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하루 만에 미국을 다녀왔다.
비자가 없어도 되니 여행이 한결 편해졌다.
수속이 간편하다. 즉석에서 ID를 내주니까 어디든 다닐 수 있다.
이천에서 반나절 정도면 천천히 일보고 밥먹고 돌아올 수도 있으니 세상 많이 좋아진 거다.
골프장의 카트는 한국과는 달리 캐디가 없고 둘씩 타는 2인승이 대세다.
숙소는 30분 떨어진 중심가에 있는 5성급 호텔인 드래곤힐스가 있었다.
거리에서는 토요타의 위기를 틈타 판을 뒤집게 위해 애쓰는 포드가 최신형 토러스에 미국기를 주루룩 걸고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자극하며 공격적으로 적극 홍보를 하고 있다.
상점에서는 육식국가답게 바비큐 불판기계를 무척 싸게 팔고 있다.
그날은 한국도 눈이 많이 왔는데 그곳 미국의 유치원 마당에도 거의 비슷하게 많이 쌓였다.
미국은 한국으로 수출하는 쇠고기는 대충 병든 쓰레기도 섞어 팔아도 되도록 못된 협정문안을 만들었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쳐 약간 수정하는 척 하였는데 이곳의 미국인들이 먹는 쇠고기 스테이크는 엄격한 통제를 거쳐야 하니까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 나는 이처럼 처음부터 상식적으로 하지 않고 얄궂게 만들어서 내밀어보고는 지적하고 난리를 쳐야 약간씩 고쳐주는 것들과는 애초부터 거래를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약간 우월한 입장에 있으면 고압적으로 변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역시 친구가 될 수는 없으며 대부분 두 번 다시 볼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가 지불하는 주한미군 주둔비는 한해 7000억에 달하며 미국은 매년 예외 없이 증액을 요구하였으며 이번에도 1000억이 부족하다고 하여 500억을 인상하였다. 반면에 주한미군이 한국의 금융기관에 예치해둔 돈이 8000억에 달한다고 하고 미군도 이 사실을 인정했다. 또한 80만평의 용산기지를 대체할 평택기지의 규모를 349만평으로 최종 확정했고 10조원을 육박하는 미군기지 이전비용 대부분을 한국 측이 부담할 것을 요구했다.
그것은 서울에서 한시간 거리에 여의도면적의 1.5배 되는 작은 미국을 한국의 돈으로 만들어 달라는 거다. 지난 수년 동안 1만 명에 가까운 주한미군이 감축되었으므로 그것은 터무니없이 넓은 면적이며 더구나 한국이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대북 방어를 넘어서서 아주 눌러 앉으려는 주한미군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미군의 주둔과 방위비 분담금 협정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근본적 검토가 필요하다.
미선효순양 사건이 났을 때 현장에 나타난 미군 담당자는 “누구의 과실도 아니다”며 잘못을 부인하였고 “한국정부가 처리할 문제”라며 책임을 미루고 발을 뺐다. 이에 국민들이 분노하였고 거센 시위물결이 광화문을 뒤덮었다. 한미관계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로 악화일로로 치달았고 아직도 감정의 응어리가 크게 남았지만 별로 나아진 것 없이 흐지부지 지나고 있다. 소파협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독일과 일본의 그것보다 별로 나쁘지 않다며 묵살하려했다. 독일 일본은 전범국가이며 배상책임이 있는 패전국가인데 한국을 일본의 발가락에 끼워 도매금으로 처리하는 미국을 우리는 “동맹국” “혈맹”이라며 우대가 아닌 숭배를 하고 있다.
나는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끝까지 읽어보지 못했다. 그것에는 미국의 지위는 주둔군이 아닌 엄연한 점령군이고 한국의 지위는 독립국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유린되어 있어서 읽다가 중도에 덮어버렸다. 물론 우리의 책임이 크다. 일제 강점기 때 임시정부와 독립군 조직이 있었지만 상징적인 존재일 뿐이었고 일본과 겨루어 독립을 쟁취하기에는 미미한 존재였다. 일본이 미국에 도발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모두 나까무라상 마끼꼬상이 되어있었을 것이고 나도 일본말로 제국이나 덴노헤까 찬양글이나 쓰고 있을지 모른다.
한국동란 때 미군들이 낯선 땅으로 날아와 4만명이나 죽은 것이 오직 한국의 자유독립만을 위해서인 것처럼 얘기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군 4000명이 월남의 자유수호만을 위해 정글에서 죽은 것이 아니듯이 미군도 철저히 그들의 이익을 위해 사지에 뛰어들었다. 싫다는 우리를 억지로 끌어내어 평화유지군이라는 완장을 차게 하여 중동의 사막으로 내몰고는 석유를 갈취한 것처럼, 명분을 쌓고 짐을 덜기 위해 15개국을 모아 나타나서 2차대전 때 사용한 것보다 더 많은 포탄을 퍼부어 이 땅에서 그들이 원하는 바를 악착같이 이루었을 뿐이다.
