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뽕나무라도 올라가라
07/12금(金)눅 19:1-11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눅 19:5).
인간은 누구나 이 땅에서 구도자(求道者)의 삶을 살아갑니다. 다 자신의 길을 찾는다고 하지만 세상과 사단에 붙들려 욕망의 포로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길을 찾게 됩니다. 단 자신의 욕망 때문에 구도를 놓칠 뿐입니다. 그 길이 예수라는 것을 깨닫는 자가 복입니다. 세상의 물은 마시면 마실수록 욕망의 포로가 되어 갈증이 나지만 주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면 생수가 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요 4:13-14).
삭개오는 약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키가 작고 용모도 수려하지 못해 세상의 힘으로 욕망을 채우고 약점을 극복하려고 자기 나름대로 구원의 길을 찾았습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고 권력을 얻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세상 사람들의 질시와 목마름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삭개오가 복 받은 것은 예수 이야기를 듣고 예수에 관심을 가진 것입니다. “삭개오라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다. 삭개오는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고 애썼으나 무리에게 가려서 예수를 볼 수 없었다. 그는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눅 19:2-3).
삭개오가 예수께 나가는 길에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는 키가 작아 사람들 때문에 예수께 나갈 수 없습니다. 그가 어른이라는 것, 권력자이지만 놀라운 결단을 합니다.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자신을 포기할 때 주님과 인격적 만남이 생깁니다. 주님과 사상적 교류가 일어난 것입니다. 내 문제를 아시는 그분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러서 쳐다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그러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모셔 들였다”(눅 19:5-6).
예수님은 여리고에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오직 삭개오를 만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삭개오와 주님의 인격적 만남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삭개오에게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삭개오 개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신 것입니다. 이제 삭개오는 구원의 삶, 새로운 피조물, 주님과 연합된 삶,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주님과 연합될 때 인생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제 내 개인의 삶이 없어지고 주님의 삶만 남습니다.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주겠습니다”(눅 19:8). 세상의 것에 포로가 되었던 자가 물질에서 자유를 얻고, 사랑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는 이제 자신만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돌보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사랑의 삶입니다.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눅 19:10). 삭개오는 주님과 연합된 삶을 삽니다. 그는 사람을 구원하는 통로가 되어 축복을 받습니다. 누구든 주님을 만나면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And...
뽕나무에 올라간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 하는 체면을 버린 것입니다. 즉 보이는 것에서 자유 하다, 자신의 자아를 포기한 것입니다. 인간은 절대 절망을 느끼기 전에는 절대로 자신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대해 절망을 느낄 때 비로소 자신의 궁극적 문제를 찾게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내 삶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주님은 자신에 대해 절망하는 자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런 사람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얼마 전이었습니다. 평소에 ‘절대로 이런 일은 하고 싶지 않아’라는 문제가 제 앞에 다가왔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그 일만큼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제게 “네가 이것만은 안된다고 하는 그것을 내려놓는 것이 진정한 자아 죽음이란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감정을 주님께 넘겼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를 통치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절대로 안 된다는 그 일을 해도 되겠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단계씩 내 안에 아직 죽지 않은 자아를 죽음에 넘기도록 훈련을 하십니다. 주님의 통치가 임하니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우리는 늘 삶에서 평안을 유지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인생입니다. 그 인생의 연출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살아가는 모든 삶을 연출하십니다. 그 과정에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도 있고, 힘들고 어려운 시간도 있지만 모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좋은 시간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됩니다. 연출자이신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시작과 끝을 아시는 분입니다. 비록 우리의 삶이 구겨진 삶일지라도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면 최고의 드라마가 됩니다. 우리의 힘들고 어려운 삶, 방황과 아픔이 가득한 삶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면 아름다운 삶으로 변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쓰신 삶은 쓰임 받는 삶이 될 것입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환경은 나를 죽음에 넘기는 무대입니다. 삭개오처럼 뽕나무에 올라갈 때 구원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배에서 흘러나오는 영원한 생수를 마시게 됩니다. 지금 이 환경은 주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내 힘으로 살아온 지난 시간을 회개하고 주님과 연합하여 주님의 힘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 힘으로 살면 결과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내 삶을 살아간다면 결과에서 자유 하니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뽕나무에 올라감으로 날마다 삶에서 구원을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호와께 돌아가자
https://youtu.be/SPvMxO-Fzc0?si=9o250_NTDirC2Kj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