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6일 오후 3시 GS타워 1층 아모리스홀
달력에 메모된대로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 자녀 결혼식 참석을 위해 울산역으로 향했다.
9월 말경 동반석으로 예약했는데 친구 한명이 사정이 생겨 불참인지라 상분. 수우, 나 셋이서 11시 23분발 기차를 타기로 약속을 했던지라 울산역에 도착하니 약속을 하지 않은 상근이내외도 왔다.
스마트폰 네트워크 전송실패로 좌석 번호 확인이 안 되어 매표소에서 왕복표를 발권하곤 발권 대기자 앞으로 다가가
"저, 혹시 서울 가십니까? 아니오, 동대구 가는데요. 아니요, 대전 가는데요"
하는 수없이 표 팔기를 포기하자 수우왈 "조봐라 내가 함 팔아 보께”
약간은 창피한 마음에 조금 떨어져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데
수우 인상을 쳐다보던 그사람은 못 믿겠다는듯이 의심의 눈치였기에 우리가 일행이라고 덧붙여 설명하자 그제야 동의를 하셨다.
양남에 산다는 그 남자는 차 한 잔을 마시곤 이 내 눈을 감았으나 우리가 떠들어대는 이야기를 다 듣고 있는 듯 했다.
뒷좌석 까칠한 서울여자는 몇 번이고 내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에 난 목소리 톤을 낮췄는데 수우의 목소리는 조절 불가였기에 결국 승무원의 주의를 받고 말았다.
네, 죄송합니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했으나 잠시 후 다시 우리팀 목소리가 제일 컸다.
다음에는 한 칸을 통째 전세를 내야할까 보다.
초고속으로 내달리는 차창밖엔 푸른 산과 옹기종기 모여 사는 집들이며. 판넬로 지어진 공장들 사이로 황금들판이 펼쳐지기도 했다.
순간, 학창시절 학교 수업 마치면 농번기때 탈곡기로 타작하는 일손을 돕느라 볏단을 나르기도 하고 먼 논 참 심부름도 하고, 논 고동을 캐기도 했으며
메뚜기를 잡던 일과 고추밭에서 빨간 고추를 따던 일들과 우리 사과를 훔쳐 먹던 일들, 이삭을 줍던 일들.. 농촌생활에서의 추억들을 떠올려보니 요즘 아이들과 비교해보니 엄청난 격세지감을 느꼈다.
서울역에 마중 나온 복순이의 안내를 받으며 지하도로 빨려 들어가 2호선 지하철을 타고 또 환승을 하고 낯선 곳으로 힘차게 내달려 역삼역에 도착하니 신부 입장 5분전이었다.
혼주를 못 보면 지각이기에 수우와 상근이를 뒤로 한채 우리 셋은 구둣발 달리기로 예식장 입구에 들어서자 양 옆으로 축하 화환들이 즐비한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혼주에게 다가가 축하 인사를 나누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화려하면도 은은한 실내 분위기에 놀라고, 식대가 비싸다는 소리에 놀라고, 홀 안을 가득 메운 하객들이 그리 많음에도 떠드는 사람이 없음에 놀라고,
의사 사위에 놀라고, 아빠 손을 잡고 웨딩마치 리듬에 발맞추어 경건하게, 조심스레, 나비가 꽃잎에 살포시 내려앉는 모습처럼 사뿐 사뿐 입장하는 신부는 키도 훤칠한데다 인물과 자태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워 특등 신부감이었다.
신부입장이 끝나고 식당으로 먼저 간 친구들을 찾아 길을 건너는데 병익이랑 동행을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나 나눈 대화는 진희야. 잘 살고 있지?
응, 나야 뭐, 남편 월급 쪼개고 또 쪼개서 살고 있지 뭐, .
그게 행복이지 뭐.
짧은 대화를 나누곤 식당으로 들어서는데 서울팀, 대구팀을 비롯한 곳곳의 친구들로 가득하니 마치 동기회 연말 송년회장 같은 분위기였다.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춘해가 있는 쪽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보니 그쪽은 완전 예씨들 종친회 자리 같았다. 누가 그렇게 자리 배정을 한 것도 아닌데 핏줄은 원래부터 당기는 법인가보다.
얼마 전 친정 나들이에서 올해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춘해가 우리사형하고 동서지간이라네. 구정물이 조금 튕겼다 생각하니 더욱 친근감이 느껴져 이런저런 농담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수많은 친구들과 일일이 대화를 나눌 여건이 못 되어 같은 테이블에 앉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곤 일어서면서 마저 인사를 하게 되었다.