사자가 만만한 병든 소를 잡아 대충 뜯어 먹고 떠나면 온갖 동물들이 차례로 나타나 살과 뼈를 갉아먹는다. 그리고는 곤충들이나 눈에도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들이 활동하여 마침내 죽은 소는 원소로 환원되어 자연 속으로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이때 하이에나가 사자에게, 사막여우가 하이에나에게, 땃쥐가 여우에게, 딱정벌레가 쥐에게, 굼벵이가 벌레에게, 박테리아가 아메바에게 먹을 것을 줘서 고맙다며 일일이 감사할 필요가 없다. 소는 박테리아가 분해한 영양소를 섭취한 풀을 먹고 자랐을지도 모르고 벌레나 쥐가 옮긴 병에 걸려 사자에 잡혔을지 모른다. 물론 다음번 식사거리가 될 것이 여우인지 사슴인지도 아무도 모른다.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단순한 그것이 섭리이고 공생이며 자연이다. 미국은 김구니 이승만이니 민주니 자유니 다 필요 없이 다만 소련과 중공과 일제를 견제할 든든한 교두보가 필요했을 뿐이고 말 잘 듣는 십장이 하나 있으면 편리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미군들이 식량과 약품과 황홀한 초컬릿을 나누어 주었지만 기지건설에 필요한 잡역부가 필요해서 먹여살렸을 수도 있다. 그들은 기지촌여인을 죽이고도 모자라 성기에 우산과 맥주병을 꽂고 불지른 병사들을 재빨리 미국으로 빼돌렸고 항의하는 한국인들의 면전에 소파협정 문구를 들이밀었다. 미국이 악질범인 하나를 빼돌릴 때마다 미국을 증오하는 사람이 백만명씩 생겨난다는 것을 모를리도 없는데 철저히 무시한다. 우리가 주는 주둔비를 받는다면 일종의 용병인데 오히려 점령군 행세를 한다. 한국군도 기지 주변의 월남인들에게 의료봉사도 하고 학교도 건설해 주고 농기구도 보급하고 모내기도 도와주었지만 그 역시 그들의 후생복리보다는 스스로 죽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정보를 수집하며 주변에 우호세력을 형성하여 적개심을 누그러뜨리려는 교화활동이며 일종의 위장술이다.
미국은 왼쪽나라에게는 최고의 공격무기를 팔고 오른쪽나라에는 첨단의 방어무기를 파는 교활한 무기업자다. 국가경제에서 무기판매수입이 큰 비중을 차지하여 세계평화가 지속되면 불황에 빠지는 황당한 나라다. 미국이 몇몇 나라를 지칭하여 악의 축이니 테러국가이니 하지만 그들은 겨우 잎사귀하나에 불과할 뿐이고 정작 세계최고의 악의 뿌리는 미국이다. 사자가 없으면 표범이 나무위에서 내려오고 멧돼지도 뛰쳐나와 초원은 더욱 무질서해 질지 모르지만 그것이 사자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사자에게 풀을 뜯어먹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저 때문에 초원의 평화가 유지된다는 허황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독립국가라는 우리는 한국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되어가지만 전시작전권조차 없고 그것을 준다 해도 받을 능력도 준비도 모자란다고 한다. 미군이 한반도에서 보유 운용중인 군사장비의 가치총액이 지난 2000년 말 기준으로 1천112억5천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그것은 한국의 5년치 국방예산과 비슷하며 미군이 떠나면 한국군이 떠맡아야 하는데도 우리 군 지휘관들은 신무기 개발보다는 국가예산으로 전국에 군 골프장만 만들고 있는 듯 하다.
스스로 쟁취하지 못한 자유와 독립의 후유증이 길고도 슬프고도 속상하게 오래도 간다.
미국여행의 시차(!) 때문인지 잠도 안 오고 머릿속은 자꾸 복잡해진다.
(부록)
“도망친 미군 남편 찾아드립니다.”
주한미군이 부인과 가족을 버리고 도망친 미군 남편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을 시행해 눈길을 끌고 있다.
19일 미군 전문지인 ‘성조지’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한국에 근무하는 미군이 제3국 국적을 보유한 부인과 가족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을 경우 해당 군인을 찾아주는 ‘버림받은 배우자 핫라인(Abandoned Spouses Hotline)’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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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공지보기▶ 이 프로그램은 동두천 주한미군 근무지역(AreaⅠ)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앞으로 주한미군 전체로 확대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30여명의 ‘버림받은’ 여성들이 이 제도의 도움을 받아 남편의 소재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두천 지역 주한미군의 배우자 중에는 필리핀 등 제3국 여성들이 많은데 이들 중 일부는 남편이 아무런 얘기도 없이 한국을 떠나 가족과 함께 한국에 버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주한미군측은 전했다.
주한미군 관계자는 “미군들이 군복무 중 일시적으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제3국 여성과 결혼한 뒤 군생활이 끝나는 시점이나 휴가에 맞춰 부인과 자녀를 버리고 본국으로 가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행태는 정말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미군은 이런 신고가 접수되면 해당 미군에게 1차로 이메일을 보내고, 아무런 답장이 없을 경우 곧장 미군 지휘체계에 의해 강제로 가족을 부양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가족을 버린 미군은 규정 위반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될 수도 있다.
이 제도는 또 해당 여성의 이민 등에 필요한 비자와 영주권, 사회보장번호, 의료 및 법률서비스 지원 등을 제공하고 있다.
미군 방송인 AFN은 방송을 통해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타갈로그어(필리핀 공용어) 등 5개 국어를 이런 사실을 알리고 있다.
박병진 기자 worldp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