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통신 2026년 여름-술
술, 그 그윽한 향기에 취하는 정담
<산촌의 술 향기>
“푸르릉 폴딱~. 푸르릉 폴딱~”
이 소리는 안방 아랫목에서 술 익는 소리입니다. 이불을 뒤집어쓴 술 단지에는 술이 꿈틀대고 있었지요. 그렇게 연신 단지 안에서는 살아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는 호기심에 단지 뚜껑을 열었습니다.
“으크! 철퍽.”
술이 끓어올라서 아이의 콧등에 철썩 달라붙었습니다. 시큼한 술 냄새가 코를 자극하며, 얼른 단지 뚜껑을 닫게 하였습니다. 호기심이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른들은 이렇게 맛없는 술을 왜 마실까?”
시골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큼한 술 향기가 주는 매력을 알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술을 거르고 남겨둔 술지게미를 먹고 비틀거리면서지요. 눈앞의 형상이 흔들리고 떨려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술맛을 익혔습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밤이면 술 생각나는 근원이 그때인가 합니다.
산촌에서는 늘 술이 일상처럼 준비돼 있었습니다. 막걸리가 가장 많았고, 막걸리 빈자리는 소주가 차지했습니다. 좋은 안주가 있어도 술이요. 손님이 와도 술이요. 벗들끼리 만나도 술이요. 잔치와 제사에는 물론 술이 빠질 수 없었습니다. 힘든 농사일 중에도 술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정월대보름 축제와 동제에는 동네 어른 모두 취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한밤중에 주전자를 들고 가게로 가서 술을 받아 오던 심부름은 정말 힘들었지요. 그러나 그 술 드시고 유행가 부르며, 툭 던지던 아버지의 달콤한 정담은 듣기 좋았습니다.
<술에 국가 행패의 추억>
“술 조사 나왔어요~. 술 조사 나왔어요~.”
버스도 다니지 않던 시골이라, 외부인이 들어오면 금방 눈에 띄었습니다. 아이들은 소리를 치며 동네 이곳저곳으로 뛰어다녔습니다. 복령 캘 때 쓰는 쇠꼬챙이를 든 술 조사관은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오면 아이들은 으레 소리를 치면서 행동을 했지요.
어른들은 논밭에서 일하다가 얼른 집으로 가서 술 단지를 들어 감췄습니다. 문을 잠그지 않던 시절이라 술 조사관은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뒤졌거든요. 쇠꼬챙이를 들고 술 단지를 감출 만한 장소는 푹푹 찔러 보기도 했습니다. 정말 무서운 장면이었습니다.
술 단지가 적발되면 벌금을 물어야 했습니다. 어른들은 조사관에게 빌기도 하고, 닭을 잡아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1년에 한두 번 명절 때나 잡던 암탉을 잡아야 했으니, 얼마나 아찔한 순간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술 조사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먹을 양식도 없는데 곡식으로 술을 담가 먹는다는 이유였고요. 또 하나는 양조장에서 만든 술이 잘 안 팔린다는 이유였습니다. 국가에서 세금을 거둬야 하는데, 가정에서 농주를 담가 먹으니 술이 안 팔려 세금이 거둬지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어른들은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일본 순사들이 하던 버릇 아직도 고치지 못했어. 아이고 참.”
그땐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참 서글픈 사연이었지요. 농주 좀 담가 먹는다고 산촌까지 와서 행패를 부렸으니까요. 마치 농주를 담가 먹는 사실이 도둑질이나 반국가적인 행동처럼 여겨졌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참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산촌의 농민들은 농주를 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힘든 농사일을 하다가 잠시 쉬면서 새참으로 농주 한 사발 마시면 고통을 잊고 또 일할 수 있었거든요. 푹 삭은 김치 안주 삼아 시큼한 농주 한 사발은 힘의 근원이었습니다.
“며늘 아가, 이번 술은 맛이 참 좋구나.”
그리고 술 잘 담갔다고 며느리에게 칭찬 한마디 하시고, 농기구를 들고 다시 논밭으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술은 가족의 정과 농사일을 하는 원천으로 작용했습니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즐거운 정담>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박목월의 <나그네>)
이 시에서는 술 한잔 걸치고, 두 팔을 흔들며, 유유히 걷는 나그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아마도 강 건너 벗이 술 익었다고 불러 옛이야기 나누며 한잔하고 가는 길이었겠지요. 얼마나 경쾌하면 구름에 달 가듯이 밀밭 길을 성큼성큼 걸었을까요. 박목월 시인은 깨달음을 향해 걷는 우리의 삶을 나그네란 주제어로 정말 멋지게 표현했습니다. 그곳에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라는 풍요로운 장면이 이 시에서는 압권입니다.
아무래도 술이라 하면 조선조 때 정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관동별곡>에서 동해 바닷물을 술로 생각하였을 정도였지요. 정철은 술만 있으면 찾아 벗들과 취했습니다. 유명한 <장진주사>를 보면, 그 누군들 한 잔 아니 할 수 없습니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여 주리혀 메여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의 만인(萬人)이 울어 예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白楊) 속에 가기만 하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 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휘파람 불 때야 뉘우친들 어쩌리”(정찰의 <장진주사>)
<장진주사>에서 술은 지금 순간을 즐기는 모습입니다. 술은 모든 근심을 잊을 수 있는 매체이지요. 아니, 정철이 궁극적으로 누리고자 하는 도의 길이 ‘즐거움’이란 말로 잘 드러납니다. 이 순간, 곧 지금을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누려야 한다는 철학이라 할까요.
정철처럼 술을 노래한 시인은 참 많습니다. 그 가운데 조준의 시조는 정말 절창입니다.
“술취케 먹고 오다가 공산(空山)에 자니/ 뉘날 깨우리 천지득금침(天地卽衾枕)이로다/ 광풍(狂風)이 세우(細雨)를 몰아 잠든 나를 깨와라.(조준의 시조)”
얼마나 술 취했으면 하늘과 땅을 이불과 요로 삼아 잠들었을까요. 비를 잔뜩 맞고서야 잠을 깼습니다. 왜 술을 그렇게 마셨는지 알 수 없지만, 공산에서 잠을 잘 정도니 정말 즐거운 술자리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술을 노래한 작품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술 마시지 않고는 인생을 말하지 말라는 말이 허튼 말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술 취하면 몹쓸 말도 오가겠지만, 술자리는 보통 즐거운 터라 서로 아끼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정담이 오가겠지요.
그 때문일까요. 우리 민속에서는 동제를 지내든, 걸립을 다니든, 잔치를 행하든, 술 없으면 안 되었습니다. 오늘처럼 따뜻한 날 우리 사랑의 정담 나누면서 막걸리 한 잔 마시는 일도 좋겠습니다. (2026.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