대구팀은 내려가고 서울팀은 남숙이 가게로 가기로 결정하고 우린 합류할 여건이 못 되어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행했다.
얼마를 지나자 수우왈,
“여가 명동이다 실컷 봐라.”
“명동하니 옛날 생각난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그 해 크리스마스 때 친구 몇 명이서 먼저 상경한 미숙이한테 가기로 했는데 옷이 마땅치 않았다.
그렇다고 교복을 입고 갈 수도 없고 사회초년생처럼 예쁜 코트를 입고 가고 싶은데 청도 주산학원에 다니면서 봐 둔 양품점에 걸린 코트를 사 달라고 3일 동안 졸라서 겨우 얻어 입고선 서울을 갔는데 난생 처음 신어보는 뾰족구두를 바로 명동에서 구입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친구야! 저 빌딩 좀 봐.
울산하고는 완전 격이 다르네. 예술이다.
그때 수우왈 서울사람 바보 이야기 해줄까?
어떤 촌놈이 처음으로 서울 가서 놀란 눈으로 높은 빌딩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서울 사람왈,
“아저씨. 지금 저 빌딩 봤지요? 저 빌딩 한층 보는데 천 원씩인데 몇 층까지 봤나요?‘
“아~ 네 오층까지 봤는데요?”
그럼 오천원 주세요. 오천원을 지불한 그 촌놈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사실 13층까지 봤는데 서울사람은 바보네... ㅋㅋㅋ
우린 여기저기 30층, 40층 빌딩들을 마음껏 다 훑어 봤으니 도대체 얼마나 번거야.
그러는 사이 언뜻 남산타워가 내 눈을 스치자 직장생활 시절 남산 길을 데이트했던 옛 추억을 떠올라 묘한 기분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도로 왼편에 국보 1호인 숭례문 복원 공사 현장이다.
토지 보상에 불만을 품은 한 시민의 분노로 빚어진 엄청난 국가적 손실을 보노라니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어느새 서울역이 보인다.
복잡한 차선을 통과하지 못한 기사님은 우리일행을 길 한가운데다 내려놓기에 요금을 지불한 난, 차에서 내리고선 와아, 여기다 내려 주노,..
당황스러웠으나 일단 무조건 건너가자. 수우의 뒤를 따라 겹겹이 쌓인 차량 행렬 사이를 빠져나오니 드디어 서울역이다.
시계를 보니 6시다.
아직 2시간이나 남았기에 시간을 앞당겨 기차표를 바꾸려하니 울산행 모든 열차 매진이다.
수우야! 우리 둘이 화장실 다녀 올 테니 기차표 팔아 놓아라.
5분정도 시간이 소요하고 나와 보니 벌써 팔았단다.
그 사람 어디갔노? 응 뭐 가지러 갔는데 나중에 7시 40분되어서 만나기로 했다.
우린 서울역과 연결된 콩고스매장 쇼핑을 시작했다.
난 서울 갈 때마다 가능한 서울말로 대화를 하는데 수우가 문제였다.
수우야! 너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서울 매이트 보제,,
이거 얼마예요☝ 이렇게 끝말을 올려야 한다.
그러자 수우는 부지깽이로 감자 구워먹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더 촌티를 내고 있다.
가을빛 블라우스를 하나 구입하고 돌아다니다 소다 구두를 발견했다.
가을구두와 미니부츠를 하나 샀는데 울산보다 훨씬 저렴하니 서울와서야 울산 물가가 엄청 비싸다는 걸 실감 할 수 있었다.
쇼핑을 마치고 다시 서울역으로 와선 한 층을 더 올라 개출구에서 수우는 전화기를 꺼내 그 사람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상대방은 2층 단풍빵집이란다.
눈으로 서울역사 전체를 둘러봐도 단풍빵집은 없었다.
큰 목소리 수우는 찾기 쉬운 곳으로 이동하며
" 역 한 복판에서 봉다리 들고 있는거 안 보이능교“
때마침 지나가는 코레일 직원한테 여기가 몇 층이냐고 물어보니 3층이란다.
멀어져간 수우를 향해 수우야! 여기가 3층이란다. 한층 더 내려가라.
그렇게 해서 극적으로 만나 내려가는데 입구에 단풍빵집에 눈에 띄네.
울산에선 한층만 올라가면 2층인데 여긴 어째서 2층을 보고 3층이라 하는지 ... 나 원.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하루 일정을 마치고 기차에 올라 우리들의 자리를 찾아가니 이미 다른 사람이 떡하니 우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하필이면 외국인이다.
