면지화-도10이다. 기본적인 구도는 돈황에서 발견된 868년 본과 유사하며앞의 3점과는 다른 고졸하고 질박한 각품을 보인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9.
순화원년(990)무렵에 간행된, 송 태종 어제비장전御製秘藏詮 20권의 삽화-도11은 당시까지의 불교판화의 범위를 크게 뛰어넘는 산수화의 요소를 충분히 반영한 새로운 발상으로 작품에 등장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20.
...중국판화사상 현존하는 최초의 본격적인 산수판화 내지는 인물산수판화로 볼 수 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21.
中國文化研究院
御制秘藏詮山水圖》(局部)
원의 지원(至元) 6년(1340)에 간행되었고, 무민(無悶)화상이 주석을 단 금강반야바라밀경(대만) 중 영지도-도18에는 같은 시대의 회화작품인 선종 조사상, 혹은 선기도(禪機圖)와 공통되는 수하인물의 구도로 이루어진 삽화판화가 첨가되어 있다. 이는 다색쇄의 발생상황을 살필 수 있어 판화사상 특히 주목된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27.
百科知識中文網
禪機圖斷簡寒山拾得圖》:以寒山和拾得為主題的圖畫有許多版本,而最負 ...
다색쇄와는 달리 수묵화와 같은 표현효과를 내는 판화가 선종의 세계에서 탄생한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남송 초기의 곽암(廓庵)사원(師遠)선사가 선을 수행하는 단계를 목우에 비유하며 설법한 판화로 표현한 시우도(십우도(十牛圖)이다. 다만 송 원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원본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며, 중국판을 기초로 한 소위 오산판(五山版)의 시우도가 가마쿠라 시대 말경부터 일본에서 제작되어 현존하고 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29.
명시대(1368-1644) 이후에도 전대의 전통을 유지한 불교판화의 제작이 계속되었으며 특히 명시대 전반에 제작된 우수한 작품들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명시대 초기 불교판화의 수준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으로 觀世音菩薩普門品經(1395간행)을 들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수도인 응천부(應天府) 즉 금릉(남경)의 사복지(沙福智)가 간행했고 밑그림작가는 알 수 없으나 진성(陳聲)이라는 각공이 조판한 41개의 삽화(각 27.5x18.8cm)를 수록하고 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30.
Time waits for no one - 痞客邦
觀世音菩薩普門品全文注音(普門品注音)_附儀軌@ Time waits for no ...
명시대 후반이 되면 삽화의 용도가 확대됨에 따라 생산되는 판화의 종류와 양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그 총량에 대한 불교판화의 비율은 작아진다. 그 가운데는 다양한 모습의 관보살을 그린 자용오십삼현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마치다 시립국제판화미술관-도21과 같이 미소 띤 얼굴 표현 등에서 명말 인물화 및 세속적인 판화와 공통된 감각을 보이는 작품이 있고, 선종 관계의 불조상이 많이 묘사되었으며, 통속화한 전기류의 판화도 많이 나타나는데 전통적인 불교판화와는 이질적이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32.
청시대(1644-1911)가 되면 용장(龍藏)(1735년 간행)의 면지화-도22나 석가여래 응화사적-가경(嘉慶)기 간행과 같이 원 명 양식에 따라 제작된 판화가 등장하고, 그 밖에도 청말에는 좀더 친근감이 있는 모습의 관음상이나 티벳 라마교가 만들어낸 서위 서장판화-도23과 같이 모필로 그린 불화를 베낀 치밀한 작품으로 나타난다.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32.
청시대의 판화제작은 그 종류와 기법에 있어서 명시대까지의 다양한 성과를 그대로 답습하거나 더욱 발전시키는 한편, 서양화법을 이용하거나 동판화를 도입하는 등 지금까지의 중국판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전개를 펼친다. 그리고 정교하고 치밀한 궁정의 판각본에서 소박한 민중판화에 이르기까지 한층 폭넓은 작품을 선보인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37.
