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수필집 _ 그는 나의 아버지였다, 이다> 중에서
사랑은 비극, 그래도 사랑밖에
사랑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면 이인화의 『시인의 별』과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다시 읽어 보자. 아파도 다시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1. 초원의 별이 된 사랑 이야기
안현의 아내는 예뻤고 노랫소리도 곱고 빼어났다. 그 아내를 몽고 왕족이 빼앗아 갔다.
안현은 시인이다. 세상살이에 어리숙해서 과거에 급제를 하고도 10년이 넘어서야 지금의 대청도 역참관리로 임용된다. 고려 충렬왕 때 대청도는 원나라의 왕족이나 귀족의 유배지. 고려인 하급 관리보다 귀양 온 몽고 귀족이 실세인 곳이다.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의 아들이 대청도로 귀양 온다. 우연히 안현의 아내를 본 그가 그녀를 내놓으라고 한다. 안현 부부는 몰래 배를 타고 탈출, 그러나 바다에서 잡힌다. 아내는 끌려가고 안현은 머리가 터진 채 바다에 던져진다. 하지만 겨우 살아서 개경으로 돌아온다.
죽었다 살아나서 겨우 몸을 추스르게 되자 그는 떠난다, 아내를 찾아서, 지금의 북경 당시 대도까지 걸어간다. 그의 아내는 이미 거기 없다. 황제의 아들은 벌써 그녀가 싫증이 나서 몽고 귀족에게 하사했다. 이 귀족은 몽고 땅으로 돌아갔다. 안현은 다시 걷는다. 바람에 날리고 모래에 묻히고 그래도 연명한다. 때로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몇 년, 또 몇 년 만에 아내를 데려간 귀족의 영지에 다다른다. 그리고 귀족 부인이 된 아내를 만난다. 서로 말을 주고받을 계제가 아니다. 아내는 귀족 남편에게 고려에서 온 사촌오빠로 한문을 잘한다고 소개한다. 그 배려로 그 집의 집사 서기가 된다.
그렇게 또 세월이 간다. 아내보다 서른이나 위인 몽고 귀족이 죽는다. 아내가 낳은 후계자는 아직 미성년, 그 아이가 성년이 되어야 그 집안이 영지를 다시 돌려받는단다. 아내가 지나갈 때 안현이 혼잣말처럼 말한다. “고향의 고모 못에는 연밥이 한창이겠습니다.” 신혼 시절 박연폭포 아래 고모 못에서 연밥을
따며 채련가를 부르던 기억.
아내를 본 안현의 감회: “빛과 향기로 엮어진 듯 사랑스런 아내의 눈길을 마주 보자 세속에서의 삶은 죽어 버리고 시간의 흐름은 멈추었다. … 시경의 시들이 영원으로 봉인해버린 사랑의 메아리, 부부의 다정한 눈동자에서 태어나 모든 살아 있는 것들과 하나가 되는 사랑, 시인들이 그려 왔던 그 아득한 길…. 젊은 날의 별이 다시 보인다.”
그러나 아내는 단호하게 말한다. “철새는 날아갔다 돌아오지만 인연은 한번 끊어지면 다시 잇기 어렵습니다.” 아내는 이미 몽고 귀족의 부인으로 어린 아들이 성년이 되어 영지를 돌려받고 가문을 다시 일으키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안현은 다시 그렇게 아내 곁에서 존재한다.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먼 옛날 아내가 부르던 채련가를 기억하면서.
안현의 마음: “요즘도 잠자리에 누우면 그 노래가 귓전에 울립니다. 그러면 연뿌리 끊기듯 애간장이 끓고 연밥 알인 양 눈물이 방울방울 흐릅니다.”
드디어 아내의 아들이 성년이 되고 몽고 귀족으로 영지를 돌려받는다. 초원에서는 축하 잔치가 크게 벌어진다.
그날 밤….
