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16-18절
לֵ֣ךְ וְאָֽסַפְתָּ֞ אֶת־זִקְנֵ֣י יִשְׂרָאֵ֗ל וְאָמַרְתָּ֤ אֲלֵהֶם֙ יְהוָ֞ה אֱלֹהֵ֤י אֲבֹֽתֵיכֶם֙ נִרְאָ֣ה אֵלַ֔י אֱלֹהֵ֧י אַבְרָהָ֛ם יִצְחָ֥ק וְיַעֲקֹ֖ב לֵאמֹ֑ר פָּקֹ֤ד פָּקַ֨דְתִּי֙ אֶתְכֶ֔ם וְאֶת־הֶעָשׂ֥וּי לָכֶ֖ם בְּמִצְרָֽיִם׃
וָאֹמַ֗ר אַעֲלֶ֣ה אֶתְכֶם֮ מֵעֳנִ֣י מִצְרַיִם֒ אֶל־אֶ֤רֶץ הַֽכְּנַעֲנִי֙ וְהַ֣חִתִּ֔י וְהָֽאֱמֹרִי֙ וְהַפְּרִזִּ֔י וְהַחִוִּ֖י וְהַיְבוּסִ֑י אֶל־אֶ֛רֶץ זָבַ֥ת חָלָ֖ב וּדְבָֽשׁ׃
וְשָׁמְע֖וּ לְקֹלֶ֑ךָ וּבָאתָ֡ אַתָּה֩ וְזִקְנֵ֨י יִשְׂרָאֵ֜ל אֶל־מֶ֣לֶךְ מִצְרַ֗יִם וַאֲמַרְתֶּ֤ם אֵלָיו֙ יְהוָ֞ה אֱלֹהֵ֤י הָֽעִבְרִיִּים֙ נִקְרָ֣ה עָלֵ֔ינוּ וְעַתָּ֗ה נֵֽלֲכָה־נָּ֞א דֶּ֣רֶךְ שְׁלֹ֤שֶׁת יָמִים֙ בַּמִּדְבָּ֔ר וְנִזְבְּחָ֖ה לַֽיהוָ֥ה אֱלֹהֵֽינוּ׃
렉(가라) 웨아삽타(모으라) 에트(격조사) 지크네(형제들) 이스라엘 웨아마르타(말하다) 알레헴(그들에게) 야훼 엘로헤(하나님) 아보테켐(너희 조상) 니라흐(나타났다) 에라이(나에게) 엘로헤(하나님) 아브라함 이삭 야곱 레모르(말하다) 파코드(확실히) 파카드치(내가 방문했다) 에켐(너) 웨에트(그리고) 헤아슈이(행했던 것) 라켐(너에게)
와요마르(말했다) 하아레(가져올 것이다) 에트켐(너에게) 메오니(고난) 미츠라임(애굽) 엘(에게) 에레츠(땅) 하크나아니(가나안의) 웨하히티(헷족속) 웨하에모리(아모리 족속) 웨합퍼리찌(브리스족) 웨아히위(히위족) 웨하이부쉬(여부스족) 엘(에게) 에레츠(땅) 자밭(흐르는) 할랍(젓과) 우드바쉬(꿀)
웨샤마우(그들은 들을 것이다) 레코렉카(너의 말) 우바타(너는 올 것이라) 아타흐(너에게) 웨지크네(형제들) 이스라엘 엘(에게) 멜렉(왕) 미츠라임(애굽) 와아마르템(너는 말을 할 것이다) 엘로(그에게) 야훼 엘로헤(하나님) 하이브리임 니클라흐(만났다) 알레누(우리와 같이) 웨아타(지금) 네라카(우리와 가도록) 나(하소서) 데렉(여행하다) 쉐로쉐트(삼) 욤(날) 밤미드바르(광야로) 웨니즈베아흐(우리가 희생제사를 드리다) 야훼 엘로헤누(하나님)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개정개정)
여전히 하나님은 백성들이 믿을 수 있을지 불안해 하는 모세에게 자신의 하나님되심을 설명한다.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러고 하신다. 여호와는 아도나이에서 『하야(예흐에) 아세르 하야(예흐에)』, 야훼, 여호와로 사람들이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다. 아도나이로 불렀던 것과 하야 아세르 하야로 표기한 것은 어떤 관계인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야훼는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표기된 YHWH를 소리내어 부르는 과정에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라는 사람이 아도나이의 모음을 THWH에 붙여 야훼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 뒤에 우리말 번역과정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번역된 것이다. 영어 성경에서는 The LORD(주님)라고 표기된다. 우리말 번역은 성경이 들어온 초기 주로 한자어를 중심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여호와라고 번역했다. 하나님의 이름이 인간의 번역과정에서 이렇게 다양하게 번역되었지만, 하나님은 변함없는 영원한 존재이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모든 피조물은 영원한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자기라는 존재를 벗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때 피조물은 영원한 존재와 하나가 된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세상이 기억해야만 하는 이름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는 말은 여호와께서 보내셨다는 말이다. 요한복음 5장 37절에서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태복음 17장 5절에서『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라고 말한다. 여호와는 세상에 나타나실 하나님의 이름인 것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했는데, 히브리어 성경 원어에는 소유격이 아니다. 아브라함 하나님, 이삭 하나님, 야곱 하나님이라는 표현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 이라는 의미다. 야곱 하나님은 세상에 오는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야곱 하나님이라는 히브리어 표현에서 바브(세상)라는 철자가 엘로힘 앞에 붙는다. 