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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며 삽시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즈음 자살 기사가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지난달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마지막 집세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리 사회의 큰 충격을 줬다
그런데 잇달아 생활고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짝이라는 SBS 출연자가 자살했는가하면 자살을 비판하던 박은지 부대표가 ‘자살’로 생애 마감했다.
제주도 서귀포 경찰서는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진 SBS 짝 여성 출연자의 유서 전문을 공개했다.
유서에는 "엄마 아빠 너무 미안해. 그냥 그거 말곤 할 말이 없어요. 나 너무 힘들었어. 살고 싶은 생각도 이제 없어요. 계속 눈물이 나. 버라이어티한 내 인생 여기서 끝내고 싶어. 정말 미안해요.
애정촌에 와 있는 동안 제작진들에게 많은 배려 받았어요. 그래서 고마워.
난 너무 힘들어. 단지 여기서 짝이 되고 안 되고가 아니라 삶이 의미가 없어요.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모두 미안해. 고마웠어"라고 써 있다고 알려졌다.
이런 사건들이 줄지어 일어나는 것은 세상 사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험한 세상을 이기며 살 수 있을까?
주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험한 세상을 이기며 살 수 있는 길은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사는 것이다.
가룟 유다가 주님을 팔러 나간 후에 주님은 바로 이 말씀을 하셨다.
제자들이 주님의 증인으로 살려면 세상으로부터 핍박받고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런 환란을 이기며 살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하시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며 살면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는 것을 세상이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여러분! 험한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며 사는 길은 사랑의 공동체를 통해 사는 길입니다.
나 혼자서는 결코 믿음을 지킬 수도 없고 세상을 이길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세상이 험해도 감당 할 수 있습니다.
필립 얀시라는 작가는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인간의 절박한 사정을 돌아보아 주는, 작지만 감동적인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었다.
주택가의 그 작은 교회는 특별한 게 없었다. 예배도 별반 활력적이지 못했고, 목사님의 설교도 그만저만한 정도였다.
그러나 한 사람, 데보라 베이츠에게만은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다.
데보라의 남편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녀에게는 부양해야할 네 아이와 초라한 방 한 칸만이 짐처럼 남았다. 데보라는 버림받았다는 감정을 추스르는 것 외에도 당장 실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천장에서는 빗물이 떨어졌고, 막힌 하수구에서는 구정물이 올라왔으며, 고물차는 당장이라도 주저 앉을 지경이었다. 누군가 장기간 돌보아 주어야 했다.
그러자 그 작은 교회에서 약 스무 명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들은 돌아가며 데보라의 아기들을 돌보았고, 칠을 다시 했으며, 지붕과 차를 수리했다.
한 사람은 그녀를 고용해 새로운 일을 가르쳤다.
형편이 넉넉한 한 부인은 아이들의 교육비를 대겠다고 제안했다.
데보라는 적어도 5년간을 교인들이 마련해 준 '목발'에 의지해 걸어 다녔다.
남편에게서 버림받은 데보라와 같은 연약한 여인이 험한 세상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교회라는 사랑의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랑의 공동체가 있어야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여 이런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간다면 세상은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인정하여 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는 무리가 있고 제자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요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은혜받고 도움을 받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을 무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무리를 어떻게 대하시는가를 알아야 한다.
마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마14: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들은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불쌍한 자들이기에 주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려 병을 치유해 주시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과 늘 함께하지 않으신다. 때가 되면 주님은 무리를 보내거나 떠나가십니다.
무리를 보면서 문득 옛날 어른들이 걸인들을 대하던 생각이 난다.
거지들이 밥을 얻어먹으러 오면 일반적으로 불쌍히 여겨 가져온 깡통에 밥을 줍니다.
부잣집에서는 거지들에게 작은 상을 차려 먹게 합니다.
거지들은 밥을 다 먹고 난 후 함께 있지 못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거지처럼 무리처럼 무언가를 얻고 구하려는 목적에서 주님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 살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갈급해지면 주님께 은혜를 구걸하러 옵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한푼 줍쇼!