안현이 본 것: “황야는 세상 끝까지 뻗어 가지만 그 위에는 억만 년 저런 별이 빛나고 있다. 그러나 그때 북풍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맹수처럼 응응대면서 질주해 왔다.” 안현은 일순간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선 듯했다. 지평선의 끝에서 끝까지 세계는 온통 모래들의 우수에 찬 외침, 휘어져 신음하는 나무들의 울음, 흩날리는 티끌과 지푸라기들의 슬픔으로 가득 찼다.
안현은 아내가 있는 게르로 간다. 그리고 비명 소리가 들린다. 아내는 죽고 안현은 칼을 들고 서 있다.
몽고 귀족의 부인을 죽였으니 당연히 즉결 처분감이다. 그러나 안현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안현은 자신의 이야기를 「채련가」라는 글로 남기고 사형을 당한다. 한 마리의 자유로운 말이 안현을 매달고 초원을 달린다. 그리고 별빛 쏟아지는 황야에 시체를 떨군다. 당시 몽고에서는 최고의 예를 갖춘 사형 방법이다.
- 이인화, 「시인의 별」( 2000년)
2. 폭풍 같은 복수, 그것도 사랑일러라
캐서린은 같은 집에서 자란 히스클리프를 사랑한다. 히스클리프는 아버지가 주워 온 검은 얼굴의 집시 고아이다. 아버지는 그를 친자식처럼 기른다. 캐서린의 친오빠 핸들리는 히스클리프를 미워한다. 아버지가 죽자 핸들리는 히스클리프를 하인으로 만들고 구박한다. 그럴수록 캐서린과 히스클리프 둘은 더욱 사랑하게 된다. 황량한 늪지대, 폭풍의 언덕에 있는 고풍의 저택, 그들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곳은 많다.
폭풍의 언덕 밑에 가장 가까운 이웃 린튼 일가가 살고 있다. 아들 에드가, 딸 이사벨라. 부자이고 캐서린 집안보다 귀족이다. 캐서린은 에드가와 가까워진다. 그리고 결혼을 한다. 검은 얼굴에 배운 것이 없는 히스클리프는 그렇게 실연을 당한다. 그리고 폭풍의 언덕을 떠난다.
3년 후 히스클리프는 부자가 되어 돌아온다. 폭풍의 언덕 저택을 물려받은 핸들리는 노름꾼 술주정뱅이가 된다. 히스클리프는 그에게 돈을 빌려주고 서서히 그 집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웃집 마나님이 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캐서린을 찾아온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보자 옛사랑이 다시 타오른다. 남편 에드가는 원래부터 히스클리프를 싫어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둘이 부딪치는 것은 필연이다. 싸움이 붙는다. 문제는 히스클리프가 문약한 에드가보다 훨씬 체력적으로 강하다는 것. 이 싸움의 한복판에서 캐서린은 히스클리프 편을 든다. 남편이 하인들을 데리고 들어오려 하자 문을 잠가 버리고 남편을 비웃는다. “싸움은 니들끼리 해.”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서서히 복수로 변한다. 캐서린의 시누이 이사벨라를 유혹한다. 그리고 둘이 달아나서 결혼을 한다. 이사벨라를 폭풍의 언덕으로 데려온 후에도 이웃에 있는 친정집, 캐서린과 에드가가 사는 집을 못 가게 한다. 그렇게 캐서린의 남편 에드가의 마음을 후벼 놓는다. 이사벨라는 그 감옥 같은 폭풍의 언덕을 탈출, 런던으로 도망간다.
에드가의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캐서린의 병이 깊어진다. 에드가가 교회에 간 사이 히스클리프가 찾아온다. 그가 오기 전에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와 황야에서 새를 잡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린다.
히스클리프가 오자 캐서린은 “당신과 에드가가 내 가슴을 찢어 놓았다.”고 말한다. 히스클리프의 대답. “당신의 가슴을 찢어 놓은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다. 당신의 가슴이 터지면서 내 가슴도 찢어졌다. … 나를 죽인 살인자 ‘당신’을 용서하고 사랑한다. 그러나 당신을 죽인 살인자 ‘당신’, 내가 어찌 용서할 수 있겠나?”
