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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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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ktusjye/221563611768
5코스를 먼저 돌았더니
다음 코스 선택하기가 애매하다.
하루에 두 코스 걸을 작정이라
6 ~ 11코스에 7-1코스를 넣으니 7개 코스,
홀수다.
그렇게 코스별 거리, 이동시간 등을
감안하여 9, 10코스를 역방향으로 선택한다.
화순항 화순금모래해변에서 출발,
송악산, 산방산을 둘러
모슬포항 인근 하모체육공원에 이르는
총거리 17.5킬로미터, 난이도 '중'이다.
56개 정류장을 이동하지만
202번 버스 한 번에 가는 코스다.
7시 20분 경 숙소를 나서
하모 2리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8시 43분 이다.
11코스 시작점 표지석에서
역방향으로 시작하는 코스다.
표지석 옆으로
올레안내소가 자리잡고 있다.
방향을 엉뚱하게 잡았다.
역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아무 생각없이 정방향으로 걷고 있다.
그렇게 1.5킬로미터를 가다가
다시 표지석 앞으로 돌아온다.
모슬포 바다를 지나
마을을 통과해 밭으로 이어진다.
수확을 하는가 하면,
이제 꽃을 피우는 감자도 보인다.
밭에 설치된 스프링쿨러가
담밖으로 물을 뿌리고 있다.
물이 귀하다는 제주도
이제는 옛말이 된 것 같다.
지나면서 어쩔수 없이 물세례를 받는다.
한 낮 햇살은 따가워도
몸에 닿는 기운이 제법 차다.
다시 바다로 나아간다.
방금 지나 온 모슬포항,
긴 방파제가 바다를 에워싸고있다.
이 지역 '모슬포항', '운진항'이 노랫말에 들어간
'해녀의 뱃노래', 시비 앞을 지난다.
그 옆에는 작사가 '참사 허창현 공적비'가 서있다.
이 고장 출신으로,
사재를 털어 운진항 개발의 초석을 열었던 선각자다.
당시 해녀들이 즐겨부르던
'대한팔경' 곡에 가사를 붙였다.
'운진항 만들어서 해양발전 이룩하자.
어서 어서 만들어서 우리 향토 부흥하자.'
가사내용이 주민을 계도하는 내용이다.
공터 넘어 긴 방파제가 보인다.
여객선이 항구에 정박해 있다.
운진항 여객터미널이다.
가파도와 마라도를 오가는
여객선을 이용할 수 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합실 내, 외부에 꽤 많이 보인다.
운진항 옆에 있는 하모해수욕장이다.
들판을 질주하는 말 조형물이
해수욕장 입구에 설치되어있다.
건물이 외벽만 남아있다.
해수욕장 가에 수영금지 팻말이 붙어있다.
을씨년스러움이
이른 계절 탓인가 했는데
모래유실이 많아 이용할 수 없단다.
해수욕장 지나 해안가 방풍림 앞
풀밭사이로 올레가 지난다.
하모해수욕장과 운진항을 돌아본다.
다시 방풍림 앞 들판을 지난다.
해안을 지나 다시 들판으로 이어진다.
무우를 그대로 갈아 엎었다.
오른쪽 봉긋 솟은 산이 산방산이다.
방금 갈아엎어진 밭을 지났는데
무우가 수확을 한참 지났다.
수확을 포기한 농민의 마음이나,
이렇게 버려진 것을 보는 마음이나
마찬가지로 아프고 화가 난다.
산방산이 다소 가까워진다.
구름이 뱃고동에 뿜어진 연기처럼 흘러간다.
이 길을 오간 이들
발자욱이 남아있다.
요즘 농부님들이야
집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을 걸어올리 만무하니
분명 올레꾼들이 남긴 자취이리라.
덮이고, 날리고, 씻기고, 쓸리고,
지금 내가 남긴 발자욱도 그렇게 스러질게다.
왼쪽으로 야트막한 동산이 보이고
안내판이 큼지막하게 서있다.
'전쟁, 학살 등 비극적 역사 현장이나,
엄청난 재해, 재난의 장소를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한 여행',
다크투어리즘을 정의하고 있다.
알뜨르일본군 비행장, 지하벙커,
셋알오름 일본군 동굴진지, 고사포진지,
송악산 해안 일본군 동굴진지가 포함되어있다.