무리들은 주님께 각설이 타령을 합니다.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은혜를 주시면 감사합니다. 하나님 땡큐 하고 돌아갑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 또 구걸하기 위해 각설이 타령합니다.
이런 무리들은 주님이 주시려는 크고 놀라운 사랑을 받는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제자는 무리와 달리 서로 사랑하며 함께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통해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사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여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라.
그것을 통해 세상이 너희보고 주님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리입니까? 아니면 제자입니까?
제자라면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 서로 사랑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제자로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이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21세기를 들어서면서 세상은 개인주의가 팽배하여 갑니다.
이웃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한 아파트 바로 윗층에 사는 사람이 시끄럽게 한다고 싸우고 죽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모든 관심은 나에게만 집중되어있지 이웃도 없고 가족도 점점 부담스러워합니다.
삶을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가 파괴되어가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느 큰 교회에 어느 날 한 남자가 큰 모자를 쓰고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안내자들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어찌된 일인지 모자 벗기를 거절했습니다.
옆에 나란히 앉은 그 교회 신자들도 거듭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님 역시 내심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예배기 끝나기가 무섭게 문 앞으로 가서 그 남자를 기다렸습니다.
목사님은 그 남자에게 예배에 참석한 것에 감사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참석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예배 시간에는 모자를 벗는 것이 교회의 예법에 어울릴 것이라는 지적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남자가 목사님을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일부러 내서 저와 대화를 나눠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예배에 초대해 주신 것도 무척 기쁩니다.
사실 저는 3년 전부터 이 교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저에게 관심을 갖기는 오늘이 처음입니다.
3년 동안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오늘에서야 비로소 안내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순전히 제가 쓰고 있는 이 큰 모자 때문에 말입니다.
그 뿐 아니라 늘 바쁘게 지나가시기만 하던 목사님과 직접 몇 마디 대화를 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고요.“
혹시 우리 교회에도 이런 모습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저와 개인적으로 대화해보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남아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 간에도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지낸 분이 있다면 예배 끝난 후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은 우리가 일가친척들에게, 친구들에게,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집시다.
여러분! 우리의 가족이나 이웃 중에 내가 관심 갖지 않아 외로워하고 아파하는 분은 없으신지요?
그들과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며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나요?
내가 존재하는 것은 다 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없다면 내가 존재하는 것이 다 허무해집니다.
여러분! 외롭다고 느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것은 함께 마음을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가 없거나 공동체와 함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친절하게 관심갖고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면 험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내가 건넨 따뜻한 말 한 마디 작은 관심이 사랑의 공동체인 가족과 친척들과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가족식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기 바랍니다.
외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가정 예배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교회와 목장에 관심을 가집시다. 목장 예배에 꼭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몸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 먼저 손을 내밀고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 제자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리가 아니고 제자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서로 신뢰하자.
아무리 견고한 공동체라도 서로 신뢰하지 않으면 결국 깨지기 마련입니다.
소련의 문호 톨스토이가 남긴 단편 불을 놓아두면 끄지 못한다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광활하고 풍요로운 러시아의 한 농촌에 이반과 그의 이웃 가브릴로의 가정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의 이반네 암탉은 가브릴로네 집에서 마치 알을 낳은것 처럼 꼬꼬대하며 소리 질렀다.
이것을 본 이반네 가족들이 가브릴로네 가족을 보고 방금 낳은 계란을 돌려 달라고 했다.
그러나 가브릴로네는 닭이 알을 낳은 것이 아니라고 했다.
여기서 언쟁이 시작되어 나중엔 치고 박고 싸움을 하기까지 이르렀다.
이반은 가브릴로의 옷을 찢고 콧수염을 뽑아버렸다.
이렇게 싸움하는 동안 가브릴로네 마차의 문짝 하나가 없어지고 말았다.
가브릴로는 이반의 아들들이 훔쳐 간 것이라고 우겨대었다.
두 사람은 법정을 찾아가 각기 고소를 제기했다. 이반네와 가브릴로네는 오랜 세월 동안 가까운 이웃이었으나 마침내 두 가정은 서로 원수가 되고 말았다.