그날 밤 캐서린은 죽는다. 딸 하나를 낳고 두 시간 후에…. 그녀의 나이 갓 스물쯤 되었을까.
그 후 16년, 그 다음 이야기는 히스클리프의 복수극. 캐서린이 죽기 전에 낳은 그 딸 이름도 캐서린. 그녀가 히스클리프 복수의 중심에 선다. 그녀의 고모 이사벨라가 죽는다. 이사벨라의 아들, 히스클리프의 아들이기도 한 린튼이 폭풍의 언덕으로 온다. 폭풍의 언덕에는 헤어톤이라는 같은 나이의 남자아이가 있다. 엄마 캐서린의 친오빠 핸들리의 아들, 히스클리프 밑에서 무식한 하인으로 살고 있다.
히스클리프는 병약한 자기 아들을 딸 캐서린과 결혼시키려 한다. 히스클리프는 아들을 미워한다. 점점 커 가며 외삼촌 에드가, 엄마 캐서린의 남편을 닮아 가는 것을 지켜볼 수가 없다. 그래서 에드가가 끔찍이 사랑하는 딸 캐서린을 린튼과 결혼시킴으로써 에드가의 가슴을 다시 한 번 찢어 놓을 작정이다. 그리고 병든 에드가가 죽으면 그 땅까지 차지하기 위해서 딸 캐서린을 며느리로 만들어야 한다.
딸 캐서린의 린튼에 대한 측은지심을 이용하여 폭풍의 언덕 저택으로 유인한 뒤에 못 나가게 한다. 그리고 린튼과 강제 결혼을 시킨다. 5일 만에 린튼의 도움으로 딸 캐서린이 그 집을 탈출 아버지에게 돌아온다. 병상에서 딸을 만난 아버지는 그 재회의 축복 속에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하고 그날 밤 죽는다.
히스클리프는 며느리인 캐서린을 다시 폭풍의 언덕으로 끌고 간다. 아들 린튼이 죽어 가는데도 히스클리프는 의사도 못 부르게 한다. 린튼은 죽고 캐서린은 17살에 미망인이 된다. 그녀의 옛집은 결혼과 동시에 린튼에게 갔다가 린튼이 죽자 히스클리프 차지가 된다.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캐서린을 구박하는 것으로 계속된다. 그때 구원자로 나서는 것이 헤어톤, 캐서린과는 외사촌, 폭풍의 언덕 저택의 적법한 계승자가 되어야 했지만, 아버지 핸들리의 잘못으로 그 집이 히스클리프에게 넘어가고 그의 하인이 되었던 청년, 처음에는 너무 무식해서 캐서린이 싫어하지만 둘은 서서히 가까워진다. 그는 캐서린에게서 글을 배운다.
헤어톤과 가까워진 캐서린이 히스클리프에게 대든다. “당신은 내 땅 내 돈 모두를 가져간 나쁜 사람, 헤어톤의 돈도 땅도 다 빼앗아 가고.” 히스클리프가 화가 나서 한 대 갈기려고 손을 든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에서 엄마 캐서린을 본다. 팔을 슬그머니 내린다. 그 후로 히스클리프는 말수가 적어지고 사람들 을 피한다. 딸 캐서린과 헤어톤은 점점 더 다정해지고….
히스클리프는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굶어 죽는다. 죽기 전 알 수 없는 환희 속에 지낸다. 그가 남긴 말이다. “내 영혼의 환희가 나의 신체를 죽인다. 그러나 그 환희에 무언가 부족하다(My soul's bliss kills my body, but does not satisfy itself).” 그리고 묘지 파는 사람에게 미리 손을 써 놓는다. 그가 죽으면 엄마 캐서린과 그 남편 에드가가 묻혀 있는 곳, 당연히 에드가 반대쪽에 묻어달라고, 캐서린의 관 한쪽과 자신의 관 한쪽을 마주 보게 열어 달라고,
-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18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