강희 18년(1679)에 처음 간행된 「초집」을 비롯한 「개자원화원」 시리즈는 화보 역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화보로서 청시대를 통틀어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3집까지는 모두 다섯가지 색을 사용한 다색중쇄의 정밀한 판각으로, 회화교본이면서 동시에 복제화집으로서의 역할에 걸맞는 내용과 솜씨를 보여준다. 개자원화전4집으로 칭해지는 인물화보는 18세기에 등장한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38.
한편 소운종의 「태평산수도」나 각 지역의 지세를 기록한 지리지의 삽화를 시초로 청시대에는 산수판화가 성황을 이룬다. 실경에 바탕을 둔 명승지를 그린 산수판화가 등장하는 것도 새로운 경향이다. 먼저 청시대 초기에는 안휘파를 대표하는 산수화가 홍인(弘仁), 정중(鄭重), 매청(梅淸)등의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38.
이름이 게재된 도판을 포함하고 있는 「황산지(黃山志)」(강희 6년 간행/1667), 안휘파 회화의 특색을 잘 살린 「황산지도」(강희 15년 간행 1676-도130, 「황산지정본」(강희 23년 간행/1684), 그리고 오용(吳鎔)이 역대 산수화풍을 바탕으로 다양한 화풍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유공신(劉功臣)이 그 필의를 살려 조판한 뛰어난 작품 「백악응연(白岳凝烟)」(강희 53년간행/1714-도132 등이 만들어진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39.
书格
黄山志定本– 书格(旧版)
어제판각본, 즉 전판(殿版)으로 일컬어지는 내부인본(內府印本)은 청조의 국력이 가장 충실하고 안정되었던 강희기부터 건륭기에 걸쳐 성황을 이룬다. 강희제 탄생 60세 축하 「육순(六旬)만수(萬壽)성전(盛典)도(圖)」(강희 52년 간행/1713)와 이를 모방하여 건륭제 80세 탄생일을 기념하여 발행한 「八旬萬壽成典圖」(강희60년간행/1795)-도134는 성대한 축전과 번화한 시가지의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한 대작들이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41.
四库全书- 国学大师
八旬萬壽盛典卷一百十九_八旬萬壽盛典卷一百十九《八旬萬壽盛典》图文 ...
또 하나의 대표적인 전판으로는 동판화 등을 통하여 배웠음직한 서양화의 원근법을 이용하여 그린 초병정(焦秉貞)의 「耕織圖」(강희 35년간행/1966)-도135가 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41.
月雅书画中国
耕织图32 焦秉贞清代- 月雅书画中国|传承书画经典,服务当代艺坛
청시대 판화를 특징짓는 또 하나의 커다란 요소는 소위 연화라고 부르는 민간판화의 유행이다. 연화는 근년에 갑자기 주목받기 시작하여 각국에서이에 대한 연구와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판화는 명말 청초에 새로운 조형수단으로 부각되면서 커다란 흐름을 형성했고 유명화가의 밑그림 디자인과 다색중쇄의 분판 기법의 발달을 바탕으로 예술적 자립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예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민중판화인 연화는 이러한 흐름과는 별도로 여전히 실용적인 목적에 의해 제작되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41.
연화=년화年華는 대개 신년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길상문양의 판화를 지칭하지만 그 정의가 반드시 정확한 것은 아니며 넓은 의미에서 연화는 신년에 방의 안팍을 장식하는 판화와 회화를 포함한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고쟈 하는 연화는 판화이다. 연화의형태는 삽화판화와는 달리 통상 한 장짜리이지만, 단독적인 것 이외에도 대칭을 이루는 것, 산수화의 전 중 후경이 독립된 구도를 가지고 각각 크기가 같은 세장의 종이에 인쇄되어 이들을 세로로 이으면 훨씬 큰 구도의 화면을 이루는 조판화의 형태 등도 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42.
