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유혹으로부터의 자유함 말씀 : 삿16:15-22
15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뇨 당신이 이 세 번 나를 희롱하고 당신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16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17 삼손이 진정을 토하여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우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18 들릴라가 삼손의 진정을 다 토함을 보고 보내어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을 불러 가로되 삼손이 내게 진정을 토하였으니 이제 한번만 올라오라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19 들릴라가 삼손으로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 힘이 없어졌더라 20 들릴라가 가로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21 블레셋 사람이 그를 잡아 그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로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22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서론>
16세기에 케리라는 대부호가 영국에 살고 있었는데,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큰 아들은 조지라는 아들이었고, 둘째 아들은 윌리엄이라는 아들이었습니다. 둘 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할 만큼 머리가 뛰어난 수재들이었으며, 큰 아들 조지 케리는 국회의원이 되어, 남부럽지 않는 권력을 누렸고, 돈도 벌만큼 많이 벌어 엄청난 부자가 된 반면, 동생 윌리엄 케리는 형과 달리, 인도 선교사로 자원하여 인도에 가서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인도어로 성경을 번역하며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인생의 명암은 조지 케리나 윌리엄 케리, 두 명 다 세상을 떠난 후 갈리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 다 대영백과사전에 기록이 되었는데,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전 생애를 인도 선교에 헌신했던 윌리엄 케리에 대한 이야기는, 대영백과사전에 무려 한 페이지 반이나 기록된 반면, 번 돈을 가지고 파티나 열고 사치나 하며 허튼 곳에 사용했던 조지 케리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줄 “윌리엄 케리의 형” 이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마치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삼손은 하나님의 주신 축복을 엉뚱한 일에 소모한 조지 케리와 닮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복을 윌리엄 케리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셔야 합니다. 우리는 창세기의 위대한 인물인 요셉을 기억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도망침으로 인해 요셉은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죄는 범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를 감옥에서 꺼내 주시고 애굽의 총리대신의 자리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삼손처럼 죄의 사슬에 억눌려 있다면 지금 즉시, 사슬을 벗어치우고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죄의 유혹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으시어 담대하게 승리의 고지를 향해서 달음질 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으시고, 영적으로 재무장하셔서 한주간도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모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론>
=====16:15 당신이 어찌 나를사랑한다 하느뇨 - 삼손에게 세 번씩이나 속은 들릴라는 이제 최후로 사랑을 빙자한 간책(奸策)을 동원한다. 딤나 여인의 간청에 있어서도, 삼손은 본절의 경우와 똑같이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수수께끼의 비밀을 털어놓고 말았다(14:16). 눈물과 사랑에 호소하는 들릴라의 집요한 유혹으로 말미암아 이제 삼손은 깊은 고뇌에 빠진다(16절). 아무튼 이상으로도 우리는 삼손이 얼마나 들릴라에게 깊이 빠져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그가 첫번째 아내를 떠난 후 아직 혼자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15;1-8).
=====16:16 낱마다 그 말로...마음이 번뇌하여 - 삼손이 이처럼 번뇌한 것으로 보아 그에게는 그래도 아직 하나님께로부터 구별받은 나실인이라는 자각이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그 나름대로 하나님의 계명과 인간적 욕망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을 떠난 자는 양심의 힘으로도 악의 손길을 쉽게 뿌리칠수 없는 법이다(고전 8:7,12 ). 그러므로 결국 삼손도 들릴라에게 자신의 힘의 근원을 털어놓고 만다(17절).
=====16:17 삼손이 진정을 토하여 - 결국 삼손은 나실인으로서 하나님의 계명을 끝까지 고수하기를 포기하고 인간적인 욕정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즉 삼손은 사자를 찢어 죽일 만큼 강하였으나(14:6) 사랑의 유혹에는 약했고 일천명의 블레셋인들을 나귀턱 뼈로 쳐죽일 수 있었으나(15:15) 사랑의 올무에서는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과 육의 싸움에서 삼손은 육에게 지고 만 셈이다(롬 8 :3-11).
=====16:18 이 제 한번만 올라오라 - 이것으로 볼 때 들릴라는 블레셋 방백들에게 거의 신임을 잃고 있었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블레셋 인들도 더 이상 삼손의 비밀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거의 포기 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이번 게임이 삼손에게는 마지막 승부에서 돈에 대해 강한 욕망을 가진 들릴라가 삼손을 이긴 것이다. 결국 삼손은 육욕에 눈이 어두워 신앙을 저버린 것이다.
