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 박지수
우리 집의 가장인 아버지는 엄마가 우측 편마비를 입어서 하당우리한의원에 엄마를 모시고 약침을 맞히려 다녔다. 월요일과 수요일 그리고 금요일 오전에 음식물쓰레기를 처리 하였다. 아버지는 고추를 재배하고 작년에 재배한 양파를 6월에 수확하려고 기다린다. 농사를 지으시는 지인 어르신들도 도와드렸다. 또 내 숙제를 고쳐주고 시간을 내어 목포대학교 평생교육원 ‘일상의 글쓰기’과정에 데리고 다녔다.
엄마가 아버지는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그 때 시골에 있는 일로초등학교와 무안중학교에서 공부를 잘해야 들어가는데 아버지는 목포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성적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종로에 있는 재수학원에서 대입 재수를 했다. 그런데 영어성적이 낮았다. 그래서 결국 목포해양대학교를 졸업했다.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하신 아버지의 선배들과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셨기 때문에 비목포고등학교 동문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옛날에 아버지는 무직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꽃을 사 오고 엄마가 손질하여 꽃꽂이를 하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배달하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가끔 미운 이유는 엄마를 경제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 생각에 엄마의 좌측 뇌동맥류가 터져서 우측 마비를 일으킨 것 같다.
교수님께서 자주 장애인 자녀를 정성스럽게 보살펴 주는 아버지가 대단하다고 말씀을 하셨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19시부터 21시 50분까지 아버지가 저를 보살펴 주는 것을 보셨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듣기가 싫었다. 이유는 보통 남자가 결혼하면 직장생활을 하고 매달 월급을 타다 아내에게 주어야 하는데 아버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이 준 월급으로 살림을 하면서 자녀를 낳고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정성스럽게 보살펴 주는 것이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사과 심부름을 시켰을 때 사과를 사 오고 내가 아버지에게 생활필수품(물티슈, 아몬드 그리고 만두와 참치 등등)이 떨어졌다고 말하면 이마트와 하나로마트에서 사다 주었다. 몸이 불편한 엄마와 나를 정성스럽게 보살펴 주는 아버지가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