길림신문
음력설의 진미 ---년화 > 문화유물 | 길림신문-백과정보
그 제재는 무사상인 문신을 비롯하여 남녀 신선, 역사적인 고사, 통속문학이나 희곡의 상연무대, 동자, 미인, 새와 짐승, 화훼, 도안화된 길상문자, 사계절의 풍속이나 풍물 산수 명소 도시풍경 또는 이들을 조합한 복합적인 화제 등 매우 폭넓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42.
연화의 기원은 한漢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분묘를 장식하는 무사 문신의 벽화나 화상석畵像石, 그리고 위진기의 화상전에 나타나는 문신의 모습들은 마귀와 재앙을 쫓는 辟邪목적을 지닌 도상들이다. 북송시대에는 음력 12월이 되면, 수도인 개봉에서 문신이나 종규 등을 새긴 판화를 신년을 맞이하는 의미에서 대대적으로 판매했고, 궁중에서는 화원화가들이 황제의 명령르로 연화에 해당하는 회화를 제작했던 것 같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42.
齐鲁汉画像石拓片网
汉画中神兽之谜-齐鲁汉画像石拓片网
연화라는 단어는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문헌에 등장한다.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43.
판화로 만든 연화중 가장 오래된 작품은 금 왕조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시대의 작품으로는 앞에서 소개했던 통칭 사미인도, 관우상을 그린 「의용(義勇)무안(武安)왕위(王位)」, 1973년에 서안비림을 수리복원하던 둥 발견한 장수를 축원하는 화제로 유명한 「동방삭(東方朔)도도(盜桃)」 판화 등이 있다. 원시대에도 연화로 추정되는 판화가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이며, 명시대에는 각지에서 생산이 성행했고, 청시대의 황금기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꾸진히 출판되고 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43.
연화의 생산지로 가장 유명한 곳은 소주(蘇州)의 도화오(桃花塢)와 천진 근교의 양류청(楊柳靑)인데 산동성의 유방(濰坊), 양가부(揚家埠), 하북성의 무강(武强), 섬서성의 봉상(鳳翔), 사천성의 면죽(綿竹) 등도 명성이 높다. 물론 생산지는 이들 이외에도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43.
민중판화 중에서 현재 남아있는 작품으로 오래된 예는 18세기 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받는 것이 고소판(姑蘇版)(고소는 소주의 옛이름)이라고 불리우는 소주판화이다. 민중판화로서의 전통에 명말 청초까지의 삽화판화의 성과와 새로운 외래요소를 첨가한 신선함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지역과 다른 시대의 연화와는 양상을 달리하는 회화적인 작품이 미인판화도 138, 139와 풍경판화에 많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43.
요약
당 송시대의 판화는 불교경전의 도상이나 도해, 여러 분야의 실용도서의 설명도판을 위주로 발전했다. 특히 어제 불교판화를 비롯한 송시대의 판화는 기술적으로 매우 높은 완성도를 보이며, 삽화의 형식과 삽도본의 종류에서도 후대의 문학책이나 화보의 조형을 거의 빠짐없이 포함하고 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67.
즉 송시대는 중국판화의 고전이 탄생된 시기라고 정의할 수있다. 이어지는 원시대에는 앞 시대까지의 전통을 계승하는 다양한 판화 이외에도 정밀한 판각의 통속문학책의 삽화판화가 등장하고, 소설과 희곡이라는 대중문학과 삽화판화의 밀접한 관계가 싹트기 시작한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67.
명시대에 이르러 판화는 통속문학의 삽화 형식이라는 조형표현의 새로운 수단으로서 다양한 전개를 시작한다. 텍스트의 내용을 그림으로 풀이하는 소박한 단계의 판화에 있어서도 지역적 특징을 지닌 묘사법에서 삽화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주며, 판화제작이 질과 양, 모든 면에서 전성기를 맞이하는 명말에는 전문적인 판화 밑그림 작가의 등장과 우수한 각공의 활약으로 공예적인 세련미가 극에 달한 삽화판화가 잇달아 대량으로 출판된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67.