알뜨르 일본군 지하벙커 입구다.
동굴 내부 모습이다.
길이 30미터, 너비 20미터 규모다.
단체 관광객이 몰려온다.
해설사의 설명에 귀기울이는 표정이 진지하다.
밭 안쪽 고삐묶인 말 한 마리가 쓸쓸하다.
비행장 전망대다.
난간없는계단과 전망대가
매우 위험하다.
'알'은 '아래', '드르'는 '벌판'을 뜻하는 방언으로
'아래에 있는 넓은 벌판'을 의미한다.
본래 주민들이 농지, 목초지로 이용하던 곳이다.
1920년대에 주민 등을 동원하여
20만평 부지에 군용비행장으로 건설했다.
중일전쟁 때에는
난징 폭격을 위한 전초기지로 이용했다.
그 기간 중 2차 공사를 시행,
40만평으로 확장했다.
이 후 항공대가 상하이로 이전하며
연습비행장으로 이용하였다.
지하벙커 동산 뒷모습이다.
밭 사이 좁은 길을 따라
계단을 오르면
비행기 격납고가 보인다.
올레는 비극적 역사의 현장,
섯알오름 위령탑으로 안내한다.
입구 주차장 앞에
대나무와 철로 만들어진 조형물이 서있다.
'파랑새'라는 작품이다.
동학농민운동에서 농민군이 사용한
죽창에서 소재의 영감을 얻었단다.
대나무로 씨줄과 날줄을 엮어
소녀가 새를 들고있는 9미터 높이의 모형을 설치했다.
곧은 길을 걸어 들어간다.
위령비 앞이다.
'섯알오름 예비 검속 희생자 추모비'다.
군경토벌대에 의해 양민 수만명이 학살된
제주 4,3사건이 진정국면에 들어설 즈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당국은 전국적으로 보도연맹원을 체포 구금한다.
이때 제주지구 계엄당국에서도
820명의 주민을 검속했다.
이 중 모슬포 경찰서 관내
한림·한경·대정·안덕 등 에서도 374명이 검속됐는데,
이들 중 149명을 상모리 절간 고구마 창고에 수감하였다가
1950년 8월 20일 새벽 4~5시경 집단학살하였다.
이보다 앞서 이날 새벽 2시경 한림지서에 검속된 63명도
계엄당국에 의해 집단총살 당하여
이 곳 에서의 희생자는 212명에 이른다.
당시 교사 신분 지식인으로 희생된 이의 부인,
이상숙여사가 사천오백만원을 지원하여
학살 현장을 재현하였다.
섯알오름 학살터는
일본군이 ‘알뜨르’ 지역 군사요새화 과정에
야트막한 섯알오름 내부를 파내어 만든 폭탄창고다.
일제가 패망하면서 미군에 의해 폭파됐다.
이때 오름의 절반이 함몰되면서 큰 구덩이가 만들어졌는데
이 구덩이에서 학살이 이루어졌다.
학살이 시간 간격을 두고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져
암매장 구덩이도 두 개가 만들어졌다.
위령비와 암매장 유적을 두른 언덕 위,
'추모정'이 세워져있다.
기념비 오른쪽, 건립경위 등을 기록한 석판 안내문 아래
발굴 당시 유품을 재현한 작품이 놓여있다.
길은 섯알오름을 지나가라 하는데
그냥 지나칠수 없어
왔던길을 되돌아 비행기 격납고를 찾아간다.
당시 건설된 38개소 중
19개소는 원형상태로 보존되고 1개소는 잔재만 남아있다.
소망과 다짐, 원망과 맹세의 리본이
격납된 비행기 철주에 빼곡하다.
실물 크기의 모형을 철사로 만들었다.
다시 올레로 돌아가는 길,
되돌아 가려니
앞에 보이는 밭 건너가 길이다.
아직 작물이 심어지지 않은 밭을 지난다.
계속 이어지는
셋알오름으로 가는 길이다.
말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설치한 장비다.
알오름이 세 개 있다.
방금 지나온 서쪽, 섯알오름과
동쪽에 동알오름이 있다.
이 오름군 중 가장 높은 곳이 셋알오름이다.
셋알오름 정상부다.
일제시대 일본군 고사포진지가 있던 곳이다.