=====16:19 괴롭게 하여본즉 그 힘이 없어졌더라 - 지금까지 들릴라는 삼손이 가르쳐 준 대로 그의 힘이 사라지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면서도 스스로는 한번도 정말 그의 힘이 없어졌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그런데 본절에서는 또 한번의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자신이 직접 삼손을 시험하여 그의 힘이 없어졌는가를 확인하는 신중성을 나타냈다. 한편 삼손의 힘은 외적인 머리카락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나실인으로서의 성별(聖別)의 상징이며 증거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그이 힘이 사라진 때는 그의 머리카락이 잘리운 때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들릴라에게 진정을 토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거부한 때에 사라졌다고 할 것이다(Lange, Matthew, Henry).
=====16:20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 구약 성경에서 이보다 슬픈 장면을 묘사한 구절은 없다. 민 14:40-45에는 이와 유사하게 모세가 자기 민족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42절)고 한 장면이 나온다. 아무튼 나실인의 상징인 머리털을 깎이운 삼손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였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권능도 더 이상 그에게 머물지 않고 떠나 버렸다. 그러나 그런 사실도 모르고 위기에 처한 삼손은 예전의 힘을 과시해 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무기력해진 자신과 사랑했던 여인으로 부터 철저히 배신당하고 이방 대적들의 능욕거리로 전락한 스스로를 발견하고 절망과 회한 가운데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를 절망케 만든 것은 하나님의 손길이 떠났다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본 장면을 통해 다음 몇가지 사실을 생각해볼 수 있다. (1) 성도들이 타락의 길로 들어서면 불신자들보다 더욱 비참한 형벌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방 나라 백성들보다 더 높은 도덕 수준의 행실이 요구되었는데 특권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의무가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2) 모든 사람은 죄 가운데 나서 자라고 죽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버리심을 받아 마땅한 존재'들이다(시 51:5 롬 3:23). 그러나 죄인들을 대신하여 버림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은 거룩한 나라의 시민들로 인정받게 되었다(마 27:46 ; 빌 3:20). (3) '구원받은' 성도들은 더 이상 '개가 토했던 것을 다시먹는' 식으로 구습(舊習)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할 것이다(잠 26:11 빌 3:13).
=====16:21 그 눈을빼고 -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승리자가 패한 자에게 이같이 잔인한 형벌을 내리는 것이 관례였다(민 16:14 ; 왕하 25:7).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Zedekiah)도 느부갓네살에게 잡혔을 때 두 눈을 뽑히우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일이 있다(왕하 25:7). 한편으로 삼손이 당한 이런 형벌은 그가 눈으로 여인을 '봄므로' 죄악에 빠진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14:1; 16:1). 이와 관련하여 예수님께서는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하거든 빼어 내버리라"(마 5:29)고 하셨다. 그리고 바울은 "땅에 있는 지체롤 죽이라"(골 3:5)고 하셨다.
=====16:22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 '시작하다'라는 단어는 이미 13:5에서도 나온 적이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본절에서도 본서 기자는 이 단어를 통하여 삼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또 육의 눈을 잃고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는 중에 삼손이 서서히 영의 눈을 뜨기 시작하였음도 암시해 주고 있다(본 자료는 기독링크넷에서 퍼온 것임).
결론>
히브리서 11장 32절에 보면, 구약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 가운데 삼손을 믿음의 조상으로 특별히 기록해 놓은 것을 볼 만큼 그는 탁월한 면이 있었지만, 인간으로서 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여 면류관을 쓰려다가 바람에 날리어 벗기어지는 불행을 맞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의 일대기를 사사기서에 기록해 놓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삼손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다름아닌 유혹으로부터 자유하라는 교훈입니다.
그러나 삼손은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던 것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유혹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고, 자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돈, 명예, 편함, 교만, 부정, 여자 등 많은 유혹들이 저와 여러분의 행진을 방해하는 걸림돌들로 우리 인생의 여정길에 놓이게 됩니다. 앞만보지 말고, 뒤와 옆 특히 위를 잘 쳐다보면서 죄의 걸림돌을 슬기롭게 넘어 승리하시는 여러분 모두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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