야곱 하나님 안에는 세상에 오는 하나님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17장 5절에서『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 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제케르) 나의 칭호(쉠)니라』쉠은 이름이다. 쉼과 멤과 요드가 붙는다. 성령과 말씀으로 인해서 다 마쳐지는 것이 여호와 이름 속 들어있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마쳐져야 한다는 것이 기억되어야 할 이름인 것이다. 이 이름(쉠)에는 쉼과 멤과 요드가 붙는데, 세상에 와 있는 이 하나님은 이것(여기:첫사람 아담) 저것(저기:마지막 아담)), 그리고 세대(문을 나온 세대)와 세대(아버지와 아들과 내가 말씀을 이루어 문으로 들어가는 세대)로서 그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어져야(제케르) 할 이름이다. 제케르는 창세기 1장 27절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에서 남자가 자카르이다. 남자라는 이름 속에는 기억하다 라는 의미가 있다. 하나님이 다시 데려가야 할 그런 기억이 되는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은 성령과 말씀으로 마친다는 의미다. 로마서 11장 36절에서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하나님 나라를 떠나 세상에 갇혀있었는데, 이제 세상(애굽)으로부터 나와서 약속하신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실 하나님 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이 말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인카네이션)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야훼가 된다.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고난과 함께 하는 하나님을 나타낸다. 고난은 율법을 통해서 받는 고난을 의미한다. 애굽에서 고난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하나님이시다. 인도한다는 말은 올라간다는 말이다. 애굽으로부터 가나안으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간다고 말을 하면 백성들이 네 말을 들을 것이다 라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돌보아(파카드)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파카드라는 말은 권고하여(방문하여)라는 말이다. 애굽이 너희를 어떻게 행사했는지 방문해서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샤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샤마는 듣고 하나가 되는 의미를 갖는다. 카라는 만나다 라는 의미다. 사흘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즉 세상과 단절을 의미한다.
히브리라는 말은 강 건너편에서 온 자를 의미하며,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으로 건너온 자를 나타낸다. 이 땅에 갇힌 것을 깨닫는 자가 히브리인이며,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아브라함은 바벨론에서 가나안으로 건너가고, 야곱은 라반의 땅에서 얍복강을 건너가는 모습이다. 이스라엘도 애굽이라는 땅에서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다. 성도 역시 세상의 강을 건너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자들인 것이다. 영적 히브리인들(성도들)은 바로 심령 속의 성전이 세워진 자를 의미한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애굽에서 벗어나 시내산까지 가는 길이 사흘길인데, 삼일은 심판과 구원을 의미한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데리고 모리야 산으로 올라가는데, 삼일 길을 걸었다고 한다. 제사(웨니즈베아흐 וְנִזְבְּחָ֖ה 기본형은 자바흐)에서 자바흐는 동물을 도살하다라는 의미다. 동물을 죽인다는 말은 곧 자기 자신(죄인)이 죽는 것을 의미한다. 곧 하나님으로부터 심판받았다는 의미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곧 동물이 죽는 것을 상징하나, 죄인이 함께 죽는 것이다. 이것은 심판에서 구원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법으로 가는 것이다.
애굽에서는 사망의 법이 존재한다. 이제 생명의 법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옛것과 단절이 필요하다, 잘라내는 것이다. 이것이 옛사람의 죽음인 것이다. 로마서 6장 5-7절에서『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이것을 깨닫는 자가 바로 성령과 진리로 예배(제사)하는 것이다.
제사는 자기 죽음이나 히브리 백성들은 짐승이 대신 죽으므로 자신은 죄를 용서받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짐승의 죽음과 자신이 별개로 된 것이다. 그래서 제사가 되지 않는 것이다.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이 제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