어느 결혼식장에서 두 가정이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이반의 부인은 가브릴로의 부인을 보고 계란을 훔쳤다고 비난하자 홧김에 가브릴로는 이반의 부인을 주먹으로 쳤다.
이반은 즉각 가브릴로를 상해치상 혐의로 법원에 고소하여 벌금을 물게 했다.
이번엔 가브릴로의 반격 차례였다. 어느 날 밤 가브리로는 이반의 집에 불을 질렀다.
이반은 분을 참지 못해 가브릴로의 멱살을 잡고 치고 박고 했다.
이렇게 싸움을 벌리는 동안 이반의 집은 다 타버리고 불티가 날아서 가브릴로의 집까지 타고 말았으며 나중엔 동리까지 화염에 싸이게 되었다.
불신과 미움이 있는 곳에 투쟁과 파멸의 비극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류역사를 통하여 수없이 치룬 파멸의 비극은 대개 따지고 보면 작은 불씨에서 시작된 인간의 과오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서로 불신한다면 공동체는 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신뢰하게 된다면 그 안에 아름다운 열매가 맺혀지게 됩니다.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보스턴의 지하병동에 한 소녀가 격리수용돼 있었다. 이 소녀는 정신질환이 너무 심했다.
사람들이 다가오면 괴성을 지르며 사납게 공격을 퍼부었다.
의사들은 '회복 불가능'을 선언하고 독방에 수용했다.
소녀의 부모는 더 이상 딸에게 미련을 갖지 않고 병원에 면회오는 일도 중단했다.
"너는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소녀는 온종일 독방에서 지냈다. 그런데 은퇴한 늙은 간호사가 이 소녀에게 사랑을 쏟기 시작했다.
소녀는 먹을 것을 주면 집어던졌고 말을 건너면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늙은 간호사는 6개월동안 끊임없이 관심을 보였다.
결국 간호사의 지극한 사랑은 소녀의 마음을 움직였다.
소녀는 마음문을 열고 사랑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정신질환에서 완전히 해방돼 봉사의 삶을 살았다. 이 소녀의 이름은 엔 설리반이다.
헬렌 켈러를 세계적인 인물로 교육시킨 위대한 스승의 이름이다.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최고의 묘약은 사랑으로 끝까지 신뢰하며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다.
우리가 이처럼 서로 신뢰한다면 사랑의 공동체는 굳건하게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공동체는 사단이 공격하고 흔들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 사랑으로 사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꼭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고전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전13: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고전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고전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상대방이 어떠하든지 믿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가족들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습니까?
이해 할 수 없는 말, 믿을 수 없는 말을 할 때에도 믿어주고 있습니까?
서로 사랑으로 신뢰하지 않으면 콩가루 집안입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이웃, 교회 성도들을 어느 정도 믿어주고 있습니까?
서로 사랑으로 신뢰하지 않으면 콩가루 교회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어느 정도 사랑하며 신뢰하고 따르고 있습니까?
주님을 믿는다고는 하면서 주님을 따르기 보다는 내가 가고 싶은 길만 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주님의 제자라면 주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십자가까지 따릅니다.
그러나 무리들은 조금만 부담이 되고 어려움이 올 것 같으면, 대번에 예수님을 버립니다.
그러므로 무리들은 결국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합니다.
무리가 아니라면 서로 사랑으로 신뢰하며 사랑의 공동체를 세워 갈 수 있기 바랍니다.
그 이웃들, 성도들은 다 주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입니다.
비록 연약하고 부족해도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 주님께서 믿음의 한 가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콩가루 교회가 아니고 서로 신뢰하는 사랑의 공동체 교회가 되기 바랍니다.
주님은 그런 교회를 기뻐하십니다. 그런 교회를 주님이 받으십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신뢰할 때 우리가 무리가 아니라 주님의 제자임을 세상이 알게 될 것입니다.
무리가 아니라 주님의 제자로 서로 사랑하여 사랑의 공동체를 세워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