이리하여 명말 청초가 되면 영향력있는 화가들이 개성적인 스타일로 조형의욕을 전면에 내세우며 회화 작품에 비견될만한 예술성높은 삽화판화를 통속문학에 국한하지 않고 제재를 넓혀 창작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회화와 판화의 접근교류는 일찍이 없었던 수준으로 진행된다. 또한 이 단계에서 판화는 텍스트의 첨부물인 삽화라는 부차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립한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67.
독자나 감상자의 관심도, 밑그림 작가가 텍스트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시각화시킬 것인가의 문제로 옮겨진다. 이러한 판화 예술의 전개과정에서, 인기 화가의 구도가 복제되는 회화예술의 대중화로서의 판화와 그 자체의 높은 예술성을 추구하는 독립된 장르로서의 판화라는 얼핏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의 현상이 함께 일어난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67.
중국판화의, 회화사에 있어서의 양면가치
->성은 명말 청초에 가장 잘 발휘되고 있다. 요컨대, 경제적 발전에 힘입어 시민 계급이 성장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명시대 문화의 서민성이 출현한다. 명시대 회화는 한편으로는 대중성을,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성을 추구하는 소위 위 아래의 움직임을 동시에 보이고 판화에서 그 접점을 찾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명화가를 포함한 뛰어나 밑그림 작가와 탁월한 기술을 자랑하는 각공의 존재가 전데되어야 한다. 이것을 요약하며, 진흥수의 통속문학책의 삽화나 십죽재서화보와 같은 다색중쇄판화를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으며, 예술과 기술의 조화의 달성으로 중국판화는 명말 청초, 즉 17세기에 정점에 이르게 된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68.
청시대의 판화는 궁정 관각본의 성행으로부터 농촌의 민중판화의 유행에 이르기까지 수요층의 폭이 한층 넓어졌으나 명말 청조의 성과를 그대로 계승하여 발전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엄격한 출판 통제에 의해 이미 통속문학의 삽화판화에 진전의 여지는 없어졌고 개자원화전 2, 3집 이후로, 섬세하고 뛰어난 분판분색의 다색중쇄로 찍은 화보는 나오지 않았다. 채색을 특집으로 하는 연화는 품이 많이 드는 정교한 다색중쇄를 사용한 것이 없고 조잡한 색의 인쇄와 손으로 칠하는 채색에 의지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68.
또한 소운중이 과감하게 모필로 자신이 직접 그린 산수화의 복원을 시도했던 태평산수도는 한편으로는 실경적인 명소를 그린 그림의 전개와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새로운 산수판화의 계속되는 발전의 출발점이 되지는 못했다. 즉 어제를 비롯한 청시대 산수화, 혹은 풍경판화가 양식적으로 서양화법에 의한 사실 표현의 경향을 띠었던 반면에 문인화의 전통을 지닌 고전적인 산수화풍은 청시대 후기의 산수화보에 겨우 나타나는 정도이다. 그중 인물화 전문가들은 목판화의 가는 선이 백묘 인물화의 전통을 살리는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인식했고, 명말 이후 청말에 이르기까지 인물판화의 한 계보를 형성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68.
이렇게 하여, 어떤 밑그림 작가, 각공, 편찬자, 간행자가 어떤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독자와 감상자를 위해 어떻게 판화를 제작했는지, 그것들이 판화의 형태 질 양 내용을 어떤 방법으로 바꾸고 규정했는지 등을 차례로 살펴보면서 당시대의 불상 이후 청시대까지 끝없는 창작활동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판화가 만들어졌고 마지막에는 현실적인 인간미로 충만한 인물표현을 만들어냈다는 것에서 끝을 맺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중국의 전통판화, 김명선 옮김, (시공사: 2002)p.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