알뜨르비행장 공습에 대비한 군사시설이다.
1945년 무렵
총 5개소 중 4개소는 완공된 상태였으나
1개소는 미완공 상태였다.
포대는 폭파, 제거되었지만
셋알오름 정상부 두 개소 콘크리트 포상은 남아있다.
셋알오름을 내려간다.
바다가 나타나고
왼쪽에 산방산이 보이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제섬도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송악산이다.
'마라해양도립공원 송악산지구',
송악산으로 들어선다.
해송산림욕장 산책로다.
산책로 비탈 아래,
목책을 둘러 출입을 통제해 놓았다
송악산 외륜 일본군 동굴진지다.
알뜨르비행장 주변 경비를 목적으로
조성한 군사시설이다.
동굴 진지 13개소에 출입구 41곳,
총 길이가 1.43킬로미터에 이른다.
송악산 전체에는 육십여개소가 있다.
송악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있을까,
주의하여 둘러본다.
송악산 정상부가 멀리보인다.
식생복원과 훼손방지를 위해 2020년 7월 말 까지
송악산 정상 및 탕방로 출입을 전면통제하고있다.
아쉽지만 출입통제가 해제되면
꼭 찾아오고 싶은 곳이다.
가파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안에서 보면 다르겠지만
이렇게 멀리에서 보니 위태롭기 그지없다.
그 너머 마라도가 있다.
대개 잘보인다는데
무심한 해무가 시야를 가렸다.
송악산은 첫번째 화산으로 생긴 분화구에
두번째 화산폭발이 일어난 이중화산의 결과물이다.
주위에 기생화산이 잘 발달하여
99봉 이라 일컫는다.
이러한 지형이 해안에 잘 드러나있다.
목책탐방로 옆은 말 방목지다.
관광객 등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고있다.
멸종 위기 야생식물 2급,
황근, 일명 노랑무궁화 이천오백여본을 식재한
복원사업부지다.
해안 절벽 위를 따라 탐방로가 길게 이어진다.
모두 세 곳에 전망대가 설치되어있다.
화산 지층과 절벽위 벌판, 해안선을 따라 걷는 길도 좋지만
가파도, 마라도, 형제섬을 흩뿌린 바다,
송악산 정상부, 멀리 산방산까지 어우러진 경치가 일품이다.
저지오름, 제주올레 13코스, 생이기정,
일행에게 추천한 코스 중 한 곳 이다.
노란 바지선이 바다위에 떠있다.
마라도잠수항 관광을 하게 되면
수송선을 타고 이 곳에서 잠수함을 타게된다.
잠수함이 승객을 기다리며
부상해있다.
여객수송선이 바지선 근처로 접근하고있다.
갈림길이다.
올레는 해안을 따라 가라고 안내하지만
스마트폰 지도는 송악산 정상부 길을 표시하고있다.
혹시 길이 개방되어 있을까,
기대하며 왼쪽 포장도로를 따라간다.
오른쪽 꺽어지는 방향을 출입통제,
금줄을 쳐놨다.
다시 돌아와 해안 탐방로를 따라간다.
전망대로 오른다.
뒤돌아 본 전망이
그저 머물고 싶다는, 떠나고 싶지 않다는
이룰수 없는 소망을 불러일으킨다.
산이수동항에 마라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정박해 있고
그 뒤로 사계해변이 펼쳐진다.
해안절벽 위 일본군 동굴진지다.
단체로 여행 온 관광객이 자주 보인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뭍 시골마을에서 단체관광 오신 듯한
노년에 접어든 아주머니들은
겨운 흥을 노래로 풀어낸다.
오가는 사람 시선은 아랑곳 없다.
곁에 동행한 아주머니 한, 둘
합창을 한다.
입구에 서있는 송악산 표지석이다.
송악산 해안의 일본군 동굴진지다.
15개의 동굴이 있어
일오동굴로도 불린다.
연합군 대상 자살공격용 소형보트를
숨겨두었던 군사시설이다.
송악산 해안 절벽에
17개소를 구축하였다.
해녀상이다.
용천수 산이물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지정 동판을
바위에 박아 놓았다.
형제섬이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는 효심깊은 형제가 있었는데
이 둘은 우애도 좋았다.
해녀였던 어머니는 매일 물질을 나갔는데
형제는 갯바위에 올라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파도에 휩쓸려 어머니가 실종되었다.