남의 나라 와서 새치기하는 것부터 배워 남의 자리를 차지해 있냐. 속으로 나무랐으나 의사소통이 안 되니 정말 난감했다.
큰일났네, 평소 Excuse me, Hello 밖에 모르는데 이때는 뭐라 해야 되나?.
우리는 서로 표를 꺼내 비교 분석에 들어갔다
.
11호차 8C,8D 9C,9D 였는데 외국인 차표와 비교해보니 좌석이 똑 같다.
이제 남은 것은 출발시간뿐이다. 그 표엔 19;50이라고 표기되어 있고 우리 표는 20;00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 사람들이 자기가 탈 기차도 모르고 남의 기차를 탔네,
그때 맞은편 좌석의 학생왈, 이번 기차 7시 50분발 맞는데요.
국내 망신을 넘어 외국인에게까지 망신을 당한지라 쥐구멍 찾을 겨를도 없이 옆에 대기하고 있는 기차 11호칸을 향해 줄행랑을 쳤다.
진짜 우리 좌석을 찾아 좌정하고 숨을 고르고 있는데 뒷좌석에 미리 앉은 손님에게 자리를 확인하는 진짜 주인공이 나타나자 그때서야 후다닥 옷만 쥐고 튀어 나간다.
7시 50분 기차 손님이었다.
아이고, 우짜노.창밖을 내다보는데 그 일행들 눈에 보이지 않고 그놈의 기차는 플렛홈을 미끄러지며 부산을 행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서울이란 곳이 촌사람들 잡는 곳이구먼.
우리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초스피드 정보화시대에 얼마나 더 많이 휘둘리며 살아야하나 걱정이 만만치 않네.
하행선에선 고향사람들과 만남처럼 눈치 안 보고 마음 편히 보따리를 풀어놓고 저녁겸 간식을 양껏 먹고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울산역이다.
울산역은 1일 이용객이 만 명이 넘다보니 1시간 10분이나 소요되는 우리 집 방향 5002번 리무진의 자리에 앉아 오는 사람은 달리기 선수들뿐이다.
마중 나온 상분이 아들차를 얻어 타고 태화동에 내려 다시 수우랑 택시타고 학성공원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우리 집에 와서 세수하고 남숙이랑 통화하고 나니 12시다.
서울에서 구입한 가을빛 블라우스를 입어보는데 어머, 와이리. 탱탱하누, 어깨살과 허리 살이 삐져나오네.
울산 66 사이즈하고 서울 66 사이즈하고 다르나?
낭패 났다. 언제 또 이 옷 바꾸러 서울 간단 말이고…….
방법은 딱 하나.
내일아침부터 열심히 운동하여 몸을 블라우스에다 맞추는 수밖에,,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에 대한 기대가 컸었는데 이리저리 혼 줄을 다 빼앗기고 나니 서울의 높은 빌딩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하루 종일 머리가 띵 하다.
오늘 저녁 울산 사람들 만나면 다시 회복 될 것 같다.
난 평생토록 울산사람들과 울산만을 사랑하면서 울산에서 살리라.(끝)
첫댓글 어제 잘 내려왔는지 걱정스러워 아침에 전화 해준 복순이, 서울 소식이 궁금한 울산 정숙이의 전화를 받고 보고하느라 바빴답니다. 그리고 어제 문자준 친구ㅡ. 모든이가 내 친구라서 좋습니다. 이 글은 읽을거리의 재미를 더하기위해 흥미위주로 작성했으니 참고바랍니다. 다음 서울나들이는 더 많이 발전된 모습 보이겠습니다. 사실 금년에 서울 네번째였는데도 그렇게 생쇼를 했네요. 앞전엔 한번도 그런일 없었는데.. 참 이상하네요. ㅋㅋㅋ
하루를 알차고 좋은추억거리를 만들고왔구먼.ㅎㅎ 잼나게 잘봤다. 글쓰는 솜씨는 여전하네..
넘 길게 써서 다소 지루함이 느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과없이 게재하느라 그냥 올려 본것이다. 이렇게 댓글을 달아 주니 고맙네,
진희야 니 애기들어보니 지금 너랑 서울 동행한 기분이다 옷은 울산가서 바꿔라 여기서 구매했다하고 미리 점포가서 똑같은 물건있나인해보고 브랜드가 있는 제품은 사실은 어디가나 교환 가능 해야하는기 맞는데 현실이 그케 안되는지라
정아야! 서울 나들이 이후 그 블라우스에 내 몸을 맞추느라 요즘히 운동하고 있다. 일단 복부는 좀 줄었네. ㅋㅋㅋ복부살 빼고나니 눈가 주름이 또 문제네, 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