어머니가 살아 돌아오길 기다리던 형제가
바위로 변해 섬이 되었다고 전해온다.
썰물에 잠겼던 바위가 모습을 드러내면
3 ~ 8개의 섬으로 보인다.
큰섬이 본섬, 작은섬이 옷섬이다.
무인도지만 본섬엔 모래사장도 있다.
산방산을 향해 간다.
사계리 '사람과 동물발자국 화석단지'로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해안체육공원과 맞닿은 방파제 위로
올레길이 지나간다.
개천이 지나는 길,
해안도로로 둘러 돌아온다.
모래해변이 초지로 변하고 있다.
얕기는 하지만
모래밭을 걷는 느낌이 불편하다.
4일 휴식없이 걷고,
오늘도 19킬로미터 정도 걷는 중 이라
느껴지는 껄끄러움이다.
사계항 방파제가 보인다.
마라도잠수항 관광 매표소, 대합실 앞이다.
사계포구는 도요지에서 생산된 토기류를
테우로 운반하던 항구였다.
테우가 거친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모습을
형상화 하였다.
산방산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사계마을을 지난다.
용천수 큰물이다.
산방산에 오를 일념으로
들길을 지난다.
아뿔싸!
국가지정문화재 경승 77호,
산방산도 전면 입산 통제 중 이다.
산방산을 둘러 올레가 이어진다.
멀리서 보던 엎어진 바가지같은 모습과는
또 다른 산세를 보여준다.
스마트폰 지도를 이용한 경험에 의하면
입산 또는 출입통제된 길은 안내가 되어 있었다.
이 곳 역시 별도로 통제표시가
지도에는 없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진출입로로 표시되는
인근 갈림길로 들어선다.
집 한 채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니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인기척을 내니 안에서 사람이 나온다.
'지도에는 이 근처에서
산방산 올라가는 길이 표시되어 있던데
이 위로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까?'
'여기는 길이 없어요.'
'그러면 근처에 올라갈 만한 길이 없을까요.'
'글쎄요...'
인사드리고 나오며
산방산 산행 욕심을 접는다.
들길을 걷는다.
산방산 보덕사 입구 민가에
한라봉으로 보이는 노지귤이 달려있다.
노지에 꽃이 한창인 노지 감귤밭은 많이 지나쳤지만
귤이 달려있는 광경은 처음 본다.
산방산 보덕사다.
주슴길곶자왈로 들어선다.
주슴길은 '해안에서 일어난 일을
빨리 보고하기 위한 길'이라는 옛말에서 유래했다.
인근 병악오름에서 분출한 화산이
해안으로 흘러가던 용암 일부가 굳어
불규칙한 크기로 쪼개진 용암덩어리가 산재하고
다양한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곶자왈 중간에 노지 감귤밭이 자리잡고 있다.
주슴길곶자왈을 벗어난다.
도로건너
들판지나
황갈색 퇴적암층 해안 절벽 위,
썩은다리 오름 언덕을 오른다.
'퇴적암이 오랜시간 풍화되어
돌이 썩은 것처럼 보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오름의 돌이 석재로 쓰기에 알맞지 않고 쉽게 부서져
썩은 것 같다하여
'썩은'에 '쟁이'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 '다리'가 붙어서
불려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사간다리, 사근다리동산 이라고도 부르는데
화순해수욕장 서쪽에 위치한 특성 상
모래언덕으로 착각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측된다.
<출처 : hwasunri.com>
화순항이 보인다.
그 유명한 화순금모래해변이다.
언덕을 내려간다.
금빛 모래가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실제 금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과거 국내 굴지의 회사에서 화순광산사무소를 개설하여
금 채굴을 했었다 한다.
용천수를 이용해 만든 담수 해수욕장이다.
아직 개장 전 이라
물도, 사람도 없다.
마을 청년회에서 풀장관리를 위해
자릿세를 받고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해수욕장 앞을 지나
올레안내소,10코스 시작점 표지석 앞에서
제주 올레 10코스를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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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읽다보니 익숙한
잘 생각해보니 제가 유일하게 걸었던 코스네요.
그땐 겨울이었는데~~~
눈에 선하네요.
그리곤 못갔으니, 가고 싶네요. 제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